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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26 한승주, 『제2공화국과 한국의 민주주의』, 종로서적, 1983.
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6. 06:35

 이 책은 미국에서 수학한 저자의 정치학 박사학위논문을 국역한 것으로, 1948년 이승만 정부의 출범 때부터 19615·16 군사쿠데타에 이어 장면 정부의 붕괴까지의 정치사를 다룬 연구 성과이다. 박사학위논문의 원제는 The Failure of Democracy in South Korea로 국역해보자면 실패한 남한의 민주주의정도로 옮겨볼 수 있겠다. 따라서 독자는 이 글이 1948~1961년의 한국현대정치사, 그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실패에 주목하여 쓴 것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평가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이며, 독자는 어떤 식으로 저자의 해석을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는 어떠한 사관에 입각하고 있는가?

 

 저자의 평가를 따라가는 한편 민주주의민중(내지 인민)’을 열쇳말 삼아 한국현대사를 살폈을 때, 그것이 실패 외에 다른 어떤 것이었음을 주장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저자의 논지는 박사학위논문이 출간된 1974년에도, 이 글을 쓰는 2014년 현재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 1987년 대의제 민주주의를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운동 속에서 사회가 질식하고 있는 현재, 민주주의는 견제의 기능을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하에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한 후 비평을 시도하겠다.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하여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돼있다. 저자는 서론(1)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논문으로서의 여러 구성요건 중 하나로 보이는 1960년대 당시의 다양한 사회과학 방법론을 서술했고, 해당 방법론들이 한국정치사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성격의 것들임을 밝힌 후에 본론에서 다룰 내용의 요체를 적시했다. 저자의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은데, 2공화국이 붕괴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즉 저자는 장면(張勉, 1899~1966) 정부의 붕괴와 잇따른 5·16 군사쿠데타를 남한 민주주의의 실패로 규정하고, 어떻게 이러한 실패가 도래했는가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제기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과연 정당한지는 의문이 들었다. 이하에서 다시 재론하겠다.

 

 2장과 3장은 해방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통해 분단과 전쟁이라는 주제 및 시민사회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과도한 행정력, 즉 제1공화국의 유산과 한민당-민국당-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을 묘사했다. 독자는 여기서 남한 군부의 성장과 비대화, 그리고 특히 ()정치적요소에 집중하는 저자의 서술을 읽을 수 있다. 2장과 3장의 배경설명은 제2공화국 의회정치의 난맥상과 세력 간의 이합집산, 마지막으로 군사쿠데타를 자칫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하는 장치들 중 하나이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1950년대 내내 이승만은 경찰로 대표되는 제도(행정부)를 통해 반대세력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그러한 속에서 이승만의 반대세력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승만의 하야 이후 보인 난맥상은 이러한 정치적 경험부족에 기인한 것이었는데, 이 시기 훈련(()자유당으로서의 의회정치 활동)은 곧 죽음(조봉암 등)으로 언제든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4장과 5장에서 독자는 4·19부터 7월 총선(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의 대략적인 모습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장은 4·19직후 등장한 허정 과도정부를 다루었다. 이 장에서는 이승만이 퇴출된 후 자유당이 와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 세력의 권력 독점과 이데올로기적 일치라는 요인이야말로 자유당 해체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데, 권력욕 외에는 집합적 행동의 동기가 없으므로 구심점이 사라지고 난 다음의 운명은 해체라는 식이다. 저자는 자유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 및 사회세력에 대해서도 일관된 설명을 시도했다. 5장은 진보당으로 대표되는 혁신계의 배경 및 4·19이후 등장한 사회대중당(서상일, 이동화 등), 한국사회당(전진한), 사회혁신당(고정훈) 등 주요정당의 정치활동을 서술했다.

 

 6장은 전반적으로 민주당의 우세 속에서 펼쳐지는 제2공화국 의회정치의 전개양상을 다루었다. 여기서도 저자는 개인적 연줄과 즉각적인 개인적 이해관계라는 요소에 주목하여 정치파벌(주로 민주당 구파와 신파)간의 적대와 대립을 묘사했다. 평자는 특히 8월에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어떤 식으로 장면이 권력을 거머쥐게 됐는지 설명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1960812, “구파 내에 조직된 추종자를 가지지 못한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이어서 그는 같은 계파 내의 경쟁자인 김도연을 국무총리로 지명·공표(16)했다. 그러나 국회는 한 계파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김도연을 반대(17)했고, 장면에게는 찬성(19)을 던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의 분석처럼 당시 무소속 의원들이 김도연과 장면에게 똑같은 수의 지지표(21)와 반대표(16)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당시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른 당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는 분열돼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장은 소제목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장면 정권과 사태에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마지막으로 8장은 19607월 선거에서 패배를 맛본 혁신계의 재배치(사회대중당과 사회당/통일사회당/민족통일당)와 그들의 대미관(對美觀) 및 통일정책, 그리고 당시 남한 시민사회의 주요한 두 조직이었던 교원노조와 학생단체의 결성을 그려냈다. 장면은 이른바 신파의 상징이었으나, 그는 구파·신파·무소속의 국회 내 세력 중 어느 한쪽을 휘어잡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그는 친이승만세력 및 부정축재자에 대해서는 미온적 처벌에 그쳤고, 경찰력과 군부 중 어느 집단에게도 명확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다. 미군은 시시때때로 정부의 군 개혁안에 우려를 표명했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정부의 미약한 행정력은 1950년대와는 너무도 대비됐고, 들풀에 불이 번지듯 터져 나오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결코 소화해낼 수 없었다. 국가주의적 우파의 물리적 반동이 언제든 실행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저자는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나 조지 맥큔의 Korea Today 등 당시이용 가능했던 일급의 역사서와 함께 명사(名士)들의 회고록, 사상계재정, 고시계같은 국내잡지 등을 주된 자료적 근거로 삼았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의 이론적 자원으로, 저자는 Gabriel Almond(1911~2002), David Easton(1917~2014), Morris Janowitz(1919~1988), Martin Lipset(1922~2006) 등 미국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군의 사회학자·정치학자들을 두루 이용했다. 그들은 넓은 의미에서 이른바 행태주의자들이었다. 행태주의자들에 관한 비판으로는 미국인 학자 Ron Robin이 쓴 The Making of the Cold War Enemy를 참조할 수 있는데, 그 핵심은 당시 행태주의자들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분석에서 역사적 맥락을 사상(捨象)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는 서양의 이론을 특정 국가의 특정한 상황에 적용하는 일은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의 시도가 행태주의과학의 난점을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반공주의로 점철된 1950년대를 제시했고, 그 속에서 이승만과 대비되는 무능한기성 정치인의 모습과 혁명이후 권력창출에 실패한 세력의 존재양식을 추적했다. 이 책은 출간된 시점이나 국역된 시점을 고려했을 때, 2공화국의 정치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두루 다루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양극화와 그러한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행정부를 비판하는 가정(假定)식의 논의는 여러모로 한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양극화는 현대사회가 지닌 보편성이기도 하며, 후자의 논의는 쿠데타세력을 비호하는 논리로 언제든 탈바꿈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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