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9일

생각 2015.12.09 00:02

- 일을 일단락 지었다. 내일 학교 가서 근무시간에 일 하면 대충 마무리 되겠다.

- 지금은 러시아어 공부 중이다. 다음주 월요일에 출국인데, 중간에 일이 몰아쳐서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 좌우간 잘 다녀와야겠다. 다녀와서는 영어에 집중해야겠다. 여름방학(?)이 오기 전에 영어 시험 점수를 끝내자. 3개월이면 족하다.

- 그러면서도 일어, 노어, 중국어를 제대로 준비해야겠다. 인터넷은 스승이요 동반자이다.

- 여러분도 힘을 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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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일

생각 2015.12.02 00:36

- 일, 일, 일.

- 70년사 일, 40년사 일, 구술사 일.

- 물론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는 내 친구에 비할 바는 아니다만, 그래도 그 친구는 자신의 젊음을 바치는대신 한 달에 대략 3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받는다.

- 나는 열심히 일하고 한 달에 대략 16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받는다. 그 친구의 노동력이 나의 것보다 두 배는 더 값진 셈이지.

- 그런데 그 친구는, 노조에 가입하거나 <송곳>을 읽자는 등 사내 선전선동, 사보타주를 벌이지 않는 이상, 앞으로 노예처럼 10년은 더 일할 가능성이 있겠지.

- 반면에 나는, 일 자체가 그 친구의 일보다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고 또 공부할 시간을 건네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3년 내로 모든 일이 종료된다. 백수가 된다는 말이다.

- 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가장 가까운 분은, 일주일에 6일 근무를 하고 200만원도 못 받았기에, 1년을 일 하고 직장을 때려쳤다. 나는 그의 선택을 응원한다, 진심으로.

-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준다면, 시간과 노동력을 헌납하는 데 덜 억울하겠다. 이건 뭐, 답이 없다. 경력으로 인정도 되지 않고, 자아의 실현에도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뭐 방법이 있겠는가. 그저 일을 하면서, 내 공부를 할 시간을 확보하는 수밖에. 왜냐하면 나는, 적어도 당장에는 그리고 앞으로도, 공부가 해야 할 일이고 나아갈 길이기 때문이다.

- 생각할 것들이 많은데, 절로 보는 범위가 줄어든다. 비단 노동 조건 때문만은 아니고. 벌써부터 주변에 "강사법"의 적용을 받아 재임용이 거절된 분도 계시고 이래저래 곤욕을 치르는 분들이 계시다. 그게 정말 무서운 거다.

- 어쩌다 이곳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노인네들이 1번을 찍어서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 현대사를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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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생각 2015.11.30 05:36

- 냉기 가득한 연구실에서 쓴다. 쓰고 나서는 집에 가야겠다.

-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나태함이다.

- 연구실에 도착하여 시위 관련 논저를 정리했다. 대중집회연구 페이지에 올렸다. 논저의 면면을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정리하였다.

- 그 후 친구와 새로 개장한 사범대 식당에 갔다. 원래 '사식'으로 불리던 곳이다. 농협이 넘겨 받아 새로 식당을 만든 것이다. 점심을 먹고, 친구가 사주는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연구실로 돌아 왔다.

- 책을 읽으면서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의 푸념 섞인 모습을 보았다. 그 친구가 원하는대로 좋은 학교로 유학을 가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 4시부터는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록을 작성하였다. 타자 실력이 갈수록 는다. 하지만 회의 내용도 갈수록 듣기 싫어진다. 어찌 하랴? 돈 없는 내 처지를 탓할 수밖에.

- 회의가 끝나고 자하연 3층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훌륭하신 분이다. 사부님 같은 분이 또 어디 있을까?

- 그 후 차를 들고 연구실로 돌아와 계속 책을 읽었다. 이제 집에 가야 한다.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겠다. 바로 잘 수 있을까? 아니면 일을 하다 자야 할까? 일 하기 싫다. 공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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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1849년부터 어쩔 수 없이 파리를 떠나 영국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런던, 특히 대영박물관 도서실을 '부르주아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적인 전략적 거점'이자 무기고로 여겼다. 그런데 정작 그 소유자인 영국인들은 그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았다.


- 도서실의 중요성.


그러나 인민들이 증오했던 것은 루이 필립이 아니라 왕관을 쓴 한 계급의 지배; 즉 왕좌에 오른 자본이었다. 그런데도 인민들은 늘 그랬듯이 관대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적들의 적, 즉 자신들과 자신들의 적들의 공동의 적을 전복하고는 자신의 적들을 섬멸했다고 착각했다. 


- 1848년 7월 폭동에 대한 사설.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르크스는 한 철도회사의 역무원으로 지원했지만 그의 다 헤진 옷차림과 위협적인 외모가 좋은 인상을 주었을 리는 없었다. 또한 그의 지원서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엥겔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이 이 끔찍한 세월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 스펙의 중요성.


마르크스의 생활 방식은 변화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는 7시에 일어나 블랙커피를 여러 잔 마신 후 서재로 들어가 오후 2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식사를 서둘러 마친 후에는 저녁 식사 때까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햄프스테드 히스로 산보를 나가거나 아니면 서재로 다시 들어가 다음 날 새벽 2, 3시까지 일을 했다. 


- 나태함을 반성한다.


마르크스는 어떤 일에서건 매우 조직적이었다. 그는 영국에 도착해서 자신의 영어 실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닫고는 실력을 높이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문장 표현들을 목록으로 만든 다음 외워버렸다. 러시아어를 배울 때에도 그는 고골리와 푸시킨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의미를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조심스럽게 밑줄을 그었다.


- 대가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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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생각 2014.11.25 08:38

친한 동생과 저녁을 먹고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세희 소설 읽는다고 세상이 나아져?"

울림을 주는 한마디였다.

인문학의 존재이유를 알 것 같다가도 이내 휘청거린다. 굳이 인문학이라는 범주를 빌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역사학, 사회학. 사람의 삶과 그 모습을 탐구하는 학문일 터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 가족은 눈물겹다. 찢어지게 가난할 정도는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가난하다. 가난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가 있을텐데, 여러모로 가난하다는 것 외에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물론 더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내 가족이 가난하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삶의 종착진 죽음이다. 단순한 명제 앞에 숙연해지다가도 이내 짜증난다. 왜 누구는 가난하게, 그것도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죽어야 하나? 누구처럼 부유하게, 또는 편안하게 살다가 죽을 수는 없나? 그 차이는 무엇인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인가? 과연 그 삶의 양태의 차이는 정당한가? 날선 논리도 내 가족과 내 삶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울하고 슬프다. 이겨내다가도 이내 힘을 잃는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공부? 대학원 공부? 무슨 공부? 이러면서도 내일은 다시 책줄을 읽고, 도무지 체험할 수 없는 과거의 부정의에 감정을 이입하며, 더욱 어두워지고 쪼개질 미래를 알게 모르게 걱정한다. 대체 내 삶은 왜 이리 가난한 것인지? 답답함이 잠자리에 내려 앉는다. 쉬이 떠나질 않는다.

희망를 잃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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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는 길이다. 내일은 (원치 않는)세미나에 참석해야 하고 더군다나 발제문을 아직 다 안 만들었다. 살아가면서 어찌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겠냐만은, 요새 내 삶을 돌아보면 그저 하루하루를 넘기기에 바쁘다. 무력감이 들기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는 데 깊은 짜증과 실망감이 몰아친다.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할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까? 중요하지 않은 질문만을 늘어놓게 된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이 어떻게 이 지경으로 전락했는지를 알고 싶다. 그것도 역사일까? 역사가 아니라곤 할 수 없겠지. 바로 그런 모습을 공부하고 싶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은 나에게 어떤 미소도 건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자기소외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졸업식이었다. 내게 예전에 책 몇 권을 사주었던 여자 후배에게 마침내 책 빛을 갚게 됐다. 바우만의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를 선물로 주었다. 국제대학원에서 이제 칠레로 돌아가는 C 동무에게도 이별의 아쉬움을 건넸다.

규장각에서 근무하다가 시간이 돼 다른 세미나에 갔다. 한 누나의 예비발표였고, 동학들의 질문과 조언, 격려가 뒤따랐다. 순간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역사를 대상화하여 논문을 생산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둘을 명확히 분리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동시에 "잘 썼다"란 평이 오가는 글이 어떤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난 대체 대학원 와서 무엇을 한 것이었을까? 그런 것도 모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는 중이다. 동생이랑 저녁 먹고 발제를 해야 한다. 연말이나 내년초에 과외를 그만 두고 싶다. 그만 둘 수 있을까? 오늘날 공부는 계급적인 행위가 (다시)됐다. 가난하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박탈 당한다. 잠을 줄이면서 해야 하나보다. 안 그래도 삶이 피곤하다. 하지만 대의를 놓칠 수 없다. 밀자!

* 홉스봄의 <혁명가>(2008, 김정한, 안중철 공역, 길)를 중도에 신청하여 집에 가지고 가는 길이다. 언제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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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27일 작성.

 

어제 만나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눈 고딩1학년 이 아무개 학생은 오늘날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우리네 중등교육체계의 일면을 보게 해주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방에 앉아 어머니(학부모)의 근심토로(예외는 있겠으나, 대개 이런 근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아이의 성적이 "높지 않다." (2) 아이가 무언갈 안 한다)를 가급적 짧게 들은 후에 이와 얘기를 시작했다. "아무개야, 초면에 굉장히 부담스럽겠지만 그래도 우리 솔직해지자. 난 네 어머니의 기대완 달리 당장 네게 공부(법)를 가르치러 온 것은 아니란다." 이는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었으나, 난 그 대답관 별개로 나름의 질문을 시작했다.

 

이는 중딩 때까지만 해도 롤(LoL), 서든, 메이플을 즐긴 남학생이다. 건담 조립을 좋아하고 탁구는 잘 치는 편이다. 자사고가 "조금은" 빡세다고 "들었으나" 그래도 아직 가고 싶어했다. 왜? "분위기가 좋아서." "분위기가 좋다는 건 어떤 의미였니?" "다들 공부만 할 거랬어요." "가보니 정말로 그렇더나?" "네." "만족해?" "힘들어요." "학교 바꿀 생각은? "없어요." "설령 지금과 같은 생활이 이어져도?" "음... 네." 이에게 자사고는 "특목고와 일반고 사이에 있는" 학교였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특목고만큼은 아니겠지만" 기회를 부여하는 곳이었다.

 

이의 꿈은 의사이다. 그 중에서도 "보람을 느끼고 싶어서"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다. 그런데 자사고 한 학기 생활 해보니 꿈이 "희미해져 갔다." 한국에서 의사되기란 아주 높은 성적과 그에 상응하는 자기착취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도무지 그걸 감당해낼 수 없었던 듯 하다. "다른 꿈도 있어요. 컴퓨터라든가..." "나 때도 그랬는데 학교에서는 꿈 얘기 이런 거 안 하지?" "네..." "답답하니?" "네." "문과니, 이과니?" "이과요." "할만해?" "네..." "의사든 잡스든 뭐든 될 수 있어." "그치만 경쟁률이 높아서..." "우리 사는 이 곳에 경쟁률 안 높은 곳은 있긴 할까?" "허허..."

 

기특하게도 이는 얼마전 스스로 과외를 그만두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데 과외 해서 뭣하겠어요?" "그렇군, 잘 한 것 같다. 앞으론 어떻게 하려고?" "음..." "친구들은 어때?" "착해요, 열심히 해요." "그래? 얼마나 열심히 해?" "안 놀아요. 그리고 자기에 대해 안 말해요." 이의 주변 학생들은 항상 시험 준비를 "안 했다고" 한다. 이는 그에 대해 "그럴수록 무서운 거예요. 정말 많이 했다는 신호거든요."라고 알려 주었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밝히기 두렵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애초에 설 수 없게 하려는 마음에서 그렇게 거짓말들을 하게 된 것이었을까?

 

"너가 생각하기에 어떤 점이 스스로에게 가장 힘드니?" "멍때려요." "그런데 학교에선 멍때리는 걸 허용하지 않지?" "네, 공부해야 할 범위가 너무 넓고 진도도 빨라요." "고생이다." "네..." "학교에서 따로 잡아주진 않고?" "음..." 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선 선생님이 학원을 추천한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것이 오늘날 한국 중등교육체계의 현실이다. 학교 차원에서 실적(명문대 입학자의 수와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사교육을 권한다. 문제는 그것이 오롯이 학교의 기능부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잘못이고(기만적 자유주의 체제의 문제로 보인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까?

 

나는 이에게 많은 걸 처방하진 않았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대딩들도 하다 결국 못 하는 일을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라고만 말했다. 물론 도움이 될만한 방법도 일러주었고, 연락처도 주었다. 이와 얘기를 끝낸 이후에 물어 보았다. "부모님이랑은 (나와 나눈 종류의)이야기를 하니?" 예상한대로 대답은 "아니요." "그래, 나도 10년 넘게 안 하고 있어." 이는 픽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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