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봄의 Red Famine을 훑고 북한사학도로서의 감상

1. '역사'는 서사narrative로 구성되고, 서사를 생산하는 데 가장 핵심은 역시 돈이다. 책에 잘 나와 있지만, 소련에서 미주로 건너간 이산diasporic 우인들이 캐나다 토론토와 미국 하버드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기근)연구를 수십 년째 수행하고 있다. 대충 스탈린 개객기, 소련 개객기, 나치 개객기 (나치는 정말 죽여 마땅한 놈들이다) 하면 그랜트 따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 이 넓은 미주에 '북한 연구소' 하나 없는 사실은 무척이나 웅변적이다.

2. 자료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고, 이러한 자료가 증거성을 가지려면 논리적이고 정황적으로도 맞는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 스탈린이 기근을 이용해 "우인들을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는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애플봄이 내놓은 서사가 치밀한 역사적 논증이라기보다는 헛소리 또는 정파적 이데올로기에 가깝다는 점에 대해서는 J. Getty의 2018 논문 (
https://doi.org/10.1017/S0960777318000322)을 참조하라. 이는 자료 없이 역사적인 주장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물론 미국의 북한사학계에서는...

3. 애플봄의 영어는 무척 뛰어나고 고급지며 가독성이 좋다. 하지만 이 서사에서 볼셰비키는 초지일관 두드러진 폭력성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무시 및 민족주의 압살 기획, 곡물 징발 외에는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는 잔학성만을 보이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레닌에게는 "피해망상적paranoid이고, 음모적conspiratorial이며, 근본적으로 비민주적인 자"라는 설명이 붙는데, 이 지점에서 책을 덮고 싶었으나 더 붙잡고 있었던 게 실수였다. 책의 중후반부는 우인들에 대한 소비에트의 가혹한 조치들과 이에서 비롯된 가공할 모습들로 빼곡하다. 식인食人에 관한 정밀한 묘사는 스탈린/볼셰비키/소비에트에 대한 특정한 판단을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우인들의 질곡은 나치 치하에서도, 다시 소련 치하에서도, 탈사회주의 시대에서도 계속 된다.

4. 이 책은 연구서가 아닌 실화nonfiction이고 따라서 (굳이 읽겠다면) 역사적 주장과 논증, 이를 위해 필요한 자료 구사와 서사 구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요인들을 고려하며 읽는 게 유익하다. 우크라이나 민족이 겪어야 했던 끝없는 질곡이 너무 빼곡하게 나와 있고, 기근을 학살로 둔갑하여 이를 소비에트에 전가하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명명백백해서 꼼꼼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15장 '역사와 기억에서 홀로도모르Holodomor'는 이산 우인들이 어떻게 미주에서 우크라이나 (기근)연구를 수행했고, 로버트 컨퀘스트 등 전체주의 학파의 연구가 어떻게 이와 공명했는지 등 기근에 대한 지성사적이고 연구사적인 궤적이 잘 서술되어 있어서 그나마 이번 독서에서 내게 유익한 지점이었다.

5. 나의 관심사는 390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기근 피해자라는 참담한 사실을 두고 스탈린이나 당대 볼셰비키를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역사를 이해할 때 어느 서사의 결을 따르고, 그 서사는 어떠한 자료에 대한 어떠한 해석에 입각해 있는지 비판적으로 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역사학의 기본 중 기본을 철저히 따르고자 할 뿐이다. 그렇다면 볼셰비키 지도부는 '고의적'으로 우인들을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기근을 '이용'했나? 아쉽게도 애플봄의 저서만으로는 증거가 무척 불충분해 보인다. 물론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겠다. 그러나 역사학적으로 이는 근거가 빈약하다. 아울러 저자가 인정하듯, 앞의 진술을 지지해 줄 자료는 여태껏 발견되거나 남아있지 않다. 물론 우인뿐만 아니라 연맹 차원에서 기근으로 숨진 억울한 사람들에게 애도를 보낸다.

6. 논의를 갑자기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이긴 한데, 애플봄 식의 논리를 따르자면, 북한에 대놓고, '고의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국련과 미국은 스탈린이나 볼셰비키 같은 존재가 아닌가? 물론 나는 북한을 좋게 보지도 않고, 지지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스탈린이 강력한 중공업화를 목표로 농촌을 수탈하는 과정, 그리고 우인들을 '기근으로 혼내주겠다'는 가설적 주장을 미국의 대북관계에 적용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사고실험이 될 수 있다. 아주 간략하게, 삼각동맹 유지와 중국의 발흥 억제을 골자로 동북아 현상유지라는 목표를 지닌 미국의 국정운영에서, 과거 우인들처럼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생존을 위해 핵실험도 서슴치 않았던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체벌'이 내게는 위의 진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볼셰비키 지도부(=미국)는 우크라이나(=북한)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한 적이 있을까? 감상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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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etyakov 2018.11.12 0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글쎄요. 미국-북한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관계를 동렬에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주권 국가간의 대립이고, 후자는 소연방 내에서의(그리고 사실상 러시아민족 우위 체제에서, 개별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민족간) 대립이니까요.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의 내적인 이유야 어떻든 다른 국가들의 핵무장을 불러오고 동북아 정세의 불안을 강화(예를 들면 적화통일)시키니 미국이 난리를 치는 것인 반면, 후자의 우크라이나 민족은 러시아 민족이나 국가를 위협하지는 않죠. 러시아 민족이 나머지 민족을 억압하는 러시아 제국 체제(나, 사실상 그것을 이어받은 레닌 체제)를 위협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모를까.

    2. 사실 저도 소련이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한다는 식의 민족주의에 의거한 증오심을 바탕으로 기근을 이용하고 공격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회주의 체제가 그러한 기근에 대처하는 방식이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의 그것보다도 나을 것이 없었고, 게다가 사실상 러시아민족 우위의 체제에서 다른 민족이 간접적 차별대우를 받았음은 분명합니다. 이를 고려하면, 속칭 말하는 포스트모던주의적이나 광의의 권력관계에 의거할 때 소련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기근 문제에 대해 관심을 덜 가졌고, 대처도 러시아민족의 처우개선보다는 덜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존 역사학자들이 우크라이나 기근을 통해 소련을 성토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Л 2018.11.12 0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흥미로운 답변 감사합니다. 1번의 지적에 동의하며 (저도 지적하신 바를 충분히 이해한 채로 쓴 것입니다), 2번의 판단에도 일정하게 동의합니다. 그러나 쉴라 피츠패트릭이 지적한대로, 역사가의 임무는 옹호나 비난(성토도 포함이 되겠지요) 이전에 이해에 있다고 봅니다. 소비에트기근에 관한 이해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는 부정적입니다.

Introduction: the Great Purges as history


Each says something about the nature of the world, and, though individually he adds little or nothing to our understanding of it, still from the combination of all something considerable is accomplished. - Aristotle

There are a number of speculations as to why Stalin carried out this bloody operation. Fainsod; Isaac Deutscher; Brzezinski etc. ... Both versions assume that the party (and police) bureaucracies were efficient and obedient ... In its investigation of the structure of the Bolshevik Party in the thirties, this study questions the applicability of the totalitarian model (2-3)

Rethinking Stalinism: A weak tradition of source criticism and a developing historiography on related problems both suggest the need to reevaluate the thirties. ... Personal accounts are valuable sources and provide vivid descriptions of the experiences and psychological impact of events of the persons who wrote them ... Yet historians have been justifiably skeptical of memoirs and autobiographies. ... The inaccessibility of archival sources on the Great Purges has led to a 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 and to something less than rigorous methodology. (4-5)

This study examines the structure, organization, composition, and evolution of the Soviet Communist Party from 1933 to 1939. ... [T]he focus is the relationship between central and peripheral party organizations. ... The findings suggest that the party in the 1930s was inefficient, fragmented, and split several ways by internal factional conflict. ... Indeed, all the political events of the thirties were not parts of the same phenomenon, and it is a basic assumption of the study that an analysis of the party's structure can help avoid such reductionist fallacies. ... Although he was certainly the most authoritative political actor of the period, speculations on his mental state, private attitudes, and prejudices are baseless, given the lack of primary evidence on these matters. ... Accordingly, the work is not an exhaustive history of the Great Purges, for only access to Soviet political archives will allow historians to write definitive works on the event. (6-7)

Primary sources: 1) archival material from the Smolensk Archive, a collection of Communist Party records from the Western Region (oblast') from before the 1917 Revolution to about 1939. ... 2) printed documents, published speeches, decisions, resolutions, and so forth. ... A careful reading of party decisions alone has shown interesting conflicts and even divergent points of view within the Stalinist leadership at the time of the Great Purges. ... [A]lthough Soviet documents are often devilishly selective and full of omissions, they are important indicators of what the leaders believed to be problems and of what they wanted done - considerations of no little importance in such a mystery story. (7-8)

Nothing in the following pages is meant to minimize, justify, or excuse the terror, notwithstanding the terminology and rhetoric that close reliance on contemporaneous texts forces one to use. Certainly, any attempt to excuse such violence would be pointless and morally bizarre. ... Although the moral questions seem clear, the historical ones do not. If it were enough to fix guilt or blame, there would be no reason for any historical research. To ever understand why something happened, it is first of all necessary to know what happened.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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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believe in the power of science,

Walking vigorously through life,

And we hope that our descendants

Will remember us with kindness,

Those who put their labor in mining.


С верой в силу науки мы бодро Совершаем свои жизненный путь, И потомкам, надеемся твердо, Нас придется добром вспомянуть Труд вложивших свои в Горное Дело.[각주:1]


우리는 과학의 힘을 믿는다.

인생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며,

우리의 후손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광업에 노력을 쏟아부은 우리들을.


1925년, 팔친스키(Петр Акимович Пальчинский, 1875~1929)가 광업연구소 소속 기사들을 위한 만찬장에서 낭송한 시의 일부의 일부.


영어판(1993), 31쪽; 노어판(2000), 56쪽; 국어판(2017), 67쪽.

  1. Централь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архив Октябрьской революции (ЦГАОР), ф. 3348, оп. 1, ед. хр. 793, л. 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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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перед

생각/傳 2015.12.29 09:24


20151229, 스몰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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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far the Soviet regime might be considered to be a modernizing regime is itself problematical. Alongside its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achievements, the Soviet regime was, in many senses, profoundly antimodern - the restriction of civil society, the impingement on any sense of citizenship, the impediments to free communications, the restriction on individual freedom and free expression. These negative features of the Soviet model cannot be dismissed as part of a general equation of plus and minuses. There is a real sense in which these negative aspects seriously restricted development in all other spheres, and indicate how far the Soviet regime profoundly misunderstood the nature of modernity.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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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헌법 124조는 "인종적 또는 민족적 특성에 의한 어떠한 종류의 직간접적인 특권과 마찬가지로, 인종적 또는 민족적 배타성, 증오나 경시는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산주의적 교육을 제공하고 모든 소비에트 국민에게 올바른 세계관을 심어주면서 교육은 이러한 비차별적인 법적 틀 아래 모든 민족을 소비에트화하는 한 수단으로 기여한다.


신연자, 1989, 〈소련 내의 한인과 그들의 문화〉, 서대숙, 이서구 옮김, 《소비에트 한인 백년사》, 태암,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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