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저널에 실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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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아무리 2019.11.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30년의 미국이라도 지금의 한국보다는 뛰어나겠죠?

  2. Frank Sinatra 2019.11.10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문화부터 이런기 음악이다 라고 할 수 있는 빅밴드 재즈에 뮤지컬에다가 작품성있는 영화들 쇼 비즈니스 그리고 10년을 기점으로 확실히 구분되는 시대 변화, 격식있는 의상, 수준높은 티비 프로그램 , 현재와 상반되는 클럽문화, 유아스러운 조선의 기준과는 상반되는 그런 절대적인 미의 우월한 여배우들, 조선은 이런건 이뤄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테니까요.

  3. Frank Sinatra 2019.11.10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도 힙합과 외설적이고 양산적인 그런 팝 음악에 잠식됬지만 국가 자체는 아직 휼룡하잖아요.

모스크바에 지난달 25일에 도착했으니 벌써 8일이나 지났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만 간다. 

이번 여름에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돈도 받지 않았기에 거의 휴양이나 다름 없으리라고 마음 먹었지만, 그래도 모스크바 있을 때 모을 수 있는 자료, 할 수 있는 작업은 하고보자는 심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열심히 작업을 수행했다. 주말 제외하고는 계속 문서고와 레닌카를 왔다갔다 했다. 

RGANI(러시아국립현대사문서보관소): 1952년 이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당위원회(폰드 5) 자료 가운데 적지 않은 북한 관계 자료가 비밀해제 되어있다. J형의 도움을 받아 출입증을 만들고 신나게 작업을 한 결과, 해당 폰드에 있는 일부 오피스의 목록 작업을 다 마쳤다. 아직 비밀해제가 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전에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RGASPI(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1952년 이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폰드 17) 자료 가운데 역시 적지 않은 북한 관계 자료가 비밀해제 되어있다. 다짜고짜 찾아가서 러시아어로 어찌어찌 출입증 만들고 작업을 했다. 오늘은 몰로토프 문서군(폰드 82)에 실린 북한 관계 자료를 일부 작업했다. 이 또한 국내 연구자 가운데에는 내가 최초로 열람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최초가 중요한 수식어는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니 다행이다.

RSL(레닌도서관): 작년에 북한사 연구자로는 거의 최초로 내가 다른 연구자에게 소개를 했고, 지금도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RGALI(러시아국립문학예술문서보관소): 아직 안 가봤는데, 조만간 가보려고 한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박사논문을 다 쓰기 전에 AVPRF(러시아외무성문서보관소)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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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인상인데, 요새 미국 역사학계에서 화두 중 하나는 아프리카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잘 되는 사람들 소식만 들어서겠지만, 취직도 꽤 잘 되는 편이고, 식민주의의 역사 때문에 '토착어'보다는 영어와 불어 자료가 더 많이 남아 있어 연구가 수월하고 등등. 아닌 게 아니라, 아프리카는 냉전의 무대 중 하나였고, 미소뿐만 아니라 구제국(영국, 프랑스 등)과 신흥국(중국, 서아시아 국가 등)이 영향력을 유지/확충하기 위해 애썼으며, 무엇보다 지하자원이 짱짱하게 많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폭격에 쓰인 우라늄이 벨기에령 콩고에서 왔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고, 그 많은 기름하며... 오늘 존재를 알게 된 어떤 미국인 연구자분은 소비에트와 모잠비크의 관계사로 박논을 준비하시던데, 무척 흥미로웠다. 

오드 베스타 이후 냉전에서 1세계(+일본)와 소련 이외의 행위자들에 대한 관심과 주목이 증가했고, 그 결과 이제는 중국, 동구권, 동남아시아, 아랍권, 남미가 주역이 되는 권역별 냉전사, 또 그들 간의 상호작용과 교류를 다루는 권역간 냉전사로 시야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쨌든 냉전의 주무대는 유럽이고, 유럽(특히 독일)을 둘러싼 미소의 갈등이 핵심이라는 점. 그렇다면 결국 지금 수행되는 연구들은 당연히 우리의 냉전사 인식을 심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조금 비판적으로 보면, 기존의 해석을 강화하고 이에 곁다리를 붙이는 작업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한국/북한 관련 냉전사라고 해봤자 굉장히 변변찮은 이 시점에 조선사 연구자는 그러한 작업으로부터 배우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뻘소리가 길었는데, 냉전사의 새로운 연구 추세는 어떻게 될까? 국경을 넘는 트랜스내셔널 STEM(과학기술환경의학)사? 새롭게 대두하는 추세를 잘 파악하고, 이에 잘 편승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아니면 새로운 추세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잘 안 보이네. 좌우지간 북한사는 자료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니 무엇을 하려고 한들 난망하기 그지 없다. 여하튼 다가오는 3차 미북회담에서 단계적 핵폐기에 대한 비공식적 합의+미국의 선제적 양보가 이뤄지고, 북한이 이를 가지고 자신들의 승리라고 대외선전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공식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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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종의 일로 아직 쿼터가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쁘다. 4월이 코앞이고, 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북한사 연구는 정말 여러 방면에서 제약이 많다. 우선 1차 자료 접근이 힘들고 어렵다. 동시에 북한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잘 하면 이른바 '본전'이고, 못 하면 못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사를 다른 역사 연구에 전략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읽는다.

  요새 미국 사학계의 트렌드는 아무래도 환경사, 과학사, 재난사, 글로벌 등이다. 냉전사 연구, 그 중에서도 '2세계'와 '3세계'에 초점을 맞춘 연구도 아직 진행 중이지만, 그렇게 큰 인기를 끄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에서 북한사를 어떻게 저러한 트렌드에 접속 시킬 수 있을까?

  어서 러시아에 가고 싶다. 그곳엔 북한사에 필요한 1차 자료가 잔뜩 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부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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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이 무척 좋다 못해 더웠다. 친구들과 하이킹을 다녀왔다. 점심은 유천냉면에서 먹었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나중에 교수로 취직이 되어 연구자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면 두 가지 주제로 두 권의 책을 더 쓰고 싶다. 죽기 전에 세 권의 책을 쓰는 게 목표인데, 세 권을 다 썼다고 곧바로 죽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좌우간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금 박사논문의 주제는 북한과학사이고, 원자력/핵폭탄이 세부 주제이다. 이를 책으로 내게 된다면, 영미권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에서 최초로 실증적인 북핵사 책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책의 주제는 20세기 전반 조선인의 독립운동사이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부르짖었으며, 그러한 노력들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가? 세 번째 책의 주제는 20세기 전후반에 걸친 한인이산사이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탈조선을 했으며, 얼마나 다양한 곳에 뿌리를 내리며 지금까지 사는가? 또 조선반도의 두 "조선"은 그러한 해외 조선인을 얼마나 차별했는가?

오직 전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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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간간히 무언가를 끼적였으나, 마음을 가득 매우고 있던 것은 이물감과 걸리적거림이었다. 이제 쿼터가 정말 끝나간다. 내일 학생들 가르치고, 에세이 채점하고, 과제 하나 하면 끝이다. 그러면 더 이상 수업을 안 들어도 되고, 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 드디어 그 때가 왔다. 미국 온지 545일 만에 이룩한 결과이다. 어제였다.

사회주의사를 공부하는 것은 아직 의미가 크지만, 그러한 공부가 내 직업적 진로를 그 자체로 빛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하튼 북한사를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의 이야기 안에 배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습적인 의미의 북한사로 그치게 되고, 그런 책은 사람들이 결코 참조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동생이 기가 막힌 말을 하더라: "큰 길을 따라가야 진리가 보이지." 맞다, 역사를 국경 안에 가두어 버리는 민족사나, 다양한 자료를 쓰지만 역시 탐구의 촛점이 국경 안에 놓여 있으면 국가사를 벗어날 수 없다. 취직이 안 된다.

박사 학위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이유가 분명해 졌다면 그 목적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일을 할 여유는 내게 없다. 따라서 이번 여름엔 가급적 러시아에서 보내고자 한다. 자료를 찾고 찾고 또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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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또 한 번 정신없이 흘렀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진 않은데, 벌써 2월도 중순으로 접어든다. 무언가를 꾸준히 쓰는 게 쉽진 않다. 아침엔 논문 초고를 마무리지어서 선생님께 보냈다. 여전히 할 일이 많다. 다만 이번 쿼터를 끝으로 더 이상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고맙다. 다음 쿼터부터는 좀 더 자유롭게 책을 읽으면서 논자시 준비와 논문 준비를 진행할 수 있다. 이제 5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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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루가 금방 갔다.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고, 별로인 날씨가 지속되었다. 조교 업무와 관계된 일을 하다보니 순식간에 정오가 되었고, 집에 돌아와 쉬다가 운동을 하고 오니 오후 3시를 훌쩍 넘겼다. 이토록 시간은 빨리 가는데, 읽어야 할 건 많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란코프 선생님의 The Real North Korea를 완독했으니 이제 이틀 내로 reaction paper와 발표 준비를 해야 한다. 동시에 2월 10일까지 소논문의 초고를 완성해서 회람시키고자 하는데, 이게 과연 가능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멀리서 미국사를 공부하는 친구가 역대급 서적들을 알려주었다. 이 책들은 또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저작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한다.

Paul Kramer, The Blood of Government: Race, Empire, the United States, and the Philippines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6).

Pekka Hämäläinen, The Comanche Empire (Yale University Press, 2008).

Margot Canaday, The Straight State: Sexuality and Citizenship in Twentieth-Century America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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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너무 공부 얘기를 소흘히 했다. 과제가 많은 것도 있었지만, 모처럼 쉬고 싶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과제는 과제대로, 공부는 공부대로 꾸역꾸역 했다. 이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기록하려고 한다.


며칠 전에 미시건주의 한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북한자료 접근법을 문의하셨길래 아래와 같은 정보를 알려드렸다.

미의회도서관 한국 정기간행물 검색 기능

미의회도서관 보유 북한 잡지 내 기사별 검색 기능

한국 국립중앙도서관 미국노획북한문서 온라인 서비스

국사편찬위원회 러시아자료 편람

북한사 참고문헌 일부


비가 며칠 동안 계속 내렸고, 과연 여기가 라라랜드인지 서대문구인지 모를 정도의 날씨가 지속되는 듯 하다. 화요일까지 비가 온다던데 어서 그쳤으면 좋겠다.


과제 겸 발표 겸 서평 작성을 위해 안드레이 란코프 선생님의 The Real North Korea (OUP, 2013)을 거의 다 읽었다.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2장은 김일성시대의 역사, 중간 2장은 김정일시대의 역사, 맨 뒤의 2장은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부분이다. 이 책은 역사서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관심은 있는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고, 엄밀한 학술적 용어로 정교하게 북한을 서술하기보다는 다소 관습적인 용례와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인상을 가지고 북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하는 데 주력한다. 따라서 대중서이며, 이 한 권을 가지고도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다. 다만 역사 서술 부분이 소략해서 아쉽고,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내용(예컨대, 천안함 사건이나 북한 지도부의 의중 등)이 권위적인 필치로 쓰여있어 읽기 거북한 지점도 분명 존재한다.


아울러 북한 문학, 예술 등을 다룬 여러 편의 영어 논문들을 읽고 과제를 작성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이나 다양한 연구자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관습적인 논의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의 존재를 확인해 흐뭇했다. 나도 그러한 흐름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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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역사가 가운데 1950년대 북한을 다루는 손에 꼽히는 학자인 앙드레 슈미드 선생님(토론토)의 오늘자 논문. 일반 연구논문은 아니고 리뷰 에세이 형식이어서 새로운 자료나 독창적인 주장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간의 서구 북한사 연구뿐만 아니라 비교 사회주의사 분야인 동독사/소련사/중국사를 충실히 정리하고 있는 글이다. 앞으로 영어로 북한사 논문을 쓸 때 이 글을 참고하지 않고서는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 듯 하다. 연구사적으로 무척 값진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적 해외 이동과 귀환,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어떻게 조선인이 38도선을 오갔는지부터 시작해 1950년대 중후반 북한 사회 내에서 조선인의 이동 문제를 다루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이 글을 꿰는 주제는 이동성mobility이다.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 a) 북한 내 이동성의 문제가 어떻게 자료 접근의 절대적 제약 및 반공 국가의 비판 없는 자료 이용과 결합돼 미국 내에서 "전체주의" 북한의 이미지가 끊임 없이 재생산되었는지, b)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자료 접근이 완화됨에 따라 (또는 그 이전부터) 사회주의국가의 특정한 상, 즉 '사회에 대한 국가의 완전한 통제'라는 냉전 인상을 불식시키고 인민의 주체성agency을 복원한 소련사/동독사/중국사의 연구 성과 소개, c)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냉전적 연구가 지속(마이어스와 숙영킴)되고 있는 서구 북한사 연구 비판, d) 1950년대 북한 자료(로동자, 경제건설, 조선녀성 등)에 대한 슈미드 나름의 독법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냉전적 접근을 탈피할 수 있고 속히 탈피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주체성을 강조한 슈미드의 이야기는 사회주의권 다른 최신 연구와 비교했을 때 결코 새롭거나 독창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영어권 학계에서 북한에 대한 비역사적 또는 몰역사적인 냉전적 시각이 지배적이고 이러한 모습이 당분간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권위 있는 The American Historical Review에 실린 이 글은 서구 북한사 연구자들에게는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고 냉전적 시각을 고수하는 연구자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일일 것이다. 

사소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없진 않다. 개인적으로 슈미드의 입론에 전부 동의하지만, 엄청난 제약에도 불구하고 북한사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최신 성과들을 각주로나마 소개하는 데 할애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김동춘, 김연철, 서동만, 이주철 등 국내 연구자가 각주로 나오긴 하지만, 글의 핵심 주장(=인민의 주체성)은 김재웅의 박사논문(2014)이나, 김선호의 박사논문(2016) 등 국내 북한사 연구로 뒷받침했을 때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슈미드가 이러한 논문을 몰랐다기보다는, 잡지의 성격과 본인의 현재 연구 시기인 1950년대(앞 논문들은 1945-50)를 더욱 잘 설명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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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19일 제2차 코민테른 대회 개최 기념 축제: 우리츠키 광장의 시위」(1921년, 유화, 268x133cm). 촬영: Viktor Bulla. (출처: 류한수, "러시아 혁명의 한복판에 섰던 한국인들", 2017)


작성자의 변: 아래 참고 자료는 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제별로 가장 권위 있는 논저를 우선으로 하여 급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이 자료는 북한사에 대한 모든 논저를 포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컨대, 민족운동, 남북관계, 북중관계 등 한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연구들은 따로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아울러 일본,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생산되고 있는 자료들 또한 여기에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자료/주제를 추천해 주시면 기꺼이 추가토록 하겠습니다. 한편, 이하에 나와 있는 논저를 전부 일독할 경우, 북한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cent work on NK and its alleged errors

Charles Armstrong’s Tyranny of the Weak and its alleged citation errors (with a list made by Balazs Szalontai, 45 pg)

 

NK in 1945-1950

Charles Armstrong’s North Korean Revolution.

Suzy Kim’s Everyday Life in the North Korean Revolution, 1945–1950.

 

The 1950s 

Balazs Szalontai’s Kim Il Sung in the Khrushchev Era.

Andrei Lankov’s Crisis in North Korea.

  

Recent works on NK

Sue Kim, “Rituals of Decolonization” (PhD Diss)

Avram Agov, “North Korea in the Socialist World” (PhD Diss)

Kim, Cheehyung, “The Furnace is Breathing: Work and the Everyday Life in North Korea, 1953–1961.” (PhD Diss) (online review: http://dissertationreviews.org/archives/3323)


Interdisciplinary approaches on NK

Heonik Kwon and Byung-Ho Chung’s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

Suk-Young Kim’s Illusive Utopia.

B. R. Myers’s The Cleanest Race.



영어권 서적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변: 위의 책 중 일부에서 몇 가지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분석의 주제로서 '일상'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 초국적transnational으로 북한을 분석한다는 점, 뭣보다 뿌리 깊은 전체주의론적인 서사가 극복되지 못했다는 점이다.[각주:1] 이는 영어로 쓰여진 북한학 저서의 다른 특징인 '북한 자료의 부재'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북한 자료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는다거나, 북한 자료를 읽더라도 달리 읽어낼 방안이 부재하다거나 또는 예정된, 관습적인 서사에 의존하는 것이다.[각주:2] 그 결과는? 참담하다.

전체주의론적 저서를 모두 기각하기보다는 그것들에서 나름대로 유용한 지점을 찾는 편이 나을 것이다. 먼저 위 책들은 사실관계에 제법 충실하기 때문에 그 사실관계를 엮어 전개하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다. 특히 다양한 외국어 자료가 보여주는 내용은 그 자료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이 힘든 상태에서 어느 정도 유용하다. 두 번째로 이론의 쓰임이다. 미국 역사학계에서, 북한학학계에서 이론이 어떻게 쓰이는지 대강을 파악할 수 있고, 향후 연구에 어떻게 비판적으로 접목시킬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전체주의론의 유일한 반례가 수지 킴의 저서이다. 다만 이 책은 전체주의론적인 서사를 역사학적으로 극복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적 근대성(Capitalist modernity)에 대한 반발이자 대안으로 사회주의적 근대성(Socialist modernity) 또는 '영웅적 근대성'(Heroic modernity)을 북한이 실천했다'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전체주의론을 갈음한다. 따라서 전체주의론과 내용만 다를 뿐이지, 일련의 목적론telos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저자의 주장과 해석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별개로, 성실히 1차 자료에 근거했다는 점과 젠더 문제를 나름대로 다루는 점 등이 미덕이다.

   

History of the Soviet Union and its society

Stephen Kotkin, Magnetic Mountain.

Julie Hessler, A Social History of Soviet Trade: Trade Policy, Retail Practices, and Consumption, 1917-1953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4).

Elena Shulman, Stalinism on the Frontier of Empire: Women and State Formation in the Soviet Far Eas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Jochen Hellbeck, Revolution on My Mind: Writing a Diary under Stali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6).

David L. Hoffmann, Stalinist Values: The Cultural Norms of Soviet Modernity, 1917-1941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3).

Igal Halfin and Jochen Hellbeck, “Rethinking the Stalinist Subject: Stephen Kotkin's "Magnetic Mountain" and the State of Soviet Historical Studies,” Jahrbücher für Geschichte Osteuropas, Bd. 44, H. 3 (1996)

Anna Krylova, “The Tenacious Liberal Subject in Soviet Studies,” Kritika: Explorations in Russian and Eurasian History Vol.1 (2000)


English works on NK before the 1990s

Robert A. Scalapino and Chong-Sik Lee, Communism in Korea Vols. 1 & 2, 1972, 1973.

Dae-Sook Suh, Kim Il Sung - The North Korean Leader (1995, reissued edition).

___, Korean Communism, 1945-1980: A Reference Guide to the Political System (1981)

___, Documents of Korean Communism, 1918-1948 (1970)


South Korean scholarships on NK – Politics during 1945~48

김광운, 북한 정치사 연구 1, 선인, 2003.

Jae-Jung Suh, Origins of North Korea's Juche: Colonialism, War, and Development (2014, reprinted edition)

기광서, “소련의 대한반도-북한정책 관련 기구 인물 분석 : 해방∼1948. 12”, <현대북한연구> 1 (1998)

기광서, “해방 소련의 대한반도정책과 스티코프의 활동”, <중소연구> 26 (2002)

기광서, “해방 김일성의 정치적 부상과 집권과정”, <역사와 현실> 48 (2003)

기광서,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에 대한 소련의 입장”, <역사비평> 65 (2003)

기광서, “러시아 문서보관소 사료로 소련의 북한 정책, 1945~47”, <역사문화연구> 23 (2005)

기광서, “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부르주아민주주의' 노선”, <통일문제연구> 20 (2005)

기광서, “8.15 해방에서의 소련군 참전 요인과 북한의 인식”, <북한연구학회보> 9 (2005)

기광서, “소련공산당 정치국의 대한반도 관련 「결정」과 북한정부의 성격 구상(1945-1948)”, <동방학지> 144 (2008)

기광서, “1948 남북한 건국과 동북아 열강들의 인식 ; 소련의 남북한 정부수립에 대한 인식 -1948년도 『프라우다』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사총> 67 (2008)

기광서, “훈령으로 소련의 미소공동위원회 전략”, <역사문제연구> 24 (2010)

기광서, “해방 북한 중앙정권기관의 형성과 변화(1945~1948)”, <평화연구> 19 (2011)

기광서, “해방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 구상과 조선 정치세력에 대한 입장”, <슬라브연구> 30 (2014)

노경덕, “얄타 회담 다시 보기”, <사총> 87 (2016)

전현수, “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대북한정책”, <한국독립운동사연구> 9 (1995)

전현수, “북한의 국가형성과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 <한국민족운동사연구> 84 (2015)

 

South Korean scholarships on NK – Society during 1945~61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 선인, 2005.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한국전쟁과 북한사회주의체제건설 (1992)

___, 북한사회주의건설의 정치경제 (1993)

고유환, 로동신문을 통해 북한변화, 선인, 2006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조선로동당의 외곽단체, 한울아카데미, 2004

이종석새로  현대북한의 이해역사비평사, 2000.

김진혁, "북한의 위생방역제도 구축과 ‘인민'의식의 형성(1945~1950)", <한국사연구> 167호 (2014)

류기현, "쏘련을 향하여 배우라 ― 1945~1948년 朝蘇文化協會의 조직과 활동",  <대동문화연구> 98권 (2017)

문미라, "한국전쟁 시기 중국인민지원군 · 연변(延邊) 조선인 사회의 ‘후방지원' 활동과 북중 ‘혈맹'관계의 강화", <동북아역사논총> 57호 (2017)

박창희, “정전 북한 노동자 조직의 성격 변화 -1953~1958년을 중심으로”, <사림> 34 (2009)

서홍석, "조선인민군 충원정책의 변화와 정체성 형성 : 1948~1950",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예대열, "해방이후 북한의 노동조합 성격논쟁과 노동정책 특질", <역사와 현실> 70호 (2008)

이성수, "전후 복구 시기 북한의 학교체육 연구", <현대북한연구> 19권 (2016)

이세영, "1950년대 북한 노동자층의 형성과 의식 변화", <한국사연구> 163권 (2013)

이준희, “1950년대신해방지구' 개성의 농업협동화”, <역사문제연구> 37 (2017)

홍종욱, “보성전문학교에서 김일성종합대학으로”, <역사학보> 232 (2016)

 

South Korean scholarships on NK – Economy in the 1940s

김성보, 남북한 경제구조의 기원과 전개, 역사비평사, 2000.

나탈리아 바자노바, 양준용 , 기로에 북한경제: 대외협력을 통해 실상 (1992)

타카세 키요시(瀬浄), 이남현 옮김, 북한경제입문 (1988)

김태윤, "해방 직후 북한 과학기술 교육체계의 형성과 성격(1945-1950)",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박순성, “북한 경제와 경제이론”, <현대북한연구> 5 2 (2002)

박후건, “북한 경제의 재구성 – part I”, <현대북한연구> 16 3 (2013)

박후건, “북한 경제의 재구성 – part II”, <현대북한연구> 17 3 (2014)

방선주, “1946 북한 경제통계의 연구”, <아시아문화> 8 (1992) 

예대열, "해방이후(1945~1950) 북한 경제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사총> 86권 (2015)

이주호, “1945~1948 북한 소비조합 정책의 전개”, <역사와 현실> 96 (2015)

이준희, “1945~1958 개성 인삼업의 재편과 사회주의화”, <동방학지> 179 (2017)

전현수, “1947 12 북한의 화폐개혁”, <역사와 현실> 19 (1996)

전현수, “산업의 국유화와 인민경제의 계획화: 공업을 중심으로”, <현대북한연구> 2 (1999)

전현수, “해방 직후 북한의 농업생산과 분배(1945~1948)”,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1 (2002)

전현수, “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개혁”, <대구사학> 68 (2002)

전현수, “해방 직후 북한의 국가예산(1945~1948)”, <한국사학보> 28 (2007)

조수룡, “1945~1950 북한의 사회주의적 노동관과 직업동맹의 노동통제”, <역사와 현실> 77 (2010)

 

South Korean scholarships on NK – Politics from the 1950s to the 1970s

이태섭, 김일성 리더십 연구, 들녘, 2001.

정영철, 김정일 리더십 연구, 선인, 2005.        

 

South Korean scholarships on NK – Figures 

정창현, 인물로 북한현대사: 김일성에서 김정은까지, 선인, 2011.

백남운, 방기중 , 쏘련인상 (2005)

이태준, 소련기행.농토.먼지(이태준문학전집 4)

 

South Korean scholarships on NK – Recent trends 

연정은, “북한의 사법·치안체제와 한국전쟁”,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김연철, “北韓의 産業化 過程과 工場管理의 政治(1953-70): '수령제' 政治體制의 社會經濟的 起原”,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6.

김재웅, “북한의 인민국가 건설과 계급구조 재편 : 1945~1950”,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Historiography and the Party

정영철 , 조선로동당의 역사학 (2008)

임영태, “북으로 맑스주의 역사학자와 사회경제학자들 : 김광진, 김석형, 김한주, 박문규, 박시형, 백남운, 이청원, 인정식, 전석담”, <역사비평> 6 (1989)

홍종욱, “()식민주의 역사학에서 ()역사학으로동아시아의 `전후(戰後) 역사학` 북한의 역사 서술”, <역사문제연구> 31 (2014)


Understanding the social atmosphere of NK through reading testimonies 

박병엽 증언록 1, 2

김진계, 조국

 

Workers' Party of Korea

이종석, 조선로동당연구, 1995.

이주철, 조선로동당 당원 조직 연구, 2008.

 

Origins and Formations of the Factions 1

 와다 하루키, 이종석 옮김,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1992.

조우찬, “북한 갑산파 연구: 기원, 형성, 소멸”,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Origins and Formations of the Factions 2 

정병일, 북조선 체제성립과 연안파 역할, 2012.

김국후, 평양의 카레이스키 엘리트들, 한울, 2013.

 

Thematic variations

김선호, “조선인민군연구: 창설과정과 통일전선”,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테사 모리스-스즈키, 한철호 옮김, 북한행 엑서더스(원제: 北朝鮮への エクソダス「歸國事業」の 影をたどる), 책과함께, 2008.

황상익, 1950년대 사회주의 건설기의 북한 보건의료, 2006.

 

NK’s STS 

강호제, 북한과학기술형성사 1, 선인, 2007.

변학문, “북한의 기술혁명론 : 1960-70년대 사상혁명과 기술혁명의 병행”,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5.

 

NK-China relationship 

이종석, 북한-중국관계 1945-2000, 중심, 2000.

션즈화, 김동길 옮김, 최후의 천조, 선인, 2017.

히라이와 슌지, 이종국 역, 북한 중국관계 60년: '순치관계'의 구조와 변용, 선인, 2013. (added on 15 Jan 18 by "없음")

 

NK in the Cold War

시모토마이 노부오, 이종국 엮음, 모스크바와 김일성냉전기의 북한 1945-1961

Narushige Michishita, North Korea's military-diplomatic campaigns, 1966-2008

 

Works from political studies

 백학순, 북한권력의 역사, 2010.

김보미, “북한자주로선' 형성 19531966 : 비대칭동맹의 특수사례”,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이정철. 사회주의 북한의 경제동학과 정치체제-현물동학과 가격동학의 긴장이 정치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2. (added on 15 Jan 18 by "없음")

 

Korean War

션즈화, 마오쩌뚱 스탈린과 조선전쟁, 최만원 옮김, 선인, 2010.

션즈화, 조선전쟁의 재탐구, 김동길 옮김, 선인, 2014.

Chen Jian, China’s Road to the Korean War

기광서, “소련의 한국전 개입과정”, <국제정치논총> 40 (2000)

기광서, “소련의 대북한 군사원조와 ? 군대의 참전 문제 : 한국전 발발 전후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연구> 25 (2006)

기광서, “한국전쟁기 소련의 유엔 안보리 불출석과 "드러나지 않은" 개입”, <중소연구> 34 (2010)

기광서, “한국전쟁기 북한 점령하의 남한 인민위원회 선거”, <통일연구> 61 (2012)

기광서, “한국전쟁 시기 북한의 남한지역 토지개혁”, <한국근현대사연구> 62 (2012)

기광서, “한국전쟁 휴전에 대한 공산측 지도부의 입장”, <이화사학연구> 46 (2013)

전현수, “한국전쟁과 소련의 역할 -1949 3 조소 양국 정부의 협상을 중심으로”, <대구사학> 100 (2010)

  1. 여기서 전체주의론이란, 냉전기 미국의 소련 이해 방식의 주류를 형성했던 시각을 의미하고 영어로는 Totalitarian approach 정도로 쓸 수 있다. 소련사에서는 이미 이러한 전체주의론이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해서 극복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이른바 '수정주의론'이 그러한 흐름인데, 이는 1990년대 초반 이후 '문서고 혁명'을 거치며 이른바 '신 전통주의론'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견결히 학풍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하여 소련사는 계속해서 주제적으로 외연을 넓혀 나가고 있으나 별다른 방법론적 전환이 포착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북한에 적용하자면 다음과 같은 관습적인 논지들을 확인할 수 있다. 1)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전체주의 사회로의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 2) 해방 직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김일성 일파가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전체주의 사회로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1)과 2)는 시기만을 달리할 뿐, 예정된 결론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다. 허나 한편으로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하는 맥락이 존재한다. 북한의 자료 공개 부재도 이러한 관습적인 논지를 쉽게 탈피하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본문으로]
  2. 대표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다. 1) "어떤 것은 강고한 전통 때문이다." 이런 서술은 대개 그 전통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전통 대신 가부장제나 유교를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정도야 다르겠지만 가부장제가 지배적이지 않았던 인간공동체가 얼마나 되겠는가. 유교는 더 가관인게, 이게 성리학인지, 성리학이면 어떤 분파인지, 또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변형된 유교인지, 아니면 일제 강점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유교인지, 도무지 그 실체 또는 집단심성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설명이 필요한 개념으로 '설명을 하는' 초보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한편으로 그 전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또한 적다. 2) "동양의 사회는 유럽과 달랐기 때문에 유럽중심주의적인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런 서술은 이미 몇 년 전에 비벡 치버Vivek Chibber 교수가 비판적으로 송두리째 해부했기 때문에 더 보탤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은 계속 생산된다. 유럽중심주의적인 개념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학자는 잘 없거니와, 그런 학자가 있다면 당연히 읽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설명방식의 타당함을 묻기도 전에 유럽중심주의적으로 보이는 것은 모조리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면 남은 설명방식은 1)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그 귀결은 위와 같다. 3) 민족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에 대해서 설명하기보다는 주어진 개념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하다. 그러한 개념들이 해당 역사에서 어떻게 유입됐고 만들어졌고 이용됐고 변했는지에 관한 의문은 모조리 차단 된다. 처음부터 그 사회는 민족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의 극단으로 치달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목적론의 수준이 지극하기 짝이 없다. 4) 가장 황당한 것은 학술적 연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제기하는 실천적 과제들이다. 사실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오히려 격려를 받아야 한다. 허나 그 내용이 대개는 전혀 실현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직접적으로는 그런 내용이 팔리는 시장의 이해, 간접적으로는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복무하고 있다. 해당 사회의 인민이 겪는 어마무시한 고통과 핍박, 부자유와 감시, 인권의 ㅇ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 등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보편적인 명령이다. 그런데 그 개선을 이루기 위해 정작 무엇이 이뤄져야 하는지는 찾아볼 수 없고, "세습적" 지도부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나 세계와의 더 많은 접촉을 강제시킬 따름이다. 인권의 미명 하에 외세와 결탁한 군사정권에 전복된 국가들의 사례나 소련 해체 직후 구소련 및 동유럽 사회가 겪은 역사적 경험, 국제기구와 초강대국의 갖은 제제 등을 떠올리면 그러한 제안들이 얼마나 단순하고 근시안적이며 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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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없음 2018.01.15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아래 도움이 될지도 몰라 추가합니다

    히라이와 슌지, 이종국 역, 북한 중국관계 60년: '순치관계'의 구조와 변용, 선인, 2013
    이정철. 사회주의 북한의 경제동학과 정치체제-현물동학과 가격동학의 긴장이 정치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2

    • Л 2018.01.15 1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자료가 유용하게 쓰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아울러 자료 소개도 감사합니다. 60년 책은 얼핏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박사학위 논문은 처음 듣는 것이군요. 혹시 pdf 파일을 가지고 계신지요?

  2. 없음 2018.01.19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zpdf 형태라 제가 소장은 못 하고 있습니다만 아래 링크입니다
    개인적으로 북한경제에 관한 최고의 논문이라 생각합니다

    http://snu-primo.hosted.exlibrisgroup.com/primo_library/libweb/action/display.do?tabs=viewOnlineTab&ct=display&fn=search&doc=82SNU_INST21480869730002591&indx=15&recIds=82SNU_INST21480869730002591&recIdxs=4&elementId=4&renderMode=poppedOut&displayMode=full&frbrVersion=&vl(15540190UI1)=AND&vl(19022558UI4)=dissertations&vl(15540197UI6)=&vl(15540196UI6)=00&dscnt=0&vl(1UIStartWith0)=contains&vl(1UIStartWith2)=contains&vid=82SNU&mode=Advanced&vl(D15540194UI3)=all_items&vl(322990461UI2)=any&tab=book&vl(19016102UI5)=all_items&vl(freeText1)=&vl(15540195UI6)=00&dstmp=1516350923201&frbg=&vl(19022561UI1)=any&vl(15540199UI6)=00&vl(1UIStartWith1)=contains&tb=t&vl(15540198UI6)=00&vl(19016099UI0)=creator&vl(15540188UI0)=AND&srt=rank&vl(15540188UI2)=AND&vl(15540200UI6)=&Submit=%EA%B2%80%EC%83%89&vl(freeText2)=&vl(freeText0)=%EC%9D%B4%EC%A0%95%EC%B2%A0&dum=true

  3. 송하봉 2019.11.13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북한사 수업을 듣고 있는 사학과 대학원생입니다. 참고문헌 목록에 저희 교수님의 글도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참고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북한사를 서술해야 하는 게 내 과제다. 어떤 논지로 접근을 해야 좋을까? 잘 읽힐까? 팔릴까? 마땅할까?

 실증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물론 수단조차 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잘 팔린다. 내 관심사는 아니다. 실증을 통해 어떤 논지를 미느냐의 문제야말로 나의 관심사이다. 어떤 서사를 쓸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나에게 들려줄 것인가?

 해명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실증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들도 많다. 예컨대, 대체 왜 북한이 개인숭배로 갔는지를 어떻게 밝힐 것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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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이 글은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을 주제로 다룬 기존의 연구 성과를 가능한대로 한데모아 일별했다. 1945년을 전후하여 소련의 대한정책은 미국 정부의 전략적 이해 속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한반도의 정치세력과 미·소 양국의 정책이 때로는 맞물리고 때로는 어긋나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소련의 대한정책연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군정을 설치하여 3년간 남한을 통치한 미국과는 달리, 소련은 민정이라는 외피를 두른 채 38도선 이북의 정치사회를 나름대로 주조하려고 하였고, 이러한 미국과의 차별성은 시대적인 열기속에서, 또는 이념적인 치기(稚氣)’ 속에서 소련을 선한 행위자로 둔갑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연구자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소련의 민정은 기실 간접통치의 모습을 띤 군정이었다는데 동의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관련 연구는 해방이후부터 여태껏 진행됐다고 할 수 있고, 이 글에서는 동 주제를 다루는 기왕의 연구를 일견한다.

 

2. 연구사 흐름 정리

 

 김성보를 비롯하여 다수의 연구자가 지적했듯, 1990년대 이전까지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 연구는 대개 자료의 빈곤을 이념의 과잉이 보충하는 꼴의 연구 일색이었다.[각주:1] 1990년대 이전 연구는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된다고 할 수 있는데, 김광운을 빌려, 하나는 소비에트화경향으로, 다른 하나는 해방 기획과 자력혁명경향으로 부를 수 있다. 이러한 분기는 서구 (국제)정치학계의 수정주의 대() 전통주의라는 구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에트화경향이란 북한에서의 인민정권 수립과정을 소련의 계획된 프로그램에 따른 정치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을 지칭하며, 이 경우 해방 이후 38도선 이북에서 수립된 국가는 스탈린과 소련공산당의 의도가 철저히 관철된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대전제 하에 팽창주의”(김영명, 양호민 등)방어주의”(김학준, 여인곤 등) 또는 대중(對中)정책의 연장”(강원식)이라는 세부적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 경향은 전반적으로 남한 학계와 대중의 인식을 지배(김창숙, 한재덕, 오영진, 한근조 등의 증언에 힘입어 서대숙, 스칼라피노, 이정식, 에릭 반 리Erik van Ree )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소련이라는 외부적 규정력을 강조한 연구들이 계속 진행됐는데, 이러한 경향은 전현수, 웨더즈비, 강인구, 백학순, 란코프[각주:2], 이규태, 박명림 등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북측 자료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료 구사 및 서술상의 균형 유지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해방 기획과 자력혁명경향이란 소련측과 북한측의 주장으로 엄밀히 말해 양자를 한데 묶기란 어렵지만, 전자의 경우는 소련의 식민지 민족해방논리에 따른 정치과정이 해방 이후 북한의 수립으로 귀결됐다고 주장하며, 후자의 경우는 북한 수립은 애당초 자명한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소련의 영향력은 아주 미미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19589월 열린 북한과학원 역사연구소 주최 전국과학토론회를 전후하여, 소련의 해방자적 역할을 강조했던 문화전파설이 부정되고 역사 속 북한의 역할을 더더욱 강조하는 역사민속학이 제창됐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서 정세에 따른 역사서술 경향의 변화를 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의 경향은 대개 이념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하고, 소련과 북한이 보여준 상호작용의 속살과 세부를 좀 더 면밀히 보고자 했다. 전반적으로 한반도 외부에서 주어지는 소련식 질서가 38도선 이북의 사회에서 전개된 내부 모순과 맞물려 벌어지는 현상의 복잡함과 다양성을 포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커밍스, 스즈키 마사유키(鐸木昌之), 이종석, 유길재, 정해구, 김성보, 서동만, 기광서, 이주철, 김광운 등의 연구자가 이러한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자료의 부족이라는 만성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혹자는 서구의 소련학(Kremlinology)’에서 파생돼 나온 기법을 단순히 북한에 적용하는 오류(이른바 외재적 접근법’)를 범하기도 했다.

 

 1999년에 쓰인 정성임의 글은 소련문헌을 광범하게 검토한 에릭 반 리의 1989년 저작, 미측 노획문서를 검토한 백학순의 1993년 저작,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의 소련 외무성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 등을 검토한 웨더즈비의 1993년 저작을 살핀 후, 그러한 획기적인 성과들이 미처 답하지 못한 질문, 예를 들어 소련이 명확한 점령정책 없이 북한을 점령했으나 1945년에 이미 북한만의 공산화를 결정했다면 어떻게 9월 하순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분단을 결정했으며, 나아가 1946~47년 미소공위에 임할 당시 결렬을 전제로 했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지등을 물으며 자신의 논지를 강화했다. 저자는 주로 소련국방성 문서를 활용하여 점령 첫 해 소련은 사회주의화의 준비기를 가졌으며, 국가형성단계로의 전환점은 모스크바 결정이었음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정성임의 연구에 더하여, 2000년대에 들어와 소련의 1차 자료를 이용한 연구가 점증하고 있다. 이는 또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가 일찍이 선보인 실증주의적 경향의 연구와도 맥이 닿는다.[각주:3] 대표적인 연구자로는 기광서, 전현수, 이재훈, 김성보 등을 들 수 있다. 기광서는 2002년에 쉬띄꼬프의 활동을 중심으로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을 분석했고[각주:4], 2008년에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생산 자료인 결정을 바탕으로 1948년 초반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을 분석했으며[각주:5], 2010년에는 소련 최고지도부가 승인한 훈령을 토대로 소련의 미소공위 전략을 살폈다.[각주:6] 그에 따르면, “미소공위에서 소련의 대한정책목표는 분단정부나 사회주의 조선이 아니라 좌파가 주도권을 갖는 친소적 조선이었고, 더하여 미소공위 결렬을 대비한 대책, 즉 조선인에게 조선 정부의 수립을 맡기고 외국군대는 모두 철수해야 한다는 방침도 마련해 놓았었다. 이재훈의 경우, 소련공산당 상층부의 정책을 통해 해방 전후 소련의 극동정책과 그 하부의 대한정책, ()한국인식 등을 분석했고, 소련의 한국 민족주의자 인식을 살핀 바가 있다.[각주:7] 전현수는 꾸준한 자료 발굴과 탈초, 번역과 게재를 해왔으며,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 연구의 핵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쉬띄꼬프의 일기를 간행하기도 했다.[각주:8]

 

 전현수의 정리를 빌려 소군정을 거칠게나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소련군 통치방식 자체는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북한을 통치한 소련군사령부와 민정청(1947.5)이 군정기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소련군사령부는 쉬띄꼬프를 정점으로 했고,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주도적이면서도 최종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간접통치의 외형을 취했으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소련군사령부의 개입은 전면적이고 직접적이었다.” 그러나 김광운에 따르면, 해방 직후 소련군사령부는 면 이하 행정단위에 대한 직접 통치능력이 전혀 없었고, ·군 차원의 민정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 연구는 소련의 1차 자료가 공개됨과 함께 과거의 이념적 편향에서 벗어나 좀 더 실증적인 연구가 진행될 조건을 예비했다. 그러나 북한 및 중국의 공간되지 않은 자료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 관련 러시아의 자료는 아직 대다수가 베일에 감춰져있으며, 언어의 장벽보다 더 높은 자료접근의 장벽은 아직도 해방 전후 북한 지역 연구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각주:9] 뿐만 아니라, 소련의 1차 자료가 담아내지 못한 당시 북한 지역의 생생한 역사적 모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연구자들의 고구(考究)를 요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소련의 1차 자료를 연구하거나, 이용한 성과를 살핀다.

 

3. 자료에 관하여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 연구는 연구자가 이용할 수 있는 자료의 측면에서 크게 199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1993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의 문서고가 제한적, 선별적으로 개방됐고, 이를 통해 해방 전후 북한의 역사적 현실에 가닿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추가됐기 때문이다.[각주:10] 이하에서는 소련의 1차 자료를 중심으로 기왕의 연구가 이용한 자료들을 살핀다.

 

 러시아의 문서고가 열리기 전에 수행된 연구 중 대표격은 하루키의 글이다.[각주:11] 글의 초입에 드러나는 저자의 고충 토로가 인상적이다. 그는 1983년 현재 소련점령군 기관지인 조선신문, 평남 인민정치위원회 기관지인 평양일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기관지인 정로(正路)와 이론지인 근로자등의 신문·잡지류가 전혀 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자료적으로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프라우다, 해방일보, 서울신문등 신문자료, 思想月報등 일본 자료, FRUS, SWNCC 문서 등 미국 자료, 1949년 평양에서 간행된 조선중앙연감, 함석헌(씨ᄋᆞᆯ의 소리)과 임춘추 등의 회고록을 널리 이용했고, 맥큔(George M. McCune), 김남식, 커밍스 등 당시의 선행연구 또한 이용했다. 그는 소련이 1945816일 트루만의 일반명령 1를 여지없이 수용했다는 사실을 두고,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나아가 점령후에도 소련은 미국이 전한반도에 깊은 관심을 둔 것과 달리, 북한 지역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19451123일 벌어진 신의주 사건12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3차확대집행위원회에서 제기된 민주기지론[각주:12] 등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연합노선에서 결별노선을 택했다고 파악했다.

 

 전현수와 와실리비치의 글은 각각 1993년과 1994년에 나온 것으로, 한국인 연구자와 러시아인 한국학 연구자의 시각에서 자료의 신천지라 할 수 있는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의 소장 자료에 관해 짤막하게 정리한 것이다.[각주:13]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АВПРФ)에 소장된 문서군(фонд; 폰드; stock)을 비판적으로 분석했고, 1917년 이후 1990년대까지의 한·소 외교관계 자료(몰로토프 폰드, 브쉰스키 폰드, 쥐다노프 폰드, 소련 외무성 1극동과 폰드, 서울주재 총영사관 폰드, 북한주재 소련 민정청 폰드, 북한주재 소련대사관 폰드)가 소장됐음을 밝혔다.

 

 김성보의 글은 앞서 언급된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소련외무성 및 소련공산당 문서 등을 일부 활용하여, 그간 소련의 1차 자료의 가뭄에 어느 정도 단비를 내려 주었다. 한편 저자는 웨더즈비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살피는 차원에서 웨더즈비가 이용한 동일한 자료에다가 추가적으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보국이 편집한 공보(公報)와 소련공산당 중앙의 훈령, 조선공산당 함경남도위원회 기관지인 옳다등을 재검토했다. 저자는 소련과 미국은 모두 한반도를 안보상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파악해, 나름대로의 대한정책을 2차 세계대전기부터 모색했다고 전제했다. 나아가 저자는 종전을 전후한 시점에서 소련의 대한정책의 기본 원칙은 우호적인 한국 정부를 창출하기 위하여 다른 연합국들과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었고, 종전 이후에는 위의 기본 원칙이 실현될 때까지 북한 지역에서 먼저 자신의 지지기반을 창출해간다는 방침이 추가됐다고 결론내리면서, 기존의 준비결여론선의의 무지론을 비판했다.

 

 전현수의 2000년 글은 그간 연구자들이 선별적으로 이용하고 소개한 소련의 1차 자료 및 자료가 소장된 기관의 명칭과 특성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각주:14]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데 일조할 수 있으나, 자료 자체에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기술적 오류가 무진 배어있다는 저자의 언급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도 얼마든 참고가 될 수 있는 글이다. 전현수의 글에 실린 소련 자료와 소장처는 다음과 같다.

 

소련공산당 문서: 소련공산당 문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는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РГАСПИ, 이곳은 과거에 러시아 현대사자료 보존 및 연구센터(РЦХИДНИ)’으로도 불렸다) 소장. 대외정책 담당기구 생산 문서철(소련군 총정치국, 연해주군관구 군사평의회·정치담당 부사령관·정치국이나 소련 외무상비서부, 소련 외무성 2극동과 등에서 생산한 문서, 해방 직후 남북한의 정치정세 등),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문서군(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자료, 북조선공산당 각 도당부 및 사회단체 기관지: 옳다(함경남도), 앞으로(강원도), 咸北正路(함북도), 바른발(평안북도, 신의주시) ).

 

소련각료회의 문서: 소련각료회의 문서는 러시아연방국립문서보관소(ГАРФ) 소장. 북한 경제문제 관련 자료, 교육문제 관련 자료, 소련대외문화교류협회 문서군, 동양인민공화국과() 문서철. 소련전보통신(따스) 문서군.

 

소련외무성 문서: 소련외무성 문서는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АВПРФ) 소장. 외무상 몰로또브 비서부 문서군(미소 양군사령부 대표회의 관련자료, 미소공위 관련자료, 관련기사 스크랩과 번역 등), 외무부상 븨쉰스키 비서부 문서군(미소공위 관련자료), 외무부상 말리크 비서부 문서군(경제관계 자료), 외무부상 로조프스키 비서부 문서군(194512월 북한정세 보고서), 조선문제에 대한 보고부()(референтура, 리피렌뚜라) 문서군, 미소공위 소련대표단 비서부 문서군, 북한주재 소련민정청 문서군(경제관계 및 북한정세 자료 다수).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94812월에 완성된 북한주재 소련민정청 3개년사업 총괄보고, 19458~194811(민정청장 레베데프의 지도 하에 보도국장 까둘린 중좌와 라디오방송 편집국장 그루지닌 중좌가 함께 작성).

 

소련국방성 문서: 소련국방성 문서는 러시아연방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ЦАМОРФ) 소장. 외국인 연구자의 접근이 가장 곤란. 연해주군관구 사령관 비서부, 연해주군관구 군사평의회, 연해주군관구 정치국, 연해주군관구 조선위원회, 25군 사령관 비서부, 25군 군사평의회, 25군 정치부, 북한주재 소련민정청, 북조선 각도 경무사령부 등.

 

 이밖에도 1991년 구축된 러시아연방대통령문서고(АПРФ)러시아국립군사(軍事)문서고(РГВА), 러시아국립군사(軍史)문서고(РГВИА)등에 접근이 가능하다면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에 관련된 1차 자료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이상에서는 해방 전후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을 다룬 연구사의 흐름을 초보적인 수준에서 일별했고,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데 근거가 되는 자료의 존재와 소장처를 살폈다. 이상의 정리에서, 당시 소련은 38도선 이북에서 간접통치라는 방식으로 군정을 실시했고, 그 원칙은 당장의 사회주의 혁명보다는 단계적 혁명론에 입각(1945920일자 스탈린 지령)한 계급연합노선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아가 당시 소련의 직접통치를 받았던 동구 제국(諸國)과의 비교를 통해 입체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겠다. 해방을 전후하여 소련은 미국을 비롯하여 서방측과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친소적인 조선정부를 세워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챙기려하였으나, ‘모스크바 3상회의와 이후 탁치정국을 거치며 북한지역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소군정38도선 이북에서 조선인의 자율성을 절대적으로 보장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좌파가 정치적으로 우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행정상의 곤란함을 노정했다고 정리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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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정성임은 자신의 글에서 소련의 1차 자료를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각주로 달아 놓았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문서보관소의 열람증을 얻기 위해서는 소련 내 연구소나 대학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특히 외무성 문서보관소의 경우, 열람 허가에는 일반적으로 약 1개월간의 신원확인기간이 소요된다. 문서열람은 제출한 연구주제와 직접 관련된 것만 열람할 수 있고, 그 외에는 목록조차 확인이 불가하다. 한 문건의 최대 열람기간은 1개월로 연구자가 중복되는 경우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정성임, 앞의 글, 1999, 15쪽, 각주 18번. [본문으로]
  10. 박태균은 소련의 대한정책과 소군정에 관해 “사실 자체에 대한 확인 작업이 급선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태균, 앞의 글, 199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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