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5. 11. 16. 14:09

​- 테러의 뿌리를 건드리기 전에,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기 전에 국가는 섣불리 '전쟁'을 선포할 수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 하지만 국가는, 우리가 며칠 전에 보았듯이, 공공연히 전쟁을 선포하고 이를 치른다. 하지만 선포한 이와 싸우는 이가 같지 않다. 이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대답을 요청한다.
- 결국 테러의 기원을 짚기도 전에 전쟁은 수행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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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전쟁,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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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한국전쟁2014. 12. 8. 05:51

 1945923, 남한에 미()점령군이 진주한지 보름여 만에 최고실력자 하지 장군은 38도선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도로차단기 설치를 지시하였다. 그 결과 10월 중순까지 38도선 인근에 약 25개의 도로차단기가 설치되었다. 소련군 역시 같은 지역에 18~20개의 도로차단기를 설치하였다. 미군은 38도선 인근의 도시들을 신속하게 점령하였으며,[각주:1] 미군의 화답에 기초하여 소련군은 9월 초부터 38도선 통행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미소공위 예비회담(46.1.16~2.5)에서 한국인들의 38선 이동문제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장차 미소공위의 운명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논의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946년 여름(5) 콜레라 만연을 기점으로 38선 통행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이 책은 두 개의 시간대를 종축으로 삼고, 한반도를 이분하는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역작이다. 이 책에서 첫 번째 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1945~48년의 기간은 서술의 원경(遠景)으로 제시된다. 이 시기 전후(前後) 강대국의 점령정책과 대한정책, 점령과 철수라는 원심력에 따라서 또는 이에 대응하여 남과 북에서 군()정이 들어섰고 각각은 상호작용 또는 충돌하며 긴장과 적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주연은 어디까지나 미소군정이었다. 두 번째 시간대인 1949~50년의 기간은 서술은 근경(近景)이면서 동시에 이 책의 핵심적 분석대상이다. 이 시기 강도와 규모를 달리하며 벌어진 남북 간의 충돌은 결국 북한의 무장력 강화와 전쟁의 형식을 창출(“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하에서는 기존의 서평을 참고하여 특장과 구성, 자료적 근거 등을 간략히 정리하겠다.[각주:2]

 

 독자는 이 책의 특장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책의 외관이 선사하는 두툼한 두께감에 더하여 이 책의 목적이 이론과 자료에 오도되거나 미혹되지 않고 역사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저작의 실증성을 웅변한다. 저자에 따르면, 책의 핵심 내용은 1999년 완성되었으나, “북한 자료들이 미진한 관계로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저자는 2001년과 2005년에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 미국의 여러 기관을 방문해 미국 자료를 비롯하여 신노획문서 전량과 구노획문서 3분의 1 정도를 검토하였다. 요컨대, 저자는 방대한 다국적 자료를 섭렵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전쟁의 전사(前史)38도선 충돌의 역사를 탐구한 것이다.

 

 둘째, 이 책은 38도선 또는 38도선 충돌을 일관되게 매개로 삼아 미시사를 서술하였다. 다시 말해, 저자는 해방과 함께 찾아온 38도선의 형성에서부터 이를 둘러싸고 전개된 미소간의 상호작용, 미소의 군대가 철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외화(外化)된 남과 북의 충돌, 마침내 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사료에 근거하여 치밀하게 추적하였다. 서동만에 따르면, 기왕의 저작들이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등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을 중시한 데 비해, 이 책은 미시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그간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한 1945~48년의 기간 38도선과 미소점령군과의 관계 및 1949~50년의 기간 38도선 충돌과 북한지도부의 대응을 미시적으로 복원한 셈이다. 이는 메릴, 커밍스, 양영조 등이 선구적으로 수행한 1949~50년 어간의 38도선 충돌 서술을 수정·보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셋째, 전쟁의 성격과 관련하여 이 책은 내쟁 같은 국제전쟁, 외전 같은 동족전쟁이라는 1948년 남북 문화인 108인의 성명을 인용하며, “1950년 발발 시점에서 이미 내전이자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이 혼재돼있었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성격 규정은 서구 국제정치학계의 냉전연구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원했고 미소 중 어느 일방의 책임을 묻는 전통 대() 수정도식을 지양하며, 동시에 내전이나 국제전또는 내전으로 발화해서 국제전으로 비화했다는 설명도 거부한다. 저자의 성격 규정은 당시 한국인들의 정세 판단과 분석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한국전쟁의 근본적인 책임을 전후 강대국에게 돌리는 효과를 가진다. 물론 전쟁으로 치닫는 주요 동력은 내부 갈등이었으나, “그 궤도는 미소가 마련해놓은 것이었다.

 

 이 책은 800쪽이 넘는 분량으로 모두 520장으로 구성돼있다. I서장3장이고, 한국전쟁 연구사, 전재의 개전·성격·형성에 관한 논점들, 책의 구성·방법론·자료를 담고 있다. 박태균에 따르면, 이 서장은 한국전쟁 연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II미소의 38선 정책과 남북갈등의 기원5장이고, 38도선과 미소점령군을 매개로 하여 1945~48년의 역사를 살폈다. II 부는 미소 양국이 우발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교통할 수 있는 수단을 고안했으면서도 동시에 남북의 공식적 교류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상상의 선38도선이 한국인들에게 가한 실제적 힘은 경기도 연백군의 사례 두 가지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III'남북의 정치군사적 갈등과 38선 충돌'IV개전의 결정·공격 계획의 수립·초기 전투는 각각 5장과 4장이며, 단정이 수립된 이후부터 개전초기 옹진전투에 이르기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대를 미시적으로 살폈다. III부에서 저자는 최초로 1949년 한국군의 대북공격 가능성 문제를 천착하였고, 그 결과 도발 받지 않은 불의의 기습남침이나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 ‘개전정보의 실패등 남북이 주장이 바로 이 1949년에 가닿아 있음을 증명하였다. IV부는 이른바 북··소 합의의 내용과 북한의 전면공격의 결정을 묘사했고, 정찰명령 1전투명령 1, 정찰계획등 북한의 의도를 담고 있는 자료를 사료비판하였다. V에필로그3장으로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관련된 주장·의혹(‘정보의 실패’, ‘해주점령설실상을 다루었다.

 

 이 책은 역사주의적인 접근과 연대기적인 접근을 방법론적 핵심으로 삼았다. 저자가 밝혔듯, 역사학의 본령이기도 한 엄격한 자료 비판은 본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이 책은 미··, 즉 한국전쟁의 당사국이었던 3개국의 주요 자료를 비교·교차·분석하였다. 저자는 다양한 언어로 쓰인 다양한 자료를 통해 한국전쟁의 미시사적 사실(史實)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이 구사한 미국자료는 주한미군사령부 정모참모부 및 주한미군사고문단(KMAG)이 생산한 정보보고서(일일정보요약, 주간정보요약, 북한정보요약), 주한미군971방첩대의 정보요약 및 연례보고서, NARA RG 332에 소장된 미소간의 왕래서한, 주한미24군단 군사실 문서철, RG59한국 내정 관련 문서철, RG 319의 육군 정보참모부 문서철, 맥아더아카이브에 소장된 KMAG 보고서·전문철 등이 있다. 저자는 자신이 구사한 소련자료를 크게 4가지로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한국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극비소련외교문서, 냉전국제사프로젝트(CWIHP)가 발행하는 소장처·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련문서, KGB 출신이자 소련문서고를 독점했던 볼코고노프 및 러시아 외무성 출신 학자들의 저작, 한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간행한 라주바예프(주북한 소련군사고문단장을 역임) 보고서. 기왕의 연구가 전쟁의 결정과 관련하여 지도부의 의중만을 쫓았다면, 저자는 소련자료에 드러난 1949년 소련과 북한의 시각과 입장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자료적 진가는 북한자료, 즉 노획문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가 구사한 구·신 노획문서는 대부분이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군이 북한에서 노획한 자료들이 어떠한 여정을 거쳐 미국에 도달했고 그 후 방선주에 의해 세상에 공개될 때까지의 과정을 요약하였다.

  1. 춘천(9월 19일), 삼척(9월 25일), 의정부(9월 30일), 연안·배천(10월 초), 옹진(10월 5일). [본문으로]
  2. 서동만, 「한국전쟁 연구의 새로운 지평」, 『창작과비평』 34(3), 2006; 이완범, 「한국전쟁 발발 직전의 상황」, 『역사와현실』 62, 2006; 박태균, 「다른 방식의 수정주의 뛰어넘기」, 『한국사연구』 136, 20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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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한국전쟁2014. 10. 26. 06:45

 기왕의 625전쟁 연구는, 서구 국제정치학계의 냉전연구라는 관점 위에서 진행된 측면이 강했고, 이는 연구의 경향을 대별하는 지표에서 파악할 수 있다. 바로 전통수정이라는 수식어구가 그것이다. 양자를 대표하는 연구들은 비교적 최근까지 고저를 달리하며 이어졌다. 전자는 전쟁의 발발원인과 책임을 북··소 등 공산권에서 찾은 반면, 후자는 그것을 남한과 미국 등에서 찾았다. 한편 1990년대 이후부터 전통/수정의 이분을 뛰어넘으려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수행됐고, 연구주제의 외연도 크게 확대되었다.

 

 1990년대까지의 625전쟁사 연구는 40년이라는 시간을 종축으로 삼고, ‘전통/수정을 가르는 계선의 양편에서 미국/한국’, ‘관변/민간’, ‘내인론/외인론’, ‘국내전/국제전등 각각이 625전쟁을 보는 입장과 분석의 하위 범주를 달리 설정 했다.

 

 미국의 625전쟁 연구의 경우 한편으로 관변의 전통주의적 시각과, 다른 한편으로 민간의 수정주의적(또는 급진적) 시각이 80년대까지 서로 평행을 달렸다. 양자 모두 종합적인 625전쟁사는 쓸 수 없었는데, 자료나 관심의 초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미군은 포연 가득한 전장의 복판에서 625전쟁의 공식사를 서술했고, 이는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한국에 번역·소개되었다. 이는 전장에서 벌어진 전투와, 개전부터 정전까지의 기간에 집중한 것이었다.

 

 625전쟁에 관한 여러 해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소 정책입안자들의 사전지식·행동·의도, ·소의 대한정책, 미국 국내 정치, 다른 국가들의 대미관계, 625전쟁과 냉전의 상관관계 등이 주로 연구되었다. 전반적으로 냉전적 대결의식 위에서, 주요 행위자를 미국으로 설정한 연구들이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625전쟁을 설명하는데 있어 한국과 한국인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한편 미·소 자료의 공개로 개인·국가·국제체계 등 여러 층위에서 625전쟁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고, 이러한 흐름은 80년대 초반 커밍스를 시작으로 계속 진행되었다.

 

 전쟁발발 직후부터 개전의 책임을 두고 공방이 오갔고, 정전협상 후 각 국가의 625전사는 이후 각국의 625전쟁에 대한 입장의 골조를 구성했다. 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자료 공개가 이뤄지기 전까지, 625전쟁의 원인과 발발에 관한 연구는 이론과 가설의 조합인 측면이 강했다. 80년대 미국에서 625전쟁 관련 저작들이 급증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새로이 공개된 미국자료에 근거한 것이었다.[각주:1] 90년대에 들어와 러시아와 중국의 자료가 빛을 보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625전쟁 연구의 중심이 한국으로 이동했다. 한국인 연구자가 급증했고, 외국학계와의 소통도 본격화됐으며, 세부 주제와 해석의 다양성 또한 예비 되었다.[각주:2]

 

 최근 625전쟁 연구 동향의 핵심 단어는 인간일 것이다. 전쟁 50주년과 60년을 맞이하며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제출되었으나, 그것들 대부분은 여전히 국가의 정당성 문제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전쟁 연구는 정치적·거시적·이념적 차원에서 사회인류학적·미시적·개인적 차원으로 관심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각주:3]

 

자료의 공개

 

 1970년대와 90년대 들어와 공개된 미국과 구소련 자료는 이후 625전쟁 연구의 질적 도약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국외의 수준 높은 연구들이 유입·번역·유통되면서 국내의 625전쟁 연구는 국외의 연구 성과들을 소화하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료의 공개는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구소련과 중국 지도층의 입장·의도·생각을 보여주는 문서 대다수는 묶여있는 상태이고, 현재 공개된 자료들도 위생처리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몇 년 전 공개된 스탈린의 서한은 625전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각주:4] 만일 이 자료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면, 625전쟁의 역사는 다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향후 러시아문서고의 자료들과 중국공산당 당안(檔案)[각주:5] 등이 추가적으로 공개될 때까지 연구자들은 인내하며 추가로 엄정한 사료 비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죽음과 공포의 역사

 

 625전쟁은 약 250만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와 실종자, 피랍자를 낳은 한국현대사 최대의 사건이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죽거나, 자의와는 무관하게 죽음의 공포를 느꼈고, 전쟁 이후에도 그 공포는 개인과 사회의 내면에서 떠돌았을 것이다.

 

 향후 625전쟁 연구에서 시급한 것은 첫째, 전쟁 중 죽은 사람들의 규모와 각각의 死因을 규명해야 하고, 둘째, 전쟁 당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광범한 폭력의 메커니즘과 생산주체, 명령주체를 더욱 확실히 밝혀내야 하며, 셋째, 그러한 죽음의 경험과 공포가 사람들의 신체에 어떻게 새겨졌고, 이후 어떻게 해소·변화·강화 또는 권력에 의해 활용되었나를 분석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은 한국인에게 드리워진 국가폭력의 그림자를 규명하고, 이를 걷어내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물질사료와 사람들이 구술하는 기억과의 교차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며, 사료로는 일기, 문학작품, 영화, 잡지, 신문, 공보처 등 정부기관 보고서, 구술 등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엄연한 실체이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어떠한 실체로서 포착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625전쟁기와 이후 한국인들의 표현방식, 행동양식 등의 표출,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자기)억압·배제를 면밀히 봐야할 것이며, ···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반공 담론의 유포와 메커니즘 등을 추가로 살펴야 할 것이다. 625전쟁기 죽음과 공포의 역사는 국시였던 반공(반북)‘과 닿아 있고, 이는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심성으로 자리 잡았으며 일부가 여태껏 이어진다는 점에서 시급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전쟁으로 형성된 공포의 역사는 625전쟁만의 특질은 아니므로, 625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엽까지의 한국·아시아·세계의 전쟁을 살피고, 각각의 전쟁이 남긴 공포의 심리적·사회적 효과와 625전쟁의 그것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1. Rosemary Foot, "Making Known the Unknown War: Policy Analysis of the Korean Conflict since the Early 1980s," Michael J. Hogan ed., America in the World: The Historiography of American Foreign Relations since 1941,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271~272쪽. [본문으로]
  2. 이완범, 「한국 국내의 625 연구 동향」, 『군사』 55,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5, 44쪽. [본문으로]
  3. 박명림은 이러한 연구 경향을 ‘인간 문제의 등장’이라고 표현했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나남, 2011, 291쪽. [본문으로]
  4. 클레멘트 고트발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스탈린의 서한. 스탈린은 서한에서, 소련의 UN 안보리 불참과 복귀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http://digitalarchive.wilsoncenter.org/document/112225 [본문으로]
  5. 중국기록학용어로 국가 기구, 사회 조직 및 개인이 정치·군사·경제·과학·기술·문화·종교 등의 활동에 종사하면서 직접 생산한 기록 중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자·도표·음향·영상 등 여러 가지 형식의 역사 기록을 말한다. 또한 당안은 1949년을 기점으로, 이전에 생산된 것에는 ‘역사당안’, 나중에 생산된 것에 ‘현행당안’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네이버지식백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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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한국전쟁2014. 9. 4. 17:28

이 책은 6·25전쟁(이하 한국전쟁”)의 역사를 다룬 본격적인 연구서라기보다는 사회과학의 이론과 설명방식을 빌려 기존의 한국전쟁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가적으로 공인된 서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전쟁의 소주제를 갈무리한 하나의 비판이자 문제제기이다. 오늘날 저자가 책머리에 쓴 바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대다수 한국인에게 한국전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설명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은 2000년에 초판이 발행됐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1차 서해교전(1999), KAL기 폭파사건(1987), 아웅산 폭파사건(1983)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해 세간을 놀라게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전쟁 당시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다고 하긴 어렵겠으나, 한국전쟁의 귀결이자 여전히 지속 중인 휴전체제(또는 분단체제)”는 그러한 사건들이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조건 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알려준다.

 

 책에 대한 비평에 앞서 저자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저자 김동춘의 지향과 실천이 갖는 파급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는 1977년에 대학에 입학한 이후, 19844·19를 다뤄 사회학 석사학위를, 고교 교사를 거쳐 1993년 한국의 노동자를 다룬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 취득 이전부터 여러 학회와 학술지를 도맡으며 약 30여 년간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항상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 수시·고정 칼럼을 기고했고 열다섯 권 이상의 단독저서는 저자의 열정적·지속적인 사회참여를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시사저널교수신문등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고, ··3개 국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저자는 2013년에 세 권의 책을 냈는데 모두 국가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그 중 한 권은 한국전쟁과 학살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연장선상에 있고, 저자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성장 및 활동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천천히 뜯어보자.

 

 이 책은 모두 다섯 부로 구성돼있다. 1(또 다른 전쟁)는 이 책 전체의 서론 역할을 맡고 있으며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의 시각이나 문제제기가 어떻게 이뤄져왔고 그 각각의 문제는 무엇인지 일별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1부에서는 이 책을 관통하는 두 가지 주요한 이론인 정치의 연장·과정으로서의 전쟁계급정치로서의 전쟁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2~4부는 이 책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차례대로 피란, 점령, 학살을 열쇳말 삼아 한국전쟁을 다시금 써내려갔다. 2~4, 나아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찌 보면 앞서 설명한 이론적 자원은 물론이려니와 당시 수집할 수 있던 갖은 문헌·구술 자료를 구사해 공식 서사 내지 기존의 한국전쟁사 서술이 간과한 부분이자 공백, 소수의 목소리고통 받는 육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좀체 드러나지 않았던 힘의 장()과 힘의 관계를 비로소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국가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다소 선언적인 주장을 통해 한국전쟁을 다시금 바라보게끔 요청한 이 책의 내용을 끝맺음하였다.

 

 먼저 이 책에서 저자가 구사하는 이론적 자원과 그 쓰임의 형태에 관해 언급하겠다. 이 책은 적어도 네 명 이상 개별 논자들의 이론을 무기로 삼고 있다.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뒤르켕(Durkheim), 푸코(Foucault), 엘리아스(Elias)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18~20세기를 살아간 구라파의 지성들이었고 그들의 논변은 철학·정치학·사회학·군사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을 넘나들며 오늘날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전쟁을 다룬 이 책에서 각 이론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쓰였는지에 관해서는 설명이 소략한 편이다. 예를 들어, 클라우제비츠와 푸코는 똑같이 정치(적인 것)”에 관해 사고했으나 그 안에 담긴 기의나 쓰임은 분명 다른 맥락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정치를 푸코의 정치나 나아가 한국전쟁에서의 정치(의 연장)”와 관련지어 설명·비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저자의 정치에 관한 정의는 매우 짧다. “계급에 관한 부분도 앞서와 같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저자는 오늘날까지 논의되는 계급과 같은 논쟁적인 개념을 선행 연구들을 빌려 그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자칫 역사적 개념에 대한 몰이해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사회과학 이론서는 아니다. 그러나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갖가지 개념을 계속적으로 도입해 역사를 서술했던 점을 고려할 때, 평자는 이 책이 각각의 이론이 출현한 맥락, 적용된 맥락, 산출한 효과 등에 대해 더욱 친절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평자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1, 나아가 책 전체의 이론적 완결성에 조금이나마 덧대기를 바라는 소박한 제언에 불과하다.

 

 2~4부에서는 각각 피란, 점령, 학살을 핵심주제로 하여 기존의 형태와는 분명 차별화된 한국전쟁에 관한 설명방식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각각의 핵심주제는 사회사 또는 심성사라는 측면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게 해주는 의미 있는 연구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학술연구는 고사하고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여러 자료를 수집·활용하여 당시의 역사상을 재구성한 이 부분은 향후 해당주제를 다루려는 연구자에게도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페렌바흐(Fehrenbach)나 하루타카(佐佐木春隆) 등 한국전쟁의 이면을 다뤘던 오래된 연구 성과나 민족의 증언, 압록강변의 겨울, 수강생들의 보고서 등 구술, 조국과 같은 소설이나 역사 앞에서와 같은 일기를 자료로 구사했다. 그러나 각 자료에 대한 해제는 서술하지 않았다.

 

 저자는 2부에서 이승만과 핵심 권력층등 이른바 도강파와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한 잔류파와 같은 기존의 도식을 활용하였다. 기존 서사는 언제나 전자에게 적을 피해 달아났다는 이유로 정당성을 부여했고, 후자에게는 빨갱이요 기회주의자라는 도무지 뗄 수 없는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그대로 받지 않고 비틀어 전자는 무책임의 정치를 몸소 실현한 세력이었고, 후자는 (인민군보다는 미군의 폭격을 피해야했듯)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3부는 한국전쟁 초반 북한의 서울점령 및 이후 유엔군 점령지역을 포함한 지역에서의 실상을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려냈다. 1951년 휴전협상이 벌어지기 전까지 전선은 전황에 조응하여 실로 급격하게 요동쳤고, 그 속에서 국가는 ()”으로 거듭나 새로이/다시금(收復) 얻은 땅에서 벌어진 인민재판부역자 처벌을 수수방관하거나 부추겼다. 4부는 학살을 유형화하여 설명했고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전근대적·탈식민적 학살의 사례와 비교함으로써 그 특징을 제시했다. 2부와 3부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났다고 보기 힘든 전쟁의 잔혹상이 비로소 이 지점에서 작전/처형/보복이라는 다양한 유형을 통해 제시됐다. 저자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이나 보도연맹의 사례를 통해 학살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역사 정리도 사회 통합도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피난사회와 같이 새로이 제안한 개념의 적실성, 북한체제의 문제점을 과도하게 소급한 점, 이승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점, 남북한 인민(“코리언”)을 너무나 수동적으로 묘사한 점 등 이 책은 아쉬움과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현대 한국과의 관련 속에서 보라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하며, 따라서 이 책은 한국전쟁의 제()측면이 오늘날까지 맞닿아있음을 잘 설명해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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