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현대한국2014. 12. 3. 08:28

 이 책은 저자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인 解放後 左右合作에 의한 民族國家建設運動 硏究(1990)을 수정·증보한 것으로, 1991년 초판 이래 판과 쇄를 거듭하여 출간되었다. 1945년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편의상 한국현대사라고 규정할 때, 이 책은 한국학계에서 한국현대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학위논문과 저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좌우합작운동을 열쇳말로 하여 해방3년사(출간 당시에는 해방후사라고도 불렸던 것으로 추정)’를 탐구하였다. 이하에서는 기존에 나온 서평들[각주:1]을 참고하여 저자, 출간의 배경, 책의 자료적·내용적 핵심과 의의를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우선 한국현대사 박사 1인 저자에 관해 알아보자. 서중석(徐仲錫)1948825일 충남 논산군 연무읍에서 출생하였다. 1967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하다가 학부 4학년이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獄苦)를 치렀다. 박정희 정권은 거세지던 반대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급조하였고,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CJ)는 당시 판결(48)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한 바 있다. 그 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신동아에서 기자로 활약하였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복학하여 졸업(1984)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198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1990)를 취득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봉직(1991~2013)하면서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1986~2013, 2014년 현재 이사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자문위원(1994~2009),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장(2007~2013, 2014년 현재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80년대 후반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을 시작으로 6월 항쟁(2011)(사진과 그림으로 보는)한국 현대사(2013)까지 한국현대사의 주요 인물(이승만·김구·김규식·조봉암 등)이나 주제(민족운동·정당정치 등)를 다룬 굵직한 저작들을 펴냈으며, 연구와 후학 양성, 사회활동 등 다방면에서 실천적인 역사가로서 꾸준히 활약하였다.

 

 이 책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였는가? 박찬승과 최장집에 따르면, 한국현대()지배의 모순구조를 집단적으로 경험시켜준 구체적 계기는 바로 광주민중항쟁이었다. 한국사회는 5·18 이후 학원가와 작업장을 중심으로 반독재운동이나 반미운동 등 민주화 내지 변혁,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는 감성과 실천의 폭발적 운동을 목도하였다. 동시에 도처에서의 운동을 하나의 대오로 묶어내려는 통일전선(이하 통전)운동이 본격화되었다.[각주:2] 시대의 과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한국사 속에서 동형(同形)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의 이른바 급진적인 연구들학문적 엄밀성을 담보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회고적으로 제기됐다. 때맞춰 1990년대의 초입에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현대사 속 통전운동이 학문세계에서 시민권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615쪽 분량으로, 5개의 보론을 더하여 모두 519장으로 구성돼있다. 각 부는 저자의 시기구분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반영하였다. 일제시기, 해방~모스크바3상회의(1), 모스크바3상회의~1차 미소공위(2), 1차 미소공위~남조선 과도입법의원 개원(3), 1947~19485·10선거(4). 저자의 강조점은 아무래도 좌파통전세력과 중도우파가 가담한 좌우합작운동을 다룬 4(3)에 놓여있다.

 

 이 책이 구사한 자료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김남식·이정식·한홍구가 편집(1986)한국현대사자료총서는 해방3년사 연구의 뼈대를 이루는 신문(한성일보, 해방일보 등), 잡지, 연감, 단행본 등 연대기적 자료와 함께 주요 회의 의사록(‘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의사록), 미소공위 및 남북협상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록하였다. 이 책의 신문자료 구사 수준과 규모는 파천황이라 할만하다. 주한미군정보일지, 주한미군사, 미국무성비밀외교문서(FRUS로 추정) 등 미국 자료는 쓰인 시기를 고려했을 때 양이 적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요행위자이자 규정력이었던 미국측의 의도를 보여준다. 각 개인들의 전기·회고록·논설 등은 연대기적 자료의 공백을 채우는데 일조하였다. 사상휘보, 사상월보등 일제가 생산한 자료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일어판 코민테른 자료는 ‘12월 테제를 이어받은 ‘8월 테제’(좌경노선)의 사상적 배경을 잘 설명하였다. 이밖에도 이 책은 기본적인 북한관련 자료와 중국 관내 민족운동관련 자료를 다루었다. 요컨대, 이 책은 해방3년사 연구에 필요한 국내자료의 개황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앞서 설명한 시대적 배경을 이 책으로 외화(外化)한 셈이지만, 그것으로 소급되지 않는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서론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이 책은 혁명 대() 반혁명의 관점으로 해방직후를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분법으로 역사를 재단할 경우,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구심력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저자는 오히려 한국인의 주체적인 노력,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을 중심으로 해방직후를 살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멀게는 일제시기, 가깝게는 해방직후부터 제기된 통전운동(=좌우합작운동) 또는 그것의 역사를 매개로 삼아 해방3년사를 서술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족운동세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우익세력, (급진)좌익세력, 통전세력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2014년 현재, 재론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해방3년사를 독해할 수 있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우익세력은 임정봉대와 인공반대를 내세우며 단정도 불사하겠다는 식으로 민족국가 수립을 추구했고, 좌익세력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라는 12월 테제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계속 경직된 움직임만을 보였다. 이러한 속에서 통전세력은, 저자가 설정한 지상명제인 민족국가의 수립에 가장 적합한 세력으로 그려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세 세력의 뿌리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에 근거한 것(1)이었다.

 

 2장은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공화국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통전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를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이어 조선공산당과 인민당(여운형)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3장은 신탁통치 파동부터 1차 미소공위까지의 기간 동안 각 세력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묘사하였다. 1945년 연말부터 우익은 약점(민족 대 친일)을 냉전의 문법(찬탁 대 반탁)으로 호도했고, 좌익은 3상회의를 총체적으로 지지한다고 표명하면서 예의 경직성을 견지하였다. 저자는 박헌영보다는 백남운(=여운형)의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4장은 미소공위 휴회 이후의 남한 정국을 묘사하였다. 미국의 대한정책상의 변화와 맞물려 좌우합작운동이 제기됐으나 조공은 민전5원칙을 내세워 통전운동을 사실상 거부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좌익노선을 과오라고 평가하였다. 5장은 1947년 이후를 다루었다. 이 시기 세 세력의 노선은 각각 평행선을달렸고, 원심력이 구심력을 압도하는 현상이 남한 단선으로 표출되었다.

 

 저작의 선구성과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자에게 상당히 많은 의문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책의 도처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개입(평가, 가정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여하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의 시발이자 출범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창출하였다.

  1. 박찬승, 「한국현대사연구와 통일전선문제」, 『창작과 비평』 73호, 1991; 정영태, 「해방직후 한국정치와 사회민주주의」, 『한국과 국제정치』 7권 2호, 1991; 최장집, 「‘가능의 정치’로서의 해방후사 연구」, 『역사비평』 14권, 1991. [본문으로]
  2. 박찬승은 “1984년의 민중민주운동협의회, 85년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87년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89년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90년의 국민연합, 91년의 범국민대책회의 등”을 통일전선운동의 대표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박찬승, 앞의 논문, 1991, 24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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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1. 24. 07:11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신화화는 오늘날 지배층이 지배적 이념(ideology)을 강화·호도·재생산하기 위한 유효한 방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은 일각에서 국부(國父)”로까지 추대·숭앙하는 역사적 인물을 목도하고 있다. 바로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이다. 그는 박정희(朴正熙, 1917~1979)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초혼(招魂)되고 있으며, ‘가장(家長)’이자 지도자로서 상징 이상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그러한 신화화 작업의 주축을 이루는지, 그 의도와 목표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작업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왜 특정 인물이 신화화의 대상이 됐는지를 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과연 이승만은 어떠한 인물이었고, 왜 오늘날 다시 주목을 끄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먼저 이승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참고해보자. 왕실의 먼 방계 태생이었던 그는 배재학당을 거쳐 주로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젊은 시절부터 청년 지도자로서의 명망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승만은 3·1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됐고, 미주(美洲)를 근거지로 삼아 이른바 외교독립노선에 입각하여 민족운동을 수행하였다. 그의 노선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및 자리매김과는 별개로, 그는 20세기 초부터 한국 우파민족주의의 대표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 속에 자신을 명백히 각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은 194874세의 나이에 신생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4·19로 하야할 때까지 12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여러 원칙을 몸소 부정했고, 그의 정치적 보증인이나 다름없던 미국을 겨냥하여 실력행사(반공포로 석방 등)도 불사했으며, ‘암울했던’ 1950년대라는 시대상을 만들어낸 핵심이자 주역이었다. 이후 ‘2의 고장이나 다름없던 하와이에서 사망하였다. ‘반공주의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우선 본문 714, 각주 1,781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이승만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실증적인 조사이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증보한 것으로, 모두 414장으로 구성돼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가교였던 이승만의 역할과 노선, 그것들의 역사적 배경과 형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1(1~3)는 그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는 19131월 이전의 성장기 및 청년기를 다뤘다. 이승만은 미국 기독교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1910)했다. ‘스티븐스 저격 사건 변호 거부애국동지대표회(이른바 덴버대회) 참석1908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사상과 지향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2(4~6)는 이승만의 외교독립노선을 외교독립론실력양성론으로 정식화했고, ‘무장투쟁불가론’, ‘자력독립불가론’, ‘준비론이 이승만 노선의 방법론적 기초라고 설명하였다. ‘정립(鼎立)의 지도자라는 용어를 통해 박용만·안창호 등과의 비교를 통해 미주에서 그의 활약을 밝혔고, 1920~40년대의 외교활동을 정리하였다. 3(7~9)는 이 책의 핵심으로 해방 이후 이승만이 국내의 우파세력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사실의 기원을 되짚었다. 이승만의 국내 인맥의 형성 시기를 3·1운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았다. 흥업구락부(1927~38)의 존재와 지향(유학, 기호(畿湖), 기독교, 친자본, 친미 성향)은 이승만 노선의 실체와 그의 국내 연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장은 단파방송 사건을 살펴 이승만 신화가 해방 이전 국내의 좌우세력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상황을 세밀하게 추적하였다. 4(10~14)는 해방 직후부터 제헌선거(1948) 이전까지 이승만의 정치활동을 다루었다. 조기 귀국을 하기 위해 펼친 로비에 대한 서술에서부터 정치자금을 어떻게, 얼마나 모았는지에 대한 분석, 1946년 이후 전개된 이승만·김구·하지의 정치적 이별과정과 그 속에서 이승만이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까지 국내외를 넘나들며 최고지도자를 지향한 이승만의 역사를 충실하게 복원하였다.

 

 홍석률이 잘 요약한대로, 이승만은 전통과 현재, 한국과 세계가 교차하는인물의 전형이었다. 따라서 이승만의 흔적을 드러내는 사료도 전통과 현재, 한국과 세계가 교차했던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한문과 우리말, 영문, 일문, 노문 등 실로 다양한 주체들이 작성한 다채로운 사료를 섭렵하였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에서 펴낸(1996) 이화장 소장 우남 이승만 문서(東文篇)을 골간으로 하여 조선왕조와 일본제국이 생산해낸 자료, 각종 신문조서와 재판기록, 판결문, 국내외의 여러 신문과 잡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관련 문서 및 미국 전역에 산재돼있는 개인 문서철, 관련자의 증언과 같은 구술 자료 등을 망라하였다.[각주:1] 요컨대, 이 책은 제헌선거 이전까지 이승만에 관해서, 적어도 자료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향후 1948년 이후 이승만에 관한 연구가 공히 참고해야하는 필독서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승만을 매개로 현실 정치인이 명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들려주기 위해, 명망의 이면에 놓여 가려지기 쉬운 권력과 금전의 향배를 면밀하게 추적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다룬 13장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 대한 심층 분석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의 평가에 따르면, 이승만은 1946년 중반을 넘기면서 한국 우파에 대한 정치적 통제와 대중 조직 장악을 완료했다. 대체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승만이 우익 진영에서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운용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이승만 문서철에 남아 있던 영수증 자료와 비밀 해제된 미국문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1945~47년의 기간 동안 최소 27백만 원, 최대 52백만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는 이와 관계된 한국인 유산층 모임이었던 대한경제보국회의 인적 구성과 각각의 경력 및 활동, 미군정의 기여 등을 추적하여 밝혀냈다. 그 결과 이해의 관건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 불법·탈법에 대한 묵인과 승인이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행위자와 구조 간의 역사적 상호작용 또한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일개인의 능력과 수완”, 그리고 그 인물을 둘러싼 외부의 틀인 구조 중 어느 것도 역사에 단독으로 출현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의 일차적인 특징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서술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저자의 노고는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인물 연구라는 역사 연구방법론의 한 분야를 충실히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특정 인물의 파편적인 언행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행위자의 생각과 의도를 그의 행동과 결부하여 분석하고 검증하였다. 실증적인 역사 연구가 결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자료의 확보와 저자의 노고가 결합될 때는 이 책과 같은 역작이 나올 수 있음을 예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롭게 발굴한 자료(핏치George A. Fitch 문서철에서 발굴한 이승만의 자서전 등)를 비롯하여 각종 사료를 종합한 저자의 노고와는 별개로, 이 책이 정작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식으로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하려고 하는지에 관해서는 좀처럼 판단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7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바, 그러한 시간 폭을 이승만의 역할과 노선이라는 매개로 일이관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미덕이다. 하지만 독자가 엄청난 자료의 홍수에 빠져, 또는 저자의 담담한 어조에 설득돼 이 책이 선사하는 새로운 역사적 관점이나 시각의 선회를 거리를 두고 음미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오히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저자가 과연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관해 무엇을 언급하려고 했을까?’라는 의문(평가의 문제)을 선사한다.

  1. 홍석률, 「사실과 역사 속의 이승만 연구」, 『한국사연구』 133권,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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