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한국전쟁2014. 10. 6. 06:30

秘史 한국전쟁의 저자인 스톤은 미국의 언론인으로, 본명은 이시도르 파인스타인(Isidor Feinstein)이다.[각주:1] 1907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1930년대 파시즘에 맞서 조직된 인민전선(Popular Front)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했으나,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 체결 이후 편집인으로 있던 네이션(The Nation)지에서 스탈린을 맹렬히 비난했다. 뉴욕의 좌익계 일간지인 피엠(PM)의 해외특파원으로 근동을 방문해 이산 유태인들을 취재하기도 한 그는 1950년대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의 정치색 때문이었다. 이후 독립신문인 주간스톤(I.F. Stone's Weekely)을 창간했고, 지면을 통해 매카시즘과 미국 내 인종차별을 강하게 비판했다. 1964년 그는 기존에 공간된 자료들을 세밀하게 독해하여 통킹만 사건의 허구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1971년 협심증으로 인해 신문발간을 중단했고, 1989년 보스턴에서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을 받았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쟁이에 의해 돌아가고,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은 믿어서는 안 된다는 스톤의 언급을 통해, 저자가 지녔던 삶의 태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각주:2]

 

이 책은 6·25전쟁 중인 1952년에 출간된 책으로, 저자가 19508월부터 1951년 중순까지 파리특파원으로 나가 있는 동안에 주로 집필한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전쟁 발발부터 1952년 초까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극동군사령부가 발표하는 공보와 비록 검열을 거친 것이지만 한국특파원들이 보낸 기사사이의 불일치에 주목했고, 일관되지 못한 공보 및 신문의 행간과 이면을 읽어냈다. 저자는 미국의 공식적 견해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반박하고 설득하기 위해책을 집필했고, 따라서 이 책의 주된 자료적 근거는 오로지 미 정부와 UN의 자료, ·영의 권위 있는 신문정보원이다. 이후 이 책은 남침유도론의 효시가 되었고, 6·25전쟁연구사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저작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각주:3]

 

우선 이 책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질문과 가설적인 주장을 들 수 있다. 이는 저자가 논의를 풀어나갈 때 의지하는 주된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을 통틀어 전쟁의 각 시기별로 의문시할 수 있는 사항을 가차 없이 물어본다. 이러한 저자의 문제화 방식은 전장을 직접 관찰할 수 없고,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의중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자료를 입수할 수 없었던 저자는 공보와 신문기사 사이의 차이를 전유한다. 그것은 정황 증거와 저자의 상상력 및 정치적 태도의 혼합으로 구성돼 이 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은 물적 근거에 기초한 뚜렷하고 확고한 것이 아니고, 그보다 급이 낮은 가설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자의 가설은 주로 미국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의 恥部를 효과적으로 들쑤신다. 저자에게 6·25전쟁이 기습이라는 미국의 주장은 가당치 않았는데, 이는 아마도극동군사령부가 고의로 정보를 무시했거나 연착시켰기 때문이라는 것(2)이다. 저자의 시각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고, 신문지면에 나타난 다양한 국가의 반응과 행동을 6·25전쟁의 틀에 집어넣어 관찰했다(6). 저자는 전쟁을 지속시킨 트루먼과 맥아더(12), 덜레스로 대표되는 반공적이고 망상적인 아시아우선주의자”(5), 미국의 개입을 바라는 아시아 국가의 지도자들(11)에게 공격적으로 질문을 제기한다. 저자에게 그들 모두는 6·25전쟁의 건축가이자 동시에 평화를 반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들은 스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을 것이었고, 바로 그 지점이 저자의 노림수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아르카나 임페리[각주:4]를 겨냥한 질문은 대개 가설의 형태(31)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저자의 추론적이고 고발적인 방식은 양날의 검과 같은 것으로,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 저자는 가설과 추정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고, 문제 제기 그 이후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하지만 이 책이 1950년대 미국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졌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이 책에서 드물지만 분명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47)이나 미국과 그 동맹국을 바라보는 과도한 음모론적 시각(28),[각주:5] 공산측을 비롯하여 미국을 제외한 행위자들의 역할과 입장을 상대적으로 축소·왜곡시킨 점(14, 34, 35), 정작 한국인은 잘 보이지 않는 서술 등은 주의 깊은 독해를 요구한다.

 

이 책은 일급의 언론인인 저자가 분명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썼고,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후 6·25전쟁연구사에서도 선구자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동시에 이 책이 근거부족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의 여러 세부논점들을 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미국의 군비산업 가동과 봉쇄의 확장(7), 미국 국내의 정황(9), 트루먼과 맥아더 사이의 갈등(13), “제한전의 논리(15, 33, 42), 전후 일본의 복구와 미일관계, 휴전협상에서의 논점, 협상의 결렬과 속개, 전시 검열(40), 중국 로비스트들, 종군기자들, 민간인 학살, 냉전의 기원(28) 등으로 6·25전쟁의 공식서술이 담아내지 못한 측면을 독자에게 환기시킨다.

 

김일성을 현대판 카드모스에 비유하여 미국의 과장된 추정을 비판(31)하고, 밴플리트의 애도를 둑에 구멍을 뚫으면서 돌아다녔을 네덜란드 소년으로 전유(42)하며, 맥아더의 이야기를 불교 연대기같다고 설명(35)하는 등 이 책은 고도의 은유와 풍자를 담아냈다. 하지만 저서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시대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자료의 양이 적은 상태에서 작가는 어떻게 역사서술에 착수해야 하는가. 저자의 사례는 우선 문제의식과 사료의 면밀한 독해가 결합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저자도 처음에 정부 공식보도를 믿었지만, 곧 그것과 민간서술 간의 괴리를 발견했고 그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갔다. 또한 이러한 구도는 공식서사와 민간서사의 대결로도 파악할 수 있는데, 필자는 이 구도가 2013년 현재에도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본다. 1951822일로 추정된 폭격은 그 다음날 휴전협상을 결렬시켰다. 저자는 서류 공개의 요구에 침묵하는 리지웨이의 태도를 문제 삼았고, “조작이었다면 왜 조사를 하지 않고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을까? (중략)왜 그렇게 빨리 공식발표에 넘겼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로부터 정확히 59년 후 비극적인 천안함 사건이 벌어졌고, 그것은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기 전 2010년 지방선거에 앞서 그렇게 빨리 공식발표됐다. 스톤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우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는 천릿길과 같은 역사서술에 내딛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다.

  1. 이 책의 원본은 I. F. Stone,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52. 또한 이 책의 1988년 판본에는 브루스 커밍스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본문으로]
  2. 위키피디아와 Mickey Z(본명 Michael Zezima)라는 미국인 작가, 편집자가 Monthly Review 인터넷 판에 기고한 글을 참고하였다. http://mrzine.monthlyreview.org/2005/mickeyz181205.html [본문으로]
  3. 정병준, 『한국전쟁』, 돌베개, 2009, 37쪽. [본문으로]
  4. Arcana Imperii(State secrets, “국가의 비밀”이라는 뜻의 라틴어). [본문으로]
  5. 이완범, 「한국전쟁연구의 국내적 동향 - 그 연구사적 검토 -」, 『한국전쟁과 남북한사회의 구조적 변화』,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91, 230쪽.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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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5.04.02 10:55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십니까! 아마 제게 원문 pdf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봐야겠지만, 메일주소를 알려주신다면 원문 파일을 송부해 드리겠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2015.04.02 18:2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