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보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3.03 이병천 외,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창비, 2003.
천자평/현대한국2015. 3. 3. 07:35

이 책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쿠데타로 출범하여 장장 19년 동안 통치한 박정희가 군림했던 시기, 1961~79년 사이의 한국을 지칭하는 박정희시대의 면면을 살피려는 시도이다. ‘개발독재라는 제목에서부터 이 책이 품고 있는 야심찬 기획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박정희시대를 다루는 연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올리기 위한 글 모음이면서 동시에 박정희시대에 대하여 나름의 성격규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박정희시대를 살펴보는 것에서 나아가 나름의 학술적(해석적)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한편 공저자는 오늘날 한국사회(또는 학계)에서 박정희 바로보기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우상화 담론을 들었고, ‘냉정한 학술연구를 통해 그러한 우상화 담론을 해체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구성을 살펴보자면, 이 책은 총론을 포함하여 모두 12장으로 이루어져있고, 1부인 경제개발의 빛과 그늘에서 6편의 글을, 2부인 개발독재의 정치사회학에서 5편의 글을 담고 있다. 공저자의 학문적 배경도 꽤나 다양하다. 이 책의 길라잡이 격인 총론을 집필했고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경제학자 이병천을 필두로 하여 프랑스에서 경제를 공부한 서익진,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이정우 등 경제학자들의 글이 1부를 구성하고 있다면, 2부는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2006)을 역임했던 북한 전문가 이종석, 실천적인 한국근현대사가 한홍구, 비판적인 사회학자 홍성태 등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공저자의 표현을 빌릴 때, 1부가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박정희 개발체제라는 이론에 살을 덧대는 작업이라면, 2부는 개발체제의 정치사회적 이면과 그에 대한 담담한 비판을 담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개발)체제를 매개로 하여 박정희시대를 살핀 후, 그 시대의 핵심적 성격을 개발독재라는 용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불어 2010년대 전반의 한국을 뜨겁게 달군 화두가 경제민주화임을 감안할 때, 1부의 저자들, 특히 이병천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의 담론을 살펴보는 일 또한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책에 실린 각각의 글을 자세히 분석하기보다는 공저자가 공유하고 있는 의도를 추출하여 이 책의 핵심을 짚고, 그에 대한 나름의 비평을 시도하겠다. 공저자에 따르면, “박정희시대는 한국 모더니티 형성의 역사적 전환점을 구성하고 그 기본 틀이 짜인 시대였다. 이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과 제()모순이 가깝게는 이 시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박정희시대를 공부한다는 것은 지금을 바로 보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박정희시대는 대체 어떠한 시기였을까? 그 시기의 한국은 어떤 체제를 꾸려 살았으며, 그 체제는 어떤 모순들을 가지고 있었을까? ‘박정희시대의 체제의 내·외부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각각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했을까?

 

이 책의 총론은 박정희시대개발(독재)체제로 규정하기 위한 시론인 동시에, 공저자의 시선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 이병천은 몇 가지 이유[각주:1]를 들어 개발독재론의 유효성을 설명하면서도, 이를 다른 이론과 견주어가며 박정희시대를 하나의 체제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저자의 이론적 골격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진전시킨 제솝(Jessop)의 국가론[각주:2]의 세 요소, 헤게모니의 구조적 결정”,[각주:3]전략적 지향”,[각주:4]축적과의 관계[각주:5]이다. 저자의 판본에서 개발독재국가의 첫 번째 요소는 개발지배블록”,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소는 각각 경제개발 성과를 주요한 정당성 원리로 삼는 이념국가-시장-제도의 성장지향적 협력이 차지하였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박정희시대를 하나의 이론으로 꿰어 일목요연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과연 개발체제의 역사적 실상(實狀)을 얼마나 반영하고 담아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병천의 글은 실제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큰 약점, 어떻게 보면 사회과학 방법론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약점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의 세 요소는 어디까지나 이론으로, 그것은 역사에 비추어봤을 때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괴리와 균열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그람시-제솝-이병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지적 흐름 속에서 국가라는 개념은 박정희시대의 무엇으로 치환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국가는 박정희 개인이었는가, 아니면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이었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박정희 개인군부집단’, ‘지배권력을 번갈아 사용했을 뿐 일관된 설명을 제공하진 않았다. 요컨대, 특정 어구가 함축하고 있는 내용이 저자의 편의에 따라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가 시기에 따른 내용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거나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실증적인 연구가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일종의 전형(典型, model)을 창출하려다보니, 역사적 현실의 일부를 확대해석(“국민대중의 호응과 집단적 열정”)하거나 박정희시대의 모든 성격을 아우르려는 욕심에 혼종적(hybrid)인 개념(“국가주의적 산업화의 수동혁명체제”)을 조어(造語)하는 사태를 낳고 말았다. 추상(이론)에서 구체(사실)로 내려가 면면을 살피는 작업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추상의 완결성(여기서는 개발독재론)을 위해 구체를 버리거나 외면하는 태도는 실증적이지도 않고 학술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의 취지로 돌아가보자. 이 책이 애초에 가졌던 취지 중 하나는 박정희시대에 대한 서로 상반된 관점인 반독재 민주화운동동아시아의 기적을 우선 넘고, 나아가 “21세기 탈냉전·탈극단시대의 역사상을 정립하려는 것이었다. ‘바로보기만 해도 쉽지 않은 것인데, 이중삼중의 과제를 설정한 것 아니었을까?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대상을 정립한다는 애초의 기획 자체는 오히려 바람직하다고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저자의 글들이 책의 원래 기획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어떤 답을 내리기 힘들다. 먼저 체제’, 즉 어떠한 사회과학적 전형(典型, model)이라는 창()을 통하여 일정한 시기를 규정하는 작업이 가지고 있는 적지 않은 한계와 난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은 곰곰이 따져보고 해부해볼만한 분석과 주장을 다수 담고 있다. 예컨대, 홍성태의 글은 그가 구사하는 이론적 자원(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의 효용이나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제출된 비판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또는 이 책이 피하고자 했던 근본주의적 초비판과 가깝다는 오해를 사기 쉬우며(물론 그가 비판하는 문제들은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종석의 글은 구체성을 결여한 인상비평에 가깝다. 대체 북한적 요소라는 말은 무엇을 언급하는 것이었을까? 앞서 2부의 글을 예로 들었는데, 1부에 실린 글들도 비판할 구석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조영철의 글은 박정희시대에 한국사회에서 재벌이 공고해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지만, 근거가 미흡한 부분(135; 151)이 존재하고 분석의 수준이 세밀하다고는 볼 수 없다.

  1. 이병천은 개발독재론의 유효성을 ①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 정치경제학적 시각과 접근방법을 제공해주고, ② 개발, 민주주의, 민족주의라는 핵심 주제를 아우를 수 있으며, ③ 시초축적체제로서의 역사성과 반동적 억압성이라는 “근본적인 내적 모순”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본문으로]
  2. Jessop, B. State Theory: Putting Capitalist State in its Place, Polity Press, 1990. [본문으로]
  3. “특정한 세력과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고 여타 세력의 이익을 희생하는 국가 형태에 각인된 구조적 특권 또는 국가의 구조적 전략적 선택성.” [본문으로]
  4. “헤게모니 세력의 장기적 이익을 보장하는 국민적 대중적 프로그램의 추진과 피지배세력의 특수한 이익의 실현을 성공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의 개발” [본문으로]
  5.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추진이 적절한 성장모델 또는 축적전략의 뒷받침을 받아야 함을, 그리하여 피지배세력들에 대한 물질적 양보의 제공에 의존함.”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