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한국전쟁2014. 10. 6. 06:26

저자는 이 책에서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한국전쟁 연구의 경향과 전망, 향후 과제에 대한 정리를 수행했다. 이 책은 외국의 한국전쟁사 서술에 대한 번역서, 자료집, 기왕의 연구 성과들을 자료적 근거로 삼았다. 그 범위는 지난 30여 년간 국내에서 발간·번역·유통된 한국전쟁사 관련 연구 성과를 망라한 것으로 보인다. 개별 연구들을 출간시기와 주제별로 배치했고, 각각에 연구사적 의미와 비판적 해제를 달았다. 구성은 2장부터 7장까지 한국전쟁의 연구사 정리를 수행했고. 8장에서는 한국전쟁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역사진화위를 다루었다. 9장은 한국전쟁사 연구의 전망과 제언, 마지막 10장은 자유’, ‘평등’, ‘진보등의 가치를 주제로 학문 활동의 의의와 강령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광주항쟁 이후 30년을 종축으로 삼아 현실변화에 조응했던 한국전쟁 연구의 유위전변을 다뤘다는데 있다. 이는 전문영역 내부의 주장과 쟁점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학문 전체 차원과 사회 차원에서 한국전쟁 연구를 다뤄보려는 문제의식의 발로이자, 총체를 지향한 접근으로 볼 수 있다(336).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학문과 사회의 소통은 변증법적이기보다는 다소 일방적이었던 것 같다. ‘광주항쟁-구소련 붕괴-진보정부 등장이라는 큼직큼직한 외부적 변화에 한국전쟁 연구가 적극적으로 조응했던 반면, 후자는 전자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책에 반영된 저자의 의식적/무의식적 의도는 무엇일까? 중첩되는 부분이 상당함을 전제한 후,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저자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간의 연구를 정리하려 하였다. 서문에서 알 수 있듯, 저서는 저자의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중간결산의 의미를 갖는다. 저자가 가졌던 지난날의 문제의식을 가늠한 후, “猛省과 전망을 통해 추후 수행할 연구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168). 둘째, 학문적인 차원에서 연구의 소재를 바꾸려고 하였다. 기존의 한국전쟁 연구는 대개 앞머리에,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차례대로 정리한 史學史를 서술했다. 그러나 저자는 기존의 연구사 정리를 수행하면서, 한편으로 한국전쟁사를 소재로 삼아 학문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고찰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국전쟁() 연구를 통한 저자의 지식사회학적, 또는 사회지성사적 접근이 담긴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셋째, 사회적인 차원에서 개입과 실천을 욕망했다. 저자는 사회인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학문의 사회적 역할, 또는 지식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담론들을 그러모으려고 했는데(11), 이 책은 그러한 기획의 일환으로 나왔다. 나아가 저자는 학문과 사회의 소통을 촉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이성적 사회의 도래에 이바지하려 하였다.

 

필자는 저자의 핵심을 세 번째 의도라고 생각한다. 내용 전반에 걸쳐 있는 사회적 개입과 변화에 대한 저자의 욕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로 이념이라는 틀에 타인의 주장을 가두고 매도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가 꾸준히 언급하는 투쟁의 도구는 바로 理性이다(379). 물론 저자도 경험으로서의 역사’, 즉 전쟁체험의 상흔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이성의 보편성을 들이미는 것이 이성적일 수 있냐고 자문하며(112), 이성의 잣대를 무작정 들이대는 것에 대해 보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104).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주장은 한국전쟁사 연구의 범주를 뛰어넘었고, 더욱 적나라해졌다. 저자에게 진보역사의 발전을 의미하며, “보편적 가치의 현실화였다(399). 하지만 “~() 한다처럼 강령조의 주장이 종종 눈에 띠는데, 이는 자칫 맹목적인 인상을 주기도 했다. 각각의 주장을 자세히 따져볼 일이나,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독자는 비판 가능한 하나의 이념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의 현실인식과 전망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저자는 구소련의 붕괴로 인한 냉전의 해체를 초들어 이성의 눈이 쓰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고 했다(355). 그러나 냉전의 해체는 곧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현상적으로 완성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기획이 금융을 매개로 전 지구를 장악했다는 것의 다른 말 아닌가? 학문은 그 사회가 처한 구조적 제약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바로 그 점이 저자가 강조하고 저항하려는 지점일 때, 정작 문제는 냉전의 해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이성의 횡행이 아닐까? 저자는 그 점을 명시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각주:1]

 

저자는 평시상황에서 벌어진 시민학살이 심대한 충격을 끼쳤으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식의 기준을 과거로부터 현재로 끌어내렸다고 서술했다(41). 광주항쟁은 이후 한국사뿐만 아니라 한국사 연구, 나아가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을 다시 태어나게한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서의 내용만으로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중요성, 그리고 그 사건이 어떻게 사회와 인식의 변화를 불렀는지 설명하는데 부족한 느낌을 준다. 이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위치나 의의를 잘 모를 수 있는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광주항쟁 위에 자신의 입론을 정초하기 위해서는, 광주항쟁 이후 일어난 현상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광주 이전의 광주는 없었는지, “현재의 실천적 요구는 왜 하필 광주항쟁 이후에 과거의 사태들을 다시 바라보게 했는지, 광주항쟁이 한국인에게 입힌 내상은 무엇이었는지, 왜 광주항쟁이 전후 민족문제 인식과 분출·전환의 결정적 계기였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자세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전쟁의 학지를 정리하려는 저자는 1980년대 급진적 변혁사상의 유입과 수용, 학습, 극복과 관련하여 용어의 문제를 지적했다. ‘전통주의수정주의의 대별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언어 사용을 관행적 분류도식이라 규정했는데, 그것은 전후의 냉전질서, 또는 미소의 외교정책에 대한 시각을 말하는 것이지 한국전쟁과 직접 관련 있는 설명체계의 갈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호한 개념규정과 작위적 분류에 대한 지양과, 그러한 구분이 한국전쟁 연구에서 갖는 최소한의 필요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저자에 동의한다. 그러나 저자가 대신 제시한 보수주의”, “급진주의”, “비판주의등에 대해서도 같은 비판을 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례로, 1980년대 한국의 급진적 변혁세력에게 필요했던 급진적 시각과 해석”(77), 저자가 급진주의라고 규정한 일련의 학지를 나름대로 전유했다는데서 의의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급진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용어가 어떻게 전통주의나 수정주의보다 더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개념인지에 대해서 저자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1.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2011, 53-60쪽 참고.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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