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현대사2014. 9. 3. 19:05

* 2014년 9월 4일 아침 할머니와 얘기 하다가 생각이 떠올라 씀.

 

우리 할머니는 1945년 겨울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으로 시집을 오셨다. 그 땐 아직 해방이 되기까지 7달 정도가 남았을 때였다. 꽃다운 15~16살 즈음에 시집을 오신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시어머니(내 외증조할머니)를 비롯하여 꽤나 많은 수의 가족과 함께 가축이며 살림살이 등을 전부 돌봐야했다. 이후 할머니의 삶은 그리스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아이게우스의 외양간을 치우는 것과 같은 천형(天刑)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할머니가 보고 느낀 바를 말씀해 주신 것에 기대고 있다.

 

동네에는 하급 중에서도 하급 공무원 신분(?)의 김 아무개가 살았다. 그는 일제 행정의 말단을 도맡았던 수많은 식민지 조선인 중 하나였다. 오늘날 그를 두고 친일(親日)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그닥 중요한 일은 아니다. 이미 돌아간 분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영향력은 동리(洞里)를 벗어나지도 않았고 다른 유명한 친일파와의 그것관 달리 해방과 함께 즉각 소멸됐기 때문이다. 아무튼 김 아무개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악랄했다고 한다.

 

전쟁은 애꿎은 인민들을 수탈한다. 아니나 다를까 일제는 할머니의 시집을 비롯하여 식민지의 가가호호에서 금속과 고무 등을 강제로 공출했다. 그렇게 사라진 놋그릇과 놋수저를 대체한 것은 사기그릇, "모지랭이" 숫가락, 나무젓가락이었다. "모지랭이"는 "모자란"으로 추정되는데, "부러지고 꺾여 제 구실을 하기 힘든" 숫가락을 의미한다. 물자를 앗아가는 일제의 모습이야 악랄함 그 자체였으나 할머니는 일종의 쾌(快)를 느꼈다고 한다. 식기세정제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놋제품은 설거지가 어렵다는 점을 기억하자.

 

김 아무개는 칠성면에서 자행된 일제의 만행에 앞장섰던 모양이다. 일제는 피륙마저 챙겨갔는데 당시 동네에서 키우던 좋은 "목화송이"는 물론이고 그것으로 만든 면제품은 모조리 수탈의 대상이었다. 메뚜기가 휩쓸고 지나가 황량해진 논밭에서 한톨이라도 더 주으려는 심정이 들게 마련이다. 동리 사람들은 저질 "목화송이"로라도 면을 만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김 아무개가 공출과정에서 불만족스러웠던 집의 "지하"에서 저질 "목화송이"가 면으로 바뀌는 광경을 적발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낫으로 그 면을 주욱 찢어버렸다. 당시 베틀을 다루던 아낙네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칠성면에서도 과거 추축국(즉 일본) 관리에게는 해방조선의 몽둥이찜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 소식이 들려오자 동리 청년들은 너도나도 김 아무개를 "때려잡고자" 하였다. 그 원한과 복수심은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김 아무개가 얼마나 눈꼴 사나웠겠는가? 하지만 김 아무개의 시집간 딸이 아버지를 구했다.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김 아무개에게 찾아가 도망가라고 언질을 준 것이었다. 그 결과 김 아무개는 종적이 묘연해졌고 청년들은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그로부터 3년 후, 한반도에는 두 개의 분단정부가 들어섰다. 얼마전 김 아무개는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최근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글을 번역하면서 이 세계는 놀라우리만치 과거청산(淸算)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물론이려니와 재판권까지 보유했던 "반민특위"가 반공주의라는 미명 하에 활동을 접어야했던 사건이 비단 우리네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도 반공주의(공산주의보다는 파시즘을 선호한다)의 망령은 공산주의라는 유령보다 더욱 강고했다. 일례로 프랑스에서는 "[대독]협력에 대한 처형 남용"이라는 명분을 들고 나온 비시주의자들이 과거 레지스탕스를 겨냥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단다.

 

곧이어 터진 전쟁은 이 글의 주제와 연관은 되지만 분량 문제상 추후로 미루도록 하겠다. 아무튼 칠성면의 조선청년들은 과연 나름의 복수에 성공했을까? 당장엔 모르겠다. 그렇다면 칠성면을 비롯하여 해방조선의 이른바 "복수"는 성공했을까? 전혀 아닌 것 같다. 그 전에 당시라는 맥락에서 "복수"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미완의 과제로 그친채 70여년이 흐른 오늘날, 그러한 "복수"의 기획은 어떻게 봐야 할까?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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