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냉전연구2014. 10. 6. 09:12

이 책은 냉전 초기인 1950년대를 종축으로 삼고, 행태주의와 한국전쟁을 주제로 하여 미국의 군·(학 복합체가 주도한 적 만들기의 모습을 서술한 노작이다. 행태주의는 당시 미국의 지성사를 석권했고, 스스로 과학의 이름을 내걸었다. 행태주의는 또한 냉전이라는 시대적 규정 속에서 탄생했고, 그것을 자양으로 하여 성장했다. 따라서 행태주의는 당시의 미국의 학계뿐만 아니라 국내인식과 대외인식, 재정운용과 學知의 형성 등 한국사와 미국사의 여러 세부주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요소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물질·구술 자료를 근거로 하여 냉전 초기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사회과학계를 풍미했던 행태주의의 전개과정과 인식론적 구조, 행태주의자들의 활동양상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었다. 저자는 RG319(육군참모부), RG333(유엔사/한국), RG338(미육군 작전· 전술·지원기관), RG389(헌병감실)를 포함한 다양한 NARA자료(삐라와 통행증)와 본문에 나온 각 연구기관에서 생산한 자료들, FRUS, 회고록이나 회담문 등 광범위한 자료를 통해 논의를 전개했다. 이론적으로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개념을 빌려 행태주의를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행태주의는 냉전의 고착과 함께 정상과학의 위상을 확보했으나, 1960년대 중반 위기를 맞게 돼 결국 지성사의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됐다. 저자는 세 부에 걸쳐, 행태주의의 대두와 양상, 위기를 다뤘다. 1부의 제목은 패러다임 규정하기, 세 장에 걸쳐 행태주의의 대두, 토대, 정재계·군부와의 공모, 인식론적 기초를 설명했다.

 

1장에서 저자는 미국의 군인(TAS, 1949)을 들며, 1950년대 미국의 지성사적 특징인 행태주의(Behavioralism)의 등장을 설명했다. TAS 장차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으로 불릴 어떤 과학의 사례였다. 한편 이 기획은 미육군과 카네기재단, 시카고대학이 협력하여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는 행태주의 연구의 물적·지적토대와, 당시 미국의 군··학 복합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행태주의의 본령은 자율적인 개인을 상정하는 것이었다. 이제 사람의 (정치적)행동은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로 환원될 수 있게 될 터였다. 행태주의는 간학제적(interdisciplinary)이었고, 여기엔 가치적(value-free) 방법론을 추구했던 심리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이 주로 복무했다. 전통적 의미의 학자들은 행태주의에 반발과 비난을 던졌으나, 기업들은 192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2장은 토머스 셸링[각주:1]의 예를 시작으로, 1950년대 미국이 자국의 두뇌’(지식인)를 동원하는 풍경을 서술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학계는 급성장했고, 그 속에서 양산된 학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학계와 민간연구기관 사이에서 종종 방황했고, 이들은 결코 독립적이거나, 지적으로 대담하지 못했다.” 이후 미국정부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19514, 심리전략처(PSB, 1954년에 해체되고 작전조정처(OCB)가 설립됨)를 세우는 등 원자무기에 버금가는 심리무기를 준비했고, 그 결과 두뇌집단들은 미국정부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됐다. 이어 저자는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공군 산하의 랜드연구소와 공군대학 산하의 인적자원연구기관(HRRI), 해군연구소(ONR), 육군 산하의 인간관계연구소(HumRRO)와 작전연구소(ORO) 등을 살폈다. 2차 대전 때와는 달리 이 풍경에서 인문학자들은 배제됐다.

 

3장은 행태주의의 인식론적 기초(일차집단, 무의식, 계량화)에 관해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행태주의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사회학자들과는 달리 공동체(gemeinschaft)적 특성, 비공식적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개인들의 밀착된 자율적 집단인 일차집단이 현대에도 존속·번성하고 있으며, 사회화와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았다. 이어 저자는 해롤드 라스웰[각주:2]로 대표되는 정신병리학적분석전략 및 불확실한 것확실하게만들어주는 계량화 또한 당시 행태주의 이론의 밑바탕이었다고 분석했다.

 

2부의 제목은 정상과학으로, 저자는 다섯 장에 걸쳐 당시 정상과학이었던 행태주의가 적용·실천되는 양상을 서술했다. 2부의 각 장은 한국현대사, 특히 심리전, 포로조사 등에 관련된 일화들을 꽤나 많이 담고 있어 현대사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4장은 윌버 슈람(Wilbur Schramm) HRRI에 소속된 일군의 연구자들이 한국전쟁의 전선을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당시 학계의 통설을 적지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이 장에서 저자는 분석-권고-영향-전승으로 나눠 HRRI 보고서를 살폈고, 이 보고서가 갖는 중요성이 이역만리의 경험을 중심지(metropolis) 용어로 옮겨놓았고, 또한 보편주의적 가정-틀을 다른 지역의 사례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당시 행태주의의 대표적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더하여 저자는 그 보고서에 나온 분석기법이나 논조, 동원된 인력 등은 언론연구로 계승됐거나, 미국 외 지역에서 미국이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지적인 배경을 이루게 됐다고 분석했다.

 

5장은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수행한 심리전의 면모와 이면을 다뤘다. 미국은 2차 대전에서 선전을 연구한 학자들[각주:3]의 주장에 힘입어 사상이 갖는 힘을 기각했고, “건설적인 선전근본적인 관심사인 생존과 의식주에만 국한된다고 믿게 됐다. 선전에 관한 이러한 생각은 이후 베트남전까지 이어졌다. 저자는 이어 문화적 특성들을 제거한 분석인 리비어 프로젝트나, 심리전국(OCPW)에 담긴 두 가지 경쟁적인 전략”(사회/생존, 일반적군/여론선도자) 등을 제시했고, 심리전 수행에서 행태론이 이념론을 압도하는 과정을 서술했다.

 

6장과 7장은 바로 앞장인 5장에서 승리를 거둔 행태론이 휴전협상 과정 및 포로수용소 조사과정에 적용되는 모습을 서술했다. 저자는 행동과학의 계보와 영향력이 라스웰-리츠-골드해머로 이어졌다고 보았고, 휴전협상에서 미국의 논리와 적 인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했다. 한편 랜드, HumRRO, ORO는 거제도에서 포로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고, 19526월의 도드 납치사건을 계기로 CIE의 활동을 행태주의자들이 맡게 되면서 포로에 대한 이념 주입은 금지됐다. 6장의 작업 규칙’(Operational Code)이라는 개념이 보여주듯, 당시 행태주의는 적의 행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승리를 거두)고자 했으나, 실상은 이념과 역사문화적인 맥락과 배경을 그들의 과학적분석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呪文에 불과했다.

 

8장은 복귀하지 않았던 미군포로의 존재와 세뇌 논란, 이에 대한 행동과학자들의 비판을 다뤘다. 미국은 제네바 규정을 어기면서 자원송환을 주장했으나, 복귀를 원치 않는 포로의 존재는 미국 국내에서 논쟁을 유발했다. 여기서도 행태주의자들은 이적행위를 이념적 동기와 분리시켰다. 더하여 그들은 침묵한 다수를 긍정하면서도, 굴복한 자와 저항한 자를 유사하다고 보았다. 그들에게는 양자 모두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사례에 불과했다. 저자는 나아가 행태주의자들이 인종·종족의 문제와 갈등도 덮어두는 것으로 끝맺었다고 비판했다.

 

3부의 제목은 위기, 세 장에 걸쳐 행태주의가 가지고 있던 정상과학으로서의 위상이 위기를 맞게 되고, 경제학이 이를 대체해가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9장은 1962년 여름,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미육군의 제한전 임무와 사회과학 연구>라는 군·학 회담을 계기로 행태주의의 내용이 점차 변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이 회담에서 랜드는 건설적인 방식”(사회공공활동)의 효과를 회의적으로 보았고, 대안으로 합리적 선택개념에 입각하여 연구를 진행했다. 행태주의 연구는 베트남 농민 또한 맥락을 탈각한 합리적 개인으로 정위했고, 그들이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 정부와 반란군 모두를 지원할 것이기 때문에, “베트남에 대한 원조는 실상 베트콩에 대한 원조였다.”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랜드는 심리학보다는 경제학(게임이론과 합리적 선택)을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베트남전 수행방식은 이전보다 더욱 억제적이고 강압적으로 거듭나게 됐다.

 

10장은 군·학 두뇌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특작연구소(SORO)와 미육군이 가담한 카멜롯 프로젝트(1964~65)의 사례를 들며 행태주의가 종말로 치닫는 과정을 묘사했다. 행복이 넘치던 신화 속 카멜롯(Camelot)을 의식한 듯, 이 기획은 미국의 안정에 위해를 초래할 신생국의 정치적 봉기를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예방적인 미국발 근대화였다. 저자는 카멜롯 논쟁에 포함되는 인명과 논란의 전개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행태주의의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모습과 일관되지 않은 모습 등 다양한 모순을 담담하게 드러냈다.

 

11장은 책의 종결부로 New York Times의 베스트셀러이자 15개국 말로 역간된 The Report from Iron Mountain(Dial Press, 1967)[각주:4]가 불러일으킨 진위논쟁을 통해 행태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묘사했고, 미드(Margaret Mead)의 사례를 빌려 냉전시기 지배적이었던 과학의 종언 및 미국 학계에서 학문적 권위가 여전히 실종상태라고 주장했다.

 

행태주의는 과학과 가치중립을 표방했다. 그러나 이 과학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선험적인 이론에 현상을 끼워 맞추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정부지원금을 받아내려는 노력에 불과했고, “탈가치적이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국가를 추종하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편향된 것이었다. 행태주의가 설정한 보편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상정한 미국적 양식에 다름 아니었고, 미국적 보편에 대한 일탈이나 미달은 전적으로 개개인의 심리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보여주듯, 미국의 행태주의는 피아(또는 적)를 극복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태도는 제국주의의 인종논의와 준별되는 미국의 새로운 제국주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실증을 위해서는 횡적으로 광범한 비교가 필요하다.

 

이 책은 성실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정작 무엇을 주장하려했고 어디에 강조점을 두려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는 인상과 함께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들을 주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냉전 초기 미국에서 행태주의가 대두했고, 그것이 냉전의 적 만들기를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국 학계, 때로는 미국을 겨냥하여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하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태도는 저자처럼 미국인이자 미국 학계에서 자국을 비판적으로 사고해야하는 학자들의 전략은 아닐까? 그리고 내용에 관해서는, 행태주의가 정상과학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원인과 20여년이 흐른 뒤에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된 원인,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적 만들기전략의 실체 등이 궁금증으로 남게 됐다.

 

마지막으로 케난 전기로 퓰리처상을 받았고(2012), “냉전史家의 수장평을 받는 예일대학의 역사가 개디스(John L. Gaddis)를 보자. 그는 2005년에 봉쇄전략을 출간한 이후 백악관에서 국립인문기금(NEH) 훈장을 받았고, 정계에까지 입지를 다졌다. 한편 그는 알렉산더 조지(Alexander L. George, 1920~2006)의 개념인 작업 규칙의 영향을 받아 연구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조지는 한국전쟁 당시 랜드 소속으로 중국군 포로를 조사한 바 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이를 행동과학의 잔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1. 토머스 셸링(Thomas C. Schelling, 1921~)은 미국인 경제학자로, 현재 컬리지 파크에 위치한 메릴랜드대학 공공정책(Public Policy)학교에서 외교, 안보, 핵전략 분야를 맡고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1951)했고 유럽부흥계획에 참여했으며, 유수의 대학과 백악관을 넘나들며 경력을 쌓았다. 2005년에는 로버트 아우만(Robert J. Aumann, 1930~)과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본문으로]
  2. 해롤드 라스웰(Harold D. Lasswell, 1902~1978)은 미국인 정치학자이자 언론에 관한 이론가로, 시카고 사회학파의 일원이자 예일대학 법대교수였다. [본문으로]
  3. 모리스 야노비츠(Morris Janowitz, 1919~1988)는 미국인 사회학자로, “편견, 애국”에 관해 연구했고,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등과 함께 군대사회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 1910~1995) 역시 미국인 사회학자로, 시카고 사회학파의 일원이었고, 권력 및 공공정책과 지식인(intellectuals)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4. 위키피디아 The Report from Iron Mountain 참고.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