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서울통신2017. 12. 23. 18:59

어제는 국내의 한 공과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대학의 이학계 박사과정 입학을 받아 놓고, 군대에서 2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전역하자마자 도미하신 한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국내에서 석사를 하지 않은 것이 굉장히 현명한 일이라고 말씀 드렸고, 그는 나에게 학부 시절/군복무 시절 겪었던 온갖 부조리와 구역질 나는 일들에 대해 들려주었다. 


인류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 및 메사추세츠공과대학 박사과정(주로 이공학 계통)에 재학 중이신 한국인 선생님들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결론은, 연구자가 조금이라도 더 역량을 펼치기 위해서는 신속히 탈주변부 해야한다는 것. 이곳 쌀국에는 (갑질도 없진 않지만) 풍성한 재정적 지원, 탄탄한 연구 기반, 훌륭한 연구자들의 연계망, 자유주의적 신제국주의의 환대가 넘쳐난다. 


다만 이러한 탈주변부의 노래는 나처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보다는 자녀를 위해 큰 돈을 아낌 없이 쓸 수 있는 전문직/관리직/중산층 이상의 계급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동한다. 이는 글로벌 봉건제인 오늘날의 세계에서 부동의 법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주변부의 가난한 청년들을 도우려는 (나같은 사람의) 의도는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매도를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해답은 뭘까? 해답은 없다. 미국/유럽(중심부)에서의 혁명을 바라느니, 광주 상무가 레알 마드리드를 7:0으로 이기는 걸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이다. 다만 새로운 계층으로 거듭난 예의 선생님들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이를 중심부의 관리자/정책결정자들에게 보급해서 그들로 하여금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그런 게 가능할까?)를 창출하게 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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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신문2017. 9. 23. 22:26


런던, 1956년 3월 14일. 하이게이트 묘지에서 카를 마르크스 기념비 제막식 열려. 사진 제공 플래닛 뉴스. 

... 기념비 제막식에는 영국공산당, 노조 및 진보 단체의 대표들과 함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맹, 중화인민공화국 및 여타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프라브다, 1956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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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Idea of Socialism2016. 8. 13. 19:27

"The Manifesto being our joint production, I consider myself bound to state that the fundamental proposition, which froms its nucleus, belongs to Marx. That proposition is: that in every historical epoch, the prevailing mode of economic production and exchange, and the social organization necessarily following from it, form the basis upon which is built up, and from which alone can be explained, the political and intellectual history of that epoch; that consequently the whole history of mankind (since the dissolution of primitive tribal society, holding land in common ownership) has been a history of class struggles, contests between exploiting and exploited, ruling and oppressed classes; that the history of these class struggles forms a series of evolutions in which, nowadays, a stage has been reached where the exploited and oppressed class - the proletariat - cannot attain its emancipation from the sway of the exploiting and ruling class - the bourgeoisie - without, at the same time, and once and for all, emancipating society at large from all exploitation, oppression, class distinctions and class strug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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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2016. 1. 27. 04:54

- 자본주의로 뒤덮인 세상에서, 팔 것이라고는 노동력밖에 없는 시민(또는 인민) 개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추상적으로는 '연대'를 할 수 있겠다.

- '연대'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그리고 그 형식은 어떤 모습일까?

- 역사 속에서 연대의 정의와 행보를 추적하면, 오늘날의 연대를 사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아무래도 박사학위논문은, 비록 국가를 중심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을 지라도, 제2세계의 연대를 다루어보고 싶다.

- 그렇다면 자연스레 국제(프롤레타리아)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국제공산주의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 오늘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들과 그 위성국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당당히 변주하며 억압과 착취, 전횡을 일삼는 이들의 과거에는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 나는 그러한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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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傳2015. 12. 24. 22:19



혁명광장, 20151223,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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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2015. 12. 5. 02:28

​- 엥겔스는 내 나이 때, 마르크스보다 두 살 어렸을 때, 불후의 저작 <공산당선언>을 썼다.
- 나는 오늘 구술 녹취를 한 시간 넘게 하고,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다 읽었고 지금은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김경원 옮김)를 경유해 저 둘을 읽으려고 한다.
- 그러나 조금 이따가는 다시 일을 해야 한다. 하기 싫다. 그러면서도 안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생각이, 처지가 이러한 삶을 영속시킨다.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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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Idea of Socialism2015. 11. 30. 08:44



제 1판 서문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1867년 7월 25일
런던
칼 마르크스

Every opinion based on scientific criticism I welcome. As to prejudices of so-called public opinion, to which I have never made concessions, now as aforetime the maxim of the great Florentine is mine: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Follow your own course, and let people talk - paraphrased from Dante]

Karl Marx
London
July 25,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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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Idea of Socialism2015. 11. 9. 16:09

마르크스는 1849년부터 어쩔 수 없이 파리를 떠나 영국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런던, 특히 대영박물관 도서실을 '부르주아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적인 전략적 거점'이자 무기고로 여겼다. 그런데 정작 그 소유자인 영국인들은 그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았다.


- 도서실의 중요성.


그러나 인민들이 증오했던 것은 루이 필립이 아니라 왕관을 쓴 한 계급의 지배; 즉 왕좌에 오른 자본이었다. 그런데도 인민들은 늘 그랬듯이 관대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적들의 적, 즉 자신들과 자신들의 적들의 공동의 적을 전복하고는 자신의 적들을 섬멸했다고 착각했다. 


- 1848년 7월 폭동에 대한 사설.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르크스는 한 철도회사의 역무원으로 지원했지만 그의 다 헤진 옷차림과 위협적인 외모가 좋은 인상을 주었을 리는 없었다. 또한 그의 지원서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엥겔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이 이 끔찍한 세월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 스펙의 중요성.


마르크스의 생활 방식은 변화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는 7시에 일어나 블랙커피를 여러 잔 마신 후 서재로 들어가 오후 2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식사를 서둘러 마친 후에는 저녁 식사 때까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햄프스테드 히스로 산보를 나가거나 아니면 서재로 다시 들어가 다음 날 새벽 2, 3시까지 일을 했다. 


- 나태함을 반성한다.


마르크스는 어떤 일에서건 매우 조직적이었다. 그는 영국에 도착해서 자신의 영어 실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닫고는 실력을 높이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문장 표현들을 목록으로 만든 다음 외워버렸다. 러시아어를 배울 때에도 그는 고골리와 푸시킨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의미를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조심스럽게 밑줄을 그었다.


- 대가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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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Idea of Socialism2015. 11. 9. 05:33

조용히 뿌리칠 수 없네
내 영혼을 움켜쥔 억센 손길,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없네
나는 쉼 없이 몰아치는 폭풍우


- 아내인 예니 폰 베스트팔렌에게 바치는 시
칼 마르크스, 안규남 옮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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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2014. 10. 23. 18:00

필자: 이안 앵거스(Ian Angus)가 쓰고 존 리델(John Riddell)이 싣다.

일시: 20141021

출처: http://johnriddell.wordpress.com/2014/10/21/the-origin-of-rosa-luxemburgs-slogan-socialism-or-barbarism/

링크: http://www.redian.org/archive/79520 

 

로자 룩셈부르크의 표어인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기원

 

난제 해결: 이안 앵거스(Ian Angus)가 중요한 사회주의 표어의 예기치 못한 출처를 추적하다.

 

"사회주의의 역사 속 자그마한 문제를 제가 푼 것 같습니다." 이안 앵거스의 말이다.

 

Rosa Luxemburg

<기후와 자본주의>(Climate & Capitalism)의 표어인 "생태사회주의냐, 야만이냐: 3의 길은 없다"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가 제기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표어에 기초한 것이다. 이 표어는 1차 세계대전 기간과 뒤따른 독일혁명에서 엄청난 파급을 불러왔고 이후 수다한 사회주의자들이 이를 차용했다.

 

문제는 이 개념의 유래이다. 룩셈부르크 자신의 설명이 맞지 않는 데다가, 그녀의 설명이 가지고 있는 혼란을 설명(또는 논파)하려는 좌파 학자들의 시도 또한 그렇게 아귀가 맞진 않았다.

 

룩셈부르크는 수감 중이던 1915년에 쓴 강력한 반전(反戰) 책자에서 인류는 사회주의의 승리나 문명의 종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 박해를 피하기 위해 그녀가 쓴 필명을 딴 <유니우>(Junius Pamphlet)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는 독일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 내의 전쟁을 지지하는 지도부에 대항하여 혁명적 좌파를 교육하고 조직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룩셈부르크는 이 개념을 근대사회주의의 창설자 중 한 명의 것으로 돌렸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부르주아사회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냐, 야만으로의 퇴보냐 하는 교차로에 서 있다.’ (중략) 여태껏 우리 모두는 아마도 별다른 생각 없이, 구절이 지닌 무시무시할 정도의 심각함을 의심하지 않고 그것을 읽고 반복했을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 우리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이미 한 세대 전에 정확히 예견한 문제에 직면해있습니다. 그것은 즉 제국주의의 승리와 그에 따라 모든 문명이 고대 로마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붕괴하고, 인구가 감소하며, 황폐화되고, 퇴보되는 즉 거대한 묘지가 될지, 아니면 제국주의 및 그들의 전쟁 수단에 맞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이고 활발한 투쟁을 의미하는 사회주의의 승리가 올지 간의 문제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출간된 저작과 출간되지 않은 수고들을 주의 깊게 두루 살펴보았으나 위에서처럼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말했다는 구절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먼저 우리는 영역(英譯)본이 룩셈부르크가 엥겔스를 지목하는 문장을 옮길 때 인용부호를 부정확하게 썼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저 부호들은 로자가 쓴 독일어 원전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이는 그녀가 직접적으로는 인용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며, 우리는 엥겔스의 저작에서 동일한 문구가 나오길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그녀는 사회주의 서적을 제대로 접하기 힘든 감옥 안에서 글을 썼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기억상의 오류를 감안해야만 한다.

 

이제 앞서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룩셈부르크가 엥겔스의 것이라고 생각한 "부르주아사회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냐, 야만으로의 퇴보냐 하는 교차로에 서 있다."라는 구절에서 가졌을 법한 생각에 관해 세 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 가지 설명

 

<로자 룩셈부르크 읽기>(The Rosa Luxemburg Reader)의 공편자인 피터 후디스(Peter Hudis)와 켈빈 앤더슨(Kevin B. Anderson)은 다음과 같이 썼다. "룩셈부르크는 아마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이하 <선언>)에서 '사회 전반의 혁명적 제헌 또는 대립하는 제()계급의 공멸'을 초래하는 계급투쟁을 언급한 구절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물론 위의 언급은 관련된 생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것이 룩셈부르크의 표현이라는 주장은 세 가지의 진지한 반대에 맞부딪힌다. 첫째, 그녀의 표현방식은 <선언>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심지어 기억만으로 인용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잘못 인용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둘째, 그녀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장 잘 알려진 공동작업의 한 소절을 엥겔스에게만 돌리진 않았을 것이다. 셋째, 위에서 필자가 인용한, 후디스와 앤더슨도 사용하는 표준적인 영어 번역은 독일어 원문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이미 한 세대 전에 정확히 예견한뒤에 나오는 중요한 세 단어인 “vor vierzig Jahren[“40년 전에”-역자 주]”을 생략했다. 1915년의 시점에서는 그 누구도 <선언>이 출간된 1848년을 “40년 전이라고 지칭하진 않을 것이다.

 

40년 전이라면 1870년대 중반을 가리킬 것이다. 그 때는 엥겔스가 1877~1878년에 걸쳐 연재 형식으로 그리고 1879년에 책으로 <반듀링론>(Anti-Dühring)을 내놓았을 때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운동의 창설자 중 한 명이 쓴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에 관한 가장 종합적인 언명이었기 때문에, 룩셈부르크가 엥겔스에게로 돌리는 표현과 유사한 인용구를 찾기에 적합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두 학자는 바로 그러한 작업을 수행했다.

 

노만 제라스(Norman Geras)<로자 룩셈부르크의 유산>(The Legacy of Rosa Luxemburg)에서, “아마도로자가 역사에서 지배적인 요소는 경제발전이 아닌 힘이라는 듀링의 주장에 대한 엥겔스의 논박을 언급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엥겔스는 경제적 진보를 힘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좀 더 야만적인 정복자들이 정복한 나라의 주민을 전멸시키거나 몰아내버리며, 그들이 사용할 줄 모르는 생산력을 낭비하거나 황폐화시켜 버리는 극소수의 예외”(프리드리히 엥겔스, 김민석 옮김, <반듀링론>, 중원문화, 2010, 195~196쪽) 몇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항상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그는 기독교도 침략자들이 에스파냐에서 회교도의 지배를 끝장낸 후에 진보된 관개(灌漑) 체제를 쇠퇴하게 놔둔 사례를 인용한다.

 

그 구절은 문명(회교도)과 야만(기독교도) 사이의 처참한 충돌과 후자의 승리를 논하지만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며, 엥겔스 또한 룩셈부르크가 그에게 공을 돌린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 또한 괜찮은 시도였으나 정작 설명한 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이클 로위(Michael Löwy)는 최근 논문에서 룩셈부르크는 아마도 <반듀링론>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언급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대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창출한 생산력과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 재화의 분배체계가 생산양식 그 자체와 모순되게 되고, 그 모순이 갈수록 격화되어 근대사회 전체의 파국을 면하려면 (중략)생산양식과 분배양식의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김민석 옮김, <반듀링론>, 중원문화, 2010, 169쪽.

 

다시 이러한 설명은 비슷한 개념을 표현하나, 로위가 단호히 지적하듯 이 구절은 룩셈부르크가 엥겔스에게 돌리는 인용문과 비교했을 때 글귀와 의미가 꽤나 다르다”. 로위는 룩셈부르크 표어의 원천을 찾는 작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사실 20세기의 도정(道程)에서 그토록 커다란 충격을 건넨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표현은 그 단어의 강력한 의미에 있어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만든 것이다. 그녀가 엥겔스를 초들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상당히 이단적인 명제(命題)에 정당성을 더 부여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와 같은 설명은 합당한 결론이지만, 필자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하나만 들어보자면, 1915년에 룩셈부르크가 저 표현을 창안했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는 아마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것을 읽고 반복했을 것입니다.”라는 그녀의 주장과 모순된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앞서의 구절이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새롭고 낯선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는 제3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구두구두구[북소리-역자 주], 부탁합니다.

 

원천

 

엥겔스의 저작에서 룩셈부르크의 인용구를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릇된 인용이 아니라 그릇된 귀인(歸因)이다.

 

룩셈부르크가 인용한 문장 및 전반적으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개념의 원저자는 엥겔스가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후 가장 권위 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널리 알려진 사람인 카를 카우츠키(Karl Kautsky)였다.

 

Karl Kautsky

독일 사민당(SPD)1875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페르디난트 라살레(Ferdinand Lassalle)의 추종자들이 모여 세웠고, 마르크스주의적이지는 않고 대개 사회주의적이었던 강령(綱領)을 채택했다. 1891년 카를 카우츠키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은 마르크스주의적 강령의 초안을 작성했고, 카우츠키는 공개 토의 후에 이를 고쳐 썼다. 같은 해에 이 강령은 에어푸르트(Erfurt)에서 개최된 당대회에서 채택됐다. 에어푸르트 강령으로 알려진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사민당의 공식적인 강령이었고, 여러 국가의 사회주의정당은 이를 전범(典範)으로서 널리 사용하였다. 일례로 레닌은 이 문서를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을 위한 1896년 강령 초고의 기초로 썼다.

 

이 강령 자체는 의도적으로 소략하고 영역하면 고작 1300 단어를 웃돈다 설명이나 주장 또한 적은 편이라서, 카우츠키는 이 강령을 설명하고 사회주의를 변론하는 책 한 권 분량의 유명한 해설서를 썼다. <에어푸르트 강령: 원리의 논의>(Das Erfurter Programm in seinem grundsätzlichen Teil erläutert)1892년에 출간됐다. 역사가 도널드 사순(Donald Sassoon)은 이 강령이 유럽에 걸쳐 사회주의 활동가들에게 가장 널리 읽힌 책 중 하나가 됐고”, 카우츠키의 해설서는 “1914년 이전까지 16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세계에서 인정받는 마르크스주의의 백과사전(popular summa)가 됐다고 서술했다.

 

1880년대 폴란드와 독일의 사회주의운동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분명히 카우츠키의 책을 읽었고, 그의 사상이 회자(膾炙)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4()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

 

만일 사회주의 연방(commonwealth)이 확실히 불가능하다면, 인류는 모든 차후적 경제발전에서 떨어져나갈 것이다. 그 속에서 근대사회는, 2천여 년 전 로마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부패할 것이며 종국에는 야만으로 전락한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자본주의문명은 존속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사회주의로 전진하든지 아니면 야만으로 물러나야 한다.”

  

이 구절과 <유니우>에서 인용한 위의 구절 사이의 동일성은 명백하다. 카우츠키의 핵심적인 마지막 절()은 룩셈부르크의 엥겔스 인용의 그것과 사실상 동일하다.

 

※ 카우츠키 1892: 우리는 반드시 사회주의로 전진하든지 아니면 야만으로 물러나야 한다 (es heißt entweder vorwärts zum Sozialismus oder rückwärts in die Barbarei)

 

룩셈부르크 1915: 사회주의로의 이행 아니면 야만으로의 퇴보 (entweder Übergang zum Sozialismus oder Rückfall in die Barbarei)

 

룩셈부르크가 동사 대신 명사를 사용한 사실을 제외하면 양자는 똑같다.

 

더욱이 양자가, 전진하는데 실패하여 퇴보한 사회의 사례로 로마제국의 몰락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룩셈부르크의 어구가 카우츠키의 저작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로위는 이 주제를 “그렇게 연관돼있진 않다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왜 로자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관념을 카우츠키 대신 엥겔스의 것으로 돌렸을까? 확실히 알긴 어렵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서 카우츠키의 저작이 담고 있는 많은 개념 및 표현방식이 20여년 넘게 사회주의 모임(circle) 내에서 공통 화폐처럼 널리 쓰이면서, 어구들이 원래의 구체적인 기원으로부터 분리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많은 인용구를 생각해본다면, 카우츠키의 문장이 어떻게 엥겔스의 것이 됐는지에 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1915년 감옥 안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인용했을 때, 그녀는 박식한(그러나 잘못된) 추측을 통해 <반듀링론>이 가장 유력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40년 전이라는 참고를 덧붙였다. 그녀의 책자는 스위스에서 인쇄된 후 독일로 불법적으로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출처에 대한 세밀한 검사는 잘 이뤄질 수 없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표현이 카우츠키의 것임은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았는데, 필자는 그가 볼셰비키(Bolshevik)혁명을 비난한 후에 사회주의자들이 카우츠키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혹자의 농담처럼, 대다수는 레닌 덕분에 카우츠키란 이름을 변절자(Renegade)와 동일시했다. 그의 대다수 저작들은 현재 절판된 상태이거나 연구자용의 값비싼 독어본으로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듯, 도외시(度外視)는 룩셈부르크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만일 필자가 정확하다면,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표현은 그 단어의 강력한 의미에 있어서룩셈부르크가 만든 것이다.”라는 마이클 로위의 주장은 옳지 않다. 오히려 로자는 우리 모두는 그것을 읽고 반복했을 것입니다.”라고 썼는데, 그것은 단순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카우츠키의 저작이 널리 읽힌 결과, 독일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인류가 반드시 사회주의로 전진하든지 아니면 야만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관념이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위대한 공헌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에 원저자가 의도한 것보다 더욱 즉각적이고 심원한 혁명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문구를 만든 사람은 카를 카우츠키지만 그것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이안 앵거스는 생태사회주의 잡지인 <기후와 자본주의>의 편집자이다.

 

관련 읽기자료:

 

이안 앵거스, <21세기 야만이라는 유령>(The Spectre of 21st Centry Barbarsim)

 

참고

 

로자 룩셈부르크의 <유니우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영어본독어본이 마르크스주의 누리망 기록보관소(Marxist Internet Archive, 이하 MIA)에 올라와있고, 인쇄된 많은 선집(選集)에서 이용 가능하다. 필자가 확인한 모든 영역본은 앞에서 서술한 오류와 생략을 모두 저질렀다.

 

카를 카우츠키의 Das Erfurter Programm in seinem grundsätzlichen Teil erläutert독어본MIA에서, 영어본<계급투쟁>(The Class Struggle)이라는 제호로 이용할 수 있다. (참고: <레닌의 재발견>(Lenin Rediscovered)에서 역사가 라스 리(Lars Lih)는 영역본을 불온한 부분을 삭제한 축역본이라고 서술한다.)

 

아인슈타인의 것이라고 부정확하게 인용되는 몇몇 사례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인용한 다른 자료

 

프리드리히 엥겔스, <헤르 오이겐 듀링의 과학에서의 혁명(반듀링론)>, Progress Publishers, 1969. 또한 MIA에 있는 <마르크스엥겔스전집>(Marx Engels Collected Works) 25.

 

노만 제라스, <로자 룩셈부르크의 유산>, NLB Books, 1976 Verso Books, 1983.

 

피터 후디스와 케빈 B. 앤더슨, <로자 룩셈부르크 읽기>, Monthly Review Press, 2004.

 

마이클 로위, “행동의 불을 붙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고 속 실천철학(The spark ignites in the action the philosophy of praxis in the thought of Rosa Luxemburg)”, <국제적 관점>(International Viewpoint), 20115.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MIA 및 무수히 많이 인쇄된 판본들.

 

도널드 사순, <사회주의 1백 년>(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 New Press, 1996.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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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08 10:07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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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08 21:2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