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7.09.03 서울통신 - 포기
  2. 2016.08.13 서울통신 - 반동
  3. 2016.07.29 서울통신 - 유학
  4. 2016.07.24 서울통신 - 선택
  5. 2016.07.24 서울통신 - 외모
  6. 2016.07.22 서울통신 - 습기
  7. 2016.07.20 서울통신 - 카페
  8. 2016.07.19 서울통신 - 어른
  9. 2016.07.18 서울통신 - 비참
  10. 2016.07.17 서울통신 - 여행
  11. 2016.07.12 서울통신 - 뱃살
  12. 2016.07.11 서울통신 - 회의
  13. 2016.07.10 서울통신 - 더위
  14. 2016.07.10 서울통신 - 0

 포기란 좋은 것이다. 포기할수록 삶이 여유롭다. 어떤 이의 "내려 놓으면 편하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예컨대, 오늘 4년 만에 만난 동기는 전공 공부를 포기했기 때문에 잘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이든 출산이든 육아든 가정을 이루길 포기하면 윤택하게 잘 살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포기 할수록 많은 것을 얻게 되고 좋다.

 다만 규범적인 시간성(normative temporality)에서 일탈함으로써, 즉 포기함으로써 같이 포기 되는 기회비용을 상쇄할 행위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사회인 것이다. 자신의 재생산마저 포기해 버리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다. 진정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엿같은)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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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왜 반동적이 되는 걸까? 여기서 반동적이라 함은 기존의 질서나 권력관계를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옹호하고 거기에서 떨어져 나오는 떡고물을 즐기는 자세를 일컫는다. 가만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반동적이다.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 이는 좋게 말해서 '현실적'이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다. 반동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글을 쓰는 나는 남자이고, 한국 사회에서 학력이 높고, 고급의 유휴노동력이다. 자연스레 여자, 학력이 낮은 사람, 유휴노동력 가운데 대다수는 나를 반동으로 볼 터이다. 나의 사회경제적인 처지가 그들보다 조금 더 낫기에, 정작 타도해야 하는 적인 고용주에 관해선 모두가 함구하고 나를 희생양으로 만들기가 재미있고 가능성 높고 수월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반동적이라는 판단은 섣부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바는, 알게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반동으로 굳혀주는 찰흙과 같은 역할을 모두가 수행한다는 것이다. 非-반동으로 가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인 '교육'은 애초부터 이땅에 없었고, 교육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지배층의 '선동'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으니 어찌 이를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 대다수가 대다수에게 반동적일 수 있음을 인식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적에게 공격의 예봉을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지배층은 이를 선동이라고 부르고, 선동을 하는 사람에게 '외부 세력'이라느니 '좌익 사범'이라느니 하는 단어를 준비해 놓았다. '빨갱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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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은 숨쉬기와 같은 것이다. 생명체, 특히 사람을 포함한 동물이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더군다나 공부를 업으로 삼으려는 내게 유학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숨쉬기와 같이 당연한 것이라고 해서 설명이 필요치 않다는 말은 아니다. 재밌는 사실은, 유학에 관해 우리는 너무나 잘 아는 듯이 살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작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이 이내 드러난다는 점이다. 김종영 선생이 2015년에 쓴 책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 동시에, 이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거의 최초의 작품이다. 전문용어로 '깃발 꽃기'라고 한다.

 유학을 가게 된다면, 학술을 위한 주언어를 현지의 언어로 바꿔야 한다. 이를 선천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 있고, 후천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사람이 있다. 전자가 낫고 후자가 그렇지 않다는 얘길 하려는 것이 아니다. 후자의 경우, 유학을 가면 전자의 경우보다 성취가 적고 고생만 할 공산이 크다. 그럴 경우엔 유학을 가야 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어도 이땅에서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유학을 가서 여유를 가져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짜피 죽기 전까지 그렇게 지낼 거면, 차라리 유학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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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형님들과 만났다. 가장 큰형님께서 우리에게 '너네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니'라며 질문을 던지셨다. 헬조선처럼 나이, 성별, 학벌, 재력 등 온갖 것들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선택은 단연 중요하다. 단 한 번의 선택이 실로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그 결과가 참혹하거나 비참하지만.

 항간에 떠도는 말 중에 'BCD'라는 게 있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오직 선택(choice)만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무슨 개소리인가, 싶다가도 이내 수긍하게 되는 묘한 마력을 지닌 말이다. 그렇다면 선택을 잘 해야 하겠다. 특히 헬조선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우리라면! 한 가지 비법을 알려드리겠다. 선택을 할 때에는 자신이 정말로 또는 아주 조금이라도 더 끌리는 것을 선택하라. 이때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비슷하리만치 비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더 끌리는 선택지를 택하라. 그리고 또 선택하라. 언젠가는 이 지루한 선택의 연속도 끝날 것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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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는 생각과 달리 그렇게 큰 권력이 아니다. 판이 이미 너무나 양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그것을 움직이는 자본에 의해 이 사회는 조종되는데, 그 속에서 잘난 외모는 방송 등 매체를 통해 우리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성형이라든가 분장 등 이러저러한 수단을 거치지 않으면 방송에 나오는 만큼의 외모를 얻기가 힘들다. 설령 그러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방송에 나오지 않을 정도라면 사실은 잘난 외모가 아니다. 따라서 외모 자체만으로는 큰 권력이 아니고, '잘 생긴' '예쁜' '이목구비가 뚜렷한' 등의 수식어가 붙는 외모만이 일종의 권력으로서 행사가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누구나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외모에 집착하는가.

 결국 우리는 운을 좋아하고 이를 좇는 것 아닐까? 잘난 외모는 전적으로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공부나 체력 등 사람이 노력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데 반해, 외모는 도무지 노력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만이 멋드러진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쳇말로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개탄하면서 내심 잘난 외모를 지향하는 세태는 운이 좋은 사람을 애호하는 우리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아닐지. 운이 나쁜 걸 두고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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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온천지가 습하다. 습기로 가득차 있다. 끈적끈적함이 우리의 심금을 울릴 정도이다. 보통 감탄은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하게 마련인데, 요새 더위는 감탄을 연발케 하니 심금을 울리게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열사의 나라에서는 더위를 피할 수 있다. 그늘에 들어서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단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도무지 그게 되질 않는다. 이미 우린 습기의 지배 하에 놓여있다. 그 지배란 무척 잔혹한 것이어서 이미 이에 굴복한 회사원들은 긴팔 셔츠에 긴바지를 빳빳하게 다려입고 오늘도 돈을 벌기 위해 회사로 가서 젊음과 인생을 고스란히 바친다.

 습기를 물리치기 위해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첫째, 자주 씻는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물낭비를 불러올 터이다. 둘째, 에어컨을 튼다. 하지만 이 또한 에너지 특히 전기를 과도하게 쓰니 적당한 답은 아니다. 셋째, 선풍기를 튼다. 글쎄, 더운데 선풍기를 틀면 선풍기와 나 사이에 놓인 공기 속의 습기가 바람을 타고 내 피부에 닿지 않을까? 넷째, 여행을 간다. 물론 어디까지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의 얘기이다. 결국 우리가 지구를 아끼고 돈을 적게 쓰면서 습기를 물리칠 방법이 거의 없는 셈이다. 그냥 여름이 얼른 가길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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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에는 카페가 참 많다. 특히 서울대입구역에는 더더군다나 그러한데, 지금 내가 있는 카페에서 전방으로 6개 정도가 보인다. 각 가게마다 최소 30명씩만 수용할 수 있어도 180여 명이 시간을 보내고 소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게다가 전기콘센트며 무선 인터넷이 제공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낼 수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가 안다. 하지만 카페에서 주문을 받는 사장님, 아니면 알바들의 처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쓰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카페의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카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와 그것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커피콩은 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통합될대로 통합된 세계경제 안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커피를 소비하기 십상이다. 이는 제국주의를 추인하는 일일까? 아니면 커피는 마셔야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커피를 싼 값에 제공하는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가능한가? 또는 아예 커피를 안 마시면서 스스로 만족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간에 리필을 무료로 해주는 카페가 좋고, 이왕이면 커피를 생산하는 노동자 인민을 떠올리게 하는 카페는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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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없어진 시대다. 특히나 이런 기괴한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농경사회에서 어른은 계급을 막론하고 어른 아닌 자들에게 힘깨나 행사했지만, 산업사회에서 어른은 노동자의 경우, 그저 팔 수 있는 신체적 역량이 한계에 다다른 고물에 다름 아니다. 자본가의 경우는 좀 다르다. 자본가의 '어른'은 만인이 공경하며, 봉건시대 왕이나 황제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어디까지나 자본가로서의 제일 자질인 '자본'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 있을 때까지 만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없어진 지금과 같은 시대에 자본가가 아닐 경우, 과거의 '어른'이 가지고 있던 덕망, 예컨대 긴 안목, 여유, 인정 등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바로 우리가 그런 덕망들을 발양해야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관계 속에서 그런 덕망을 키울 조건이 애초에 봉쇄된다. 따라서 이는 우리의 능력 여하의 문제라기보다는 애초에 환경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시대적 탓이 크다. 이러한 속에서 대개는 쉽사리 우울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이내 어른이 되고 생을 마감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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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참하게 산다는 것은 죽음에 다가가기 바로 전 단계나 다름없다. 죽으면 그 순간 그/녀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적어도 그/녀의 관점에선 소멸된다. 비참은 그러한 최종단계를 예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두려운 것이다. 역사는 무수히도 많은 비참의 실례를 제공해 주었다. 혹자는 이를 보고 희망을 얻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비참을 보면서 비참해질 것이다.
 비참한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말아야 한다. 그가 느끼는 비참은 그 아니면 도무지 해소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묵묵하게 있는 것이 상책이다. 그나마 비참한 누군가를 덜 비참하게 만든다. 때론 내가 비참을 느낄 때가 있어서, 삶이 너무나 지겹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아직 바로 삶을 포기하고 싶진 않지만, 이 지구상에 비참이 너무나 만연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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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는 시간, 돈, 힘이 든다. 세가지 중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물론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이동도 숙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적극 소외할 때 돈이 나오기 때문에, 여행에서 돈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소외시켰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힘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왜 가는 것일까?

 개인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 된다. 이 말은, 여행을 갔을 때 낯선 곳에서 그 사회에 속한 나를 발견할 수 없고, 따라서 사회적 관계의 바깥에 놓이게 된 낯선 사람이 되어보는 체험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진정한 나"라는 개념은 애초에 여행사에서 만든 것으로 봐도 무방한데, 허구한 날 여행을 가더라도 "진정한 나" 따위는 도무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돈, 힘이 허락한다면 여행을 가도 좋고 집에서 퍼질러 자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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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뱃살이 쳐져있다. 이건 부끄러운 것일까, 아니면 이걸 부끄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환경이 잘못된 것일까? 난 후자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전자의 느낌을 덜 받기 위해서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헌데 운동이 문제가 아니고 덜 먹어야 한다. 칼로리, 대개는 지방일 텐데, 좌우간 그것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모양새에 도달했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참치 뱃살은 즐거이 먹고, 돼지 뱃살은 못 먹어서 안달일 때가 많지 않은가? 나의 뱃살은 부끄럽기 십상인데 동물의 뱃살은 우리의 뱃살에 보탬이 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메를로퐁티 아재는 '삶이 곧 폭력'이란 식으로 말을 했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나 또는 다른 것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의 연속이란 말이겠지. 그렇다고 채식주의로 갈 순 없으니 이것 참. 오늘도 뱃살을 폭력적으로 째려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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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란 쓸 데 없는 것이다. 회의를 통해 참신하고 획기적인 생각을 도출하는 것이 빠를까, 아니면 혼자 가만히 있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게 빠를까? 분명한 것은, 후자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진 않더라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데 비해 전자는 스트레스만 받고 덤으로 욕도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회의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 회의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회의가 즐거울 수 있다.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일 높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그가 하는 말은 복음이자 진리로 둔갑한다. 그 사회가 아무리 민주적일지라도, '위원장님 말씀이 물론 맞지만...' 또는 '외람되지만...' 등의 사족을 달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따라서 일을 잘 진행하려면 회의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회의를 아예 표기할 순 없겠다. 법인카드를 쓰고자 해도 구색을 갖춘 회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의는 맛있는 식사를 할 때 사전조건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닐까? 맛있는 걸 먹기 위해 회의를 한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별로 의미가 없다. 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중에라도 위원장이 되어 회의를 열 때, 꼭 맛있는 걸 얼른 먹을 수 있게 해주는 편이 덜 욕을 먹는 셈이다. 차라리 그 위원장이 안 되는 것도 하나의 묘수이다. 회의는 식사 전 운동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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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기에 덥다지만, 더워도 너무 덥다. 정도를 지나쳤다. 우선 바깥에 나가야 할 경우, 피부로 내리쬐는 자외선이 매섭다. 이 보이지 않는 광선은 우리에게 암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를 막기 위한 자외선 차단제가 몸에, 특히 피부에 안 좋다는 보고도 있다. 대체 어쩌라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나가보자. 땀이 나기 시작하고 길은 막힌다. 2014년 서울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린 동네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짜증을 넘어 이내 체념하게 된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는 시원한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기서 냉방병을 앓기도 한다. 사는 게 참 어렵다.

 잘은 모르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더 덥단다. 좋다, 지구온난화를 막자. 어떻게? 산업구조를 바꾸고 소비습관을 변화시키는 일이 선결되어야 하겠다. 그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평범한 시민이라면 후자에 귀 기울일 터이다. 그런데 소비습관을 바꾼다고 정말로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의심스럽다. 에어컨 덜 쐴 수가 없다. 너무 덥기 때문이다. 몸이 체열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나 같은 사람은 선풍기가 최소한 두 대는 있어야 한다. 어서 여름이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이제 막 7월이라니 무섭다. 다들 더위를 잘 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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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두 문단 정도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다양한 주제를 다룰 것이지만, 대개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외에 신경 쓰지 않겠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고리타분한 이념에서부터 사랑, 연애, 젊음과 같은 결코 풀리지 않는 주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봐주면 좋겠다. 이왕 쓰는 거, 인쇄물로 나와 세상의 빛을 쬐었으면 좋겠다.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좋긴 뭐가 좋을지.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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