2017년 7월 16일

생각 2017.07.17 00:03

시간이 빨리 흐른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우선은 써야겠다.

 아침에 피곤하여 제때 일어나지 못했다. 알람은 7시 30분 정도에 맞춰 놨는데, 거진 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일어났다. 동생도 자고 있었다. 더운 이부자리에서 비비적대다가 준비를 마치고 10시 넘어서 엄마와 동생과 동신병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탔고, 엄마가 지불하였다. 할머니는 어제보다는 더 편찮으신 모습이었다. 기력을 되찾길 바라지만,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이 많지 않다. 문안 인사를 올리고, 동생과 버스를 타고 유진상가에 내렸다. 버거킹에서 커피를 사서 홍제역으로 들어갔다. 3호선을 타고 신사역에 내려 가로수길이란 곳을 처음으로 가보았다.

 8년지기 K가 나왔다. 일요일인데도 회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판아시아라는 가게에 가서 점심을 얻어 먹었다. 이후 C-27로 기억되는 카페에 가서 내가 커피를 샀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딱 좋은 그런 구성과 소품의 장소였다. 이후 K 회사 앞까지 배웅을 갔고, 나와 동생은 교대역으로 내려왔다가 낙성대역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서 이디야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공부는 잘 되지 않았으나, 계속 했다. 이후 4시 조금 넘어 동생이 귀가했고, 나는 친한 후배 W에게 연락한 후에 버스 타고 학교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동사과 석사과정으로 진학을 준비하는 후배 P도 보았다. 그들에게 마실거리를 사주고 과도에서 공부했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이후 서울대입구역으로 내려가 후배 L과 홍콩반점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국어를 조금 하고 헤어졌다. 관악구청 건너편에서 750번 버스를 타고 경찰청까지 와서, 7021로 갈아타고 집에 왔다. 명지대까지 동생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세븐일레븐에서 탄산수를 사서 귀가를 마쳤다. 페이스북에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관련 기사도 링크하였다.


나중에 가능하다면, 모노그라프를 써보고 싶다. 제목은 구리지만 "서울대생 게츠비" 정도.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졸업해서 쩔었다, 는 전형적인 서사 말고, 정말로 서울대 안에서 지난 10년간(2007~2017) 가정의 경제적 수준과 입학자 구성 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해 보면 재밌겠다. 그리고 우울하겠지. 

2007년 입학했을 때만 해도 인문계열2에 속한 학생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는 고만고만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우리 집같이 10년 전 국제통화기금 사태 때 형편이 어려워진 친구들도 제법 있었고, (학원이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내신 파이팅 해서 수시로 오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입대한 2009년까지만 해도 후배들 중에 경제적으로 '힘든' 이들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 2013~2017년 입학한 후배들은 나와 심리적/물리적 거리도 그리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나나 내 동기보다는 부티(?)도 좀 더 나고, '아주 어려운 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분명 어떠한 변화인데, 아직은 그럴 것이라는 추정일 뿐이지 잘 모른다. 

두려운 건, 압축발전의 시대에 서울대가 떠맡은 여러 역할 중에 학생들에게 산발적으로나마 제공한 상향적(!) 계층이동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는 점. 상식적으로, 부자/권세가/지배층의 자녀들이 서울대에 많이 왔겠고 (당연히 美英 대학에도 갔겠고), 그런 경향은 갈수록 양의 방향을 보이겠다. 문제는, 설령 가난한 부모의 자녀가 운 좋게 서울대에 와도 도무지 무언가를 좀처럼 잘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부자/권세가/지배층의 자녀들이 “하고 싶은 것”을 좇아 무언가를 할 때, 가난한 친구들은 마냥 그렇지만은 못하다는 인상을 지난 10년간 받았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굳이 서울대를 오지 않아도, 아니, 대학을 가지 않아도 국민이 잘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로 가기 위해선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궁금해서이다. 우리들은 “대학이 너무 많아” “함량미달 대학생도 많아” 등을 입에 달고 살지만, 대학을 가지 않은 자에게 대학을 간 자보다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더 많은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정말 개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사회주의사회처럼 문화혁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각자의 상층 (제도-회사, 학교, 군대/선임-팀장, 사수, 교수, 간부, 선배)에서 내려오는 피해를 파레토적으로 전가 받고 있는 상태인데. 

우주적인 문제가 이땅에 살아숨쉬고 있다. 난 참 그게 신기하다. 이게 초현실이 아니고 뭔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제일 궁금하다. 인민은 무언가를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 세계는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시리아에서, 이라크에서, 예멘에서,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각종 전쟁은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반구/북반부의 선진국에서도 테러와 불평등에서 비롯된 각종 문제들,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반주변부, 또는 준주변부의 한 역사학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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