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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01 栗原康(쿠리하라 야스시), 『学生に賃金を(학생에게 임금을)』 서론
번역2015. 3. 1. 09:08

쿠리하라 야스시, 학생에게 임금을, 신평론, 2015.

栗原康, 学生賃金, 新評論, 2015.

 

글을 열며

 

欲進無才 将退有逼

進退両間 何夥歎息

(空海, 三敎指帰, 797)

 

학문을 하면 먹고 살 수 없게 된다. 최근 쿠카이(空海, 774~835)가 쓴 삼교지귀(三敎指帰)를 읽다가 다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아가 사관(士官)코자하면 내게 재능이 없고, 물러나 조용히 있길 원하면 가난에 쫓기게 되네. 진퇴양난에 빠진 가운데 그저 새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이것은 쿠카이가 24살 때 자신의 괴로운 처지를 표현한 시다. 원래 쿠카이는 쿄토의 대학에서 유교를 배웠고, 관직에 나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던 중, 어쩌다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돼 대학을 그만두고 출가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불교는 철학이자 사상이었고, 국가와 관련된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쿠카이에게 기대를 가졌던 가족이나 친척은 실망했다. 그는 누구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했고 물려받을 절도 없었으며 홀로 산악수행에만 몰두했다. 전혀 먹고 살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었다. 그리고 31살까지 이러한 상태가 지속됐다. 유명한 쿠카이도 그랬던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도 먹고 살 수 없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는 많지만, 삼교지귀797년에 쓰인 것이니까 일본에는 1,200년이나 똑같은 일이 이어져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 35살이고, 연 수입은 80만 엔(), 빌린 돈은 635만 엔이다. 이 빚은 일본학생지원기구로부터 빌린 장학금이다. 이러한 수입은 나름 오른 것으로, 2009년에 대학원을 나왔을 때부터 작년(2013)까지의 연 수입은 10만 엔이었다. 먹고 살 수 없다. 나의 직업은 대학비상근강사[비전임 시간강사-역자 주]이다. 한 학기(半期)에 한 토막(コマ)의 일밖에 없었고, 그것을 늘리고 싶어 여러 대학에 응모해보았으나 모두 실패였다. 당연히 장학금은 갚을 수 없게 돼 유예하였다. 연 수입이 300만 엔 이하면 5년 동안은 유예해준다. 그러나 그 기한도 올해(2014) 9월로 끝난다. 6년 전, 재산압류 관련 재판은 연간 다섯 건 정도밖에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6,000건을 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무섭다. 물론 빼앗기면 곤란한 수준의 저금 따위는 없지만, 그것마저도 압류당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예컨대, 올해부터 지인의 소개로 야마가타(山形)의 한 대학에서도 비전임 자격으로 수업 하나를 열기로 했으나, 교통비가 1회 왕복에 2만 엔 정도가 든다. 계좌를 압류당하면 대학에 갈 돈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가난에 쫓기게 되어 그저 새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대학에 가고 싶다.

 

애초에 일본에서 연구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장애물은 너무 높다. 돈 말이다. 우선 대학에 가는 것은 돈이 든다. 사립대학은 연간 90만 엔, ·공립도 55만 엔이 든다. 부모의 수입만으로 부족하다면 장학금밖에 의지할 데가 없지만, 일본의 공공(公的)장학금에는 빚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 이자를 내야 한다. 학부 4년 동안 돈을 빌리면 대체로 400만에서 500만 엔, 대학원에서 석사(修士), 박사를 하는 5년 동안 빌리면 600만에서 700만 엔이 된다. 양쪽에서 빌린 학생은 졸업까지 1,000만 엔을 넘어버리는 셈이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부터 빚을 졌고, 무이자이기 때문에 아직 좋은 편이지만, 이자를 내는 식으로 돈을 빌린 사람은 정말로 큰일이다. 변제가 밀려 이자만 해도 100, 200만 엔으로 늘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영리한 학생들은 재미있다고 생각할 연구가 있다 해도, 대개 대학원에는 진학하지 않는다. 더 이상 빚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원생이 돼도 똑같다.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도 수업의 지시에 따라버리거나,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인기 있고 취직이 될 것 같은 연구 분야를 선택한다. 이것은 일이며,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학의 전임강사가 된 후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인내한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눈치를 채고 나면 머리가 거꾸로 뒤집힌다. ‘교수에게 칭찬 받고 취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좋은 연구다, 그에 따르지 않는 무리는 독선적이고 어리석은 놈이다.’ 거꾸로다. 하지만 일단 빚에 데고 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을 갚기 위한 일에 묶여버린다.

 

요 몇 년간, 필자는 벗들과 함께 대학의 장학금 문제를 논하거나, 일본학생지원기구에 몰려가보거나, 문부성[일본 문부과학성-역자 주]에 구두로 항의를 하였다. 원래의 논거는 일본의 대학제도가 세계의 상식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유럽의 경우, 대학의 수업료는 단지 생활비가 부족할 때 장학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대출이 아니고, 받는 것이다. 부러울 따름이다. 덧붙여서, 수업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도 지급형의 장학금제도는 충실한 편이다. 일본은 유럽과 미국, 어느 쪽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세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상하다고 할 만큼 심각해진 것이지만, 최근 들어 문제는 더욱 간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마우리찌오 라짜라토(Maurizio Lazzarato, 1955~)부채인간제조공장(The Making of the Indebted Man)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근본은 빚(借金)이다. 당연할지도 모르겠으나, 원래 사람은 사물과 달리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빚이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이며, 사람이 아니다. 잘게 썰리거나 무엇을 당하더라도 불평할 수 없고, 그것이 노예제의 기원이 되었다. 노예가 된다 해도 빚이 있기 때문에 거스를 수 없다. 오히려 자진해서 그에 따른다. 이러한 노예노동이야말로 사람이나 그의 행위를 돈으로 교환 가능하게 만든 것이고, 노동력 상품의 원형이 되었다. 빚은 자본주의를 움직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본주의는 나쁘고, 빚도 나쁘다. 어라? 빚은 갚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닐까. 빌린 것은 갚을 수 없다. 물론 그렇게 말해도 법률적으로 압류당한 것은 압류당한 것이지만, 바로 이 대전제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사상과 행동을 부채와 빚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200년 전, 젊은 날의 쿠카이는 입신출세의 길에서 벗어나 불문(仏門)에 들어섰다. 집안의 호된 꾸짖음을 당하고 어지간한 빚을 짊어진 것이다. 하지만 쿠카이는 전혀 굴하지 않는다. 산에 틀어박혀 때때로 도사(土佐)의 무로토 곶(室戸岬)에 들러 불경을 백만 번 외웠다. 그리고 집필한 것이 바로 삼교지귀. 이 책의 주제는 오직 하나다. 입신출세의 학문인 유교를 비판하는 것이다. 뒈져라, 유교여. 안녕, 행복이여. 반드시 깨닫고야말겠다. 어차피 영화(栄華)는 극에 달해 죽으면 썩어버려 벌레의 먹이가 되어 사라질 뿐이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고 싶다. 부처에게 빚이 있을 턱이 없다. 언제나 잠자리처럼 극락을 향해 나는 것이다. 마침내 잠자리가 혀를 내민다. 빌린 것은 갚지 않는다.

 

그럼, 이제부터 이 책에서 대학의 무상화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왜 대학은 공짜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왜 일본의 대학은 수업료가 비싸고 장학금은 빚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 의문에 하나하나 대답해 나갈 예정이다. 사람이 어떠한 빚에도 얽매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일은 가능할까. 의외로 평소에도 하긴 하지만, 그것을 힘껏 시켜주는 것이 바로 무상의 대학이다. 반대로 사람을 빚으로 얽어매 일에 목숨을 걸게 만드는 것이 학비(수업료+생활비)와 빚이다. 대학의 학비를 무료로 하여 갚지 않아도 되는 장학금을 만들자. 대학의 무상화는 진정한 자유를 손에 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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