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이야기 - 4

수필/카투사 이야기 2018.01.15 16:03

나는 2009년 6월 19일, 무척 습기찬 날에 논산을 벗어났다. 지옥 같은 논산에서의 나날들은 이제 추억으로밖에 안 남게 되었지만, 정말 인생 최고의 시간낭비임에는 틀림 없었다. 벌써 9년 전의 일을 기억하려니 잘 안 되지만, 최선을 다해 그때의 경험을 돌이켜 보겠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지 걸어서 이동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좌우간 논산 기차역으로 갔던 것 같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그때 처음으로 열차의 진행방향과 반대되는 쪽으로 몸을 두는 좌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좌석에 배정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앉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좌우간 서울 방향의 반대(논산을 향해)로 앉게 되었다.

열차는 서울로 북상하여 한강을 지나 영등포를 지나 북상했던 것 같다. 어디까지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어느 역에서 내려 옹기종기 모여 대기했다. 대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곧이어 미군 전투복(ACU)을 입고 검은 베레를 쓴 미군 교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카투사로서 일종의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미군을 보고 이렇게 기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정말이지 유쾌한 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의정부에 위치한 캠프 잭슨으로 향했다. 이 부대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카투사훈련소(KTA)이고 다른 하나는 분대장훈련소(WLC)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2010년 8월에 잭슨에 다시 오게 된다. 하여간 이때만 해도 한국 안의 미국 영토에서 근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버스에서 내려 제일 처음 했던 것은 돔형의 실내체육관에 모여 한국군 더플백에서 온갖 비품을 모아 폐기처분하는 것이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산에서 쓰던 각종 쓰레기 같은 물품(수건이니 등등)을 모아서 버리더라. 나는 파란 수건을 두 장 정도인가 내지 않고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내 군 복무 기간 동안 정말 유용하게 쓰게 되었다. 좌우간 그렇게 140여 명 정도의 동기들 물품을 모으니 잡화가 쌓여 조그마한 동산을 이루었다. 아마 그 물건들은 전부 폐기처분 되었으리라.

이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인 체육복(PT복), 운동화 등을 지급 받고 환복했던 것 같다. 방은 3인 1실이었는데, 이때 같은 방을 썼던 동기들과 가장 뒤늦게까지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고, 한 명은 심지어 나와 같은 자대의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에어컨이 너무 세게 틀어져 있어서 추웠다는 점이다. 그저 행복했다. 카투사에 오길 정말 잘 했고(나의 노력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이 다시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며 쿠키, 샌드위치 등이 담긴 런치백을 받고 강당에 모여 먹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잭슨은 당시만 해도 '잭슨 버거'로 유명했는데, 장차 엄청나게 먹게 된다. 그리고 나서 강당에서 기본 예절을 배웠던 것 같다. 기침을 할 때 팔이나 손으로 입을 막는다든지, 식당(Dining Facility)에서 먹을 만큼만 적당하게 받는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후의 일과는 거의 기억이 안 나고, 꿀잠을 잤으리라고만 추측된다.

잭슨의 첫 인상은, 부대 뒤쪽으로 모종의 산(도봉산이리라)이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멋있었다. 미국 특유의 냄새(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는 미군부대의 냄새이기도 하고 미국의 냄새이기도 했다)와 미군 특유의 시설이 너무 좋았다. 비록 소속은 한국군이지만, 한국군 부대에서 근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를 드렸다는 생각밖에 나질 않는다.

다음 꼭지에서는 카투사 훈련소에서 보낸 3주 과정에 대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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