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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02 57회 역사학대회 냉전사연구회 관람
자료/현대사2014. 11. 2. 22:53

57회 역사학대회는 2014년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에 걸쳐 서강대에서 개최됐다. 나는 토요일 아침 구술사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제연 선생님과 함께 서강대 하비에르관 353호를 찾았다. 반가운 얼굴들, 알기만 하는 얼굴들, 생면부지의 얼굴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아래는 권헌익 선생님의 발표에 이은 토론을 정리한 것이다. 중간에 대괄호([])는 나의 생각이다.

 

냉전사연구회 발족 겸 토론회

 

발표순서: 홍석률(성신여대, 한국현대사와 냉전인식) / 이주영(강릉원주대, 미국사학계의 냉전사 연구) / 이동기(강릉원주대, 이데올로기 냉전사에서 유럽평화사로 -독일냉전사 서술 개요-) / 권헌익(케임브리지, 냉전사 연구에서 다원주의 시각)

 

토론 참가자: 김남섭(사회, 서울과학기술대, 러시아사), 김득중(국사편찬위원회), 마상윤(가톨릭대, 국제정치학), 임우경(성균관대, 중국현대문학), 한성훈(연세대), 노경덕(광주과학기술원, 소련외교사),

 

권헌익

- 1세계와 2세계가 기본 축을 이루는 냉전의 평면에 3세계라는 새로운 축이 기입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 ‘냉전’(이하 냉전)의 동시대성(simultaneity)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웨스타드(Odd A. Westad, 1960~) 교수는 ‘3세계의 존재 문제가 1·2세계의 교환관계에 어떻게 다가갔는가를 연구하였다. 그런데 반대로, ‘1·2세계의 존재 문제가 3세계의 교환관계에 어떻게 다가갔는가라는 주제는 익숙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부족하다.

- 홍석률의 표현대로 엇박자로서의 (원치 않았고 의도치 않았던)냉전의 중심으로서의 한반도. 동심원적(concentric) 위계질서에서의 중심이 아니라, 다원성·다양성 안에서의 (재미있는)중심이다.

 

김득중

- 대중적 냉전 인식은 어떨까? 어떠한 질서의 개벽으로서의 인상을 지니는 것 같다. 파시즘·제국주의(식민주의)의 전전·전중에서 전후 미·소 중심/자유민주·반공 등의 도식으로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일까? 2차 대전을 사이에 두고 시기 간의 차별성은 어땠는가?

- 냉전의 핵심적인 두 요소 미국의 대전략(Grand design) - 전후 권력의 재분배와 관련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 - 정치 문화(?)

칼 슈미트의 광역질서론’ - 제국의 영역질서론(?)

대동아공영권의 질서론 - 제국 내 국가들의 형식적 독립

냉전 블록화()의 이론적 선취 (1942~44년 미국인들은 적의 세계전략·인식을 공부한 바 있음)

케난의 <긴 전문>(X Article) - 소련과는 타협할 수 없고,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쟁을 인정하지 않고, 자유주의적liberal이지도 않음-전체주의적인 인식?) + 우적론(友敵論)적인 이야기.

 

마상윤

- 한국현대사의 경험은 냉전 연구를 자연스럽게 한다.

- 현대사 연구와는 구분되는 냉전사가 필요한 이유?

한국은 냉전 국제정치(세계사)의 한 단면(단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구사적 관점을 넘어 국제적인 상호관련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 더하여 아무래도 강대국을 간과할 수는 없다. + 국제정치학의 일반론.

 

임우경

- 냉전의 내포와 외연이 넓어질수록 드는 생각, ‘냉전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 냉전사를 공부하는 이유: 국가나 민족주의라는 틀을 넘기 위해. 그런데 실상 자료를 보니까 너무나 강고한 민족주의적 욕망이 비쳐졌다. 중국의 경우, ‘미제는 일제의 연장선이라는 논리로 대중의 공포를 자극했다.

- 중국 사람이 쓴 논문에서 따옴표 냉전(‘냉전’)이 사라진 것은, 즉 따옴표 없이 냉전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그전까지 중국인의 중국사/세계사 이해에서 냉전은 중요치 않았음을 방증한다.

- 보편(적인 냉전[의 개념])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하지 않을까? / 평화서명운동(중국인 노동자의 동구라파 여행)의 자체적 체험성은 어떻게 포착해야 할까? / 냉전을 해소해버리면 이런 경험이나 체험성은 사라지는 것 아닐까?

- 따옴표 냉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성훈

- 냉전/열전의 구분을 볼 때마다 냉탕/열탕의 구분이 떠오른다.

- 냉전사 연구에 있어서 시간성과 공간성 양자를 결부시켜야 한다.

- ‘경험의 중심성이라는 측면에서 ... ·공간을 ()구조화해야 한다. 양자는, 적어도 해석상에서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 권헌익의 개념을 나름대로 전유해 메타 냉전이라는 개념을 창안해보고자 한다. 이는 냉전의 규제적(regulative, 통제성·규범성)인 측면과 구성적(constitutive) 측면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다.

- 한반도의 입장에서 냉전을 보면 다자간 중심성을 살필 수 있다. 즉 미·소의 규정성, 남북의 규정성, 다극적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 베트남전(‘동아시아 냉전체제에서 한국과 베트남전쟁은 논문 제목 아닌가!)

북한의 선도성: ·소를 설득하여 북베트남 지원하고자 했고(결정서, 김일성 저작 등), 그 정세를 통해 통일을 추구했다. 이와는 대비되는 남한의 종속성이 엿보인다.

- 북한도 90년대 이후에 가서야 냉전이라는 용어를 가끔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노경덕

- 소련도 냉전이라는 용어는 학계에서 쓰지 않았다. 고르바초프 이전까지 소련의 자국사/세계사 서술은 제국주의 반제국주의.’ 이러한 도식은 2세계 대부분에도 적용된다. 냉전이라는 용어 자체를 잘 쓰지 않았다.

- 냉전사 연구의 경향

미소 대결 - 군비/이데올로기 경쟁; 유럽은 안정, 아시아는 열전

1990년대 이후

다른 행위자들도 중요해졌다. 국제관계사/외교사

다른 경험(개별 국가, 공동체, 집단) 드러내기 이러한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헌익의 다원주의와도 일맥상통하다.

- 제언

아무래도 냉전사는 개별 국가사로 현상(現像)됐다. 비교사적으로 전개됐다.

개별국가(의 경험의) 다양성 / 3세계를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양성은 바로 탈식민과 연결된다. 그런데 탈식민을 부각시키면 냉전 개념을 스스로 해체하는 것 아닌가? (냉전() 고유의 분석을 빛 바라게 한다.)

- 냉전(연구)의 핵심: 구조(적 실체)를 어떻게 드러낼지 고구(考究)를 요한다.

경험은 다양하되(다양성), 냉전이 주는 보편성(통일성, setting)을 간과할 수 없다.

 

권헌익의 답변

- 냉전은 곧 해체될 것. 그런데 [정말로]해체할 수 있는가?

- 냉전이라는 틀 안에서 1, 2세계의 참여도(presence / absence / alienation)를 살펴봐야.

- 한국전쟁 참전과 중소분쟁이라는 다양한 소주제.

- 핵심은 ‘“변방이면서 [동시에]“중심인 이곳(이 터전)에 대한 이해를 잘 하고 있는가?’이다. 미국 중심으로 냉전을 이해할수록 혼란스러울 것.

 

김태우(통일평화연구원)의 질문

- 최근 역사교과서 문제, 양극적 이해를 강화한다.

- 미국과 구주, ‘양극적 이해의 탈피가 핵심일텐데 우리 교육부가 이 모임의 취지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1945년 이전까지의 시기를 포함해서, 또는 20세기 100년 역사라는 맥락에서 냉전을 이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효과 내지 특징은?

 

홍석률의 질문

- 냉전의 본질은 끊임없는 경계선 만들기(특히 군사·안보와 관련해서)”가 아닐지? 그렇다면 오히려 냉전은 적합한 용어이지 않을까?

- 힘을 가진 자들의 필요에 의해 냉전이 추동되고 유지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권헌익의 답변

- 탈중앙한다고 해서 [실제로도]탈중앙 되는 것은 아니다.

- 나름의 질서를 모색하려는 시도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김득중의 답변

- 냉전[]의 독특한 내용이 분명 있음. 예를 들어, 1차 대전의 경우 배상이 있었으나, 2차 대전 이후에는 배상이 없고 무조건 항복(유례없는 것), 무릎을 꿇어라라는 생각만이 있었음.

- 그 후 일본은 내부개조 / 한국은 점령(신탁통치)

- 냉전의 독특성에 대한 연구는 계속 수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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