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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韓美관계2015. 2. 21. 08:00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1942~19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성 구상(1996)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원래 논문의 본문은 모두 48절로 구성돼있는 데 비해, 이 책은 원래의 논문에서 각 장절의 명칭을 세련되게 바꾸었고 2(2)에 하나의 논문[각주:1]에 해당하는 절을 추가로 삽입하여 모두 49절의 체제를 갖추었다. 논문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미국의 과도정부 구상을 매개로 하여 1942~47년의 시기 동안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이 형성·완숙·변형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복원하였다. 집필뿐만 아니라 저자는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1차 자료의 수집·편집·출판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각주:2] 연구자들 사이에서 한국현대사 연구의 진전을 가로막는 제1요인으로 흔히 자료적 제한이 운위되는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저자의 피땀 어린 노고와 그 결실은 고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갖는 의미를 간략히 짚어보자.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은 20세기의 역사에서 가히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태평양에서부터 구라파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지역을 통치했던 구()제국이 일단 몰락하거나 주춤했고, 식민지·()식민지 지역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분출하였다. 옛 제국이 차지하던 위치는 장차 미국이 대체할 터였다. 한편 지구 각지의 민족운동은 그 내용과 형태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코뮤니즘(Communism)이라는 외피를 입었으며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직간접적인 관련 속에 놓였다. ‘연합국두 수뇌국끼리의 대결의 징후는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전후하여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소 양국은 38도선을 경계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분할·점령하는데 동의했다.

 

한국인은 제국을 상대로 간고한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인들의 활약을 선뜻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 패망 후에도 한인들의 집단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과연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은 무엇이었는가? 그 역사적 전개, 귀결, 성격은 어떠하였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치밀하고 실증적인 대답을 제공한다.

 

우선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 전후 미국의 과도정부 수립구상과 그 실현과정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같은 시기 미국의 대한정책이 형성·전개되는 모습을 해명했고, 미국의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한점령정책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특질을 분석해냈다. 저자는 이 책의 결론부에서 몇 가지의 역사상을 제공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42~해방 이전(1) 해방~1차 미소공위(2) 미국의 중간파 정책과 2차 미소공위 시기(3) 공위의 결렬과 다가오는 단정(4). 물론 각 부는 평자의 시기구분과 엄밀히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다양한 시간대가 부를 넘나들며 중첩돼있다.

 

먼저 저자는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의 졸속성 및 편의성을 강조하는 논리, 준비결여론이라든가 선의의 무지론등을 통박했다. 이는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미국 전후구상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계기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저자의 주장에 잘 나타나는데,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찍이 1942년부터 한반도와 만주를 시야에 넣어 전시·전후 구상을 기획하였다. 저자는 일명 노터 파일, T316등 미국무부 내 자문위의 소위원회 보고서들, P-B81, JANIS 75등 광범한 자료를 통해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구상과 계획으로서는 완숙단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증명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미국의 대한정책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급조된 것이 아니라, 전후 신세계질서' 구상과 밀접한 연계 하에 끊임없이 다듬어진국가차원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미국의 전후 대한구상이 수정을 강요받게 되는모습과 각각의 계기를 분석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세가 요동치는 시기였고, 정책입안 담당자들(워싱턴)과 집행 담당자들(미군정) 사이에도 인식과 수행방법의 차이가 점차 불거졌다. 예컨대, 애초의 미국 대한구상이었던 국제민간행정기구안이나 정무위원회안(일명 랭던구상) 같은 경우 식민지 상태에서 갓 해방된 한국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미군정, 그리고 소련 모두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무부는 모스크바 3상회의[조선임시정부안이 만들어졌다]를 거치며 원안과는 달라진 모습의 대한구상을 준비해야 했다. 이후 미군정은 UN으로 한국문제를 이관시키는 1947년 가을 이전까지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조선 과도정부안을 추진했다.

 

같은 국가의 행위주체라고 해도 워싱턴과 미군정, 군부는 같은 한국문제에 대해 입장차와 태도의 온도차를 보였으며, 심지어 같은 기관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책은 그러한 각각의 이견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는 모습을 계기적으로 포착하는 한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그러한 수렴 과정이 이뤄지는 맥락 또한 들려주었다.

 

이 책은 신탁통치안을 비롯하여 모종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남한에서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신탁통치안의 경우를 살펴보자. 군부와 국무부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후 식민종속지역에서 민족운동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신탁통치안이 식민지역의 구식민모국으로부터의 분리와 미국 영향권으로의 재편입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에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상은 결국 점령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창출하는 작업을 전제한 것이며, 이는 어떠한 형태이든지간에 정부의 구성과 인사의 참여 등이 전적으로 미국에 유리해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미국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소련과의 대화에 임하기 위해 차례대로 고문회의-(정무위원회안)-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남조선과도입법의원-남조선과도정부 등을 조직한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에 한국문제를 UN에 이관함으로써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스스로 파기하였다.

 

이 책은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을 미국의 냉전정책이나 대소전략의 일부가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것으로 자리매김하여 분석했고, 더불어 그것이 한국인의 자주적 국가건설 노력과맞부딪혔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서론에서 밝혔듯, 저자는 미국 대한정책에는 국제적·국내적 측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변화의 원인과 동력은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한반도와 워싱턴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주제인 미국의 한국정부 수립구상과 중간파정책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며, 선행 연구를 비판하는 데에서도 미국의 국제정치사(외교사)의 연구 흐름(전통주의·수정주의) 및 세계체제론적 접근이 가지고 있는 목적론적 맹점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평자는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느꼈다. 저자의 노고와는 별개로, 이 책이 선사하는 역사상에서 한국사회가 선제적으로 창출해낸 모종의 동력이나 행동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신탁통치파동이나 ‘10월 항쟁등은 사후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며 통치주체인 미군정으로 하여금 나름의 대응을 모색케 했다는 데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대한정책이 수정·굴절(UN 이관)되는 계기 중에 한국사회가 하나의 주체로서 개입했거나 선도한 경우가 있었을까? 적어도 이 책만으로는 그러한 질문에 충분히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 정용욱, 「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 -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62, 2003. [본문으로]
  2. 정용욱, 『해방직후 정치·사회사 자료집』 1-12권, 다락방, 1994; 정용욱·이길상, 『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사 자료집』, 다락방, 1995; 정용욱,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의 한국근현대사 관련자료 소장 현장과 이용 실태 조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정용욱, 『미군정 자료 연구』, 선인, 200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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