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현대사2014. 8. 27. 19:22

* 2014년 7월 9일 작성.

 

미(소)군정기(1945.09~1948.08?)는 흥미롭고 독특한 시기인 듯 하다. 반파시즘 전쟁에서 일제의 패망이 곧바로 새로운 조선의 건국(광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소의 야욕 쩖. 저 시기 조선은 탈식민기의 또다른 식민지 아니었을까?

여하튼 1946년 4월, 미군정은 학무국 산하에 영어학교(English Language School)를 창설했다. 도미유학 예정자를 훈련시켜 그들을 통해 1) 미군정의 통치를 보좌하게 하고, 2)본국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얻어내며, 3)천조국을 경험시켜주어 친미세력을 양성할 심산이었다. 문제는 교육 여건이 빈약하다 못해 엉망이었던 것. 당시 남한의 영어교육이란 제대로 된 교사가 없어 미군사병이 교육을 맡았고, 제대로 된 교재가 없어 [지옥 같은 문법과 괴랄 맞은 발음의 일제식]영어학습법을 고수하는 형국이었다. 미국을 다녀온 한국인 교육사절단은 이대론 노답이라는 우려를 미군정에게 올렸고, 그 결과 듣기와 말하기에 중점을 둔 영어교육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1946년 10월에는 이름도 좀 더 그럴싸한 영어학교(American Language Institute)로 바뀌었고, 오늘날의 명동 롯백 쪽으로 건물을 확장이전했다. 도미유학 예정자뿐만 아니라, 군정직원이나 일선의 영어 교육자들도 "문명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와 영어학교는 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영어학교 교내에서 한국어는 쓸 수 없었고, 오직 영어로만 얘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예산이 궁핍하자 학무국 내에서는 부담스러운 영어학교를 폐지(서울대 영문과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에 크게 놀란 남한 '지식인들'은 오히려 영어학교의 필수불가결함을 강하게 주장하며 미측을 압박했다. 1947년 4월, 자그마치 200여 명이 연서를 돌려 영어학교 폐지를 반대한 것이었다. 미군정은 우리네 지식인(?)의 정성(?)을 갸륵히 여겨 영어학교를 당장 폐지하진 않았다. 한편 미국무부는 남미의 영어학교완 달리 남한의 영어학교에는 거의 지원을 하지 않았고, 영어학교 출신들이 미국 본토나 미군정에서 뚜렷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돈줄이 마르자 영어학교는 1948년 5월부터 학비를 받기 시작했고, 8월 남한 정부가 수립되면서 학무국의 일은 문교부(안호상 장관)가 맡게 됐다. 문교부는 미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영어학교를 존속시킬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정작 국무부는 이를 지원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고 영어학교는 1948년 9월 30일에 사실상 문을 닫았다.

오늘날 격차교육이나 특권교육, 영어 등의 교육문제는 저때도 다를바 없던 것 같다. 2014년에도 여전히 듣기와 말하기가 중요한 것처럼...

 
* 윤종문의 논문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