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2016. 10. 6. 02:18

일시: 2016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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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유권자들은 꽤나 근사한 한 해를 보냈다. 그들이야말로 콜롬비아의 평화 합의를 거부했고, 영국을 유럽연합으로부터 떼어냈으며, 민주주의를 줄여버린 태국헌법을 지지했고, 헝가리에서는 난민을 막는 정부의 계획을 뒷받침한 주역이었다. 하지만 정당한 결과를 위해 필요한 유권자의 수를 확보한 선거는 하나도 없었다.

 국민투표는 이러한 흐름의 세부를 결정하였다. 유권자들은 자국 정부의 계획들을 뒤엎었고, 각자의 권리를 약화시켰으며, 정치적 위기를 촉발시켰다. 하지만 이 국민투표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정치학자들이 국민투표를 지저분하고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이유를 증명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트리니티 컬리지 더블린의 정치학자 마이클 마쉬(Michael Marsh)는 국민투표가 과연 좋은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대개는 결코 아니죠.”

 이같은 투표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대중적 통치로 표상되지만, 학계의 연구는 그러한 투표가 민주주의를 수행하기보다는 종종 전복시킴을 밝혔다. 투표는 변덕스러운 경향이 있는데, 이는 투표가 결정 그 자체의 가치뿐만 아니라 무관한 정치적 변화, 심지어는 콜롬비아처럼 날씨에도 달려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거의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정치적 메시지에 의존한다. 문제는 그러한 정치적 메시지가 유권자의 수중이 아닌 정치엘리트의 손아귀에 권력을 쥐어준다는 점이다.

 런던경제대학의 연구원인 알렉산드라 싸이런(Alexandra Cirone)이는 무척 위험한 도구인데, 정치인들은 그들이 이기리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해서 이걸 쓰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그들은 이기지 못하고, 국민투표는 정치적 문제를 해소한다기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창출한다. 투표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왜 수다한 전문가들이 회의적인지가 명백해진다.


어려운 대답에 대한 지름길

 어떠한 국민투표든지 간에 유권자들은 문제에 직면한다. 그들은 어려운 정책선택을 단순한 예 또는 아니오의 문제로 만들어야 하며, 심지어는 전문가들이 이해를 위해 수년을 투자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결정의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은, 정치학자 아서 루피아(Arthur Lupia)와 매튜 맥커빈스(Mathew D. McCubbins)지름길이라고 명명한 것을 찾는 방식으로 앞서의 문제를 해결한다. 유권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권위자의 지도를 따르거나, 또는 익숙한 서사에 선택을 맞춘다.

 토론토대학의 명예교수이자 정치학자인 로렌스 르뒤(Lawrence LeDuc)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가 국민투표를 제안할 때 국민은 지도층을 좋아할 경우엔 긍정적으로 투표하고 싫어할 경우엔 반대로 투표한다. 

 르뒤 교수는 2015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중요한 공적 문제와 관련을 맺어야 하는 투표는, 대신 특정 정당 또는 지도자, 정부의 실적, 또는 국민투표의 주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습의 문제 또는 사건에 대한 호불호에 관한 것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예컨대 콜롬비아에서 2014, 후안 마누엘 산토스(Juan Manuel Santos) 대통령에게 투표한 대부분의 지역은 역시 평화 합의에도 투표한 반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평화 합의 또한 거부했다.

 또한 유권자들은 복잡한 사안을 기존의 이념적 믿음 안에 구겨 넣는 방식으로 투표에 나름대로 대응하기도 한다.

 이러한 동학은 사실상 모든 국민투표에서, 특히 걸린 몫이 상당할 때 발생한다.


서사 부과하기

 정치인들 또는 권세가들은 대개 국민투표를 단순하고 적나라한 서사로써 제시할 것이다. 그 결과, 투표는 실제적인 정책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이 되고, 추상적인 가치간의 경합, 또는 유권자들에게 더욱 호소력이 강한 서사간의 경쟁이 되어버린다.

 유럽연합 탈퇴를 두고 벌어진 영국의 논쟁, 또는 브렉시트정국에서 어느 한쪽도 연합의 회원에게 주어지는 구체적인 사실을 강조하지 않은 대신, 어떠한 가치를 강조할 것인가에 관한 선택으로 투표의 틀을 짰다. “잔류파는 유럽연합 회원 여부를 경제적 안정의 문제로 제시했고, “탈퇴파는 이민을 강조했다.

 이는 제대로 먹혔다. 잔류에 투표한 사람들은 경제에 관해서는 적지 않은 우려를 표출했으나 이민자에 관해서는 그다지 우려를 보이지 않았다. 탈퇴에 투표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민에 관해 걱정이 많지만 경제에 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의 산토스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평화에 관한 투표라고 제시했으나, 반대파는 이를 콜롬비아의 가장 큰 저항단체인 FARC, 즉 콜롬비아혁명군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에 관한 선택이라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두 서사 중 어떤 쪽도 평화 합의가 가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라고 완전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싸이런은 콜롬비아의 사례가 또한 국민투표가 역사적인 정치 사안을 다룰 때, 유권자들은 다가올 미래에 국가에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과거의 경험을 분리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8, 태국에서는 군부가 이끄는 정부가 국민투표를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고 민주주의의 요소를 대폭 제한하는 새로운 헌법을 승인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또한 군부는 헌법이 통과되었을 경우에만 새로운 선거를 약속함으로써, 실제로는 반민주적 문건을 친선거적 선택이라고 속여 판매한 셈이었다. 조치는 통과되었다.


힘 있는 자들을 위한 도구로서의 민주주의

 국민투표는 국민의 수중에 권력을 쥐어주는 것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대개는 지도자들이 먼저 결정한 사안에 대해 민중적 정당성이라는 도장을 찍어주는 경향이 있다.

 “국민투표는 어떠한 사안이 국민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어요. 오히려 이는 문제를 국민들에게 떠넘김으로써 정치인들이 이득을 보는 것과 관련이 크지요.” 싸이런의 지적이다.

 예컨대, 지난 7월까지 영국의 총리였던 데이비드 카메론(David Cameron)은 연합에 남겠다는 그의 결정을 굳건히 함으로써 탈퇴를 원하는 영국 정치인들을 침묵시키려는 복안으로 유럽연합 탈퇴 여부에 관한 투표를 성사시켰다.

 태국 군부는 신헌법의 초안에 대한 뉴스보도를 제한함으로써,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할지도 모르는 대항서사를 애초에 차단시켰다. 국민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외양을 취함으로써, 군부는 실제로 이를 꺾어버렸다.

 헝가리의 총리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은 그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연합 내의 필연적 반대를 사전에 막고 국내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난민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유럽연합의 요구사항들을 거부할지에 관한 국민투표를 성사시켰다. 두 경우 모두, 힘을 강화하기 위해 투표를 도구로 쓴 경우였다.


평화에 대한 큰 위험, 큰 보상 투표

 그러나 이 민중적 정당성이라는 도장은 때로는 좋은 것일 수 있는데, 정치적 혼란이나 심지어는 무장충돌로까지 번질 수도 있는 국가적 분쟁을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 위험이 높은 만큼 보상 또한 크기 때문이다.

 1998년 북아일랜드의 성금요일 평화 합의 이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에서 각각 국민투표가 개최되었다. 그 투표는 두 지역에 참여의 감각을 제공했고, 계속 싸우길 원하는 사람들을 주변화 시켰으며, 충돌의 재발 가능성을 현격히 낮추었다.

 이는 일반적인 선거와는 달리 국민투표가 가진 중요성을 보여준다. 국민투표는 오직 국민이 투표가 민의를 반영한다고 인지할 때만 성공한다. 국민투표는 1998년 북아일랜드 투표에서 그랬던 것처럼, 투표자의 수가 많고, 한편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뒀을 경우 가장 잘 작동한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고작 38퍼센트였고, 거기서도 투표 결과는 완벽히 가운데를 기점으로 나뉘었다. 이는 수천 명의 사람이 전체 투표를 좌지우지하는 요소였음을 의미한다. 설령 국민투표가 통과되었어도, 평화 합의에 민중적 정당성이라는 옷을 입히지 못했을 것이다.

 싸이런은 국민투표의 구속력이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투표 참여자의 비중을 높이고 압도적인 승리를 요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콜롬비아와 영국 가운데 어느 한쪽도 복잡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승리를 위해 절반 이상의 투표를 요구하지 않았다.

 콜롬비아의 경우처럼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의 숫자가 적은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완승을 거두지 못한 결과는 정치적 분규를 봉합하기보다는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지도층은 민중적 의지를 명백히 반영하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그 결과를 거부하고 정치적 반발 또는 헌법적 위기를 감수할지에 관해 선택을 내려야 한다.


공화국에 대한 러시안 룰렛

 국가적 투표는 또한 극도로 불안정하여 사안 자체와 관련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좌우된다.

 여론 조사는 종종 오도되게 마련인데, 이는 사람들이 투표 직전까지 그들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형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효과적으로 자주 그러한 견해를 버린다.

 트리니티 컬리지 더블린의 마쉬 교수는 몇몇 사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바로 일주일 전의 사안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어떠한 주장도 기억하지 않고, 그들이 왜 예 또는 아니오에 투표하는지에 관해서도 실제로는 명확하지 않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투표는 정말로, 내게 영감을 주지 못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주변의 소음 또한 민중적 의지를 비틀 수 있다. 예컨대 한 당이 투표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여부, 투표와 관련된 당내 힘겨루기가 대중으로 전이되는지의 여부, 그리고 뉴스 매체가 관련된 사안을 어떻게 묘사하느냐 등은 모두 영향을 미친다.

 투표는 또한 날씨를 포함한 무작위적 요인에 의해 쉽사리 영향을 받는다. 콜롬비아에서 투표 전날 몰아친 허리케인은 몇몇 지역에서 사람들을 철수케 함으로써 국민투표 참여율을 낮췄을 수 있다.

 하버드의 경제학 교수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유럽연합을 탈퇴하려는 영국의 투표 직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언제든지 어떻게든 다수결 원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정이 반드시 민주적이라는 생각은 용어에 대한 도착(倒錯)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단지 공화국에 대한 러시안 룰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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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2015. 10. 29. 08:08

​- 말엔 힘이 없다. 그곳이 바로 비민주적인 사회이다. 민주적인 사회는 말에 힘이 담긴다. 따라서 말을 조심하게 된다.
-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말이 매개가 되는 사회야말로 공산주의사회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소련은 역사상 유일무이한 공산주의사회였다. 그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배제하지 않는다. 그의 논점은 돈을 대체한 어떤 매개를 상정한 데서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
- 어떤 형식을 통해 민주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까? 민주사회란 어떤 형식일까? 적어도 지금 이곳은 민주사회가 아니다. 말에 힘이 없고, 말은 매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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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2015. 7. 21. 06:13

​-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는 건 미뤄두더라도 대체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그리고 자본주의 이전의 모든 사회관계는 차별과 억압 위에 우뚝 섰다. 억압자 A가 피억압자 B를 억압했고, 시간이 흘러 억압자가 된 B가 피억압자 C를 억압하였다. 변함이 없다.
-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닌 시작점에 불과하다. 우리 스스로를 우리가 다스려야 한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봄풀의 꿈으로 이미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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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6. 06:35

 이 책은 미국에서 수학한 저자의 정치학 박사학위논문을 국역한 것으로, 1948년 이승만 정부의 출범 때부터 19615·16 군사쿠데타에 이어 장면 정부의 붕괴까지의 정치사를 다룬 연구 성과이다. 박사학위논문의 원제는 The Failure of Democracy in South Korea로 국역해보자면 실패한 남한의 민주주의정도로 옮겨볼 수 있겠다. 따라서 독자는 이 글이 1948~1961년의 한국현대정치사, 그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실패에 주목하여 쓴 것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평가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이며, 독자는 어떤 식으로 저자의 해석을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는 어떠한 사관에 입각하고 있는가?

 

 저자의 평가를 따라가는 한편 민주주의민중(내지 인민)’을 열쇳말 삼아 한국현대사를 살폈을 때, 그것이 실패 외에 다른 어떤 것이었음을 주장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저자의 논지는 박사학위논문이 출간된 1974년에도, 이 글을 쓰는 2014년 현재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 1987년 대의제 민주주의를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운동 속에서 사회가 질식하고 있는 현재, 민주주의는 견제의 기능을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하에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한 후 비평을 시도하겠다.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하여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돼있다. 저자는 서론(1)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논문으로서의 여러 구성요건 중 하나로 보이는 1960년대 당시의 다양한 사회과학 방법론을 서술했고, 해당 방법론들이 한국정치사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성격의 것들임을 밝힌 후에 본론에서 다룰 내용의 요체를 적시했다. 저자의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은데, 2공화국이 붕괴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즉 저자는 장면(張勉, 1899~1966) 정부의 붕괴와 잇따른 5·16 군사쿠데타를 남한 민주주의의 실패로 규정하고, 어떻게 이러한 실패가 도래했는가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제기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과연 정당한지는 의문이 들었다. 이하에서 다시 재론하겠다.

 

 2장과 3장은 해방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통해 분단과 전쟁이라는 주제 및 시민사회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과도한 행정력, 즉 제1공화국의 유산과 한민당-민국당-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을 묘사했다. 독자는 여기서 남한 군부의 성장과 비대화, 그리고 특히 ()정치적요소에 집중하는 저자의 서술을 읽을 수 있다. 2장과 3장의 배경설명은 제2공화국 의회정치의 난맥상과 세력 간의 이합집산, 마지막으로 군사쿠데타를 자칫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하는 장치들 중 하나이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1950년대 내내 이승만은 경찰로 대표되는 제도(행정부)를 통해 반대세력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그러한 속에서 이승만의 반대세력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승만의 하야 이후 보인 난맥상은 이러한 정치적 경험부족에 기인한 것이었는데, 이 시기 훈련(()자유당으로서의 의회정치 활동)은 곧 죽음(조봉암 등)으로 언제든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4장과 5장에서 독자는 4·19부터 7월 총선(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의 대략적인 모습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장은 4·19직후 등장한 허정 과도정부를 다루었다. 이 장에서는 이승만이 퇴출된 후 자유당이 와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 세력의 권력 독점과 이데올로기적 일치라는 요인이야말로 자유당 해체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데, 권력욕 외에는 집합적 행동의 동기가 없으므로 구심점이 사라지고 난 다음의 운명은 해체라는 식이다. 저자는 자유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 및 사회세력에 대해서도 일관된 설명을 시도했다. 5장은 진보당으로 대표되는 혁신계의 배경 및 4·19이후 등장한 사회대중당(서상일, 이동화 등), 한국사회당(전진한), 사회혁신당(고정훈) 등 주요정당의 정치활동을 서술했다.

 

 6장은 전반적으로 민주당의 우세 속에서 펼쳐지는 제2공화국 의회정치의 전개양상을 다루었다. 여기서도 저자는 개인적 연줄과 즉각적인 개인적 이해관계라는 요소에 주목하여 정치파벌(주로 민주당 구파와 신파)간의 적대와 대립을 묘사했다. 평자는 특히 8월에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어떤 식으로 장면이 권력을 거머쥐게 됐는지 설명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1960812, “구파 내에 조직된 추종자를 가지지 못한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이어서 그는 같은 계파 내의 경쟁자인 김도연을 국무총리로 지명·공표(16)했다. 그러나 국회는 한 계파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김도연을 반대(17)했고, 장면에게는 찬성(19)을 던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의 분석처럼 당시 무소속 의원들이 김도연과 장면에게 똑같은 수의 지지표(21)와 반대표(16)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당시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른 당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는 분열돼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장은 소제목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장면 정권과 사태에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마지막으로 8장은 19607월 선거에서 패배를 맛본 혁신계의 재배치(사회대중당과 사회당/통일사회당/민족통일당)와 그들의 대미관(對美觀) 및 통일정책, 그리고 당시 남한 시민사회의 주요한 두 조직이었던 교원노조와 학생단체의 결성을 그려냈다. 장면은 이른바 신파의 상징이었으나, 그는 구파·신파·무소속의 국회 내 세력 중 어느 한쪽을 휘어잡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그는 친이승만세력 및 부정축재자에 대해서는 미온적 처벌에 그쳤고, 경찰력과 군부 중 어느 집단에게도 명확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다. 미군은 시시때때로 정부의 군 개혁안에 우려를 표명했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정부의 미약한 행정력은 1950년대와는 너무도 대비됐고, 들풀에 불이 번지듯 터져 나오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결코 소화해낼 수 없었다. 국가주의적 우파의 물리적 반동이 언제든 실행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저자는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나 조지 맥큔의 Korea Today 등 당시이용 가능했던 일급의 역사서와 함께 명사(名士)들의 회고록, 사상계재정, 고시계같은 국내잡지 등을 주된 자료적 근거로 삼았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의 이론적 자원으로, 저자는 Gabriel Almond(1911~2002), David Easton(1917~2014), Morris Janowitz(1919~1988), Martin Lipset(1922~2006) 등 미국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군의 사회학자·정치학자들을 두루 이용했다. 그들은 넓은 의미에서 이른바 행태주의자들이었다. 행태주의자들에 관한 비판으로는 미국인 학자 Ron Robin이 쓴 The Making of the Cold War Enemy를 참조할 수 있는데, 그 핵심은 당시 행태주의자들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분석에서 역사적 맥락을 사상(捨象)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는 서양의 이론을 특정 국가의 특정한 상황에 적용하는 일은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의 시도가 행태주의과학의 난점을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반공주의로 점철된 1950년대를 제시했고, 그 속에서 이승만과 대비되는 무능한기성 정치인의 모습과 혁명이후 권력창출에 실패한 세력의 존재양식을 추적했다. 이 책은 출간된 시점이나 국역된 시점을 고려했을 때, 2공화국의 정치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두루 다루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양극화와 그러한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행정부를 비판하는 가정(假定)식의 논의는 여러모로 한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양극화는 현대사회가 지닌 보편성이기도 하며, 후자의 논의는 쿠데타세력을 비호하는 논리로 언제든 탈바꿈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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