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韓美관계2015. 2. 21. 08:00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1942~19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성 구상(1996)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원래 논문의 본문은 모두 48절로 구성돼있는 데 비해, 이 책은 원래의 논문에서 각 장절의 명칭을 세련되게 바꾸었고 2(2)에 하나의 논문[각주:1]에 해당하는 절을 추가로 삽입하여 모두 49절의 체제를 갖추었다. 논문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미국의 과도정부 구상을 매개로 하여 1942~47년의 시기 동안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이 형성·완숙·변형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복원하였다. 집필뿐만 아니라 저자는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1차 자료의 수집·편집·출판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각주:2] 연구자들 사이에서 한국현대사 연구의 진전을 가로막는 제1요인으로 흔히 자료적 제한이 운위되는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저자의 피땀 어린 노고와 그 결실은 고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갖는 의미를 간략히 짚어보자.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은 20세기의 역사에서 가히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태평양에서부터 구라파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지역을 통치했던 구()제국이 일단 몰락하거나 주춤했고, 식민지·()식민지 지역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분출하였다. 옛 제국이 차지하던 위치는 장차 미국이 대체할 터였다. 한편 지구 각지의 민족운동은 그 내용과 형태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코뮤니즘(Communism)이라는 외피를 입었으며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직간접적인 관련 속에 놓였다. ‘연합국두 수뇌국끼리의 대결의 징후는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전후하여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소 양국은 38도선을 경계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분할·점령하는데 동의했다.

 

한국인은 제국을 상대로 간고한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인들의 활약을 선뜻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 패망 후에도 한인들의 집단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과연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은 무엇이었는가? 그 역사적 전개, 귀결, 성격은 어떠하였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치밀하고 실증적인 대답을 제공한다.

 

우선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 전후 미국의 과도정부 수립구상과 그 실현과정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같은 시기 미국의 대한정책이 형성·전개되는 모습을 해명했고, 미국의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한점령정책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특질을 분석해냈다. 저자는 이 책의 결론부에서 몇 가지의 역사상을 제공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42~해방 이전(1) 해방~1차 미소공위(2) 미국의 중간파 정책과 2차 미소공위 시기(3) 공위의 결렬과 다가오는 단정(4). 물론 각 부는 평자의 시기구분과 엄밀히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다양한 시간대가 부를 넘나들며 중첩돼있다.

 

먼저 저자는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의 졸속성 및 편의성을 강조하는 논리, 준비결여론이라든가 선의의 무지론등을 통박했다. 이는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미국 전후구상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계기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저자의 주장에 잘 나타나는데,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찍이 1942년부터 한반도와 만주를 시야에 넣어 전시·전후 구상을 기획하였다. 저자는 일명 노터 파일, T316등 미국무부 내 자문위의 소위원회 보고서들, P-B81, JANIS 75등 광범한 자료를 통해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구상과 계획으로서는 완숙단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증명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미국의 대한정책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급조된 것이 아니라, 전후 신세계질서' 구상과 밀접한 연계 하에 끊임없이 다듬어진국가차원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미국의 전후 대한구상이 수정을 강요받게 되는모습과 각각의 계기를 분석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세가 요동치는 시기였고, 정책입안 담당자들(워싱턴)과 집행 담당자들(미군정) 사이에도 인식과 수행방법의 차이가 점차 불거졌다. 예컨대, 애초의 미국 대한구상이었던 국제민간행정기구안이나 정무위원회안(일명 랭던구상) 같은 경우 식민지 상태에서 갓 해방된 한국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미군정, 그리고 소련 모두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무부는 모스크바 3상회의[조선임시정부안이 만들어졌다]를 거치며 원안과는 달라진 모습의 대한구상을 준비해야 했다. 이후 미군정은 UN으로 한국문제를 이관시키는 1947년 가을 이전까지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조선 과도정부안을 추진했다.

 

같은 국가의 행위주체라고 해도 워싱턴과 미군정, 군부는 같은 한국문제에 대해 입장차와 태도의 온도차를 보였으며, 심지어 같은 기관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책은 그러한 각각의 이견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는 모습을 계기적으로 포착하는 한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그러한 수렴 과정이 이뤄지는 맥락 또한 들려주었다.

 

이 책은 신탁통치안을 비롯하여 모종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남한에서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신탁통치안의 경우를 살펴보자. 군부와 국무부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후 식민종속지역에서 민족운동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신탁통치안이 식민지역의 구식민모국으로부터의 분리와 미국 영향권으로의 재편입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에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상은 결국 점령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창출하는 작업을 전제한 것이며, 이는 어떠한 형태이든지간에 정부의 구성과 인사의 참여 등이 전적으로 미국에 유리해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미국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소련과의 대화에 임하기 위해 차례대로 고문회의-(정무위원회안)-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남조선과도입법의원-남조선과도정부 등을 조직한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에 한국문제를 UN에 이관함으로써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스스로 파기하였다.

 

이 책은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을 미국의 냉전정책이나 대소전략의 일부가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것으로 자리매김하여 분석했고, 더불어 그것이 한국인의 자주적 국가건설 노력과맞부딪혔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서론에서 밝혔듯, 저자는 미국 대한정책에는 국제적·국내적 측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변화의 원인과 동력은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한반도와 워싱턴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주제인 미국의 한국정부 수립구상과 중간파정책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며, 선행 연구를 비판하는 데에서도 미국의 국제정치사(외교사)의 연구 흐름(전통주의·수정주의) 및 세계체제론적 접근이 가지고 있는 목적론적 맹점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평자는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느꼈다. 저자의 노고와는 별개로, 이 책이 선사하는 역사상에서 한국사회가 선제적으로 창출해낸 모종의 동력이나 행동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신탁통치파동이나 ‘10월 항쟁등은 사후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며 통치주체인 미군정으로 하여금 나름의 대응을 모색케 했다는 데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대한정책이 수정·굴절(UN 이관)되는 계기 중에 한국사회가 하나의 주체로서 개입했거나 선도한 경우가 있었을까? 적어도 이 책만으로는 그러한 질문에 충분히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 정용욱, 「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 -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62, 2003. [본문으로]
  2. 정용욱, 『해방직후 정치·사회사 자료집』 1-12권, 다락방, 1994; 정용욱·이길상, 『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사 자료집』, 다락방, 1995; 정용욱,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의 한국근현대사 관련자료 소장 현장과 이용 실태 조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정용욱, 『미군정 자료 연구』, 선인, 200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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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韓美관계2014. 10. 6. 09:15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동아시아 전공)를 취득했다. 1967평화봉사단[각주:1]의 일원으로 내한했고, 1981년 평양 방문, 한국전쟁의 기원1 출간 이래 현재까지 한국근현대사, 한미관계사, 미국과 동아시아 관계 등을 천착했다.[각주:2]

 

이 책은 미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미국과 동아시아, 특히 對日·관계사에 초점을 맞추어 쓴 작품이고,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시기적으로는 20세기를, 공간적으로는 세계체제 내에서의 미국과 동아시아를 주목한다.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자세히 다루는 편으로, 그것은 저자가 차용한 방법론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국가 간 관계(), 문헌 검토를 통한 (민주주의)개념의 정립, 세계체제에 관한 저자 나름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광범하다. 한편 저서의 각 장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있지 않고, 하나의 장이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서술됐다. 하지만 저서 전반에 걸쳐 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저자는 서론에서 어떠한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하게 미국과 동아시아(특히 일본) 관계를 살펴볼 것을 다짐한다. “미국식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이론과 상식이 여태껏 미국인의 눈에 暗點(scotoma, 시야결손부)”을 드리웠기 때문이다. 암점은 크게 자각할 수 있는 實性과 자각할 수 없는 虛性으로 나뉜다.[각주:3] 저자는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사를 서술함으로써 미국인의 실성암점을, “미국예외주의를 지탱하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고찰함으로써 허성암점을 드러내고 치유하고자 했다.

 

우선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목이기도 한 視差의 쓰임이다. 왜 천문학 용어인 시차를 빌려 역사를 서술해야 했을까? “인용를 통해 그 이유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저자는 벤야민을 들며, 일본에 관한 인용문을 나열했다(16-18). 각각의 인용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에 걸쳐 생산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여러 논자들이 일본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분법적 쌍(肯否, 好惡 )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서술전략에서 각각의 인용문과 일본과의 일치”, 즉 시차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일본이라는 대상은 인용문의 나열에서 보이는 것처럼 어느 시기의 특정한 인물에 의해 설명이 시도되지만, 결코 그 설명 하나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일본을 설명하는데 따르는 일치의 부재”, 그리고 그러한 부재의 충분조건인 시차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역사(서술)에서의 시차를 파악한다면, 독자는 더 이상 어떤 대상에 관해 변해봤자 그게 그거"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20). 나아가 일본이라는 대상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어느 역사서술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시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1(고고학, 家系, 대두: 미국의 신화와 동아시아의 현실)은 저자의 방법론을 설명한다. 바로 고고학과 계보학으로, 이것을 통해 독자는 자본주의적 근대의 유산인 실증주의적 합리성이나 진보담론의 인식론을 상대화할 수 있다. 저자는 저서 전체에 걸쳐 세계체제론적 입장을 취한다. 20세기 동아시아의 중심은 미국과 영국, “반주변은 일본, “주변은 중국과 한국이라는 식이다. 한편 이러한 구도는 영원하지 않고, 따라서 여태껏 미국과 영국의 패권을 뒷받침했던 진보담론은 문제제기를 다시 해야 하거나 소멸될 위치에 놓이게 된다.

 

2(동쪽 바람과 비, 붉은 바람, 검은 비: 미일전쟁, 시작과 끝)태평양전쟁(미일전쟁)”과 전쟁범죄,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을 다룬다. 한국의 해방 전후사와 전쟁범죄, 학살문제, 그리고 그것에 연루돼 가공할 폭력을 겪은 아시아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서 3(식민지적 형성과 변형: 한국, 대만, 베트남)20세기 식민지 경험을 겪은 한국, 대만, 베트남의 사례를 들어 각 국가의 탈식민 이후 경제성장과정을 보여준다. 한국과 대만이 같은 형태의 식민주의를 겪었다는 서술로 시작하여, 프랑스-베트남과는 달리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 대만의 공업화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이후 저자는 동아시아가 보여준 발전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특성을 소묘한다. 그 특성들은 제도와 형이상학을 넘나들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과연 경제적 성공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기 어렵다.

 

4(미국과 동아시아에서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에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개념을 검토한 후, 한국적 맥락에서 민주주의를 살핀다. 저자는 전자가 풍기는 서구우월주의나 오리엔탈리즘적인 함의를 비판하고, 한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에 관한 전망을 세운다. 그러나 이 장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검토라기보다는, 동아시아에서의 시민(사회)”를 모색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일반적인 주장으로 결론을 갈음한 것으로 보인다. 5(공포의 핵 불균형: 미국의 감시체제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서는 북미관계와 그 관계의 대표적 표상으로서 1993년 한반도 핵위기를 다루었다. 저자는 북한식 대응의 動因을 서술하며,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6(세계가 중국을 흔들다)은 미중관계 및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다루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은 중요한 결정이었고, 중국적 맥락에서 그는 박정희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가 적절한 지는 의문이다. 7(경계 이동: 국가, 기관, 냉전기와 그 이후의 국제연구 및 지역연구)은 국제연구와 지역연구가 어떻게 냉전기에 출현했고, 이후 해당 연구(기관)들이 어떠한 존재구속성에 놓여있었는지를 고고학적/계보학적으로 추적했다. 8(동아시아와 미국: 複視와 패권적 대두)은 저서의 결론부로, 20세기 미국패권과 그 아래서의 동아시아(특히 일본)를 언급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 세기에 걸친 장기지속적인 미국의 패권체제 아래서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그들의 對美관계사를 거시적으로 다루었다. 평자는 그러한 거시적 조망의 유용함을 인정하나, 저자의 전망이 가지는 타당함을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러한 조망이 정확한 것인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저자에게 패권(헤게모니)은 그람시적 의미로서 패권국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인민(여기서는 국가)들이 합의된 것처럼 여기고 그대로 시행하는 바를 의미한다(206). 한편 국제관계에서 이것은 제국,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비공식적 제국을 아우르고, 그 너머까지 넘보는 용어이다(26). 그렇다면 저자에게 헤게모니는 어떠한 기의를 표상하는가? 모든 것? 저자는 미국패권이라는 구조 내에서 기술과 생산이라는 2가지 요소가 개별국가들의 위계를 결정하는 주요요인으로 보았다. 더하여 그는 냉전이 개시됨에 따라 세계체제는 양극체제(“철의 장막을 경계로)로 나뉘었고, 각 권역에서 체제적 분업과 중심-반주변(일본, 독일)-주변이라는 구도가 등장했다고 본다. 미국의 패권이 1945년 이래 동아시아에서 강력히 작용했다는 점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41), 체제의 구조적 규정성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들을 세계체제론가 지닌 지나친 도식성 안으로 끌어들여 설명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 방식과 역사 자체를 상대화할 수 있는 한 가지 계기를 다시 마련해주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미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각주:4]

  1. Peace Corps. 케네디가 시작한 미국의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1961년부터 지금까지 130여 개국에 약 210,00명을 파견했다. http://en.wikipedia.org/wiki/Peace_corps 참고. [본문으로]
  2. 브루스 커밍스, 김동노 외 옮김, 『미국 패권의 역사』, 서해문집, 2011 참고. [본문으로]
  3. 두산백과 “암점” [본문으로]
  4. 정용욱, <‘점령’의 역사적 구조와 대중의식, 그리고 과거사 인식>, 『대학신문』 인터넷, 2013년 5월 25일 게재 승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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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韓美관계2014. 10. 6. 09:10

이 책은 1945년 일제의 패망부터 1960년대 중반 한일회담반대투쟁까지를 종축으로 삼고, 한국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문화적 위상과 역할의 실체, 다시 말해 한국현대사 속 미국의 (문화적) 개입과 영향”(“미국의 헤게모니”)을 밝히기 위한 하나의 우직한 시도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로 구성돼있고, 각각이 1945년부터 6·25전쟁 이전까지, 1950년대, 1960년대를 다루고 있다. 그 중 분석의 핵심은 2부로, 저자는 200여 쪽을 할애하여 6·25전쟁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미국이 한국인의 집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모습을 시작으로 1950년대 미국이 수행한 다양한 패권사업의 구조와 양상을 세밀하게 서술했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면, 1부는 미국이 문명국의 위상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한 공보원(미군정 공보국미군정 공보부OCIUSIS/K)과 전국적 지부의 현황(2), 친일 경력이 있는 기독교 인사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한미협회(3) 등을 비롯하여 미군정기와 건국 이후미국 문화사업의 물적 토대를 주로 설명했다. 이어 저자는 2부에서 문화적 개입의 범주를 일상 생활양식을 포함하여 의료·보건(4), 언론·공보(2, 5, 7), 교육·유학(6, 7), 지역개발·농촌개편(8) 등으로 나누었고, 각각의 전모를 면밀한 사료분석을 통해 다루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3부는 미국이 한국에서 수립하려던 문화적 중심-변경의 위계 중 변경”, 즉 당시 한국, 그 중에서도 한국 지식인의 반응을 중심으로 한국의 민족주의가 보여준 균열을 제시했다. 대개의 냉전문화연구가 분석의 범주를 크게 세 층위, 사상·이념/제도·정책·매체/소비·현상으로 나눈다고 할 때, 이 책은 한국현대사 속 20여년을 배경으로 하여 세 층위의 범주를 나름대로 전부 다루면서도,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요소를 계속 염두에 두었다(1, 3).

 

저자는 기존에 제출된 명제의 한계를 밝히고, 그 위에 자기주장을 부연하는 방식을 통해 저자 나름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 내에서 한국이 반공의 보루’, 前線國家(frontier state)’라는 인식상의 위상을 부여받았다는 주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저자는 이러한 종래의 이념적인 해석(‘혈맹’, ‘봉쇄의 최전선’)만으로는 냉전시대 한미관계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20세기 초반 활약했던 미국의 역사가이자 이론가(ideologue)이기도 했던 프레더릭 터너(Frederick J. Turner, 1861~1932)를 빌려와, 당시 한국은 미국발 서진운동(중간)종착역으로서, 미국으로부터 문명을 들여와야 할 邊境國家(frontier state)’라는 인식상의 위상도 부여받았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저자는 당대 미국의 문화 전파 담당자들의 인식수준과 양상, 실천을 사료 속에서 발굴하여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츠지야 유카의 친미일본의 구축이 언급한 미국의 대일점령정책 속 일본인식과 비교 및 종합을 시도할 수 있는 재료적 근거가 될 것이다. 물론 허은과 유카 등의 연구만을 가지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대한·일 문화정책을 아우르려는 시도는 역부족에 그칠 공산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살펴본 연구들을 통해 당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두고 ‘(냉전)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에 입각하여 그전과는 외형을 달리하는 제국주의적인 문화 정책을 입안·수행했고, 미국은 한국보다는 일본에 문화적인 공로를 많이 들였으며(미국 내 親日派의 계보, 국화와 칼이나 동양문화사같은 서적, ‘역방향(reverse course)’ ), 양국의 미군 점령기이후로도 한··3국에서 반공주의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미국의 의도에 균열을 일으키려던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우회해야 했거나, 배제 또는 馴致됐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국에서 억눌리고 배제된 목소리’, 또는 다른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사실들 중에서도 저자는 특히 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한편으로 문화영역에서 한국의 주체성을 설정하는 문제와 접속돼있고, 다른 한편으로 당시 미국의 문화적기획(패권사업)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것에 내재한 고유의 모순이나 한계를 들춰내려는 시도와도 연결돼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신생 대한민국에 부과하려던 (문화의) “중심-변경의 도식은 1960년대에 들어와 일군의 한국인에 의해 제국-신식민지라는 도식으로 결국 부정되기에 이르렀고, 이제 탈주를 위한 주체로 민중이 설정될 터였다. 저자가 수행한 이러한 대안적 시도의 발굴은 고고학적·계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한편으로 몇 가지 의문을 추가적으로 제기하게 한다. 한국인들의 문화적 탈주시도는 왜 하필 1960년대 초중반에 대두됐는가? 저자의 서술대로라면, 그러한 시도1950년대에는 잠재돼있었는데, 그것은 이승만 정권의 강고한 반공체제를 방증하는 것인가?(357) 또한 탈주대두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얼마나 대표성을 지니는지 등이 궁금했다.

 

앞서의 질문을 포괄하며, 이 책을 통해 평자가 제기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질문은 당시 한국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포착(실체화)하고 평가할 것인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먼저 저자가 결론부분에서 지적·도덕적 패권을 구축하려고 했던 미국의 시도는 궁극(적으로) 성취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 점은 일견 타당한 듯 보인다. 남한의 거의 모든 사람과 지역을 망라하기 위해 미국이 수행한 각양각색의 문화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문명주도국이자 민족적 열망을 채워주는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은 확고할 수 없었다. 책이 잘 보여주듯, 시기와 분야를 달리하며 미국식 노선에 사상적 균열을 일으키는 이반자(dissident)는 항상 존재(오기영부터 홍이섭까지)했고, 더하여 문화권력의 담지자인 지식인 및 사회주도층과 지배블록의 정점에 있던 한국정부조차 항상 미국과 궤를 같이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저자가 미국이 미국의 패권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 제반 분야의 내용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입장을 취해갔다.”라고 요약한 부분도 눈여겨봐야 한다. 각 분야에서 펼쳐진 미국의 노력과 타협은 결국 이승만-장면-박정희로 이어지는 한국정부의 방향성을 일정하게 순치시켰다는 저자의 주장 역시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저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한국의 근대성과 정체성의 한 축을 구성한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한국 사회가 냉전 분단 시대의 질곡과 끊임없이 대결하며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수립해왔다.”고 주장했다. 더하여 이러한 사상의 운동이 정치적 주권, 문화적 독자성을 추구할 때, “민족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의 담지자, 또는 이것을 외친 주체는 누구였을까? 이에 대해 이 책은 일단 일군의 비판적 지식인과 학생들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있어 미국(또는 대미인식)한국의 민족주의가 이론적으로는 부정해야할 규칙(大他者)이면서도, 물질적으로는 타협해야할 실체를 지닌 존재(小他者)일 것이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제외한 다른 한국인들과 한국의 민족주의와의 관련은 어떤 모습이었고, 그 관계는 어떻게 서술해야 할까?

 

앞서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나니, 오히려 한국의 근대성과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문화적 패권사업이야말로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1960년대 이후로 시야를 넓힐 경우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 생활양식을 포함하여 문화를 파악하는 저자의 전략을 따를 때, 유학을 통해 권력의 중추에 도달한다거나(6), 놀라울 정도의 영어교육열(7), ‘민족이란 언술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미국식 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를 사고할 수 없게 만든 점(8) 등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작동한다. 이러한 모습이 전적으로 당시 미국에 기인한 것이라곤 하기 어렵겠으나, 좌우간 미국이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는 징후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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