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5. 8. 16. 18:15

언플.

1945년이 대표적이다. 3강대국이 막사과에서 전후 질서를 논의하였다. 그 결과, 조선반도에서는 1) 임시조선민주정부를 수립하고, 2) 동시에 (소미)공동위원회 만들고, 3) 조선인 공동위 같이 모여 논의하는 가운데, 4) 4강대국이 참여하는 신탁통치를 최대 5년간 시행하기로 하였다. 막사과 시간으로 12월 27일 이러한 결정이 났는데, 아니 웬걸? 결정에 앞서 국내에서 왜곡보도가 빵 터졌다. (아이유는 '너랑 나'에서 시간을 보채는 데 끝내 실패하였다) ㄷ일보의 특보는 신탁통치의 "신"자도 믿을 수 없던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고, 46년 1월부터는 좌우익이 조직적 집단적으로 갈리며 핵분열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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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015. 6. 28. 19:25

森田芳夫(모리타 요시오), 朝鮮終戰記錄 : 兩軍進駐日本人引揚, 東京 : 巖南堂書店, 昭和39[1964].


서론 - 후생사무차관 太宰博邦(다자이 히로쿠니) / 외무성아시아국장 後宮虎郞(쿠큐 토라) / 중앙일한협회부회장 원경성일본인세화회회장 穗積真六郞(호즈미 신로쿠)


1장 조선에 있어서 일본인 인구와 종전 시의 일본군

1 조선에 있어서 일본인의 인구

2 태평양전쟁말기의 조선방위

1. 본토결전과 제17방면군의 신설

2. 제주도·남조선의 병력증강

3. 대소작전과 북조선의 일본군

4. 재조선일본군의 병력


2장 소련참전과 조선

1 소련군 진공과 국경 제1

1. 전쟁말기의 나진·웅기

2. 소련군의 토리(土里) 습격

3. 소련군의 나진폭격

4. 소련군의 웅기폭격

5. 1선부대의 철퇴

6. 마유산(馬乳山)의 전투

2 일본군의 영격태세와 청진의 전투

1. 경비소집의 발령

2. 이론군의 작전

3. 청진의 전투

3 함경북도 일본인의 피난

1. 수립되어있던 피난계획

2. 아오지·회령

3. 청진

4. 무산

5. 길주·성진

4 만주로부터 피난민의 남하

1. 피난민의 남하

2. 피난민의 집결지

3. 남조선·일본으로 직행한 단체

5 경성에 있어서 피난민의 수용


3장 종전 시의 조선

1 총독부의 종전대책과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발족

1. 원등(遠藤여운형 회담

2. 815일의 경성

3.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발족과 조선인측의 시위 및 총독부의 대책

2 남조선 각도의 종전대책과 조선인측의 움직임

1. 충청북도

2. 충청남도

3. 전라북도

4. 전라남도

5. 경상북도

6. 경상남도

7. 강원도

3 일본군의 종전대책

1. 종전과 그 대책

2. 교전지구에 정전명령 전달

3. 치안대책

4 신궁·신사의 승신식(昇神式) 거행

1. 조선에 있어서 신궁·신사

2. 조선신궁의 승신식

3. 각지의 신사의 승신식

5 금융대책

6 식량사정

7 무궤도 인양 시작

8 재일조선인의 귀환

9 일본인세화회의 발족

1. 경성일본인세화회의 발족

2. 각지에 세화회 결성

10 조선총독부 종전사무처리본부의 활동

1. 종전사무처리본부의 설치

2. 경성·부산의 안내소


4장 소련군의 북조선 진주와 인민위원회의 결성

1 38도선의 설정

2 소련군의 동북선() 진주

1. 소련군의 함경북도 진주

2. 소련군의 함경남도 진주와 함경북도인민위원회의 결성

3. 소련군의 강원도 진주

3 소련군의 서북선 진주

1. 소련군의 개성진주

2. 소련군의 황해도 진주와 황해도인민위원회의 결성

3. 소련군의 평안남도 진주와 평안남도인민위원회의 결성

4. 소련군의 평안북도 진주와 평안북도인민위원회의 결성

4 소련군의 포고와 5도행정국의 성립

5 일본군·일본관헌의 억류

1.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집결

2. 일본관헌의 억류

3. 소련·연길로의 이송

4. 군인·군속 등의 체포

6 소련군에 의한 시설철거

7 일본인 부녀자의 문제

8 북조선의 사태개선을 요구하는 외교교섭


5장 북조선에 있어서 일본인의 집결과 함경북도·만주의 피난민

1 일본인의 집결

1. 함경남도

2. 강원도

3. 황해도

4. 평안남도

5. 평안북도

2 함경북도 피난민의 이동

1. 이동군()과 잔류자

2. 함경남도

3. 그 외

3 만주 피난민

1. 소개(疏開)본부의 설치

2. 이동

3. 만주은행권의 교환과 식량문제

4. 집결

4 탈출

1. 함경남북도

2. 강원도

3. 황해도


6장 미군의 남조선 진주와 군정의 개시

1 미군의 인천상륙과 경성 진주

1. 미군진주의 예고와 그 수입 준비

2. 미군의 인천상륙과 경성 진주

3. 연합국군포로의 석방

2 항복문서의 서명

1. 항복문서의 서명

2. 제주도에 있어서 항복문서의 서명

3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포고

4 미군정의 개시

1. 총독부 수뇌부의 해임

2. 미군정청의 성립

3. 금융기관의 접수

4. 아베 총독의 상주서

5 남조선의 정정(政情)과 치안문제

1. 새로운 정정

2. 접수운동과 미군정청의 치안대책

3. 노무자의 퇴직금 요구

4. 귀환노무자의 임금 요구

6 경성일본인세화회의 활동

1. 기구와 운영

2. 정보의 발행

3. 조선어강습회의 개최와 돈()교육

4. 의료의 개시

. 종전사무처리본부보호부 경성안내소의 활동


7장 남조선에 있어서 일본군·일반 일본인의 계획수송·

1 정치·경제사정

1. 정치정세

2. 경제사정

2 일본에 있어서 인양자의 수입체제

3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그 송환

1. 종전직후의 미군과의 교섭

2. 송환의 실시

4 일반 일본인의 계획수송

1. 미군정의 일본인 송환계획

2. 계획수송의 실시

3. 이동의료국의 협력

4. 인양을 지정된 사람들

5 잔류일본인의 총인양 명령

1. 연합국군총사령부의 일본·조선의 분리정책

2. 조선인측의 배일풍조

3. 잔류일본인

4. 일본인 총인양 명령

6 문화관계의 처치

1. 학교, 특히 경성제국대학의 경우

2. 신궁·신사

3. 불교사원 그 외

4. 보도기관

7 일본인세화회의 추이

1. 경성일본인세화회

2. 부산일본인세화회

8 잔류한 일본인

1. 일본인세화회

2. 일본군

3. 군정청의 조언

4. 기술자 그 외


8장 북조선에 있어서 일본인의 월동

1 북조선정권의 성장과 미소교섭의 정돈

1. 북조선정권의 성장

2. 미소공동위원회의 정돈

3. 북조선일본인의 송환문제

2 함경북도

1. 청진

2. 나진

3. 웅기

4. 회령

5. 아오지

6. 길주

7. 성진

3 함경남도(1) 함흥

1. 피난민의 참상과 의료 및 소개 정책

2. 일본인위원회의 개조와 함흥시당부 일인(日人)

3. 피난민의 구제

4. 부평(冨坪오로(五老석왕사로 이동한 피난민

4 함경남도(2)

1. 흥남

2. 원산

3. 그 외

5 강원도

6 황해도

1. 해주

2. 겸이포

3. 그 외

7 평안남도(1) 평양

1. 평양일본인회

2. 만주피난민

3. 사망자와 용산 묘지

4. 탈출공작

5. 만주피난민의 만주로의 복귀

6. 추을

8 평안남도(2)

1. 진남포

2. 그 외

9 평안북도

1. 신의주

2. 만주피난민의 집결지

3. 그 외

10 연길 억류자와 석방

11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있어서 의료와 사망자


9장 월동기 남조선에 있어서 탈출자의 수용과 송환

1 탈출 코스와 남하자

2 38도선에 있어서 탈출자의 수용과 강화

3 경성일본인세화회의 원호

1. 원호

2. 경비

4 재외 부형 구출학생동맹원의 내원(來援)

5 부산일본인세화회의 원호


10장 북조선일본인의 집단탈출

1 남북조선의 정정

2 강원·황해도

1. 강원도

2. 황해도

3 함경남도

1. 송촌의사남씨의 경성연결

2. 함흥의 집단탈출계획

3. 북선전재(戰災)자위원회의 결성과 함흥의 계획적 집단수송 실시

4. 흥남거류민회의 개조와 집단이동

5. 원산의 집단이동

6. 그 외

7. 남하금지령 후의 탈출

8. 캄차카 어업에 응모

4 평안남도

1. 추을 집결자의 진남포 이동

2. 평양일본인회의 개조

3. 평양의 남하 개시

4. 진남포의 이동

5. 일본인의 남하금지

6. 집단탈출의 실패와 황해도에 있어서 억류

7. 이동위원회의 결성과 시변리(市辺里) 코스에 따른 탈출

8. 진남포의 이동 재개

5 평안북도

1. 만포·강계의 이동

2. 산발적인 이동

3. 평안남도일본인연합회의 결성과 신의주의 이동 개시

4. 선천·박천촌 근처와 정삭·만포연선의 이동-시변리 코스의 이용

5. 배타고 남하와 신의주 및 그 주변지구의 이동

6 함경북도

7 만주지구의 조선경유 남하


11장 집단탈출을 환영하는 남조선의 원호송환업무

1 집단탈출 무리의 수용-21[1946] 5월말까지(부산항 사용)

1. 경성일본인세화회와 부산일본인세화회

2. 38도선 이북과의 연결

3. 38도선 상의 수용

4. 경성일본인세화회의 건투

5. 부산에 있어서 수입 송환

2 콜레라의 유행과 텐트 수용소의 개설-6·7(군산·인천항 사용)

1. 콜레라의 유행과 부산항 사용금지

2. 미군으로부터 북조선소련군에게 일본인 남하금지를 요청

3. 개성·의정부·주문진에 텐트 수용소의 개설

4. 군산항으로부터의 인양

5. 인천항으로부터의 인양

6. 부산에 있어서 일본인 유골의 정리

3 시변리 탈출 코스와 선단을 통한 남하와-8·9·10(부산항 사용)

1. 부산항의 재개

2. 경성일본인세화회 직원의 감원문제와 집단탈출의 재개

3. 개성의 텐트 수용소

4. 의정부의 텐트 수용소

5. 선단에 따른 남하와 인천의 수용

6. 주문진의 수용

7. 철도 파업과 부산·인천 양항의 병용

4 안동으로부터 선단의 남하와 경성일본인세화외의 철수-11·12


12장 북조선에 남은 일본인 기술자와 남북잔류자의 인양

1 남북조선의 독립과 미소양군의 철퇴

2 정식인양의 발표와 제1차 인양

1. 소련점령지구 인양과 관련된 미소협정

2. 북조선에 있어서 정식인양의 발표

3. 인양일본인수용소와 그 처우

4. 인양선의 취항

5. 군인포로의 소련군으로부터의 송환과 그 인양

3 북조선에 있어서 일본인기술자의 문제

4 북조선공업기술총연맹 일본인부의 결성과 그 사업

1. 일본인부의 결성

2. 정식인양 시에 있어서 일본인기술자의 잔류문제

3. 일본인부의 사업

4. 일본인부의 해산

5 경제재건에 있어서 일본인기술자의 역할

1. 처우·표창

2. 금병뢰차랑씨와 사업경영론

3. 연료문제와 가등오십조·안등풍록씨들

4. 전력사업

5. 공업기술자 교육

6. 그 외

6 북조선잔류자의 인양

1. 22[1947] 3월의 인양

2. 227월의 인양

3. 2211월의 인양

4. 23[1948] 7월의 인양

5. 그 후의 탈출인양

6. 일조적십자회담에 따른 인양

7 남조선에 있어서 일본인부녀자의 인양

1. 부산일본인세화회의 잔류

2. 일본인부녀자의 인양

3. 24[1949] 이후의 남조선으로부터의 인양


13장 재판과 수형

1 남조선

1. 포로수용소관계자의 군사재판

2. 재조선미군의 군사재판

3. 미군정하의 사법조직

4. 일본인관공리·유력자의 체포와 그 재판

5. 김계조(桂祚)사건

6. 경상남도(하동·통영)에 있어서 사건

7. 미군정청으로의 진정과 경성일본인세화회의 원호

8. 재판의 완결지시와 수형자의 송환

2 북조선

1. 소련군의 재판에 따른 것

2. 각지의 체포사건

3. 조선측의 사법조직과 재판

4. 소련군명령에 따른 형기 2년 이하의 석방과 그 후


14장 타지역으로의 이동

1 나진으로부터 무순(撫順)으로의 이동

2 연길로의 억류

3 소련에의 억류

4 캄차카행의 어업노무자

1. 캄차카에 있어서 생활

2. 캄차카로부터의 귀국


15장 사망자·미귀환자와 인양촉진운동

1 사망자

2 미귀환자

3 북조선잔류자의 인양촉진운동과 일본·조선적십자의 교섭

1. 강제잔류자의 인양촉진-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의 모임의 운동을 중심으로

2. 일본적십자의 북조선적십자로의 교섭

3. 일본·조선적십자 평양회담

4. 안부 조사의 회답과 일본인부녀자의 귀국


16장 일본인 재산의 문제

1 남조선에 있어서 일본인 재산

1.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

2. 미군정청 법령 제2호의 공포와 재산양도 수속의 발표

3. 미군정청 법령 제33호의 공포와 일본재산의 접수

4. 한국의 독립과 미군접수재산의 이양

2 북조선에 있어서 일본인 재산

1. 사유재산의 접수

2. 일본인 소지금의 강제 예탁

3. 토지개혁법령과 중요산업 국유화법령

3 남조선에 있어서 탁송화물과 그 몰수

1. 화물의 수탁

2. 미군정청 민정장관의 서간과 탁송준비

3. 미군정청 법령 제33호에 따른 탁송화물의 몰수

부 차입금의 문제

1. 경성일본인세화회자금의 봉쇄와 차입의 개시

2. 북조선에 있어서 차입

3. 차입금의 변제

4. 차입금의 공인과 그 변제의 실시


부록

1 관계연표

2 문헌자료


맺으며-모리타 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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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韓美관계2015. 2. 21. 08:00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1942~19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성 구상(1996)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원래 논문의 본문은 모두 48절로 구성돼있는 데 비해, 이 책은 원래의 논문에서 각 장절의 명칭을 세련되게 바꾸었고 2(2)에 하나의 논문[각주:1]에 해당하는 절을 추가로 삽입하여 모두 49절의 체제를 갖추었다. 논문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미국의 과도정부 구상을 매개로 하여 1942~47년의 시기 동안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이 형성·완숙·변형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복원하였다. 집필뿐만 아니라 저자는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1차 자료의 수집·편집·출판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각주:2] 연구자들 사이에서 한국현대사 연구의 진전을 가로막는 제1요인으로 흔히 자료적 제한이 운위되는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저자의 피땀 어린 노고와 그 결실은 고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갖는 의미를 간략히 짚어보자.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은 20세기의 역사에서 가히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태평양에서부터 구라파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지역을 통치했던 구()제국이 일단 몰락하거나 주춤했고, 식민지·()식민지 지역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분출하였다. 옛 제국이 차지하던 위치는 장차 미국이 대체할 터였다. 한편 지구 각지의 민족운동은 그 내용과 형태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코뮤니즘(Communism)이라는 외피를 입었으며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직간접적인 관련 속에 놓였다. ‘연합국두 수뇌국끼리의 대결의 징후는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전후하여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소 양국은 38도선을 경계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분할·점령하는데 동의했다.

 

한국인은 제국을 상대로 간고한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인들의 활약을 선뜻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 패망 후에도 한인들의 집단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과연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은 무엇이었는가? 그 역사적 전개, 귀결, 성격은 어떠하였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치밀하고 실증적인 대답을 제공한다.

 

우선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 전후 미국의 과도정부 수립구상과 그 실현과정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같은 시기 미국의 대한정책이 형성·전개되는 모습을 해명했고, 미국의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한점령정책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특질을 분석해냈다. 저자는 이 책의 결론부에서 몇 가지의 역사상을 제공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42~해방 이전(1) 해방~1차 미소공위(2) 미국의 중간파 정책과 2차 미소공위 시기(3) 공위의 결렬과 다가오는 단정(4). 물론 각 부는 평자의 시기구분과 엄밀히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다양한 시간대가 부를 넘나들며 중첩돼있다.

 

먼저 저자는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의 졸속성 및 편의성을 강조하는 논리, 준비결여론이라든가 선의의 무지론등을 통박했다. 이는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미국 전후구상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계기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저자의 주장에 잘 나타나는데,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찍이 1942년부터 한반도와 만주를 시야에 넣어 전시·전후 구상을 기획하였다. 저자는 일명 노터 파일, T316등 미국무부 내 자문위의 소위원회 보고서들, P-B81, JANIS 75등 광범한 자료를 통해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구상과 계획으로서는 완숙단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증명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미국의 대한정책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급조된 것이 아니라, 전후 신세계질서' 구상과 밀접한 연계 하에 끊임없이 다듬어진국가차원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미국의 전후 대한구상이 수정을 강요받게 되는모습과 각각의 계기를 분석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세가 요동치는 시기였고, 정책입안 담당자들(워싱턴)과 집행 담당자들(미군정) 사이에도 인식과 수행방법의 차이가 점차 불거졌다. 예컨대, 애초의 미국 대한구상이었던 국제민간행정기구안이나 정무위원회안(일명 랭던구상) 같은 경우 식민지 상태에서 갓 해방된 한국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미군정, 그리고 소련 모두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무부는 모스크바 3상회의[조선임시정부안이 만들어졌다]를 거치며 원안과는 달라진 모습의 대한구상을 준비해야 했다. 이후 미군정은 UN으로 한국문제를 이관시키는 1947년 가을 이전까지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조선 과도정부안을 추진했다.

 

같은 국가의 행위주체라고 해도 워싱턴과 미군정, 군부는 같은 한국문제에 대해 입장차와 태도의 온도차를 보였으며, 심지어 같은 기관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책은 그러한 각각의 이견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는 모습을 계기적으로 포착하는 한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그러한 수렴 과정이 이뤄지는 맥락 또한 들려주었다.

 

이 책은 신탁통치안을 비롯하여 모종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남한에서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신탁통치안의 경우를 살펴보자. 군부와 국무부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후 식민종속지역에서 민족운동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신탁통치안이 식민지역의 구식민모국으로부터의 분리와 미국 영향권으로의 재편입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에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상은 결국 점령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창출하는 작업을 전제한 것이며, 이는 어떠한 형태이든지간에 정부의 구성과 인사의 참여 등이 전적으로 미국에 유리해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미국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소련과의 대화에 임하기 위해 차례대로 고문회의-(정무위원회안)-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남조선과도입법의원-남조선과도정부 등을 조직한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에 한국문제를 UN에 이관함으로써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스스로 파기하였다.

 

이 책은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을 미국의 냉전정책이나 대소전략의 일부가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것으로 자리매김하여 분석했고, 더불어 그것이 한국인의 자주적 국가건설 노력과맞부딪혔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서론에서 밝혔듯, 저자는 미국 대한정책에는 국제적·국내적 측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변화의 원인과 동력은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한반도와 워싱턴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주제인 미국의 한국정부 수립구상과 중간파정책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며, 선행 연구를 비판하는 데에서도 미국의 국제정치사(외교사)의 연구 흐름(전통주의·수정주의) 및 세계체제론적 접근이 가지고 있는 목적론적 맹점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평자는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느꼈다. 저자의 노고와는 별개로, 이 책이 선사하는 역사상에서 한국사회가 선제적으로 창출해낸 모종의 동력이나 행동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신탁통치파동이나 ‘10월 항쟁등은 사후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며 통치주체인 미군정으로 하여금 나름의 대응을 모색케 했다는 데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대한정책이 수정·굴절(UN 이관)되는 계기 중에 한국사회가 하나의 주체로서 개입했거나 선도한 경우가 있었을까? 적어도 이 책만으로는 그러한 질문에 충분히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 정용욱, 「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 -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62, 2003. [본문으로]
  2. 정용욱, 『해방직후 정치·사회사 자료집』 1-12권, 다락방, 1994; 정용욱·이길상, 『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사 자료집』, 다락방, 1995; 정용욱,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의 한국근현대사 관련자료 소장 현장과 이용 실태 조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정용욱, 『미군정 자료 연구』, 선인, 2003.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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