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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11 Boris Groys, The Communist Postscript (Verso, 2009) 번역
번역2017. 8. 11. 06:36

116~127쪽.


공산당의 주도로 그리고 그 지도하에 공산주의의 자기-철폐는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한 사건이고, 이는 전쟁, 예컨대 냉전에서의 패배나 또는 공산주의에 복속된 인민들이 자유를 위해 싸운 결과로 아직까지도 일관되게 인식되기 때문에 종종 하찮은 것처럼 비쳐진다. 그러나 이 같은 매우 친숙한 설명은 하나도 정확하지 않다. 냉전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전쟁의 은유였고, 따라서 이는 오직 은유적으로만 패배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군사적 측면에서 소련은 난공불락이었다. 그리고 자유를 외치던 그 모든 단체들은 자본주의로의 이행 이전에 모두 수그러들었다. 러시아의 반체제 운동은 1980년대 중반 이전에 이미 모두 끝난 셈이었다. 마찬가지로 폴란드의 연대(Solidarność)운동 또한 폴란드 계엄군에 의해 즉각적으로 종결되었다. 북경에서의 소요는 성공적으로 진압되었고 질서가 회복되었다. 정확히 바로 이러한 모든 내부적 반대의 총체적 패배와 어떤 가능한 외부적 간섭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웠던 점이 소비에트 및 중국 지도부로 하여금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착수하게 이끌었다. 만일 지도부가 절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더라면, 그렇듯 거대한 정도의 재건과 가속을 실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재건의 과정에서 소련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은 앞서 말한 패배라는 인식에 기여하곤 하였다. 외부에서는 소련을 러시아 제국으로 간주하는 것이 지배적이었고, 소련의 해체는 결과적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여타 국가의 노력을 방해하는 러시아의 패배로 종종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러시아가 소련을 해체했다는 사실, 즉 옐친 행정부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및 벨로러시아와의 조약에 따라 소련에서 탈퇴한 사실은 망각된다. 따라서 다른 소비에트공화국들에 독립이 부과되었다. 이는 위에서부터, 그리고 중앙에서부터, 가만히 수동적으로 당하지 않고,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업을 부여 받았다는 신념 속에서 성장한 지도부의 주도하에 야기된 전환점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항상 자본주의가 경제적 가속을 위한 최선의 기제라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빈번하게 강조했고, ‘공상적 공산주의에 맞선 주장으로 활용했다. 공산주의의 승리를 위해 사회주의적 질서라는 틀 안에서 그리고 공산당의 통제 하에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도구화하고, 이를 일하게끔 만들겠다는 제안은 10월 혁명 이래 주요한 안건이었다. 이는 무척 많이 논의되었고, 때때로 그리고 아주 일관성 없게 실행에 옮겨진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공산주의지도부가 충분히 안정적이라고 느끼지 않았고, 이러한 실험이 행여 권력의 상실로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결코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1980년대와 90년대, 지도부는 충분히 강하다고 느꼈고, 실험에 따른 위험을 감내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이 실패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여전히 확고하게 권력을 쥐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중앙의 통제가 약화되기보다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앞으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고, 완전히 성공했음을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상 스탈린이 소련 해체의 조건과 법리적 절차 양자를 고안하고 만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만하다. 이른바 1936년도 스탈린 헌법17조는 다음과 같다. “각각의 연맹공화국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에서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다.” 이 정식은 아무런 변경 없이 1977년도 소련 최후의 헌법에 72조로 채택되었다. 이 조항의 중요성은 미국 역사상 유일한 내전이 독립된 주들이 연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느냐 여부에서 발생된 것임을 기억할 때 무척 분명해진다. 대조적으로 개별 공화국들에는 어떠한 제약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탈퇴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다. 이는 스탈린이 애초부터 소련을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 독립국들의 느슨한 연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헌법이 소련의 잠재적 해체를 사전에 기획하는 것이라는 반대는 당시 국제법 전문가들에 의해 이미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문제적인 조항을 수정하지 않고 유지하려는 스탈린의 결심은 굳건했다. 그 이유는 오직, 스탈린이 소련을 변증법적으로, 즉 국가인 동시에 비()국가로 규정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스탈린 헌법이 이러한 정의를 연맹 초기의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유지는 일국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을 논한 스탈린 태제를 향한 비판, 특히 가장 유명한 것으로 트로츠키의 비판에 대한 응답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들어설 이 나라는 국가들의 연합이자 나라들의 무리, 즉 독자적이고 단일하며 고립된 국가라기보다는 자본주의국가들의 공동체에 대항하는 사회주의국가들의 공동체에 더욱 가깝게 표상되었다. 소련에서 이러한 국가들의 공동체 개념은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일관되게 수행되었다. 각 공화국은 고유한 정부와 의회, 행정기관과 언어를 가졌다. 한 공화국에서 다른 공화국으로 당과 국가 공무원들의 공식 방문이 있었다. 작가들의 대회가 조직되었고, 이와 마찬가지로 문화축제나 전문가의 교환 등이 이뤄졌다. 국가 내부의 생활은 마치 국제무대에서처럼 수행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모든 소비에트 공민의 여권에 나와 있는 민족’(nationality)이라는 범주가 맡았다. 이 범주의 기능은, 민족을 한 국가의 시민권으로 이해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단지 수수께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소련의 모든 공민들에게, 그리고 확실히 그들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때 민족은 한 성원의 종족적 기원을 의미했다. 개인은 그의 부모가 서로 다른 민족일 때만 자신의 민족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모의 민족은 자녀에게 전해졌다. 모든 실질적인 사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직 시, 개인은 민족에 대해 질문을 받았고 종종 부모의 민족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소비에트 국제주의는 종족적 차이를 극복하고 지워버리는 일면적인 보편주의를 의미하지 않았다. 반대로,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국가들의 공동체인 소련의 건설과정에서 공민 그 누구도 그들의 출신에 대해 망각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변증법적 이성을 체현한 공산당만이 어디서 민족이 끝나고 국제주의가 시작되는지, 또는 어디서 국제주의가 끝나고 민족이 시작되는지 결정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조직된 사유화 과정 또한 마찬가지로 변증법적이었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이론가들과 실천가들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의 완전한 철폐를 우선 사회주의, 이어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보았다. 오직 모든 사적소유에 대한 총체적 국가-사회화만이, 공산당이 사회에 대해 완전히 새롭고 비할 데 없는 형성적 권력을 획득하는 데 필요한 총체적인 사회적 가소성(可塑性)을 가져다 줄 것이었다. 사적소유의 철폐는 과거, 그리고 심지어는 역사와의 급격한 단절을 수반했는데, 이는 역사가 대개 사적소유관계의 역사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철폐는 자연, 즉 인간 본성(human nature) 등등의 자연에 앞서 술(, art)에 우선권을 부여하였다. 만일 사적소유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인간의 자연권이 철폐된다면, 그들의 혈통에 대한 자연적인끈이, 그것들의 유산 및 내재적인문화적 전통 또한 분리될 것이고 그때 인류는 스스로를 새롭게 완벽한 자유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인간만이 모든 사회적 실험에 자유롭게 뛰어들 수 있다. 그러므로 사적소유의 철폐는 자연적인 것에서 인공적인 것으로, 필요의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형성적인) 자유의 세계로, 전통적인 국가에서 총체적인 예술품으로의 이행을 표상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 사적소유의 재도입은 적어도 처음에는 공산주의 실험을 종결시키기 위한 동등하게 결정적인 전제 조건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적으로 통치하는 국가의 소멸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표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부들, 정치체제들, 권력관계들이 종종 사적소유에 대한 권리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변해왔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알고 있다. 이러한 예들에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삶은 심지어 정치적 삶이 급진적인 변화를 겪더라도 사적[소유] 법에 의거해 구조화된 채 남아있다. 대조적으로, 소련의 해체 이후에는 운동 중인 어떠한 사회계약도 더 이상 없었다. 거대한 영토가 버려졌고,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처럼 무법천지의 황무지들은 새롭게 구조화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땅들은 사적 전용을 위해, 그리고 실상 국가 지도부 스스로가 명령하는 규칙들에 의거해 구획되어야 했고, 분배되어야 했으며, 풀려야 했다. 이 경로를 따라 재화의 국가-사회화 이전에, 상속 철폐 이전에, 사적 재산의 기원과의 단절 이전에 존재했던 조건으로 완벽하게 돌아갈 가능성은 전무했다.

사유화는 이전의 사회화만큼이나 인공적인 정치적 구성물이었음을 궁극적으로 증명했다.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한때 사회화된 국가는 이제 자본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사유화되었다. 양자의 경우에서 모두 사적소유는 국가적 이유(raison d'état)에 종속되었고, 따라서 명백히 인공물, 철저히 계획된 경륜(經綸)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사적소유의 ()도입으로서의 사유화는 자연으로, 자연 상속과 자연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탈공산주의 국가는 공산주의적 선구자처럼 구성물이고, 단지 행정 권력인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탈공산주의적 상황은 자본주의의 인위성을 밝힌다는 사실에서 특징적인데, 이는 자본주의의 대두를 경제발전의 자연스러운과정으로서가 아닌 사회적 재구조화를 위한 순전한 정치적 기획으로 표상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동구 국가들에서, 그리고 현저하게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건설은 경제적 또는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결과도 아니고, 피할 수 없으며 유기적인역사적 이행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를 공산주의 건설에서 자본주의 건설로 바꾸도록 정치적 결정이 취해졌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리고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완벽히 의거하여) 건설의 대들보 역할을 맡도록 사적소유의 주인 계급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사체, 즉 사회주의사회의 시체에 대한 폭력적인 훼손과 사적 전용을 포함했는데, 이는 민족 또는 부족의 구성원들이 신성시되는 동물의 사체를 공동으로 섭취하는 과거의 신성한 연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한 연회는 한편에서 각각이 사체의 사적인 조각을 조금씩 받는다는 점에서 신성시되는 동물의 사유화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정확이 이러한 사유화를 통해 부족의 초()개인 및 초사유(私有) 공동체의 기초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시체에 대한 유물론적 변증법은 자신의 오래도록 지속되는 효과를 증명한다.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의 진정한 뻔뻔함은 바로 반()유토피아주의, 즉 소련에 기본적으로 이미 유토피아가 현실화되었다는 단언에 있다. 사회주의진영이 들어선 진정으로 실재하는 장소는 유토피아의 비장소(non-place)라고 공언되었다. 이러한 단언이 반사실적(反事實的)이고, 국가가 공식 전원시(田園詩)를 조작하고, 개인적인 생존이나 억압 및 조작에 저항하는 투쟁 또는 영구혁명을 위한 투쟁이든 간에 갈등과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나 통찰이 요구되지 않고, 당시에도 요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사실적 부정의와 단점들을 언급함으로써 이는 끝났다는 유명한 주장을 세계로부터 최종적으로 일축하는 것은 아트만(atman, 힌두교에서 개별적, 인격적 원리-역자 주)은 브라만(brahman, 힌두교에서 근본적 실재 또는 원리-역자 주)’ 또는 삼사라(samsara, 윤회-역자 주)는 니르바나같은 유명한 교리를 불식시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데, 이는 반유토피아와 유토피아, 지옥과 낙원, 영벌(永罰)과 구원의 역설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완료되었다는 것은 마쳤다는 것이고, 따라서 자유롭게 반복될 수 있다.

그러한 반복이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하고 결정적으로 종결된 현상인 소비에트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언어를 통한 통치를 확립하려는, 즉 철학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추후의 시도는 개연성이 높고, 확실히 불가피하다. 언어는 돈보다 더욱 보편적이고 더욱 민주적이다. 게다가 이는 돈보다 더욱 효율적인 매개인데, 사고 팔리는 것보다 더욱 많이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회적 권력관계의 언어화(linguistification; d. Versprachlichung)는 모든 인간 개개인에게 권력, 운명, 삶을 부정하고, 그것들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저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건네준다. 언어는 평등의 매개이다. 권력이 언어화된 상태에선, 권력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모든 화자의 평등이라는 조건하에서 권력이 작동하도록 강제된다. 만일 모든 화자에게 형식논리적으로 유효한 주장을 하라고 요구된다면, 분명히 언어의 평등은 왜곡되고 심지어 파괴된다. 그러나 철학의 과제는 정확히 그러한 형식논리적으로 유효한 언어의 억압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충족되지 않고 충족될 수 없는 사랑으로 규정되기에 일종의 욕망이다. 그러나 이는 총체적으로 언어화된 욕망이며, 따라서 이것의 역설성(paradoxicality)은 투명해진다. 철학은 인간에게 자기모순 속에서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 바로 이 제도를 사회 전체로 확장하려는 바람은 전적으로 억압될 수 없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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