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USSR2018. 11. 10. 18:06
애플봄의 Red Famine을 훑고 북한사학도로서의 감상

1. '역사'는 서사narrative로 구성되고, 서사를 생산하는 데 가장 핵심은 역시 돈이다. 책에 잘 나와 있지만, 소련에서 미주로 건너간 이산diasporic 우인들이 캐나다 토론토와 미국 하버드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기근)연구를 수십 년째 수행하고 있다. 대충 스탈린 개객기, 소련 개객기, 나치 개객기 (나치는 정말 죽여 마땅한 놈들이다) 하면 그랜트 따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 이 넓은 미주에 '북한 연구소' 하나 없는 사실은 무척이나 웅변적이다.

2. 자료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고, 이러한 자료가 증거성을 가지려면 논리적이고 정황적으로도 맞는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 스탈린이 기근을 이용해 "우인들을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는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애플봄이 내놓은 서사가 치밀한 역사적 논증이라기보다는 헛소리 또는 정파적 이데올로기에 가깝다는 점에 대해서는 J. Getty의 2018 논문 (
https://doi.org/10.1017/S0960777318000322)을 참조하라. 이는 자료 없이 역사적인 주장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물론 미국의 북한사학계에서는...

3. 애플봄의 영어는 무척 뛰어나고 고급지며 가독성이 좋다. 하지만 이 서사에서 볼셰비키는 초지일관 두드러진 폭력성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무시 및 민족주의 압살 기획, 곡물 징발 외에는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는 잔학성만을 보이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레닌에게는 "피해망상적paranoid이고, 음모적conspiratorial이며, 근본적으로 비민주적인 자"라는 설명이 붙는데, 이 지점에서 책을 덮고 싶었으나 더 붙잡고 있었던 게 실수였다. 책의 중후반부는 우인들에 대한 소비에트의 가혹한 조치들과 이에서 비롯된 가공할 모습들로 빼곡하다. 식인食人에 관한 정밀한 묘사는 스탈린/볼셰비키/소비에트에 대한 특정한 판단을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우인들의 질곡은 나치 치하에서도, 다시 소련 치하에서도, 탈사회주의 시대에서도 계속 된다.

4. 이 책은 연구서가 아닌 실화nonfiction이고 따라서 (굳이 읽겠다면) 역사적 주장과 논증, 이를 위해 필요한 자료 구사와 서사 구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요인들을 고려하며 읽는 게 유익하다. 우크라이나 민족이 겪어야 했던 끝없는 질곡이 너무 빼곡하게 나와 있고, 기근을 학살로 둔갑하여 이를 소비에트에 전가하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명명백백해서 꼼꼼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15장 '역사와 기억에서 홀로도모르Holodomor'는 이산 우인들이 어떻게 미주에서 우크라이나 (기근)연구를 수행했고, 로버트 컨퀘스트 등 전체주의 학파의 연구가 어떻게 이와 공명했는지 등 기근에 대한 지성사적이고 연구사적인 궤적이 잘 서술되어 있어서 그나마 이번 독서에서 내게 유익한 지점이었다.

5. 나의 관심사는 390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기근 피해자라는 참담한 사실을 두고 스탈린이나 당대 볼셰비키를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역사를 이해할 때 어느 서사의 결을 따르고, 그 서사는 어떠한 자료에 대한 어떠한 해석에 입각해 있는지 비판적으로 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역사학의 기본 중 기본을 철저히 따르고자 할 뿐이다. 그렇다면 볼셰비키 지도부는 '고의적'으로 우인들을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기근을 '이용'했나? 아쉽게도 애플봄의 저서만으로는 증거가 무척 불충분해 보인다. 물론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겠다. 그러나 역사학적으로 이는 근거가 빈약하다. 아울러 저자가 인정하듯, 앞의 진술을 지지해 줄 자료는 여태껏 발견되거나 남아있지 않다. 물론 우인뿐만 아니라 연맹 차원에서 기근으로 숨진 억울한 사람들에게 애도를 보낸다.

6. 논의를 갑자기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이긴 한데, 애플봄 식의 논리를 따르자면, 북한에 대놓고, '고의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국련과 미국은 스탈린이나 볼셰비키 같은 존재가 아닌가? 물론 나는 북한을 좋게 보지도 않고, 지지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스탈린이 강력한 중공업화를 목표로 농촌을 수탈하는 과정, 그리고 우인들을 '기근으로 혼내주겠다'는 가설적 주장을 미국의 대북관계에 적용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사고실험이 될 수 있다. 아주 간략하게, 삼각동맹 유지와 중국의 발흥 억제을 골자로 동북아 현상유지라는 목표를 지닌 미국의 국정운영에서, 과거 우인들처럼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생존을 위해 핵실험도 서슴치 않았던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체벌'이 내게는 위의 진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볼셰비키 지도부(=미국)는 우크라이나(=북한)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한 적이 있을까? 감상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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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etyakov

    1. 글쎄요. 미국-북한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관계를 동렬에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주권 국가간의 대립이고, 후자는 소연방 내에서의(그리고 사실상 러시아민족 우위 체제에서, 개별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민족간) 대립이니까요.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의 내적인 이유야 어떻든 다른 국가들의 핵무장을 불러오고 동북아 정세의 불안을 강화(예를 들면 적화통일)시키니 미국이 난리를 치는 것인 반면, 후자의 우크라이나 민족은 러시아 민족이나 국가를 위협하지는 않죠. 러시아 민족이 나머지 민족을 억압하는 러시아 제국 체제(나, 사실상 그것을 이어받은 레닌 체제)를 위협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모를까.

    2. 사실 저도 소련이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한다는 식의 민족주의에 의거한 증오심을 바탕으로 기근을 이용하고 공격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회주의 체제가 그러한 기근에 대처하는 방식이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의 그것보다도 나을 것이 없었고, 게다가 사실상 러시아민족 우위의 체제에서 다른 민족이 간접적 차별대우를 받았음은 분명합니다. 이를 고려하면, 속칭 말하는 포스트모던주의적이나 광의의 권력관계에 의거할 때 소련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기근 문제에 대해 관심을 덜 가졌고, 대처도 러시아민족의 처우개선보다는 덜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존 역사학자들이 우크라이나 기근을 통해 소련을 성토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2018.11.12 00:10 [ ADDR : EDIT/ DEL : REPLY ]
    • 흥미로운 답변 감사합니다. 1번의 지적에 동의하며 (저도 지적하신 바를 충분히 이해한 채로 쓴 것입니다), 2번의 판단에도 일정하게 동의합니다. 그러나 쉴라 피츠패트릭이 지적한대로, 역사가의 임무는 옹호나 비난(성토도 포함이 되겠지요) 이전에 이해에 있다고 봅니다. 소비에트기근에 관한 이해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는 부정적입니다.

      2018.11.12 00:15 신고 [ ADDR : EDIT/ DEL ]

자료/弔意2016. 4. 22. 17:22


1904년, 연해주 태생. 

1929년, 우끄라이나 하리코프(Харьков, 현 하르키우)로 이주. 키에프 포병학교 수학 

1937년, 민족적 이유로 퇴학

~1941년, 오데사 주 노보아르한겔스크 구역에서 수학 교원 근무. 이후 우끄라이나에서 노농적군 징집. 계급 근위하사(Гвардии младший сержант). 제14포병사단 대전차포대. 이후 총예비본부 제1대전차사단 등지에서 근무. 우끄라이나,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해방전 참가. 베를린 함락전 참가. 오스트리아에서 대조국전쟁 일단락. 

1945년 9월, 제1원동전선 25군 참모부 첩보사단 소속으로 대일전("조선해방전") 참가. 


1945~57년, 북조선에서 근무, 평양 제6고중에서 수학 교원 및 선임 교사로 근무. 

1957년, 우즈벡 타슈켄트로 귀환. 

1997년, 노구에도 불구하고 "책과 신문을 열심히 읽으며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깊은 염원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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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2014. 9. 17. 10:11

출처.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Amnesty International Briefing)

 

201498

AI 색인(Index): EUR50/040/2014

 

우크라이나: () 루간스크 지역에서 자행된 아이다르 대대(Батальйон Айдар)의 폭력 남용과 전쟁범죄 (Ukraine: Abuses and war crimes by the Aidar Volunteer Battalion in the north Luhansk region)

 

이곳은 유럽이 아닙니다. 이곳은 조금 다릅니다... 여긴 전쟁 중입니다. 법은 바뀌었고 절차는 단순화됐습니다... 내가 그러기로 한다면, 난 당신이 분리주의자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당장에라도 체포하여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씌운 후 감옥에다가 30일 동안 처박아둘 수 있습니다.” - 아이다르 대대장이 국제사면위원회 조사원에게

 

 

북 루간스크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이다르 영토방위대대 소속 군인들은 최근 납치, 비법적인 구금, 학대, 절도, 강탈 그리고 처형까지도 포괄하는 광범한 폭력의 남용에 연루됐다.

 

아이다르 대대는 2014년 우크라이나 분쟁이 터진 이후에 대두한 30여개 이상의 이른바 의용대(volunteer battalions),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영토를 되찾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공안 구조에 느슨히 통합된 부대이다.

 

국제사면위원회(이하 엠네스티”) 조사원은 이 지역에서 2주 간의 연구임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명의 피해자와 사건의 목격자, 지방 관리, 해당 지역의 군 지휘관과 경관 그리고 아이다르 대대의 대변인 등을 면담하였다.

 

우리의 조사 결과, 아이다르 대대는 공식적으로는 이 지역의 우크라이나의 통합치안사령부가 관할하지만 사실상 그들에 대한 감독이나 통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역 경찰들은 아이다르 대대의 폭력 남용에 관해 쉬쉬하거나 또는 언급할 수 없었다.

 

아이다르 대대가 저지른 범죄 중 일부는 전쟁 범죄에 견줄 만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나 아마도 지휘관은 국내법과 국제법 하에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셰볘로도네츠크(Сєвєродонецьк)를 포함하는 광역권이나 리시찬스크(Лисичанськ), 루비즈네(Рубіжне), 샤스쨔(Ща́стя) 등 현재 아이다르 대대가 작전을 펼치고 있는 지역은 지난 5월 중순부터 7월말까지 이른바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NR)의 분리주의자 세력의 통제 하에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분리주의자 세력이 민간인을 상대로 납치, 절도, 살인 등 광범위한 폭력을 저질렀다는 보고가 있었다. 엠네스티는 다른 지역에서 무장 분리주의자 단체가 자행한 폭력에 대해서도 기록한 바가 있다.

 

아이다르 대대는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공세와 그 중에서도 특히 루간스크시() 북방 24킬로미터에 위치한 샤스쨔를 탈환할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이다르 대대는 전투를 벌이는 동안 많은 수의 전투원을 잃었다. 201496일자로 정전(停戰) 발표가 난 이후 샤스쨔 남쪽에서 벌어진 기습공격에서 수십여 명이 사망하였다.

 

아이다르 대대는 국가적으로는 헌신적인 병력이라고 칭송을 받는 반면, 지역적으로는 잔혹한 복수, 절도, 구타, 강탈 등으로 악명을 얻었다.

 

엠네스티는 우크라이나 당국에게 아이다르 및 여타의 지원대대를 실효성 있는 지휘통제 아래 위치시키고, 폭력 남용에 관련된 모든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촉구했으며, 책임자에게 책임을 지게 할 것을 요청하였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그들이 수복한 지역에서 이전에 분리주의자들 치하의 지역에서 만연했던 비법성이나 폭력의 남용을 방치할 입장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지원대대가 저지르는 폭력 및 전쟁 범죄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우크라이나 동부의 긴장상태는 극도로 악화될 것이고, 신생 우크라이나 정부가 더욱 광범하게 법치를 강화하고 유지하겠다며 선언한 정신은 훼손될 것이다.

 

아이다르 대대가 저지른 폭력 남용

 

엠네스티는 지난 7월말부터 8월말까지 노보아이다르 구(, Новоайдарський район), 스타로블리스크(Старобельск), 셰볘로도네츠크, 리시찬스크, 샤스쨔에서 아이다르 대대원들이 자행했다고 알려진 수십여 건의 폭력 남용 사례를 기록으로 남겼다.

 

일반적으로 전투원들은 지역 민간인, 그중에서도 사업가 또는 농부들을 분리주의자들과 협력했다고 누명을 씌운 후에 납치하여 임시로 제작한 구금시설에 가두고, 이후 그들을 풀어주거나 또는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SBU)에 넘겼다.

 

엠네스티가 기록한 거의 모든 사례에서 피해자들은 납치될 때 그리고/또는 심문을 받을 때 구타를 당했고, 석방을 위해 돈을 냈거나 아니면 대대원들에게 돈, 차량, 전화기 및 여타 값진 것들을 빼앗겨야 하였다. 엠네스티가 접근한 많은 수의 목격자들과 피해자들은 아이다르 대대원의 복수가 무서워 폭력 사건을 자세히 언급하길 꺼려하였다. 다음의 사례에 나와 있는 피해자들 및 목격자들의 이름은 바뀌었다.

 

- 825~27, 아이다르 대대원들은 리시찬스크 북쪽의 조그마한 도시인 노보드루졔스크(Новодружеск)에서 광부 4명을 납치하였다. 그 중 한명인 안드릐”(실명이 아니다)는 폐암 때문에 화학치료를 받고 있었다. 안드릐는 엠네스티에게 27일 오후 3, 그가 집 바깥에 있을 때 일군의 아이다르 대대원들이 소형버스를 타고 왔다고 말해주었다. 자동화기를 소지했고 위장 제복을 입었던 두 명이 안드릐에게 오더니 땅바닥에 엎드리라고 하였다.

 

그들은 내 턱을 깨뜨렸어요... 그들이 바닥에 엎드려!’라고 소리쳤고 난 바닥에 엎드렸지요, 한 녀석이 저를 발로 차더군요... 그들은 테이프로 내 눈과 손목을 동여맸어요.”

 

그들은 저와 제 이웃을 소형버스에 집어넣었어요... 그들은 20여분을 운전하더니, 일종의 방 같은 곳으로 절 데려왔죠. 제 눈은 테이프로 가려져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곳이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 볼 수 없었어요... 그들은 저를 그곳에 하루 동안 두었죠. 그들은 물과 비스킷 한 조각을 가져다주었고, 제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절 데려다줬어요.”

 

그곳엔 12~15명가량의 다른 구금자들도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 말할 수 없었죠... 전 두 번이나 심문 당했습니다. ‘너는 어디 있었는가? 무엇을 했지?’ 그들은 더 이상 때리진 않았어요. 그러나 전 바로 옆방에서 누군가가 맞고 있는 소리를 들었죠.”

 

안드릐는 포획자들이 그를 셰볘로도네츠크의 한 경기장에서 여전히 눈가리개를 한 채로 풀어주었다고 말하였다. 안드릐의 아내는 지역 경찰을 찾아갔고, 안드릐가 포획자들에게 빼앗겼던 여권 두 개와 전화기는 돌려받았으나 결국 차량 문서, 운전면허증, 열쇠, 지갑, 은행카드 등은 돌려받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안드릐 내외는 이를 형사 사건으로 만들지 않았다. 828일에는 안드릐의 은행카드에서 누군가가 돈을 인출하려고 하였다. 엠네스티는 안드릐의 휴대전화에 그러한 시도를 알려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보았다.

 

구금된 다른 남자 두 명의 가족들은 828일 피랍자의 소재지를 알고 싶어서 셰볘로도네츠크의 경찰서를 찾았다. 그들은 엠네스티에게, 리시찬스크의 경찰 및 군인들이 그들에게 셰볘로도네츠크에 있는 비밀 구금시설에 관해 말해주었으나, 셰볘로도네츠크 경찰은 그러한 시설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경찰은 엠네스티에게도 시설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같은 곳으로부터 갓 풀려나온 어떤 이는 예의 두 명 중 한 명을 알아보았고, 구금자들이 우크라이나의 국가(國歌)를 암송해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두들겨 맞았다고 일러주었다.

 

- 825일 오후 4시경, 아이다르 대대원들은 스타로블리스크 외곽 텔레비전 송신탑 근처에서 31살의 지역 사업가인 예벤을 납치하였다.

 

예벤은 엠네스티에게, 복면차림의 세 남자가 검은 바즈(VAZ)차를 타고 도착했고, 자신이 폐기된 주유소 화장실에 들르려고 잠깐 멈춘 새에 그에게 접근하여 차를 수색했으며, 30,000 흐리브냐(대략 1,700 유로)를 챙기고 분리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웠다고 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들은 내 머리에 복면을 씌우고 20여 분간 날 태워 어디론가 갔어요. 그들은 차고 같은 곳으로 날 데려가더니 심문하기 시작했고, 내가 분리주의자라고 고백하길 요구했어요.”

 

그들은 나를 세 번 심문했습니다. 매번 저를 두들겨 팼죠. 총열로 패기도 하고, 도끼의 뭉툭한 끝으로는 신장을 가격했으며, 다른 것들을 이용하기도 했어요. 그들은 나를 끌고 나가 처형하겠다고 위협했죠.”

 

하루가 지난 후에 그들이 돌아와 말하길, 아이다르 대대가 나를 구금했었으나 이제는 알파’[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에 소속된 부대]로 내 신변을 넘긴다고 했죠. 하지만 난 그들이 같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어요.”

 

예벤은 결국 포획자들이 그에게 석방을 위해 얼마를 낼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그가 이미 가진 걸 전부 빼앗겼다고 하자 풀어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 사건을 경찰에 넘겼으나 돈, 차량, 휴대폰 2, 귀금속 등 빼앗긴 소지품을 되찾을 수 없었다.

 

- 823일 오후, 아이다르 대대원들은 셰볘로도네츠크 근교에 있는 올레한드리브카(Olexandrivka) 마을의 올레나의 집을 급습하였다.

 

82살의 올레나는 엠네스티에게 그녀가 딸과 사위, 손자와 함께 집에 있었다고 말하였다. 가족은 총성을 들었고 차량 몇 대가 자택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안카메라를 통해 보았다. 올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그들은 내게 달려들었어요. 두려움에 문을 놓자 자동으로 닫혔지요. 그들은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한 명은 차 위로 훌쩍 뛰었죠. 나는 차고 안으로 달려갔어요. 그들은 계속 쏘았죠. 자동화기의 파열음이 들렸어요. 소음이었죠. 타다다다.”

 

차고 안에서 이미 난 총에 맞은 상태였죠... 나는 문으로 기었고 소리를 지르며 문턱에서 넘어졌어요. 내 딸이 나오면서 소리를 지러더군요. 뭐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머니, 뭐하시는 거예요? 빨리 구급차를 불러라... 피가 계속 흘렀죠. 내 딸이 지혈해주었어요.”

 

올레나는 엠네스티에게 무장한 남자가 집을 뒤졌고, 손자에게 분리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워 구금하길 원했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어찌어찌하여 손자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는데 성공했으나, 그들은 집안에서 발견한 얼마간의 돈과 손자의 사륜차를 가져갔다.

 

올레나는 택시로 셰볘로도네츠크 병원으로 실려 갔고, 의사는 엠네스티에게 그녀가 7시간의 수술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파편으로 인해 복부를 심각하게 다쳤다. 그녀는 결장(結腸)을 절단해야 했고, 바스러진 늑골 두 개를 제거해야 하였다.

 

당국의 반응

 

엠네스티는 아이다르 대대원들이 저지르는 만행에 대하여 셰볘르도네츠크 및 루비즈네의 지휘관에게 직접적으로 우려를 제기했다. 지휘관은 대대가 단순화된구금절차를 따랐음을 확인했고, 셰볘르도네츠크 지역에 구금자들을 가둬두는 자체 시설을 확실히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체포 중에 구타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고, 구금된 동안 구금자들이 눈이 가려진 채로 있었다는 점, 자기네 병력이 안드릐를 붙잡았던 점, 그가 안드릐의 문서가 담긴 가방을 경찰에 넘겨준 것을 개인적으로 감독했다는 점 등을 확인해주었다.

 

그는 대대원들이 저지른 절도 행위에 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고, 그러한 행위를 다룰 어떠한 조지의 도입도 필요치 않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휘하 병력들이 올레나의 손자의 차를 일시적으로 필요로 했기 때문에 가져간 사실을 인정했고, 그것을 돌려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올레나의 가족은 이후 엠네스티에게 트로이츠크(Тро́ицк, 루간스크 지역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있음) 경찰이 그 차가 명백히 불법적으로 팔린 후에 차와 차를 몰던 남자를 가두었다고 알려주었다.

 

셰볘르도네츠크 경찰과 군 당국은 엠네스티에게 아이다르 대대원들에 의해 자행된 일들에 대한 형사 사건이 38건이나 되며, 대부분은 절도사건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러한 빈발하는 범죄 관련 보고는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에게 까지 올라가나, 현재까지 확실한 결과는 없는 실정이다. 지역 경찰은 엠네스티에게 자기네들은 아이다르 대대원들이 저지르는 만연한 범죄에 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으나 형사 사건으로 등록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이 지역의 고위 군관은 엠네스티에게 국방장관이 자신의 보고를 받은 이후에 아이다르 대대를 검사하라고 8월초 두 명의 특별위원을 보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아이다르 대대의 재편성과 절차의 체계화를 위한 그들의 권고는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권고

 

엠네스티는 우크라이나 당국에게 다음을 촉구한다.

 

- 아이다르 대대 및 여타 지원대대의 법적 상태를 명확히 하고;

 

- 지원대대를 분명한 명령체계, 통제, 책임 아래 통합시키며;

 

- 지원대대원들이 자행한 폭력 남용에 관한 모든 혐의, 구체적으로는 북 루간스크 지역에서 아이다르 대대원들이 저지른 폭력 남용에 관한 모든 혐의에 대해 즉각적이고 빈틈없으며 불편부당하고 실효성 있는 조사를 수행하고;

 

- 조사를 받고 있는 범죄의 피해자 및 목격자들을 보복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지키며;

 

- 지원대대원들을 포함하여 군() 및 법을 집행하는 작전과 관련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의 행동 및 어겼을 경우 개인책임과 지휘책임에 관련된 국내법과 국제법의 조항들을 숙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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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2014. 9. 1. 16:35

* 2014년 5월 12일 작성.

 

필자: Slavoj Žižek

일시: 201448

출처: http://inthesetimes.com/article/16526/what_europe_can_learn_from_ukraine

사진: 201311, 키예프(Kiev)에서 일어난 시위는 결국 대통령(Prime Minister)을 축출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어떻게 서유럽과 합칠지에 관한 결정에 직면하고 있다.

 

제목: 유럽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What Europe Can Learn From Ukraine.)

부제: 유럽 좌파들은 우크라이나 시위대를 가르치려드는데 너무 조급하다. (European Leftists are too quick to patronize Ukrainian Protesters.)

 

 5월 말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가 가까워오는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최근의 사건들을 기억해야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으로의 통합보다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우선순위로 두어 시위를 촉발시켰고, 그것은 2월 말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Prime Minister)과 그의 졸개들을 무너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좌파들은 가련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려드는 방식으로 대규모 시위 소식에 반응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지속적으로 유럽을 이상화(理想化)하고, 바로 그 유럽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할 정도로 얼마나 착각에 빠져 있는가! 그들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우크라이나를 서유럽의 경제식민지로, 오늘날의 그리스와 같은 처지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 좌파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유럽연합의 실상에 관해 전혀 무지하지 않다는 사실은 도외시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유럽연합이 노정하는 갖가지 문제와 격차를 매우 잘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전하고자 하는바는 간단히 말해, 그들이 처한 상황은 더욱 엉망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문제(경제적 불안전과 가차 없는 실업)는 여전히 부유한 자들의 문제이다. 그리스가 처한 끔찍한 곤궁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난민들은 여전히 대규모로 그곳을 찾고 있으며, 우파 애국자들의 분노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우크라이나 시위대들이 언급하는 유럽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다. 유럽은 어떤 단일한 전망(展望)으로 축소될 수 없다. 이는 내셔널리스트(nationalist)적이고 심지어 파시스트(Fascist)적인 요소부터 오늘날 유럽의 기관들이 그것을 더욱더 배반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지구적인 정치적 상상에 유일무이하게 기여한 사상이자,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가 평등자유(égaliberté), 즉 평등 속의 자유(freedom-in-equality, *진태원에 따르면, 발리바르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의 이론적 핵심을 이루는 두 축을 인간=시민명제와 평등=자유명제라고 제시한다.)라고 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전 범위에 걸쳐있다. 이러한 두 극() 사이에서 오직 순진무구한 자들만이 자유민주주의적(liberal-democratic) 자본주의에 그들의 믿음을 건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의 시위에서 유럽이 봐야할 것은 그 자신의 최선과 최악이다.

 

 우크라이나 우파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새로워진 반()이민, ()종교적 포퓰리즘(populism)의 일부로, 그들은 스스로를 유럽의 방위라고 표현한다. 한 세기 전, 체스터턴(Gilbert K. Chesterton, 1874~1936)은 이 새로운 우파의 위험을 분명히 감지했고, 그가 쓴 정통(Orthodoxy)에서 종교 비판자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근본적 교착상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자유와 인간성을 구하기 위해 교회와 싸우기 시작한 사람은 교회와 싸우기만 하다가 결국 자유와 인간성을 내팽개치게 된다.” 이러한 설명은 종교 옹호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가? 많은 광신적인 종교 수호자들이 현대의 세속적인 문화를 맹렬히 공격하면서도 결국 어떤 유의미한 종교적 경험도 저버리지 않는가? 또한 이는 이민이라는 위협에 맞서 유럽의 수호자들이 최근에 대두하는 것에도 적용되지 않는가? 유럽의 기독교적 유산을 보호하겠다는 그들의 열망 속에서, 새로운 광신자들은 그 유산의 참된 핵심을 저버릴 준비가 돼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주류 자유주의자들은 인종적 또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들을 위협할 때에 우리는 문화적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안건을 배경으로 모두 뭉쳐야 하고, 구할 수 있는 것은 구해야 하며 더욱 급진적인 사회적 변혁의 꿈은 제쳐두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일러준다. 한편 우크라이나 시위대가 그토록 맹렬히 옹호하는 자유민주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유러피언 드림은 어떠한가? 어느 누구도 유럽연합 안의 무엇이 우크라이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나, 그 정책묶음에 긴축 수단이 포함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지난 세기 소련에서 나온 잘 알려진 이야기이자 다른 나라로 이주하길 원하는 유대인인 라비노비치(Rabinovitch)에 관한 농담을 알고 있다. 소련 이주국(移住局)의 관료가 왜냐고 물었고, 라비노비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나는 다음과 같은 점이 두려운데, 소련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잃을 것이고, 새로 등장한 권력은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짓의 죄과를 모두 우리 유대인들에게 떠넘길 것이며, 다시 반()유대 계획(program)이 나타나날 것이고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관료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은 순전한 헛소리야.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고, 공산주의자들의 권력은 영원할 것이다!” 라비노비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 바로 그게 둘째 이유입니다.”

 

 우리는 위와 비슷한 대화를 비판적인 우크라이나인과 유럽연합의 재정관 사이에서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이 다음과 같이 불평한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당황해하는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이 두려운데, 유럽연합이 러시아의 압박에 우리를 간단히 넘겨줄 것이고, 우리의 경제가 붕괴되도록 놔둘 것이며유럽연합 재정관이 그를 가로 막는다. “하지만 당신네는 우리를 믿을 수 있어. 우리는 당신네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당신네들을 단단히 통제하고, 무엇을 할지 조언할 거야!” 그 우크라이나인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 그게 바로 둘째 이유입니다.”

 

 그렇다. 키예프의 독립광장(Independence Square)에서 싸웠던 마이단 시위대들은 영웅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싸움, 즉 새로운 우크라이나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은 이제야 시작됐다. 그리고 이 싸움은 푸틴의 간섭에 대항하는 싸움보다 훨씬 더 고될 것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값하고,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족한지의 여부가 아니라, 오늘날의 유럽이 우크라이나인들의 심원한 열망에 값하는지의 여부이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과두집단이 뒤에서 조종하는 형태로, 인종적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뒤섞인 비빔밥처럼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오늘날의 러시아(또는 헝가리)만큼 유럽적이게 될 것이다. 정치적 논평가들은 유럽연합이 러시아와 갈등하는 우크라이나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고,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점령과 합병에 대해서도 건성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다른 종류의 지원이 심지어 엄청날 정도로 빠져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사회경제적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현가능한 전략을 제공받은 적이 결코 없다. 그러한 지원을 하기위해서라도, 유럽은 우선 자신을 변모해야 하고, 스스로의 유산이 담고 있는 해방적 핵심에 다시금 헌신해야 한다.

 

 걸출한 보수주의자 엘리엇(Thomas S. Eliot, 1888~1965)은 그가 쓴 문화의 정의에 관한 단상(Notes Towards a Definition of Culture)에서 유일한 선택이 종파주의(宗派主義)와 믿지 않음(non-belief) 사이에서 내려야 하는 선택이 되고, 종교를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 원래의 송장으로부터 종파적 분리를 수행하는 것이 되는 계기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유일한 기회이다. ()유럽의 썩어가는 송장으로부터 종파적 분리를 수행하는 방식만이 우리가 평등자유라는 유럽적 유산을 살아있게 할 수 있다. 그러한 분리는 우리가 우리의 숙명이자 협상할 수 없는 곤경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바로 그 전제, 다시 말해 주로 지구적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로 명명되는 현상과 근대화"를 통해 우리를 그 질서에 순응시켜야 할 필요성 양자를 문제적으로 만든다. 직설적으로 말해, 대두하는 신세계질서가 우리 모두에게 협상할 수 없는 숙명일 때 유럽은 패배한다. 따라서 유럽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의 숙명이라는 주문을 깨트리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나온 새로운 유럽 안에서만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유럽으로부터 배워야 할 사람은 우크라이나인이 아니고 유럽 자신이다. 유럽은 반드시 마이단 시위대에 동기를 부여한 그 꿈을 포함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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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2014. 9. 1. 16:32

* 2014년 3월 4일 작성.

 

필자: 블라디미르 이셴코(Volodymyr Ishchenko)

일시: 2014년 2월 28일(GMT 1532)

출처: http://www.theguardian.com/world/2014/feb/28/ukraine-genuine-revolution-tackle-corruption

사진: 지난 금요일, 친러 코사크인들이 크리미아 공화국 의회건물 바깥의 전쟁기념물 근처에 모여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관해 흔히 두 가지 수식이 뒤따른다. 하나는 이것이 민주혁명, 심지어 사회혁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우익쿠데타, 심지어 네오나찌의 쿠데타라는 것이다. 사실 앞서의 두 성격규정은 모두 틀렸다. 다만 지금껏 우리가 목격한 것은 우크라이나 서부와 중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나 동부와 남부 지역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중봉기이며, 그 결과 정치 엘리트세력 간의 교체는 이뤄졌다. 그러나, 최소한 현정권 밑에서 민주적이고 급진적인 변화의 전망은 굳게 닫혀있다.


 우크라이나의 현 '혁명'이 왜 사회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가? 마이단(Майдан; 광장) 운동이 주장한 몇몇 요구는 관철됐다. 일례로, 사망한 시위대 중 대다수를 죽인 악명높은 베르쿠트(Бе́ркут) 전투경찰대는 해체됐고, 야누코비치 행정부의 가장 악랄했던 관료들도 파면됐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구조적인 민주적 변화의 시작을 의미하거나, 새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만연한 부패, 즉 가난과 불평등을 뿌리채 뽑을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더욱이 새정부는 그러한 문제들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고, 경제위기의 부담을 부유한 과두세력이 아닌 가난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고스란히 지울 것이다.


 새정부는 마이단 운동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신자유주의적 안건과 맞바꿨다. 지난 목요일 인준을 받은 새정부의 각료는 주로 신자유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됐다. 그들은 의회에, 가격과 관세에 관한 "반민중적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성을 강변했고,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돈을 빌려올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갖출 준비가 돼있다고 공표했다.


 임금을 동결하고 가스값을 대폭 인상하라는 국제통화기금의 요구는 우크라이나의 이전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연계 합의에 관한 협상을 유예한 이유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새정부를 "자살자 정부"라고 부를만 하다.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트릴 이러한 반사회적 정책과 통화붕괴에 대한 대중들의 실망을 예측하기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극우세력은 새정부 내에서 주요한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몇몇 논자들은 우크라이나 새정부 내의 극우세력의 준동이 유럽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경고했다. 현재 부수상, 국방장관, 생태장관, 농업장관, 검찰총장의 자리를 국수적인 자유당(Свобода)이 쥐고 있다. 조국당(Батьківщина) 온건파에 뒤늦게 가담해 마이단의 자위대세력을 효율적으로 지도한 안드리 파루비(Andriy Parubiy)는 우크라이나 사회국민당의 창립자 중 한 명이자 준군사적 청년단체의 전 지도자였고, 지금은 국방안보회의의 수장이다.


 동시에, 시위에는 잘 기획된 무장 쿠데타라는딱지가 붙게 됐다. 정당들은 마이단 운동, 특히 준군사적 무장대를 거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실상 이 정당들은 정기적으로 마이단 운동을 고무하고 있고,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야누코비치와의 타협을 촉구하고 있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새정부가 악명높은 우파지구(Right Sector)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파지구원들은 이제 대중적인 영웅들이고, 승리한 "혁명"의 전위대이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에서 경찰들로부터 총기를 강탈했고, 야누코비치가 실각한 지금은 "부패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맞서 혁명이 계속 진행돼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이단 운동에서의 단호함과 핵심적인 역할을 자찬한 자유주의자들은 이제 우파의 반동적 생각을 목도하고 있다. 최근 우파지구의 공보비서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럽이 갈 바른 길을 말해야 하"고, 사람들이 교회에 가지 않고 여자 동성애자나 남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권리를 용인하는 "완전한 자유주의"라는 "끔찍한 상황"으로부터 유럽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파지구가 새정부에 맞서 움직이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파지구는 급격하고 깊어지는 경제위기 속에서 새로운 반란을 주도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강한 좌파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우익 대중주의자들은 사람들의 사회적 고충을 들쑤셔 놓을 것이다.


 동시에, 잠정적인 새 "사회적 마이단 운동" 에서 급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지도적 역할은 지배계급에 맞서는 어떠한 전국적인 운동도, 문화적으로 쪼개진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의 대중참여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급진 민족주의자들은 심지어 분리주의적 성향을 증폭시키고, 현재 크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친러적 도발을 기도한다. 불가피하진 않겠지만, 현재 전면적 내전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방측에게 가장 최선은 우크라이나의 지역간 갈등을 봉합할 평화적 해결책을 고수하고, 극우세력의 새정부 참여와 길거리의 통제받지 않는 우익 준군사조직을 강하게 반대하는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서방측이 우크라이나의 외채를 탕감해줌으로써 무조건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채탕감은 전세계의 많은 진보적 운동들이 제기하는 민중적 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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