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현대한국2015. 3. 4. 00:35

이 책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쿠데타로 출범하여 장장 19년 동안 통치한 박정희가 군림했던 시기, 1961~79년 사이의 한국을 지칭하는 박정희시대의 면면을 살피려는 시도이다. ‘개발독재라는 제목에서부터 이 책이 품고 있는 야심찬 기획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박정희시대를 다루는 연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올리기 위한 글 모음이면서 동시에 박정희시대에 대하여 나름의 성격규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박정희시대를 살펴보는 것에서 나아가 나름의 학술적(해석적)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한편 공저자는 오늘날 한국사회(또는 학계)에서 박정희 바로보기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우상화 담론을 들었고, ‘냉정한 학술연구를 통해 그러한 우상화 담론을 해체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구성을 살펴보자면, 이 책은 총론을 포함하여 모두 12장으로 이루어져있고, 1부인 경제개발의 빛과 그늘에서 6편의 글을, 2부인 개발독재의 정치사회학에서 5편의 글을 담고 있다. 공저자의 학문적 배경도 꽤나 다양하다. 이 책의 길라잡이 격인 총론을 집필했고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경제학자 이병천을 필두로 하여 프랑스에서 경제를 공부한 서익진,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이정우 등 경제학자들의 글이 1부를 구성하고 있다면, 2부는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2006)을 역임했던 북한 전문가 이종석, 실천적인 한국근현대사가 한홍구, 비판적인 사회학자 홍성태 등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공저자의 표현을 빌릴 때, 1부가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박정희 개발체제라는 이론에 살을 덧대는 작업이라면, 2부는 개발체제의 정치사회적 이면과 그에 대한 담담한 비판을 담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개발)체제를 매개로 하여 박정희시대를 살핀 후, 그 시대의 핵심적 성격을 개발독재라는 용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불어 2010년대 전반의 한국을 뜨겁게 달군 화두가 경제민주화임을 감안할 때, 1부의 저자들, 특히 이병천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의 담론을 살펴보는 일 또한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책에 실린 각각의 글을 자세히 분석하기보다는 공저자가 공유하고 있는 의도를 추출하여 이 책의 핵심을 짚고, 그에 대한 나름의 비평을 시도하겠다. 공저자에 따르면, “박정희시대는 한국 모더니티 형성의 역사적 전환점을 구성하고 그 기본 틀이 짜인 시대였다. 이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과 제()모순이 가깝게는 이 시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박정희시대를 공부한다는 것은 지금을 바로 보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박정희시대는 대체 어떠한 시기였을까? 그 시기의 한국은 어떤 체제를 꾸려 살았으며, 그 체제는 어떤 모순들을 가지고 있었을까? ‘박정희시대의 체제의 내·외부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각각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했을까?

 

이 책의 총론은 박정희시대개발(독재)체제로 규정하기 위한 시론인 동시에, 공저자의 시선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 이병천은 몇 가지 이유[각주:1]를 들어 개발독재론의 유효성을 설명하면서도, 이를 다른 이론과 견주어가며 박정희시대를 하나의 체제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저자의 이론적 골격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진전시킨 제솝(Jessop)의 국가론[각주:2]의 세 요소, 헤게모니의 구조적 결정”,[각주:3]전략적 지향”,[각주:4]축적과의 관계[각주:5]이다. 저자의 판본에서 개발독재국가의 첫 번째 요소는 개발지배블록”,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소는 각각 경제개발 성과를 주요한 정당성 원리로 삼는 이념국가-시장-제도의 성장지향적 협력이 차지하였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박정희시대를 하나의 이론으로 꿰어 일목요연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과연 개발체제의 역사적 실상(實狀)을 얼마나 반영하고 담아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병천의 글은 실제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큰 약점, 어떻게 보면 사회과학 방법론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약점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의 세 요소는 어디까지나 이론으로, 그것은 역사에 비추어봤을 때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괴리와 균열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그람시-제솝-이병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지적 흐름 속에서 국가라는 개념은 박정희시대의 무엇으로 치환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국가는 박정희 개인이었는가, 아니면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이었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박정희 개인군부집단’, ‘지배권력을 번갈아 사용했을 뿐 일관된 설명을 제공하진 않았다. 요컨대, 특정 어구가 함축하고 있는 내용이 저자의 편의에 따라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가 시기에 따른 내용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거나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실증적인 연구가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일종의 전형(典型, model)을 창출하려다보니, 역사적 현실의 일부를 확대해석(“국민대중의 호응과 집단적 열정”)하거나 박정희시대의 모든 성격을 아우르려는 욕심에 혼종적(hybrid)인 개념(“국가주의적 산업화의 수동혁명체제”)을 조어(造語)하는 사태를 낳고 말았다. 추상(이론)에서 구체(사실)로 내려가 면면을 살피는 작업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추상의 완결성(여기서는 개발독재론)을 위해 구체를 버리거나 외면하는 태도는 실증적이지도 않고 학술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의 취지로 돌아가보자. 이 책이 애초에 가졌던 취지 중 하나는 박정희시대에 대한 서로 상반된 관점인 반독재 민주화운동동아시아의 기적을 우선 넘고, 나아가 “21세기 탈냉전·탈극단시대의 역사상을 정립하려는 것이었다. ‘바로보기만 해도 쉽지 않은 것인데, 이중삼중의 과제를 설정한 것 아니었을까?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대상을 정립한다는 애초의 기획 자체는 오히려 바람직하다고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저자의 글들이 책의 원래 기획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어떤 답을 내리기 힘들다. 먼저 체제’, 즉 어떠한 사회과학적 전형(典型, model)이라는 창()을 통하여 일정한 시기를 규정하는 작업이 가지고 있는 적지 않은 한계와 난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은 곰곰이 따져보고 해부해볼만한 분석과 주장을 다수 담고 있다. 예컨대, 홍성태의 글은 그가 구사하는 이론적 자원(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의 효용이나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제출된 비판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또는 이 책이 피하고자 했던 근본주의적 초비판과 가깝다는 오해를 사기 쉬우며(물론 그가 비판하는 문제들은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종석의 글은 구체성을 결여한 인상비평에 가깝다. 대체 북한적 요소라는 말은 무엇을 언급하는 것이었을까? 앞서 2부의 글을 예로 들었는데, 1부에 실린 글들도 비판할 구석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조영철의 글은 박정희시대에 한국사회에서 재벌이 공고해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지만, 근거가 미흡한 부분(135; 151)이 존재하고 분석의 수준이 세밀하다고는 볼 수 없다.

  1. 이병천은 개발독재론의 유효성을 ①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 정치경제학적 시각과 접근방법을 제공해주고, ② 개발, 민주주의, 민족주의라는 핵심 주제를 아우를 수 있으며, ③ 시초축적체제로서의 역사성과 반동적 억압성이라는 “근본적인 내적 모순”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본문으로]
  2. Jessop, B. State Theory: Putting Capitalist State in its Place, Polity Press, 1990. [본문으로]
  3. “특정한 세력과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고 여타 세력의 이익을 희생하는 국가 형태에 각인된 구조적 특권 또는 국가의 구조적 전략적 선택성.” [본문으로]
  4. “헤게모니 세력의 장기적 이익을 보장하는 국민적 대중적 프로그램의 추진과 피지배세력의 특수한 이익의 실현을 성공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의 개발” [본문으로]
  5.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추진이 적절한 성장모델 또는 축적전략의 뒷받침을 받아야 함을, 그리하여 피지배세력들에 대한 물질적 양보의 제공에 의존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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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5. 3. 3. 16:33

이 책은 저자(木宮正史, 1960~)의 고려대학교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인 한국의 내포적 공업화전략의 좌절: 5·16군사정부의 국가 자율성의 구조적 한계(1991)를 개정·증보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 시즈오카(静岡)현 출신으로, 1983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고, 1993년에는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부터 일본 대학에서 조교수·교수 생활을 거쳐 2015년 현재 도쿄대학 정보학환(情報学環)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개의 박사학위논문이 일련의 수정을 거쳐 단행본으로 나오는 한국학계의 관행과는 달리, 이 책은 원래 학위논문의 분량만큼이나 새로운 내용을 덧붙여 분석의 수준을 확장·심화하고자 한 듯하다. 책은 총 314장으로 구성돼있는데, 학위논문을 증보한 1부가 네 장, 새롭게 쓴 내용으로 구성된 2부가 일곱 장, 3부가 세 장이다. 1부는 한국정부가 수출지향형 공업화 정책을 택하게 되는 정치과정을 분석했고, 2부는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을 다뤘으며, 3부는 국제적 조건과 한국의 대응(“이용”)을 살폈다. 각 부는 시기적으로는 1961~63, 1964~67, 1965~66년을 다루었으며, 특히 마지막 3부는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의 전개과정 및 각 사건의 경과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식민지 경험을 겪은 나라 중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경제성장)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봄의 표현을 빌려, ‘이중혁명의 과실을 쟁취한 현대 한국의 정치경제적 경험은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에게 고구(考究)의 대상이었다. 저자 또한 이러한 관심을 공유한 상태에서 경제성장의 전사(前史)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1960년대를 살핀 것이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한국 정부 내지 한국 사회의 대응에 주목하여 이를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내려고 하였다. 저자는 한국의 대응을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사회)의 능동성한국 국가의 성격 문제라는 두 가지 매개를 통하여 고찰하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행위자의 인식과정과 결정에 주목하는 구성주의적 시각을 분석의 기본방안으로 채택하였고, 미국 측 자료와 한국 측 자료를 이용 가능한 한 총동원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료 구사는 역사학 논문의 특징을 방불케 할 정도이다.[각주:1]

 

저자는 1부에서 상이한 시각으로 구성된 기존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 자신의 이론적 자원(구성주의)과 그 유효성을 내세우면서, ‘1960년대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자들과 이를 둘러싼 구조적 조건의 정치적 역학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하였다. 저자는 주요 행위자들을 일차적으로는 국적에 따라 나누었으나, 같은 국가 내에서도 대사관이나 군, 기획처 등 기관별로, 더불어 그러한 기관 내에서도 개개인을 구별하여 서술하였다. 저자는 박희범, 유원식 등 경제관료들의 사후적 인식과 면담 등을 토대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보완·수정되는 과정과 이 계획에 담긴 방향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를 내포적 공업화 전략이라고 요약하였다.[각주:2] 하지만 이 계획은 이후 수정을 강요받게 되는데, 저자는 미국자료에 기초하여 5·16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 박정희의 방미(196111)를 둘러싼 한·미간의 입장차, 한국측의 선택폭을 제한한 미국의 압력 내지 간섭(종합제철공장 건설 계획의 백지화나 재정안정계획의 복원)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그 수정 과정을 보여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초기 군사정부의 복안이었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좌절되었으나,[각주:3]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요인은 미국이라는 외부적 요인의 존재였다. 본문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의 존재는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과정에서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압도적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경제적 안정의 달성이라는 대한원조정책의 기본 목표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한국측의 시도는 모조리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장기 경제계획의 필요성이나 한국정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모든 계획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기간산업 건설에서 국제수지 개선이라는 목표와 이를 위한 방법, 즉 수출지향형 공업화로 일정하게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2부는 잔여적선택지로서 선택된 수출지향형 공업화 정책의 결정과정에 초점을 맞춰 여섯 가지 주제(재정안정계획, 환율제도 개혁, 금리현실화, 수출진흥 정책, 외자도입법, 무역자유화)를 분석하였다. 이 부에서 저자는 신문(특히 동아일보, 회의록, 서한, 전신(電信), 면담 등의 자료를 기초로 하여 각 정책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서술했는데,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국의 압력이 한국정부의 선택지를 줄여나가는 과정 내지 구도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저자는 한국이 미국의 권고에 순진하게 복종만 하진 않았고, ‘자율성을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쾌도난마와 같이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자료의 부족 속에서 재구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곱씹어볼 만 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는 한일수교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라는 두 사안을 두고 벌어진 한··일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구성주의적 접근의 효용을 강조하였고, 그에 따라 다양한 주체들의 세계인식 및 정책결정 과정, 거기서 발생한 정치경제적 효과 등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주의적 접근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이는 자료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예컨대, 주체 생각과 인식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자료가 보여주는 것 이상(예컨대 주체의 속내)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접근을 취해야하는가 등의 질문이나 문제가 곧바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주체들을 설정하고, 1차 자료를 통해 그러한 주체들의 인식과 생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심층적인 분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표면적인 서술과 그에 따른 추론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통화개혁의 예를 들자면, 1962년 내자 동원을 위한 통화개혁의 추진 과정에서 1953년도 통화개혁의 실무진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저자는 성격이 분명히 다른 두 개혁의 상관관계나, 전자의 개혁이 실행된 이유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미국이라는 요소, 또는 그 힘의 성격과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라는 실체는 주한미군이나 원조 등의 기제를 통해 일견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유솜의 예(201)에서 볼 수 있듯, 기관의 인사 변화에 따라 미국의 대한(원조)정책이 변화했다고 주장하는 등, 시기에 따른 미국 정책의 변화요인을 단순화시켜버린 바 있다. 미국의 정책을 분석할 때에는 미국의 대()세계정책부터 시작하여 아시아, 한국 순으로, 그리고 미국의 국내 상황과 한국의 국내 상황을 시야에 넣어 파악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1. 저자가 구사한 자료의 소장처는 다음과 같다. 케네디대통령도서관, 존슨대통령도서관, 미국국립문서관(NARA), 미국정부 비밀해제문서 조회시스템(DDRS), 미국국제개발처(USAID) 도서관, 한국 외교사료관, 경제기획원 도서관, 한국 국가기록원 등. 이 글은 박태균, 「강요된 자율적 선택」, 『역사와 현실』 71, 2009도 참고하였다. [본문으로]
  2. 제1차 5개년경제개발계획의 수립 과정은 이전 계획을 답습하면서도 각 시점의 대내외 환경 및 입안자들의 논쟁을 반영하여 보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제1차 5개년경제개발계획(시안)』(약칭 건설부안) → 『종합경제재건계획(안)』(약칭 최고회의안) → 『제1차 5개년경제개발계획』(약칭 경제기획원(EPB)안) [본문으로]
  3. 저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① 군사정부 내의 권력 기반의 취약성 및 불안정성, ② 민간 기업들의 미약한 지지, ③ 밑으로부터의 민족주의와의 결별, ④ 미국 정부의 거부권 발동, ⑤ 외자도입 다각화 기도의 한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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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2. 4. 01:28

 이 책은 저자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인 解放後 左右合作에 의한 民族國家建設運動 硏究(1990)을 수정·증보한 것으로, 1991년 초판 이래 판과 쇄를 거듭하여 출간되었다. 1945년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편의상 한국현대사라고 규정할 때, 이 책은 한국학계에서 한국현대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학위논문과 저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좌우합작운동을 열쇳말로 하여 해방3년사(출간 당시에는 해방후사라고도 불렸던 것으로 추정)’를 탐구하였다. 이하에서는 기존에 나온 서평들[각주:1]을 참고하여 저자, 출간의 배경, 책의 자료적·내용적 핵심과 의의를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우선 한국현대사 박사 1인 저자에 관해 알아보자. 서중석(徐仲錫)1948825일 충남 논산군 연무읍에서 출생하였다. 1967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하다가 학부 4학년이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獄苦)를 치렀다. 박정희 정권은 거세지던 반대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급조하였고,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CJ)는 당시 판결(48)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한 바 있다. 그 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신동아에서 기자로 활약하였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복학하여 졸업(1984)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198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1990)를 취득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봉직(1991~2013)하면서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1986~2013, 2014년 현재 이사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자문위원(1994~2009),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장(2007~2013, 2014년 현재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80년대 후반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을 시작으로 6월 항쟁(2011)(사진과 그림으로 보는)한국 현대사(2013)까지 한국현대사의 주요 인물(이승만·김구·김규식·조봉암 등)이나 주제(민족운동·정당정치 등)를 다룬 굵직한 저작들을 펴냈으며, 연구와 후학 양성, 사회활동 등 다방면에서 실천적인 역사가로서 꾸준히 활약하였다.

 

 이 책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였는가? 박찬승과 최장집에 따르면, 한국현대()지배의 모순구조를 집단적으로 경험시켜준 구체적 계기는 바로 광주민중항쟁이었다. 한국사회는 5·18 이후 학원가와 작업장을 중심으로 반독재운동이나 반미운동 등 민주화 내지 변혁,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는 감성과 실천의 폭발적 운동을 목도하였다. 동시에 도처에서의 운동을 하나의 대오로 묶어내려는 통일전선(이하 통전)운동이 본격화되었다.[각주:2] 시대의 과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한국사 속에서 동형(同形)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의 이른바 급진적인 연구들학문적 엄밀성을 담보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회고적으로 제기됐다. 때맞춰 1990년대의 초입에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현대사 속 통전운동이 학문세계에서 시민권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615쪽 분량으로, 5개의 보론을 더하여 모두 519장으로 구성돼있다. 각 부는 저자의 시기구분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반영하였다. 일제시기, 해방~모스크바3상회의(1), 모스크바3상회의~1차 미소공위(2), 1차 미소공위~남조선 과도입법의원 개원(3), 1947~19485·10선거(4). 저자의 강조점은 아무래도 좌파통전세력과 중도우파가 가담한 좌우합작운동을 다룬 4(3)에 놓여있다.

 

 이 책이 구사한 자료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김남식·이정식·한홍구가 편집(1986)한국현대사자료총서는 해방3년사 연구의 뼈대를 이루는 신문(한성일보, 해방일보 등), 잡지, 연감, 단행본 등 연대기적 자료와 함께 주요 회의 의사록(‘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의사록), 미소공위 및 남북협상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록하였다. 이 책의 신문자료 구사 수준과 규모는 파천황이라 할만하다. 주한미군정보일지, 주한미군사, 미국무성비밀외교문서(FRUS로 추정) 등 미국 자료는 쓰인 시기를 고려했을 때 양이 적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요행위자이자 규정력이었던 미국측의 의도를 보여준다. 각 개인들의 전기·회고록·논설 등은 연대기적 자료의 공백을 채우는데 일조하였다. 사상휘보, 사상월보등 일제가 생산한 자료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일어판 코민테른 자료는 ‘12월 테제를 이어받은 ‘8월 테제’(좌경노선)의 사상적 배경을 잘 설명하였다. 이밖에도 이 책은 기본적인 북한관련 자료와 중국 관내 민족운동관련 자료를 다루었다. 요컨대, 이 책은 해방3년사 연구에 필요한 국내자료의 개황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앞서 설명한 시대적 배경을 이 책으로 외화(外化)한 셈이지만, 그것으로 소급되지 않는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서론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이 책은 혁명 대() 반혁명의 관점으로 해방직후를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분법으로 역사를 재단할 경우,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구심력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저자는 오히려 한국인의 주체적인 노력,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을 중심으로 해방직후를 살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멀게는 일제시기, 가깝게는 해방직후부터 제기된 통전운동(=좌우합작운동) 또는 그것의 역사를 매개로 삼아 해방3년사를 서술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족운동세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우익세력, (급진)좌익세력, 통전세력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2014년 현재, 재론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해방3년사를 독해할 수 있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우익세력은 임정봉대와 인공반대를 내세우며 단정도 불사하겠다는 식으로 민족국가 수립을 추구했고, 좌익세력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라는 12월 테제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계속 경직된 움직임만을 보였다. 이러한 속에서 통전세력은, 저자가 설정한 지상명제인 민족국가의 수립에 가장 적합한 세력으로 그려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세 세력의 뿌리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에 근거한 것(1)이었다.

 

 2장은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공화국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통전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를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이어 조선공산당과 인민당(여운형)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3장은 신탁통치 파동부터 1차 미소공위까지의 기간 동안 각 세력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묘사하였다. 1945년 연말부터 우익은 약점(민족 대 친일)을 냉전의 문법(찬탁 대 반탁)으로 호도했고, 좌익은 3상회의를 총체적으로 지지한다고 표명하면서 예의 경직성을 견지하였다. 저자는 박헌영보다는 백남운(=여운형)의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4장은 미소공위 휴회 이후의 남한 정국을 묘사하였다. 미국의 대한정책상의 변화와 맞물려 좌우합작운동이 제기됐으나 조공은 민전5원칙을 내세워 통전운동을 사실상 거부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좌익노선을 과오라고 평가하였다. 5장은 1947년 이후를 다루었다. 이 시기 세 세력의 노선은 각각 평행선을달렸고, 원심력이 구심력을 압도하는 현상이 남한 단선으로 표출되었다.

 

 저작의 선구성과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자에게 상당히 많은 의문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책의 도처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개입(평가, 가정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여하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의 시발이자 출범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창출하였다.

  1. 박찬승, 「한국현대사연구와 통일전선문제」, 『창작과 비평』 73호, 1991; 정영태, 「해방직후 한국정치와 사회민주주의」, 『한국과 국제정치』 7권 2호, 1991; 최장집, 「‘가능의 정치’로서의 해방후사 연구」, 『역사비평』 14권, 1991. [본문으로]
  2. 박찬승은 “1984년의 민중민주운동협의회, 85년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87년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89년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90년의 국민연합, 91년의 범국민대책회의 등”을 통일전선운동의 대표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박찬승, 앞의 논문, 1991, 24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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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1. 25. 00:11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신화화는 오늘날 지배층이 지배적 이념(ideology)을 강화·호도·재생산하기 위한 유효한 방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은 일각에서 국부(國父)”로까지 추대·숭앙하는 역사적 인물을 목도하고 있다. 바로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이다. 그는 박정희(朴正熙, 1917~1979)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초혼(招魂)되고 있으며, ‘가장(家長)’이자 지도자로서 상징 이상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그러한 신화화 작업의 주축을 이루는지, 그 의도와 목표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작업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왜 특정 인물이 신화화의 대상이 됐는지를 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과연 이승만은 어떠한 인물이었고, 왜 오늘날 다시 주목을 끄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먼저 이승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참고해보자. 왕실의 먼 방계 태생이었던 그는 배재학당을 거쳐 주로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젊은 시절부터 청년 지도자로서의 명망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승만은 3·1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됐고, 미주(美洲)를 근거지로 삼아 이른바 외교독립노선에 입각하여 민족운동을 수행하였다. 그의 노선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및 자리매김과는 별개로, 그는 20세기 초부터 한국 우파민족주의의 대표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 속에 자신을 명백히 각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은 194874세의 나이에 신생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4·19로 하야할 때까지 12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여러 원칙을 몸소 부정했고, 그의 정치적 보증인이나 다름없던 미국을 겨냥하여 실력행사(반공포로 석방 등)도 불사했으며, ‘암울했던’ 1950년대라는 시대상을 만들어낸 핵심이자 주역이었다. 이후 ‘2의 고장이나 다름없던 하와이에서 사망하였다. ‘반공주의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우선 본문 714, 각주 1,781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이승만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실증적인 조사이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증보한 것으로, 모두 414장으로 구성돼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가교였던 이승만의 역할과 노선, 그것들의 역사적 배경과 형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1(1~3)는 그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는 19131월 이전의 성장기 및 청년기를 다뤘다. 이승만은 미국 기독교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1910)했다. ‘스티븐스 저격 사건 변호 거부애국동지대표회(이른바 덴버대회) 참석1908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사상과 지향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2(4~6)는 이승만의 외교독립노선을 외교독립론실력양성론으로 정식화했고, ‘무장투쟁불가론’, ‘자력독립불가론’, ‘준비론이 이승만 노선의 방법론적 기초라고 설명하였다. ‘정립(鼎立)의 지도자라는 용어를 통해 박용만·안창호 등과의 비교를 통해 미주에서 그의 활약을 밝혔고, 1920~40년대의 외교활동을 정리하였다. 3(7~9)는 이 책의 핵심으로 해방 이후 이승만이 국내의 우파세력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사실의 기원을 되짚었다. 이승만의 국내 인맥의 형성 시기를 3·1운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았다. 흥업구락부(1927~38)의 존재와 지향(유학, 기호(畿湖), 기독교, 친자본, 친미 성향)은 이승만 노선의 실체와 그의 국내 연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장은 단파방송 사건을 살펴 이승만 신화가 해방 이전 국내의 좌우세력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상황을 세밀하게 추적하였다. 4(10~14)는 해방 직후부터 제헌선거(1948) 이전까지 이승만의 정치활동을 다루었다. 조기 귀국을 하기 위해 펼친 로비에 대한 서술에서부터 정치자금을 어떻게, 얼마나 모았는지에 대한 분석, 1946년 이후 전개된 이승만·김구·하지의 정치적 이별과정과 그 속에서 이승만이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까지 국내외를 넘나들며 최고지도자를 지향한 이승만의 역사를 충실하게 복원하였다.

 

 홍석률이 잘 요약한대로, 이승만은 전통과 현재, 한국과 세계가 교차하는인물의 전형이었다. 따라서 이승만의 흔적을 드러내는 사료도 전통과 현재, 한국과 세계가 교차했던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한문과 우리말, 영문, 일문, 노문 등 실로 다양한 주체들이 작성한 다채로운 사료를 섭렵하였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에서 펴낸(1996) 이화장 소장 우남 이승만 문서(東文篇)을 골간으로 하여 조선왕조와 일본제국이 생산해낸 자료, 각종 신문조서와 재판기록, 판결문, 국내외의 여러 신문과 잡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관련 문서 및 미국 전역에 산재돼있는 개인 문서철, 관련자의 증언과 같은 구술 자료 등을 망라하였다.[각주:1] 요컨대, 이 책은 제헌선거 이전까지 이승만에 관해서, 적어도 자료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향후 1948년 이후 이승만에 관한 연구가 공히 참고해야하는 필독서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승만을 매개로 현실 정치인이 명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들려주기 위해, 명망의 이면에 놓여 가려지기 쉬운 권력과 금전의 향배를 면밀하게 추적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다룬 13장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 대한 심층 분석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의 평가에 따르면, 이승만은 1946년 중반을 넘기면서 한국 우파에 대한 정치적 통제와 대중 조직 장악을 완료했다. 대체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승만이 우익 진영에서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운용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이승만 문서철에 남아 있던 영수증 자료와 비밀 해제된 미국문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1945~47년의 기간 동안 최소 27백만 원, 최대 52백만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는 이와 관계된 한국인 유산층 모임이었던 대한경제보국회의 인적 구성과 각각의 경력 및 활동, 미군정의 기여 등을 추적하여 밝혀냈다. 그 결과 이해의 관건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 불법·탈법에 대한 묵인과 승인이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행위자와 구조 간의 역사적 상호작용 또한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일개인의 능력과 수완”, 그리고 그 인물을 둘러싼 외부의 틀인 구조 중 어느 것도 역사에 단독으로 출현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의 일차적인 특징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서술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저자의 노고는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인물 연구라는 역사 연구방법론의 한 분야를 충실히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특정 인물의 파편적인 언행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행위자의 생각과 의도를 그의 행동과 결부하여 분석하고 검증하였다. 실증적인 역사 연구가 결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자료의 확보와 저자의 노고가 결합될 때는 이 책과 같은 역작이 나올 수 있음을 예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롭게 발굴한 자료(핏치George A. Fitch 문서철에서 발굴한 이승만의 자서전 등)를 비롯하여 각종 사료를 종합한 저자의 노고와는 별개로, 이 책이 정작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식으로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하려고 하는지에 관해서는 좀처럼 판단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7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바, 그러한 시간 폭을 이승만의 역할과 노선이라는 매개로 일이관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미덕이다. 하지만 독자가 엄청난 자료의 홍수에 빠져, 또는 저자의 담담한 어조에 설득돼 이 책이 선사하는 새로운 역사적 관점이나 시각의 선회를 거리를 두고 음미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오히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저자가 과연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관해 무엇을 언급하려고 했을까?’라는 의문(평가의 문제)을 선사한다.

  1. 홍석률, 「사실과 역사 속의 이승만 연구」, 『한국사연구』 133권,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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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1. 17. 14:33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20권으로 읽는 20세기 韓國史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역사 대중서 편찬 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2014년 현재, 서울특별시교육감으로 봉직하고 있는 사회학자 조희연(曺喜昖) 교수가 썼다. 아래서도 살펴보겠지만 저자는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겪어보았고여기에 정면으로 부딪혔다가 곤욕을 당한 일이 있다.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는 나름대로 유신독재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지만전체적인 시대상을 파악하는 일은 요원했고, 따라서 이 책에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총체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파악하겠다는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이 책은 사료에 근거하여 박정희 시대를 본격적으로 살핀 역사서라기보다는 기존에 제출된 서사(敍事)를 종합하여 재배치하고 오늘날에 다시 그것을 복합적으로”, 그리고 확장된 진보의 개념 속에서 다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는 평자의 말로 다시 풀어쓰자면, “진보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복잡했던 박정희 시대의 다양한 역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가교를 마련하는 일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그 결과가 저자의 원래 의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차분히 따져볼 일이다.

 

 저자는 1956년 전북 정읍에서 공무원 조일환(曺日煥)의 오남으로 태어났다.[각주:1] 중학교를 마친 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1972)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사회학과, 1975)에서 수학하였다. 1978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유인물 배포 및 시위 가담의 명목으로 구속됐으며, 이듬해 815일 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1983, 1992)했고, 199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박원순을 비롯하여 1994년에 세워진 참여연대의 창립성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계와 정계, 시민사회를 넘나들며 활약하면서, 민주주의·근대화·시민사회·사회운동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저서를 펴내기도 하였다.[각주:2]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어떻게 매개로 삼아 문제적인박정희 시대를 파악하고자 하였는가? 우선 저자는 박정희 시대를 다섯 시기로 나누었다. 저자의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1972년의 10월 유신이었고, 각각은 다시 5·16에서 민정이양까지(1961~63), 한일회담 반대를 둘러싸고(1964~67), 유신체제 이전까지(1968~72),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기 이전까지(1972~75) 10·26까지(1976~79)로 나뉘었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장의 본문은 위와 같은 저자의 시기 구분에 상응하는 나름의 서술이다. 이어 저자는 규범적 판단사실적 분석을 구분해야 하고, 그 중 전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저자는 오늘날 개개인의 신념을 넘어서 사실과 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무력으로 헌법을 전복하고 권좌에 오른 박정희 개인과 그의 정권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박정희 체제는 각 시기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항상 대내외적 곤란에 맞닥뜨렸고, 이를 지양·극복하는 과정에서 체제는 실로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박정희 체제의 문제점을 독재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기보다는 그 체제를 움직였던 복잡한 동학(動學)을 구조적으로바라볼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복잡한 동학을 포착할 틀로써 개발동원체제(developmental mobilization regime)’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개발동원체제란 위로부터 사회를 조직하고 재편하며 아래의 동원을 이끌어내는 체제로서 사회에 대한 일종의 국가적 기동전체제라고 할만하다. 세계사에서 개발동원체제의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저자는 독일(비스마르크), 소련(스탈린), 북한, 중국, 대만(장제스) 등을 들며 사회를 군대식으로 조직화해서 성장효과를 극대화하고, 독재자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이러한 설명이 얼마나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물론 이 책이 개발동원체제를 하나의 사회과학적 전형(典型, model)으로서 탐구하려는 시도는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방법론적 핵심에 대한 설명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이론적인 한계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핵심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2공화국은 4·19의 사회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고, 이를 틈타 젊은 군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였다. 거사 직후 혁명위원회는 부정 해결, ()정치세력 일소, 사회 정화의 미명 하에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쿠데타세력은 경제기획원(1961.7.22.)을 발족시키고 이전 정권의 계획을 계승·변용하여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등 일찍부터 경제를 통제하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4대 경제 의혹 사건등 조직적인 경제범죄가 터졌고, 쿠데타세력의 도덕성은 이내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반대세력이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3공화국은 한··일 삼각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지역전략에 따라 한일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민정이양을 마친 쿠데타세력은 정력적으로 한일회담을 추진했고, “졸속·굴욕이라는 평가와 함께 사회적 반감은 고조됐다. 한편 한일회담 반대의 기치 하에 투쟁세력이 결속하고 쿠데타세력 가운데서도 이반(김재춘, 김홍일 등)이 나타났으나, 정부의 의도 관철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와 함께 1964~65년의 기간, “수출 증대가 국가의 핵심전략으로 설정됐고, 2차 인도차이나전쟁(베트남전쟁)에도 한국군이 파병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1968~72) 개발의 성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25개년계획 기간(67~71)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은 10%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발전방식의 고유한 문제에다가 더해 군대식사회동원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월남에는 계속 젊은이들이 파병됐고, ·북간의 체제경쟁이 가속화됐다. 장기독재의 징후였던 3선개헌이 대중의 의사를 빌려 통과됐고, 발전과정의 핵심이면서 부산물 취급을 받은 노동·빈민 문제가 불거졌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상징적이었다. 일련의 완화책으로 복지제도가 운위됐으나 시행까지는 아직 10년이나 더 걸릴 터였고, 유신 직전 초법적인 8·3조치(1972)(시장)자유민주주의를 조롱거리로 전락시켰으며 동시에 독재자의 위력을 실감케 하였다. 1972년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등 초헌법적 권한이 부여된 대통령을 허용하는 유신쿠데타가 벌어졌다. 이제 국회는 완전히 무력화됐으며, 대통령을 지상으로 하는 종신 독재체제가 형식상 완료됐다. 더불어 중화학공업화와 새마을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사회의 저항은 이전 시기보다 더욱 거세어졌으나, 그에 못지않게 통제와 진압 또한 가일층 악랄해졌다.[각주:3] 긴급조치 9호는 유신체제의 영구화를 기도하는 제도적인 장치였다.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이나 반대는 물론이려니와, 개정 주장이나 이를 보도하는 행위까지 일체 금지됐다. 한편 경제 집중 및 중복투자 등 일련의 문제와 석유파동이 만나 사회는 더욱 힘겨워했고, 드디어 민중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서술은 기존의 진보적인 시각의 흐름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 보인다. 이 책은 집필 의도완 달리 다양한 박정희보다는 독재자개인을 부각시켰다. 더하여 박정희 체제를 움직였던 복잡한 동학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했다기보다는 일련의 이야기와 통계를 배치하여 박정희 체제를 바라볼 수 있는 세부주제 각각에 대한 입문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19년이라는 긴 시기를 효과적으로 요약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1. 조일환, 조동환, 조희연 외, 『뜻밖의 개인사』, 새만화책, 2008.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박현채, 조희연, 『한국사회구성체논쟁』 1·2·3, 죽산, 1989·89·91; 조희연, 『동원된 근대화』, 후마니타스 2010; 조희연, 『병든 사회, 아픈 교육』, 한울, 2014 등을 들 수 있다. [본문으로]
  3. “1960년대까지는 빨갱이세력이 배후에 존재한다는 식이었던 반면, 1970년대에 들어서는 정권에 대한 저항 자체를 빨갱이와 동일시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7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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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7. 14:41

 1970년대 초 이른바 데탕트(긴장완화) 시기 국제질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며 정착된 미·소간의 적대적 공존은 지구 도처에서 냉전과 열전(베트남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변주됐으나, 어디까지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체제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기왕의 국제질서 안에 변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고, 국제무대에서 중국이 하나의 주연으로 등장할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것은 미·중 관계가 개선되면서 촉발된 것이었고, 장차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할 터였다.[각주:1]

 

 이 책은 앞서 말한 국제정치적 변화를 염두에 둔 채, 1968년부터 1973년까지의 시간을 종축으로 삼고, 국제관계와 남북관계를 횡축으로 삼아 미중 관계개선(국제정치), 남북 대화의 전개(남북관계), 남북의 국내정치적 변화(국내정치) 등을 각각의 연관 속에서 세밀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최근 공개된 1970년대 한국자료와 미국자료(미국무부에서 생산한 미국 외교관계 문서집(FRUS), 중앙문서 파일(Central Files), 특수문서 파일(Lot Files))를 주된 사료적 근거로 삼고, 북한 및 중국자료로 보충하는 방식을 통해 당대의 개별 사안들을 넘어 1970년대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중 관계개선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비로소 주연으로 올라선 중국을 역사연구의 범주에 넣어 분석한 것은 공전의 성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저자의 눈은 변화무쌍한 국제관계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서 한국현대사의 구조적 문제를 겨냥한다. , 저자는 데탕트기 국제질서 자체에 관한 탐구보다는, 그러한 배경 속의 분단문제를 재고하고자 했다. 남북분단이라는 극단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일상적인상황은 한국현대사와 시작을 같이 하는 굉장히 특수한 관계이자 문제였으나, 그것을 국제관계와의 관련 속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한 성과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장준하와 백낙청 등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공개된 자료들을 통해 1970년대 초의 남북분단 문제를 거시적으로 조망했다. 나아가 저자는 68년 한반도 안보위기를 시점으로, 미중관계 개선 속에서 한반도의 현상유지 및 영향력 온존을 꾀한 미국과 중국의 의도, 그리고 외압에 나름대로 대응하여 결국 각자의 유일체제를 형성한 남북 양측 집권세력의 향배를 면밀하게 추적했다.

 

 저자의 연구는 선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아쉬움과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글은 공개된 자료를 섭렵해 당시 각국 정부의 속셈들을 잘 밝히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상황설명에 치중한 듯 보이고, 구조적인 분석은 다소 미흡한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시종일관 데탕트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이 한반도화”, 또는 내재화되었다고 설명하고 그러한 정황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으나, 한반도 분단체제가 어떤 동학을 통해 그 구조를 재생산하는지에 관한 분석은 거의 없다. 특히 분단의 해결에 관해서는 남북 권력집단의 무책임성(또는 식민성)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쳐 어떠한 대안적 실천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1970년대 초반 데탕트기의 남북관계를 미중관계와 맞물린 것으로 보고, 그것을 실증적으로 조망한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는 노작이다.

  1. 박태균, 「미중관계와 남북관계의 복잡한 방정식 풀기」, 『역사와 현실』 86, 2012, 39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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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7. 14:39

 저자는 6·25전쟁 휴전 직후부터 5·16 쿠데타까지의 시간을 종축으로 삼고, 미국무부의 의견을 포함한 남한의 각 정치세력들의 통일논의와 정치·사회적 갈등을 횡축으로 삼아 분단을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시각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드러내고, 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저자는 한국의 분단문제가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민주주의, 경제발전, 외교 등)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과도 깊숙이 얽혀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분단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인 통일론을 살핀다면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문제로 바라보았고, 대응하며, 어떠한 해결의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관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통일론은 각 정치세력들이 냉전과 분단에 대처하는 기본방식을 함축할뿐더러 남한사회의 발전전략에도 긴밀히 닿아있었다. 따라서 저자는 통일논의를 중심으로 당시 정치세력 간에 界線을 굵직하게 그어 각각을 서술하고 비교했다. 이러한 방식의 서술은 시기별로 등장한 1) 통일론의 내용, 2) 통일론을 주장한 정치세력, 3) 통일론의 전개과정 등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더하여 저자는 각 정치세력의 통일론이 국내외적 정세(냉전체제, 시민사회)의 변동과 맞물리는 동시에 이전의 통일담론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의 논의를 뒷받침 하는 자료적 근거로 당시 남과 북에서 발간된 신문과 잡지 등 출판물, 한국과 미국의 관찬 자료 등 보고서, 당시대를 산 인물들의 증언(송남헌, 박병엽 등) 등이 있다. 그 중 특히 혁신계 신문이었던 민족일보를 주로 활용하여 1950년대를 통틀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던 혁신계 세력의 면면을 자세히 다룬 점이 눈에 띤다. 사상계를 통해 당대 지식인의 인식과 고민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고, 논의 현황을 일별하려고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그러한 잡지가 당시 지식인 사회에 특별한 파급력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서는 총 4장으로 이뤄져있으나, 남한 정치세력의 통일논의를 자세하게 다룬 부분은 1장부터 3장까지이다. 1장은 휴전 이후 1950년대의 통일논의를 서술했다. 이승만(북진통일론)과 민주당(和戰兩樣論)은 정치적 성향이 대동소이했고, 진보당(평화통일론)세력과 분명히 구분됐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시기였고, 이승만과 우익세력이 탄압기구를 독점했던 만큼 국내에서 평화통일론이 설자리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당시 남한(한국) 지식인의 사상의 저변에는 무력을 동반한 통일을 거부하는 평화적 통일론의 다양한 모습이 잠재한 채 흐르고 있었다.

 

 2장과 3장의 시기적 배경은 4·19부터 5·16까지의 기간인 “4·19시기로 공통적이다. 2장은 당시 드러난 통일논의와 정치·사회적 갈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했고, 3장은 당시 제기된 통일론을 유형별로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각각의 성격을 분석했다. 이승만 장기독재가 무너지자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의견과 주장, 요구가 분출됐고, 그것은 대개 강한 민족주의적 감성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더하여 국제정세는 공존(=냉전적 현상유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戰後 舊식민지들이 제3세계 국가로 국제무대에 등장했으며, 북한 또한 활발한 대남 통일공세를 벌였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당시 등장한 통일론을 크게 세 가지로 준별했다. 그것은 바로 1) 유엔 감시하 남북 총선거론, 2) 중립화 통일론, 3) 남북 협상론이다. “4·19시기에 들어와 무력북진통일론은 효력을 상실했으나 장차 흡수통일론으로 이어질 터였다. 이제 각 정치세력의 통일론 구도는 전쟁 평화에서부터, 평화(또는 공존)를 전제한 바탕 위에 국제적 권위(UN 또는 열강의 협정) 대 반외세先建設 後統一 대 건설과 통일의 병행으로 바뀌었다.

 

 저자에 따르면 “4·19시기민간 차원의 광범한 통일논의와 운동의 출현은 이전까지 잠복해있던 시민사회의 열망이 민주화라는 새로운 국내적 국면과 동시에 국제적 상황변화와 맞물려 표현된 것이었다. 그 핵심은 7여 년간 터부시됐던 남과 북의 교류였고, 각 정치세력들은 이제 그러한 남한 인민들의 열망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통일론 속에 담아내야 했다. 한편 “4·19시기남한에서 물리적 충돌을 동반하지 않은 틀 안에서의 정치행위는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와 공존을 모색했던 성숙한 다원주의적 사회질서의 대두를 의미했다. 저자는 이후 한국사회가 5·16이라는 틀 밖으로부터의 충격을 시점으로 장기간의 군부독재를 겪었으나, 당시 등장한 세 가지 통일론의 시각차이의 조류가 21세기까지 이어졌다고 보았다.

 

 저자는 “4·19시기시민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통일론으로 중립화 통일론에 주목했다. 그것은 집권당의 통일론이 갖는 유보론적성격과 남북협자들이 주장한 민족혁명론의 비현실성에 비췄을 때, “가장 구체적인 분단 타결책을 담은 통일방안이었다. 중립화 통일론은 정치의 민주화와 경제의 사회화를 한국적 실정에 적용하는 민주사회주의구상에 바탕을 두고, “영세중립국이라는 통일의 방법론을 마련했다. 또한 중립화 통일론자들의 중립주의적 감성과 이념은 해방공간의 중간파 민족주의에서 기원하여 1950년대의 진보당을 경유하여 이어진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립화 통일론 또한 계획경제론이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점과, 무엇보다 남북 간 타협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녔다고 보았다.

 

 이 책은 저자의 실천적 고민이 담긴 한 편의 노작이다. 당시의 국내외적 맥락은 지금의 맥락과 다르지만, 이 책을 통해 확인한 당시 통일에 대한 세력 간 異見과 길항은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그것은 저자가 지적했듯, 첫째, 통일에 관한 다양한 이견을 우선 인정하고, 그것이 불러일으킬 정치사회적 갈등을 조절하는 동시에 (남한 내부와 남북 간)공존 내지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의 유효성이다. 다원주의적 질서를 표방하는 자유(주의적)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견은 언제나 공론장에 우선 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전제가 서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결코 자유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정치사회적 갈등을 조절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4·19 시기” “좌와 우를 막론하고 통일문제를 둘러싼 대립은 왕왕 있었으나, 그것이 물리적 폭력의 충돌로 귀결된 경우는 희박했다. 한편 그러한 사회 내의 분출무질서로 보는 시각이 존재했고, 5·16을 두둔하는 세력은 그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당시의 풍경을 2013년의 한국과 바로 맞대어 비교할 순 없지만,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틀의 안팎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시대의 화두(당시는 통일문제)를 둘러싼 세력 간 갈등이 어떻게 조절돼야 하는지 조그맣지만 빛나는 통찰을 얻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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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6. 22:37

 이 책은 시기적으로는 1970년대 초 이른바 데탕트Détente”라는 배경 아래서, 내용적으로는 남북 당국 간에 오고간 史上 첫 대화의 양상과 실체를 밝히고자 했다. 책의 제목은 자칫 전자(데탕트, 외적 조건”)와 후자를 대등한 연구주제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국제정세의 규정력을 인정한 위에, 남북관계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저자에 따르면, 기존 연구는 1970년대 미국자료를 바탕으로 데탕트기 드러난 한·미 갈등에 주목했다. 이 때 한국정부의 대응방식을 두고 논의 지형이 갈렸는데, 신욱희·김영호 등은 한국의 수세적 대응을 강조한 반면, 홍석률·김현철 등은 능동적 대응을 역설했다. 그러나 관변의 연구를 비롯하여 기존 연구들은 대개 내적 요인”(국제정세 인식, 상호간 인식, 정책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 따라서 저자는 그러한 연구사적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자료 자체의 냉전적 목적성등 한계를 염두에 두고 국토통일원의 公刊자료(남북대화백서, 남북대화사료집), 남북대화 관련자들의 증언·회고·기록(70년대 남북대화 성립 비사(I)), 대통령연설문집, 미국무부 일반문서철(RG 59), 외교통상부 문서 일부, 신문과 잡지 등을 자료적 근거로 삼았다.

 

 저자는 당시 남북대화의 본질적인 측면을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민족사의 관점에 입각했다. 따라서 데탕트는 남북대화를 가능케 한 결정적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의 배경일 수밖에 없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주장(내지 과도한 의미부여)이 독자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다.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의 지도자 각각이 내적으로 집권을 공고히 한 것은 周知의 사실이며, 이는 양 정권이 적극적인 통일의 의지를 표출했다기보다 상징적인 사건 하나를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저자는 당시 남북대화가 남북 당국이 상대방을 [...] 인정하고 진지한 대화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 진전의 뚜렷한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 경험이었다고 그 의의를 강조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했듯 1970년대 초 남북대화를 주제로 삼아, 그 과정에서 드러난 상호 간 인식과 대응 양상 모두를 가급적 포괄하고자 했다. 구성의 측면에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고, ·후반부의 분량 차이가 크다. 전반부인 1장에서는 남북대화의 직접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일별한다. 1969년 닉슨의 괌 발언”(이른바 닉슨 독트린”)72訪中은 아시아에서 냉전의 긴장이 완화되고, 장차 미···일 사이의 정치적 다극성이 출현하게 될 계기였다. 한편 남북 당국은 이러한 정세를 나름대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했다. 이어 2장과 3장에서 남과 북의 인사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대화가 전개된다. 먼저 2장에서는 분단 이후 남북이 공식적으로 양자적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처음가진 회담인 남북적십자회담의 전개과정과 당국 간 대화의 양상을 살핀다.[각주:1] 이어 3장에서는 7·4남북공동성명의 발표와 그 후 구성된 남북조절위원회의 전개과정, 남북대화의 소멸을 다룬다.

 

 북한 당국의 인식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다는 점, 내용상의 사소한 오류(키신저의 방중 기간을 “19707이라고 했음) 등은 이 책의 간과할 수 없는 지점들이다. 또한 합의록이나 발표문을 全載하고, 한 사건을 중심으로 관련 인물 및 기관의 반응을 나열하는 서술은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하지만 남북 당국의 접촉과 대화의 전개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비교하여 서술한 부분은 활용가치가 높다. 따라서 이 책은 과도한 의미부여(“불멸의 [...]”)를 걷어낸다면, 남한 당국의 인식을 중심으로 1970년대 초 전개됐던 남북대화의 과정을 실증적으로 탐구한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 홍석률, 『분단의 히스테리』, 창비, 2012, 15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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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6. 22:35

 이 책은 미국에서 수학한 저자의 정치학 박사학위논문을 국역한 것으로, 1948년 이승만 정부의 출범 때부터 19615·16 군사쿠데타에 이어 장면 정부의 붕괴까지의 정치사를 다룬 연구 성과이다. 박사학위논문의 원제는 The Failure of Democracy in South Korea로 국역해보자면 실패한 남한의 민주주의정도로 옮겨볼 수 있겠다. 따라서 독자는 이 글이 1948~1961년의 한국현대정치사, 그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실패에 주목하여 쓴 것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평가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이며, 독자는 어떤 식으로 저자의 해석을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는 어떠한 사관에 입각하고 있는가?

 

 저자의 평가를 따라가는 한편 민주주의민중(내지 인민)’을 열쇳말 삼아 한국현대사를 살폈을 때, 그것이 실패 외에 다른 어떤 것이었음을 주장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저자의 논지는 박사학위논문이 출간된 1974년에도, 이 글을 쓰는 2014년 현재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 1987년 대의제 민주주의를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운동 속에서 사회가 질식하고 있는 현재, 민주주의는 견제의 기능을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하에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한 후 비평을 시도하겠다.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하여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돼있다. 저자는 서론(1)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논문으로서의 여러 구성요건 중 하나로 보이는 1960년대 당시의 다양한 사회과학 방법론을 서술했고, 해당 방법론들이 한국정치사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성격의 것들임을 밝힌 후에 본론에서 다룰 내용의 요체를 적시했다. 저자의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은데, 2공화국이 붕괴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즉 저자는 장면(張勉, 1899~1966) 정부의 붕괴와 잇따른 5·16 군사쿠데타를 남한 민주주의의 실패로 규정하고, 어떻게 이러한 실패가 도래했는가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제기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과연 정당한지는 의문이 들었다. 이하에서 다시 재론하겠다.

 

 2장과 3장은 해방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통해 분단과 전쟁이라는 주제 및 시민사회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과도한 행정력, 즉 제1공화국의 유산과 한민당-민국당-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을 묘사했다. 독자는 여기서 남한 군부의 성장과 비대화, 그리고 특히 ()정치적요소에 집중하는 저자의 서술을 읽을 수 있다. 2장과 3장의 배경설명은 제2공화국 의회정치의 난맥상과 세력 간의 이합집산, 마지막으로 군사쿠데타를 자칫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하는 장치들 중 하나이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1950년대 내내 이승만은 경찰로 대표되는 제도(행정부)를 통해 반대세력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그러한 속에서 이승만의 반대세력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승만의 하야 이후 보인 난맥상은 이러한 정치적 경험부족에 기인한 것이었는데, 이 시기 훈련(()자유당으로서의 의회정치 활동)은 곧 죽음(조봉암 등)으로 언제든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4장과 5장에서 독자는 4·19부터 7월 총선(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의 대략적인 모습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장은 4·19직후 등장한 허정 과도정부를 다루었다. 이 장에서는 이승만이 퇴출된 후 자유당이 와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 세력의 권력 독점과 이데올로기적 일치라는 요인이야말로 자유당 해체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데, 권력욕 외에는 집합적 행동의 동기가 없으므로 구심점이 사라지고 난 다음의 운명은 해체라는 식이다. 저자는 자유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 및 사회세력에 대해서도 일관된 설명을 시도했다. 5장은 진보당으로 대표되는 혁신계의 배경 및 4·19이후 등장한 사회대중당(서상일, 이동화 등), 한국사회당(전진한), 사회혁신당(고정훈) 등 주요정당의 정치활동을 서술했다.

 

 6장은 전반적으로 민주당의 우세 속에서 펼쳐지는 제2공화국 의회정치의 전개양상을 다루었다. 여기서도 저자는 개인적 연줄과 즉각적인 개인적 이해관계라는 요소에 주목하여 정치파벌(주로 민주당 구파와 신파)간의 적대와 대립을 묘사했다. 평자는 특히 8월에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어떤 식으로 장면이 권력을 거머쥐게 됐는지 설명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1960812, “구파 내에 조직된 추종자를 가지지 못한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이어서 그는 같은 계파 내의 경쟁자인 김도연을 국무총리로 지명·공표(16)했다. 그러나 국회는 한 계파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김도연을 반대(17)했고, 장면에게는 찬성(19)을 던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의 분석처럼 당시 무소속 의원들이 김도연과 장면에게 똑같은 수의 지지표(21)와 반대표(16)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당시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른 당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는 분열돼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장은 소제목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장면 정권과 사태에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마지막으로 8장은 19607월 선거에서 패배를 맛본 혁신계의 재배치(사회대중당과 사회당/통일사회당/민족통일당)와 그들의 대미관(對美觀) 및 통일정책, 그리고 당시 남한 시민사회의 주요한 두 조직이었던 교원노조와 학생단체의 결성을 그려냈다. 장면은 이른바 신파의 상징이었으나, 그는 구파·신파·무소속의 국회 내 세력 중 어느 한쪽을 휘어잡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그는 친이승만세력 및 부정축재자에 대해서는 미온적 처벌에 그쳤고, 경찰력과 군부 중 어느 집단에게도 명확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다. 미군은 시시때때로 정부의 군 개혁안에 우려를 표명했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정부의 미약한 행정력은 1950년대와는 너무도 대비됐고, 들풀에 불이 번지듯 터져 나오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결코 소화해낼 수 없었다. 국가주의적 우파의 물리적 반동이 언제든 실행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저자는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나 조지 맥큔의 Korea Today 등 당시이용 가능했던 일급의 역사서와 함께 명사(名士)들의 회고록, 사상계재정, 고시계같은 국내잡지 등을 주된 자료적 근거로 삼았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의 이론적 자원으로, 저자는 Gabriel Almond(1911~2002), David Easton(1917~2014), Morris Janowitz(1919~1988), Martin Lipset(1922~2006) 등 미국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군의 사회학자·정치학자들을 두루 이용했다. 그들은 넓은 의미에서 이른바 행태주의자들이었다. 행태주의자들에 관한 비판으로는 미국인 학자 Ron Robin이 쓴 The Making of the Cold War Enemy를 참조할 수 있는데, 그 핵심은 당시 행태주의자들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분석에서 역사적 맥락을 사상(捨象)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는 서양의 이론을 특정 국가의 특정한 상황에 적용하는 일은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의 시도가 행태주의과학의 난점을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반공주의로 점철된 1950년대를 제시했고, 그 속에서 이승만과 대비되는 무능한기성 정치인의 모습과 혁명이후 권력창출에 실패한 세력의 존재양식을 추적했다. 이 책은 출간된 시점이나 국역된 시점을 고려했을 때, 2공화국의 정치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두루 다루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양극화와 그러한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행정부를 비판하는 가정(假定)식의 논의는 여러모로 한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양극화는 현대사회가 지닌 보편성이기도 하며, 후자의 논의는 쿠데타세력을 비호하는 논리로 언제든 탈바꿈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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