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 UCLA 60일차

생각 2017.11.14 09:44

꿈 같던 연휴가 다 갔다. 계속 나아갈 뿐이다. 

동구 현대사와 국제주의 관련 서적을 꽤나 모았다. 어서 읽어야 하겠다.

잘 지내고 있다. 아주 특권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속에서 말로만 혁명을 읊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시대는 개인이 무언가 할 수 있는 때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노오오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분명 시대는 변했다. 이 시대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수학, 과학, 공학에 관한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하며, 금융의 운동에 대해서 포착해야 한다. 한편으로 제국주의질서가 만들어 놓은 격자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나는 계몽주의적 전통에 입각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인식해야 한다. 해석해야 한다. 연후에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 3-4년 후에, 논문을 거의 다 쓰거나 반절 이상 썼고 본격적으로 구직을 걱정할 때, 아니면 미국 대통령이 바뀌거나 그 전에 자리에서 물러날 때,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나는 어떠한 인상을 그리고 이에 바로 사로잡힌다. 내가 그리는 인상에서, 자본은 국가를 타고 사회를 착취한다. 마르크스가 그의 대작에서 종종 인용했고, 엥겔스가 정부 대신 수행한 그 보고서의 내용이 맥락만 다를 뿐이지 그대로 드러난다. 이미 우리가 마시는 커피콩에는 하루 미화 2불도 받지 못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얼이 서려있다. 우리가 쓰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금속이나 태블릿, 노트북에 들어가는 이러저러한 부품들이 떠오른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온갖 산업에 들어가는 석유는 자연환경에 대한 창의적, 수리파쇄적 공세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일전에 유명한 선생이 주재하는 워크숍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가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 이른바 케이터링 직원이었던 것이지. 유사파시즘을 비판하고 식민지 주체의 이중부정을 얘기하는 한편으로 케이터링 직원이 깔아주는 뜨끈하고 맛갈난 음식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순간을 그렸다. 또한 같은 공간이었지만 누구는 토요일에도 일을 하고 누구는 토요일에도 고담준론을 펼치고 하는 모습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질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 바꾼다면 어떻게? 바꾼 후에는 어떻게?

난 이런 생각이 하나마나한 생각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이런 생각이 힘을 얻으려면 다름 아닌 사람들의 여유가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책을 읽고 그래야 비판을 할 수 있다. 여유가 늘어나도 책을 안 읽을 수는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빼앗는 여러 재미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사람들의 의지박약을 비판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태블릿과 노트북과 넷플릭스가 사방에 포진한 상태에서 어떻게 다시 비판의 기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당장 드는 생각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자연과학자, 공학자들이 교육계로 진출하여 접면을 넓히는 길이다. 그러한 시도들이 얼마나 쉽게 좌초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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