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북한연구2015. 3. 4. 17:11

북조선사회주의체제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립된 체제이며 그 세부의 모습과 역사적 성격은 어떠한가? 이 책은 저자의 도쿄대종합문화연구과 국제관계론 전공 박사학위논문인 北朝鮮における社会主義成立 1945~1961(1995)을 수정·증보한 것이다.[각주:1] 저자는 저자의 지도교수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의 주장, 즉 북한국가의 성격은 국가사회주의체제[각주:2]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유격대국가가 세워진 모양새라는 명제를 수용·분석·보완하고자 했다. 와다의 연구 성과는 체제불변설을 주장하는 기존의 연구를 극복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북한사회의 특수성언제성립됐는지에 관해서 말을 아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저자는 서장과 종장을 포함하여 모두 7, 1,000여 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통해, 1945~61년 동안의 북조선사회주의체제의 제도적 형성과정을 당··행정기구·경제관리 부문으로 나누어 실증하였다. 다시 말해, 저자는 와다가 국가사회주의체제라고 총괄한 부분을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세밀하게 살피고, 제도적 형성의 측면에서 북조선사회주의체제의 역동적인 성립과정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일단 이 책의 전후복구시기 이전[각주:3]까지를 다룬 부분을 일별함으로써, 6·25전쟁 휴전 이전 북한의 초기역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자 한다.[각주:4]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은 무엇인가? 저자는 북조선사회주의체제는 1961년의 조선로동당 제4차 당대회를 전후하여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당··군의 일체화를 완료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의 시기구분을 따라 북한의 역사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해방 직후부터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19462)가 세워지기까지 38선 이북의 사정은 느슨한 인민위원회체제였다. 그러나 이후 북조선인민위원회(19472)의 설치, 두 차례 미소공위의 결렬, 급속한 민주개혁’, ‘조선 문제UN이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출범(19489)과 같은 큼직큼직한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은 국유화(기간산업 부문)와 사적 경영(농업, 유통 등)이 혼합된 다()우클라드(уклад; 경제 형태) 위에 이질성과 다양성을 품은 =국가체제가 들어서는 인민민주주의국가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남침과 전쟁은 이후 =국가체제가 농촌의 지엽 말단에 까지 침투한 전시체제를 빚어냈다. 전후 1958년까지 =국가체제의 행정력과 조직력은 증대됐으며, 1958~61년에 걸쳐 당의 일원적 지도체계가 정··사회(·)에 관철됨으로써 =국가체제가 전 사회를 포섭한” ‘국가사회주의체제의 건설이 일단락되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저자의 시기구분에 따라 북한의 정치사 서술에 비중을 두되, 군을 비롯하여 행정경제분야를 도외시하지 않고 인민민주주의국가단계에서 국가사회주의체제로 변모해나가는 과정을 서술하였다. 뿐만 아니라 책의 백미가 4, 1950년대 전후 복구와 =국가체제가 사회 전분야로 파고들어가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인 만큼 저자는 이 장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였지만, 1~3·5장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1장의 보론에서 다뤄진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창설에 관하여는 북분국의 기관지인 정로가 아직 모스크바의 문서고에서 잠자고 있을 시점에 쓰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초기의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의 공식설명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여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가설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2장은 토지개혁의 결정 과정과 군·당 관계에서 드러난 사회주의국가로서 북한이 가진 특수성(당의 통제<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인민위원회)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3장은 박헌영에 대한 숙청재판에 얽힌 북··소 관계를 짐작케 한다.

 

저자가 동원한 방대한 자료 및 그 효과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인정한 바 있다. 역사가 김성보는 1945년부터 1949년까지의 북한 역사는 김광운의 북한정치사연구 I, 그 이후 1961년까지의 시기는 이 책이라고 함으로써, 북한의 건국 15년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대표하는 책이라는 위상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자료는 북한사, 특히 1950년대의 역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라 할만하다. 저자는 북조선의 공식자료인 당결정집과 김일성의 발언(김일성저작집), 당기관지인 로동신문(이전 정로), 이론지 근로자, 정부기관지 일간 민주조선을 비롯하여 인민, 옳은 노선을 위하여, 조선중앙연감(1949, 1950년판)등 북한자료, 남한·미국·러시아·중국·일본(사상휘보, 월보) 자료, 사전, 일지, 연감, 수기와 증언 등을 섭렵하여 구사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책을 펴내는 과정에서, 과거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할 당시에 입수하지 못한 자료들을 추가적으로 수집하여 비판·게재하는 학구적 성실성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역사학도에게 귀감이라고 할만하다.

 

한편 저자는 어떠한 문제의식과 이론적 틀을 가지고 와다 교수의 입론을 비판적으로 보완하려고 했는가? 저자는 이정식, 서대숙, 커밍스(코포라티즘론), 이종석(유일지도체계), 박명림,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스즈키 마사유키(鐸木昌之, 수령제), 와다 하루키, 김성보, 김광운(김일성지도체계) 등 기존의 연구 흐름과 본인의 명제를 견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와다의 국가사회주의체제+유격대국가론사회주의국가라는 북한의 기본적인 전제를 미처 살피지 않았고, 다만 1960~70년대 이후 북조선사회주의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국가사회주의체제로서의 일반적성격이 만들어지는 시기인 1945~61년에 주목한 것이며, 같은 시기를 단계적으로 세분하여 정치·사회·경제를 아우르는 체제 일반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은 저자의 엄밀한 실증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국가사회주의체제론이 사회주의=전체주의라는 식의 냉전적 분석과 어느 정도 동형이라는 의심을 살 가능성이 존재한다. 소련과 동구, 독일 등 국권적 사회간의 상호 관련을 역설하는 와다나, 그의 국가사회주의론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는 아닐까? 물론 저자의, 그리고 와다의 국가사회주의론=국가사회를 억압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이른바 전체주의분석) ‘국가’, ‘사회’ 3자의 유기적 결합을 중시한다. 하지만 양자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국가의 위로부터의 장악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인민의 자발성이나 그러한 모습이 체제에 스며드는 체제적 역동성은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으며, 저자는 그러한 공백을 계파간의 정치과정으로 채우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북한사 서술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저자가 견지했던 자료에 대한 엄정한 자세는, 적어도 실증의 면에서 이 책을 뛰어넘는 대작이 좀처럼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케 한다.

 

  1. 논문의 요지는 다음을 참고. http://gazo.dl.itc.u-tokyo.ac.jp/gakui/cgi-bin/gazo.cgi?no=111492 [본문으로]
  2. 이 글은 국가사회주의체제에 관해 와다 하루키, 고세현 옮김, 『역사로서의 사회주의』, 창작과비평사, 1994(『歷史としての社會主義』, 東京: 岩波書店, 1992); 이신철, 「국가사회주의의 "아시아적 형태"로서의 북조선체제론의 몇 가지 문제」, 『史林』 26, 2006 등을 참고하였다. [본문으로]
  3. 각 장의 제목과 다루는 시기는 다음과 같다. 제1장 해방과 인민위원회(1945~1946) / 제2장 ‘인민민주주의국가’ 수립과 ‘당=국가’(1946~1950) / 제3장 6·25전쟁과 전시체제(1950~1953). [본문으로]
  4. 2015년 현재, 이 책에 대한 서평으로 모두 3편의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글은 다음의 서평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김성보, 「방대한 자료로 밝혀낸 '북조선 국가사회주의체제'의 역사」, 『역사문제연구』 14호, 2005; 김용현, 「정치·경제·군사·지역 포괄한 북한 연구의 기념비」, 『월간말』 226, 2005; 박명림, 「일급에 이른 북한연구의 결실」, 『창작과비평』 33(2), 200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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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5. 3. 3. 07:35

이 책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쿠데타로 출범하여 장장 19년 동안 통치한 박정희가 군림했던 시기, 1961~79년 사이의 한국을 지칭하는 박정희시대의 면면을 살피려는 시도이다. ‘개발독재라는 제목에서부터 이 책이 품고 있는 야심찬 기획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박정희시대를 다루는 연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올리기 위한 글 모음이면서 동시에 박정희시대에 대하여 나름의 성격규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박정희시대를 살펴보는 것에서 나아가 나름의 학술적(해석적)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한편 공저자는 오늘날 한국사회(또는 학계)에서 박정희 바로보기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우상화 담론을 들었고, ‘냉정한 학술연구를 통해 그러한 우상화 담론을 해체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구성을 살펴보자면, 이 책은 총론을 포함하여 모두 12장으로 이루어져있고, 1부인 경제개발의 빛과 그늘에서 6편의 글을, 2부인 개발독재의 정치사회학에서 5편의 글을 담고 있다. 공저자의 학문적 배경도 꽤나 다양하다. 이 책의 길라잡이 격인 총론을 집필했고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경제학자 이병천을 필두로 하여 프랑스에서 경제를 공부한 서익진,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이정우 등 경제학자들의 글이 1부를 구성하고 있다면, 2부는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2006)을 역임했던 북한 전문가 이종석, 실천적인 한국근현대사가 한홍구, 비판적인 사회학자 홍성태 등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공저자의 표현을 빌릴 때, 1부가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박정희 개발체제라는 이론에 살을 덧대는 작업이라면, 2부는 개발체제의 정치사회적 이면과 그에 대한 담담한 비판을 담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개발)체제를 매개로 하여 박정희시대를 살핀 후, 그 시대의 핵심적 성격을 개발독재라는 용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불어 2010년대 전반의 한국을 뜨겁게 달군 화두가 경제민주화임을 감안할 때, 1부의 저자들, 특히 이병천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의 담론을 살펴보는 일 또한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책에 실린 각각의 글을 자세히 분석하기보다는 공저자가 공유하고 있는 의도를 추출하여 이 책의 핵심을 짚고, 그에 대한 나름의 비평을 시도하겠다. 공저자에 따르면, “박정희시대는 한국 모더니티 형성의 역사적 전환점을 구성하고 그 기본 틀이 짜인 시대였다. 이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과 제()모순이 가깝게는 이 시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박정희시대를 공부한다는 것은 지금을 바로 보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박정희시대는 대체 어떠한 시기였을까? 그 시기의 한국은 어떤 체제를 꾸려 살았으며, 그 체제는 어떤 모순들을 가지고 있었을까? ‘박정희시대의 체제의 내·외부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각각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했을까?

 

이 책의 총론은 박정희시대개발(독재)체제로 규정하기 위한 시론인 동시에, 공저자의 시선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 이병천은 몇 가지 이유[각주:1]를 들어 개발독재론의 유효성을 설명하면서도, 이를 다른 이론과 견주어가며 박정희시대를 하나의 체제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저자의 이론적 골격은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진전시킨 제솝(Jessop)의 국가론[각주:2]의 세 요소, 헤게모니의 구조적 결정”,[각주:3]전략적 지향”,[각주:4]축적과의 관계[각주:5]이다. 저자의 판본에서 개발독재국가의 첫 번째 요소는 개발지배블록”,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소는 각각 경제개발 성과를 주요한 정당성 원리로 삼는 이념국가-시장-제도의 성장지향적 협력이 차지하였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박정희시대를 하나의 이론으로 꿰어 일목요연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과연 개발체제의 역사적 실상(實狀)을 얼마나 반영하고 담아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병천의 글은 실제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큰 약점, 어떻게 보면 사회과학 방법론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약점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의 세 요소는 어디까지나 이론으로, 그것은 역사에 비추어봤을 때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괴리와 균열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그람시-제솝-이병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지적 흐름 속에서 국가라는 개념은 박정희시대의 무엇으로 치환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국가는 박정희 개인이었는가, 아니면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이었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박정희 개인군부집단’, ‘지배권력을 번갈아 사용했을 뿐 일관된 설명을 제공하진 않았다. 요컨대, 특정 어구가 함축하고 있는 내용이 저자의 편의에 따라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가 시기에 따른 내용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거나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실증적인 연구가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일종의 전형(典型, model)을 창출하려다보니, 역사적 현실의 일부를 확대해석(“국민대중의 호응과 집단적 열정”)하거나 박정희시대의 모든 성격을 아우르려는 욕심에 혼종적(hybrid)인 개념(“국가주의적 산업화의 수동혁명체제”)을 조어(造語)하는 사태를 낳고 말았다. 추상(이론)에서 구체(사실)로 내려가 면면을 살피는 작업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추상의 완결성(여기서는 개발독재론)을 위해 구체를 버리거나 외면하는 태도는 실증적이지도 않고 학술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의 취지로 돌아가보자. 이 책이 애초에 가졌던 취지 중 하나는 박정희시대에 대한 서로 상반된 관점인 반독재 민주화운동동아시아의 기적을 우선 넘고, 나아가 “21세기 탈냉전·탈극단시대의 역사상을 정립하려는 것이었다. ‘바로보기만 해도 쉽지 않은 것인데, 이중삼중의 과제를 설정한 것 아니었을까?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대상을 정립한다는 애초의 기획 자체는 오히려 바람직하다고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저자의 글들이 책의 원래 기획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어떤 답을 내리기 힘들다. 먼저 체제’, 즉 어떠한 사회과학적 전형(典型, model)이라는 창()을 통하여 일정한 시기를 규정하는 작업이 가지고 있는 적지 않은 한계와 난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은 곰곰이 따져보고 해부해볼만한 분석과 주장을 다수 담고 있다. 예컨대, 홍성태의 글은 그가 구사하는 이론적 자원(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의 효용이나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제출된 비판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또는 이 책이 피하고자 했던 근본주의적 초비판과 가깝다는 오해를 사기 쉬우며(물론 그가 비판하는 문제들은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종석의 글은 구체성을 결여한 인상비평에 가깝다. 대체 북한적 요소라는 말은 무엇을 언급하는 것이었을까? 앞서 2부의 글을 예로 들었는데, 1부에 실린 글들도 비판할 구석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조영철의 글은 박정희시대에 한국사회에서 재벌이 공고해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지만, 근거가 미흡한 부분(135; 151)이 존재하고 분석의 수준이 세밀하다고는 볼 수 없다.

  1. 이병천은 개발독재론의 유효성을 ①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 정치경제학적 시각과 접근방법을 제공해주고, ② 개발, 민주주의, 민족주의라는 핵심 주제를 아우를 수 있으며, ③ 시초축적체제로서의 역사성과 반동적 억압성이라는 “근본적인 내적 모순”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본문으로]
  2. Jessop, B. State Theory: Putting Capitalist State in its Place, Polity Press, 1990. [본문으로]
  3. “특정한 세력과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고 여타 세력의 이익을 희생하는 국가 형태에 각인된 구조적 특권 또는 국가의 구조적 전략적 선택성.” [본문으로]
  4. “헤게모니 세력의 장기적 이익을 보장하는 국민적 대중적 프로그램의 추진과 피지배세력의 특수한 이익의 실현을 성공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의 개발” [본문으로]
  5.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추진이 적절한 성장모델 또는 축적전략의 뒷받침을 받아야 함을, 그리하여 피지배세력들에 대한 물질적 양보의 제공에 의존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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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5. 3. 2. 23:33

이 책은 저자(木宮正史, 1960~)의 고려대학교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인 한국의 내포적 공업화전략의 좌절: 5·16군사정부의 국가 자율성의 구조적 한계(1991)를 개정·증보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 시즈오카(静岡)현 출신으로, 1983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고, 1993년에는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부터 일본 대학에서 조교수·교수 생활을 거쳐 2015년 현재 도쿄대학 정보학환(情報学環)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개의 박사학위논문이 일련의 수정을 거쳐 단행본으로 나오는 한국학계의 관행과는 달리, 이 책은 원래 학위논문의 분량만큼이나 새로운 내용을 덧붙여 분석의 수준을 확장·심화하고자 한 듯하다. 책은 총 314장으로 구성돼있는데, 학위논문을 증보한 1부가 네 장, 새롭게 쓴 내용으로 구성된 2부가 일곱 장, 3부가 세 장이다. 1부는 한국정부가 수출지향형 공업화 정책을 택하게 되는 정치과정을 분석했고, 2부는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을 다뤘으며, 3부는 국제적 조건과 한국의 대응(“이용”)을 살폈다. 각 부는 시기적으로는 1961~63, 1964~67, 1965~66년을 다루었으며, 특히 마지막 3부는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의 전개과정 및 각 사건의 경과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식민지 경험을 겪은 나라 중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경제성장)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봄의 표현을 빌려, ‘이중혁명의 과실을 쟁취한 현대 한국의 정치경제적 경험은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에게 고구(考究)의 대상이었다. 저자 또한 이러한 관심을 공유한 상태에서 경제성장의 전사(前史)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1960년대를 살핀 것이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한국 정부 내지 한국 사회의 대응에 주목하여 이를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내려고 하였다. 저자는 한국의 대응을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사회)의 능동성한국 국가의 성격 문제라는 두 가지 매개를 통하여 고찰하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행위자의 인식과정과 결정에 주목하는 구성주의적 시각을 분석의 기본방안으로 채택하였고, 미국 측 자료와 한국 측 자료를 이용 가능한 한 총동원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료 구사는 역사학 논문의 특징을 방불케 할 정도이다.[각주:1]

 

저자는 1부에서 상이한 시각으로 구성된 기존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 자신의 이론적 자원(구성주의)과 그 유효성을 내세우면서, ‘1960년대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자들과 이를 둘러싼 구조적 조건의 정치적 역학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하였다. 저자는 주요 행위자들을 일차적으로는 국적에 따라 나누었으나, 같은 국가 내에서도 대사관이나 군, 기획처 등 기관별로, 더불어 그러한 기관 내에서도 개개인을 구별하여 서술하였다. 저자는 박희범, 유원식 등 경제관료들의 사후적 인식과 면담 등을 토대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보완·수정되는 과정과 이 계획에 담긴 방향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를 내포적 공업화 전략이라고 요약하였다.[각주:2] 하지만 이 계획은 이후 수정을 강요받게 되는데, 저자는 미국자료에 기초하여 5·16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 박정희의 방미(196111)를 둘러싼 한·미간의 입장차, 한국측의 선택폭을 제한한 미국의 압력 내지 간섭(종합제철공장 건설 계획의 백지화나 재정안정계획의 복원)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그 수정 과정을 보여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초기 군사정부의 복안이었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좌절되었으나,[각주:3]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요인은 미국이라는 외부적 요인의 존재였다. 본문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의 존재는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과정에서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압도적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경제적 안정의 달성이라는 대한원조정책의 기본 목표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한국측의 시도는 모조리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장기 경제계획의 필요성이나 한국정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모든 계획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기간산업 건설에서 국제수지 개선이라는 목표와 이를 위한 방법, 즉 수출지향형 공업화로 일정하게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2부는 잔여적선택지로서 선택된 수출지향형 공업화 정책의 결정과정에 초점을 맞춰 여섯 가지 주제(재정안정계획, 환율제도 개혁, 금리현실화, 수출진흥 정책, 외자도입법, 무역자유화)를 분석하였다. 이 부에서 저자는 신문(특히 동아일보, 회의록, 서한, 전신(電信), 면담 등의 자료를 기초로 하여 각 정책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서술했는데,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국의 압력이 한국정부의 선택지를 줄여나가는 과정 내지 구도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저자는 한국이 미국의 권고에 순진하게 복종만 하진 않았고, ‘자율성을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쾌도난마와 같이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자료의 부족 속에서 재구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곱씹어볼 만 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는 한일수교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라는 두 사안을 두고 벌어진 한··일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구성주의적 접근의 효용을 강조하였고, 그에 따라 다양한 주체들의 세계인식 및 정책결정 과정, 거기서 발생한 정치경제적 효과 등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주의적 접근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지고 있고, 이는 자료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예컨대, 주체 생각과 인식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자료가 보여주는 것 이상(예컨대 주체의 속내)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접근을 취해야하는가 등의 질문이나 문제가 곧바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주체들을 설정하고, 1차 자료를 통해 그러한 주체들의 인식과 생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심층적인 분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표면적인 서술과 그에 따른 추론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통화개혁의 예를 들자면, 1962년 내자 동원을 위한 통화개혁의 추진 과정에서 1953년도 통화개혁의 실무진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저자는 성격이 분명히 다른 두 개혁의 상관관계나, 전자의 개혁이 실행된 이유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미국이라는 요소, 또는 그 힘의 성격과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라는 실체는 주한미군이나 원조 등의 기제를 통해 일견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유솜의 예(201)에서 볼 수 있듯, 기관의 인사 변화에 따라 미국의 대한(원조)정책이 변화했다고 주장하는 등, 시기에 따른 미국 정책의 변화요인을 단순화시켜버린 바 있다. 미국의 정책을 분석할 때에는 미국의 대()세계정책부터 시작하여 아시아, 한국 순으로, 그리고 미국의 국내 상황과 한국의 국내 상황을 시야에 넣어 파악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1. 저자가 구사한 자료의 소장처는 다음과 같다. 케네디대통령도서관, 존슨대통령도서관, 미국국립문서관(NARA), 미국정부 비밀해제문서 조회시스템(DDRS), 미국국제개발처(USAID) 도서관, 한국 외교사료관, 경제기획원 도서관, 한국 국가기록원 등. 이 글은 박태균, 「강요된 자율적 선택」, 『역사와 현실』 71, 2009도 참고하였다. [본문으로]
  2. 제1차 5개년경제개발계획의 수립 과정은 이전 계획을 답습하면서도 각 시점의 대내외 환경 및 입안자들의 논쟁을 반영하여 보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제1차 5개년경제개발계획(시안)』(약칭 건설부안) → 『종합경제재건계획(안)』(약칭 최고회의안) → 『제1차 5개년경제개발계획』(약칭 경제기획원(EPB)안) [본문으로]
  3. 저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① 군사정부 내의 권력 기반의 취약성 및 불안정성, ② 민간 기업들의 미약한 지지, ③ 밑으로부터의 민족주의와의 결별, ④ 미국 정부의 거부권 발동, ⑤ 외자도입 다각화 기도의 한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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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韓美관계2015. 2. 21. 08:00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1942~19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성 구상(1996)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원래 논문의 본문은 모두 48절로 구성돼있는 데 비해, 이 책은 원래의 논문에서 각 장절의 명칭을 세련되게 바꾸었고 2(2)에 하나의 논문[각주:1]에 해당하는 절을 추가로 삽입하여 모두 49절의 체제를 갖추었다. 논문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미국의 과도정부 구상을 매개로 하여 1942~47년의 시기 동안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이 형성·완숙·변형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복원하였다. 집필뿐만 아니라 저자는 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1차 자료의 수집·편집·출판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각주:2] 연구자들 사이에서 한국현대사 연구의 진전을 가로막는 제1요인으로 흔히 자료적 제한이 운위되는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저자의 피땀 어린 노고와 그 결실은 고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갖는 의미를 간략히 짚어보자.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은 20세기의 역사에서 가히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태평양에서부터 구라파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지역을 통치했던 구()제국이 일단 몰락하거나 주춤했고, 식민지·()식민지 지역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분출하였다. 옛 제국이 차지하던 위치는 장차 미국이 대체할 터였다. 한편 지구 각지의 민족운동은 그 내용과 형태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코뮤니즘(Communism)이라는 외피를 입었으며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직간접적인 관련 속에 놓였다. ‘연합국두 수뇌국끼리의 대결의 징후는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전후하여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소 양국은 38도선을 경계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분할·점령하는데 동의했다.

 

한국인은 제국을 상대로 간고한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인들의 활약을 선뜻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 패망 후에도 한인들의 집단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과연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은 무엇이었는가? 그 역사적 전개, 귀결, 성격은 어떠하였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치밀하고 실증적인 대답을 제공한다.

 

우선 저자는 이 책에서 해방 전후 미국의 과도정부 수립구상과 그 실현과정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같은 시기 미국의 대한정책이 형성·전개되는 모습을 해명했고, 미국의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한점령정책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특질을 분석해냈다. 저자는 이 책의 결론부에서 몇 가지의 역사상을 제공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42~해방 이전(1) 해방~1차 미소공위(2) 미국의 중간파 정책과 2차 미소공위 시기(3) 공위의 결렬과 다가오는 단정(4). 물론 각 부는 평자의 시기구분과 엄밀히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다양한 시간대가 부를 넘나들며 중첩돼있다.

 

먼저 저자는 미국의 대한정책과 점령정책의 졸속성 및 편의성을 강조하는 논리, 준비결여론이라든가 선의의 무지론등을 통박했다. 이는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미국 전후구상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계기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저자의 주장에 잘 나타나는데,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찍이 1942년부터 한반도와 만주를 시야에 넣어 전시·전후 구상을 기획하였다. 저자는 일명 노터 파일, T316등 미국무부 내 자문위의 소위원회 보고서들, P-B81, JANIS 75등 광범한 자료를 통해 해방 이전 미국의 대한정책은 구상과 계획으로서는 완숙단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증명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미국의 대한정책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급조된 것이 아니라, 전후 신세계질서' 구상과 밀접한 연계 하에 끊임없이 다듬어진국가차원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미국의 전후 대한구상이 수정을 강요받게 되는모습과 각각의 계기를 분석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세가 요동치는 시기였고, 정책입안 담당자들(워싱턴)과 집행 담당자들(미군정) 사이에도 인식과 수행방법의 차이가 점차 불거졌다. 예컨대, 애초의 미국 대한구상이었던 국제민간행정기구안이나 정무위원회안(일명 랭던구상) 같은 경우 식민지 상태에서 갓 해방된 한국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미군정, 그리고 소련 모두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무부는 모스크바 3상회의[조선임시정부안이 만들어졌다]를 거치며 원안과는 달라진 모습의 대한구상을 준비해야 했다. 이후 미군정은 UN으로 한국문제를 이관시키는 1947년 가을 이전까지 중간파정책과 중도정책을 매개로 하여 남조선 과도정부안을 추진했다.

 

같은 국가의 행위주체라고 해도 워싱턴과 미군정, 군부는 같은 한국문제에 대해 입장차와 태도의 온도차를 보였으며, 심지어 같은 기관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책은 그러한 각각의 이견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는 모습을 계기적으로 포착하는 한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그러한 수렴 과정이 이뤄지는 맥락 또한 들려주었다.

 

이 책은 신탁통치안을 비롯하여 모종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남한에서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신탁통치안의 경우를 살펴보자. 군부와 국무부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후 식민종속지역에서 민족운동이 고조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신탁통치안이 식민지역의 구식민모국으로부터의 분리와 미국 영향권으로의 재편입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에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상은 결국 점령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창출하는 작업을 전제한 것이며, 이는 어떠한 형태이든지간에 정부의 구성과 인사의 참여 등이 전적으로 미국에 유리해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미국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소련과의 대화에 임하기 위해 차례대로 고문회의-(정무위원회안)-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남조선과도입법의원-남조선과도정부 등을 조직한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에 한국문제를 UN에 이관함으로써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스스로 파기하였다.

 

이 책은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을 미국의 냉전정책이나 대소전략의 일부가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것으로 자리매김하여 분석했고, 더불어 그것이 한국인의 자주적 국가건설 노력과맞부딪혔다는 관점을 견지했다. 서론에서 밝혔듯, 저자는 미국 대한정책에는 국제적·국내적 측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변화의 원인과 동력은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한반도와 워싱턴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주제인 미국의 한국정부 수립구상과 중간파정책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며, 선행 연구를 비판하는 데에서도 미국의 국제정치사(외교사)의 연구 흐름(전통주의·수정주의) 및 세계체제론적 접근이 가지고 있는 목적론적 맹점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평자는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느꼈다. 저자의 노고와는 별개로, 이 책이 선사하는 역사상에서 한국사회가 선제적으로 창출해낸 모종의 동력이나 행동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신탁통치파동이나 ‘10월 항쟁등은 사후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며 통치주체인 미군정으로 하여금 나름의 대응을 모색케 했다는 데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대한정책이 수정·굴절(UN 이관)되는 계기 중에 한국사회가 하나의 주체로서 개입했거나 선도한 경우가 있었을까? 적어도 이 책만으로는 그러한 질문에 충분히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 정용욱, 「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 -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으로-」, 『역사비평』 62, 2003. [본문으로]
  2. 정용욱, 『해방직후 정치·사회사 자료집』 1-12권, 다락방, 1994; 정용욱·이길상, 『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사 자료집』, 다락방, 1995; 정용욱,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의 한국근현대사 관련자료 소장 현장과 이용 실태 조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정용욱, 『미군정 자료 연구』, 선인, 200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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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한국전쟁2014. 12. 8. 05:51

 1945923, 남한에 미()점령군이 진주한지 보름여 만에 최고실력자 하지 장군은 38도선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도로차단기 설치를 지시하였다. 그 결과 10월 중순까지 38도선 인근에 약 25개의 도로차단기가 설치되었다. 소련군 역시 같은 지역에 18~20개의 도로차단기를 설치하였다. 미군은 38도선 인근의 도시들을 신속하게 점령하였으며,[각주:1] 미군의 화답에 기초하여 소련군은 9월 초부터 38도선 통행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미소공위 예비회담(46.1.16~2.5)에서 한국인들의 38선 이동문제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장차 미소공위의 운명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논의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946년 여름(5) 콜레라 만연을 기점으로 38선 통행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이 책은 두 개의 시간대를 종축으로 삼고, 한반도를 이분하는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한 역작이다. 이 책에서 첫 번째 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1945~48년의 기간은 서술의 원경(遠景)으로 제시된다. 이 시기 전후(前後) 강대국의 점령정책과 대한정책, 점령과 철수라는 원심력에 따라서 또는 이에 대응하여 남과 북에서 군()정이 들어섰고 각각은 상호작용 또는 충돌하며 긴장과 적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주연은 어디까지나 미소군정이었다. 두 번째 시간대인 1949~50년의 기간은 서술은 근경(近景)이면서 동시에 이 책의 핵심적 분석대상이다. 이 시기 강도와 규모를 달리하며 벌어진 남북 간의 충돌은 결국 북한의 무장력 강화와 전쟁의 형식을 창출(“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하에서는 기존의 서평을 참고하여 특장과 구성, 자료적 근거 등을 간략히 정리하겠다.[각주:2]

 

 독자는 이 책의 특장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책의 외관이 선사하는 두툼한 두께감에 더하여 이 책의 목적이 이론과 자료에 오도되거나 미혹되지 않고 역사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저작의 실증성을 웅변한다. 저자에 따르면, 책의 핵심 내용은 1999년 완성되었으나, “북한 자료들이 미진한 관계로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저자는 2001년과 2005년에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 미국의 여러 기관을 방문해 미국 자료를 비롯하여 신노획문서 전량과 구노획문서 3분의 1 정도를 검토하였다. 요컨대, 저자는 방대한 다국적 자료를 섭렵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전쟁의 전사(前史)38도선 충돌의 역사를 탐구한 것이다.

 

 둘째, 이 책은 38도선 또는 38도선 충돌을 일관되게 매개로 삼아 미시사를 서술하였다. 다시 말해, 저자는 해방과 함께 찾아온 38도선의 형성에서부터 이를 둘러싸고 전개된 미소간의 상호작용, 미소의 군대가 철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외화(外化)된 남과 북의 충돌, 마침내 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사료에 근거하여 치밀하게 추적하였다. 서동만에 따르면, 기왕의 저작들이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등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을 중시한 데 비해, 이 책은 미시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그간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한 1945~48년의 기간 38도선과 미소점령군과의 관계 및 1949~50년의 기간 38도선 충돌과 북한지도부의 대응을 미시적으로 복원한 셈이다. 이는 메릴, 커밍스, 양영조 등이 선구적으로 수행한 1949~50년 어간의 38도선 충돌 서술을 수정·보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셋째, 전쟁의 성격과 관련하여 이 책은 내쟁 같은 국제전쟁, 외전 같은 동족전쟁이라는 1948년 남북 문화인 108인의 성명을 인용하며, “1950년 발발 시점에서 이미 내전이자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이 혼재돼있었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성격 규정은 서구 국제정치학계의 냉전연구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원했고 미소 중 어느 일방의 책임을 묻는 전통 대() 수정도식을 지양하며, 동시에 내전이나 국제전또는 내전으로 발화해서 국제전으로 비화했다는 설명도 거부한다. 저자의 성격 규정은 당시 한국인들의 정세 판단과 분석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한국전쟁의 근본적인 책임을 전후 강대국에게 돌리는 효과를 가진다. 물론 전쟁으로 치닫는 주요 동력은 내부 갈등이었으나, “그 궤도는 미소가 마련해놓은 것이었다.

 

 이 책은 800쪽이 넘는 분량으로 모두 520장으로 구성돼있다. I서장3장이고, 한국전쟁 연구사, 전재의 개전·성격·형성에 관한 논점들, 책의 구성·방법론·자료를 담고 있다. 박태균에 따르면, 이 서장은 한국전쟁 연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II미소의 38선 정책과 남북갈등의 기원5장이고, 38도선과 미소점령군을 매개로 하여 1945~48년의 역사를 살폈다. II 부는 미소 양국이 우발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교통할 수 있는 수단을 고안했으면서도 동시에 남북의 공식적 교류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상상의 선38도선이 한국인들에게 가한 실제적 힘은 경기도 연백군의 사례 두 가지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III'남북의 정치군사적 갈등과 38선 충돌'IV개전의 결정·공격 계획의 수립·초기 전투는 각각 5장과 4장이며, 단정이 수립된 이후부터 개전초기 옹진전투에 이르기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대를 미시적으로 살폈다. III부에서 저자는 최초로 1949년 한국군의 대북공격 가능성 문제를 천착하였고, 그 결과 도발 받지 않은 불의의 기습남침이나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 ‘개전정보의 실패등 남북이 주장이 바로 이 1949년에 가닿아 있음을 증명하였다. IV부는 이른바 북··소 합의의 내용과 북한의 전면공격의 결정을 묘사했고, 정찰명령 1전투명령 1, 정찰계획등 북한의 의도를 담고 있는 자료를 사료비판하였다. V에필로그3장으로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관련된 주장·의혹(‘정보의 실패’, ‘해주점령설실상을 다루었다.

 

 이 책은 역사주의적인 접근과 연대기적인 접근을 방법론적 핵심으로 삼았다. 저자가 밝혔듯, 역사학의 본령이기도 한 엄격한 자료 비판은 본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이 책은 미··, 즉 한국전쟁의 당사국이었던 3개국의 주요 자료를 비교·교차·분석하였다. 저자는 다양한 언어로 쓰인 다양한 자료를 통해 한국전쟁의 미시사적 사실(史實)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이 구사한 미국자료는 주한미군사령부 정모참모부 및 주한미군사고문단(KMAG)이 생산한 정보보고서(일일정보요약, 주간정보요약, 북한정보요약), 주한미군971방첩대의 정보요약 및 연례보고서, NARA RG 332에 소장된 미소간의 왕래서한, 주한미24군단 군사실 문서철, RG59한국 내정 관련 문서철, RG 319의 육군 정보참모부 문서철, 맥아더아카이브에 소장된 KMAG 보고서·전문철 등이 있다. 저자는 자신이 구사한 소련자료를 크게 4가지로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한국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극비소련외교문서, 냉전국제사프로젝트(CWIHP)가 발행하는 소장처·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소련문서, KGB 출신이자 소련문서고를 독점했던 볼코고노프 및 러시아 외무성 출신 학자들의 저작, 한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간행한 라주바예프(주북한 소련군사고문단장을 역임) 보고서. 기왕의 연구가 전쟁의 결정과 관련하여 지도부의 의중만을 쫓았다면, 저자는 소련자료에 드러난 1949년 소련과 북한의 시각과 입장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자료적 진가는 북한자료, 즉 노획문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가 구사한 구·신 노획문서는 대부분이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군이 북한에서 노획한 자료들이 어떠한 여정을 거쳐 미국에 도달했고 그 후 방선주에 의해 세상에 공개될 때까지의 과정을 요약하였다.

  1. 춘천(9월 19일), 삼척(9월 25일), 의정부(9월 30일), 연안·배천(10월 초), 옹진(10월 5일). [본문으로]
  2. 서동만, 「한국전쟁 연구의 새로운 지평」, 『창작과비평』 34(3), 2006; 이완범, 「한국전쟁 발발 직전의 상황」, 『역사와현실』 62, 2006; 박태균, 「다른 방식의 수정주의 뛰어넘기」, 『한국사연구』 136, 20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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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2. 3. 08:28

 이 책은 저자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인 解放後 左右合作에 의한 民族國家建設運動 硏究(1990)을 수정·증보한 것으로, 1991년 초판 이래 판과 쇄를 거듭하여 출간되었다. 1945년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편의상 한국현대사라고 규정할 때, 이 책은 한국학계에서 한국현대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학위논문과 저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좌우합작운동을 열쇳말로 하여 해방3년사(출간 당시에는 해방후사라고도 불렸던 것으로 추정)’를 탐구하였다. 이하에서는 기존에 나온 서평들[각주:1]을 참고하여 저자, 출간의 배경, 책의 자료적·내용적 핵심과 의의를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우선 한국현대사 박사 1인 저자에 관해 알아보자. 서중석(徐仲錫)1948825일 충남 논산군 연무읍에서 출생하였다. 1967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하다가 학부 4학년이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獄苦)를 치렀다. 박정희 정권은 거세지던 반대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급조하였고,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CJ)는 당시 판결(48)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한 바 있다. 그 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신동아에서 기자로 활약하였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복학하여 졸업(1984)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198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1990)를 취득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봉직(1991~2013)하면서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1986~2013, 2014년 현재 이사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자문위원(1994~2009),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장(2007~2013, 2014년 현재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80년대 후반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을 시작으로 6월 항쟁(2011)(사진과 그림으로 보는)한국 현대사(2013)까지 한국현대사의 주요 인물(이승만·김구·김규식·조봉암 등)이나 주제(민족운동·정당정치 등)를 다룬 굵직한 저작들을 펴냈으며, 연구와 후학 양성, 사회활동 등 다방면에서 실천적인 역사가로서 꾸준히 활약하였다.

 

 이 책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였는가? 박찬승과 최장집에 따르면, 한국현대()지배의 모순구조를 집단적으로 경험시켜준 구체적 계기는 바로 광주민중항쟁이었다. 한국사회는 5·18 이후 학원가와 작업장을 중심으로 반독재운동이나 반미운동 등 민주화 내지 변혁,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는 감성과 실천의 폭발적 운동을 목도하였다. 동시에 도처에서의 운동을 하나의 대오로 묶어내려는 통일전선(이하 통전)운동이 본격화되었다.[각주:2] 시대의 과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한국사 속에서 동형(同形)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의 이른바 급진적인 연구들학문적 엄밀성을 담보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회고적으로 제기됐다. 때맞춰 1990년대의 초입에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현대사 속 통전운동이 학문세계에서 시민권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615쪽 분량으로, 5개의 보론을 더하여 모두 519장으로 구성돼있다. 각 부는 저자의 시기구분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반영하였다. 일제시기, 해방~모스크바3상회의(1), 모스크바3상회의~1차 미소공위(2), 1차 미소공위~남조선 과도입법의원 개원(3), 1947~19485·10선거(4). 저자의 강조점은 아무래도 좌파통전세력과 중도우파가 가담한 좌우합작운동을 다룬 4(3)에 놓여있다.

 

 이 책이 구사한 자료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김남식·이정식·한홍구가 편집(1986)한국현대사자료총서는 해방3년사 연구의 뼈대를 이루는 신문(한성일보, 해방일보 등), 잡지, 연감, 단행본 등 연대기적 자료와 함께 주요 회의 의사록(‘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의사록), 미소공위 및 남북협상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록하였다. 이 책의 신문자료 구사 수준과 규모는 파천황이라 할만하다. 주한미군정보일지, 주한미군사, 미국무성비밀외교문서(FRUS로 추정) 등 미국 자료는 쓰인 시기를 고려했을 때 양이 적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요행위자이자 규정력이었던 미국측의 의도를 보여준다. 각 개인들의 전기·회고록·논설 등은 연대기적 자료의 공백을 채우는데 일조하였다. 사상휘보, 사상월보등 일제가 생산한 자료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일어판 코민테른 자료는 ‘12월 테제를 이어받은 ‘8월 테제’(좌경노선)의 사상적 배경을 잘 설명하였다. 이밖에도 이 책은 기본적인 북한관련 자료와 중국 관내 민족운동관련 자료를 다루었다. 요컨대, 이 책은 해방3년사 연구에 필요한 국내자료의 개황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앞서 설명한 시대적 배경을 이 책으로 외화(外化)한 셈이지만, 그것으로 소급되지 않는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서론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이 책은 혁명 대() 반혁명의 관점으로 해방직후를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분법으로 역사를 재단할 경우,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구심력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저자는 오히려 한국인의 주체적인 노력,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을 중심으로 해방직후를 살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멀게는 일제시기, 가깝게는 해방직후부터 제기된 통전운동(=좌우합작운동) 또는 그것의 역사를 매개로 삼아 해방3년사를 서술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족운동세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우익세력, (급진)좌익세력, 통전세력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2014년 현재, 재론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해방3년사를 독해할 수 있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우익세력은 임정봉대와 인공반대를 내세우며 단정도 불사하겠다는 식으로 민족국가 수립을 추구했고, 좌익세력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라는 12월 테제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계속 경직된 움직임만을 보였다. 이러한 속에서 통전세력은, 저자가 설정한 지상명제인 민족국가의 수립에 가장 적합한 세력으로 그려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세 세력의 뿌리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에 근거한 것(1)이었다.

 

 2장은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공화국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통전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를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이어 조선공산당과 인민당(여운형)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3장은 신탁통치 파동부터 1차 미소공위까지의 기간 동안 각 세력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묘사하였다. 1945년 연말부터 우익은 약점(민족 대 친일)을 냉전의 문법(찬탁 대 반탁)으로 호도했고, 좌익은 3상회의를 총체적으로 지지한다고 표명하면서 예의 경직성을 견지하였다. 저자는 박헌영보다는 백남운(=여운형)의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4장은 미소공위 휴회 이후의 남한 정국을 묘사하였다. 미국의 대한정책상의 변화와 맞물려 좌우합작운동이 제기됐으나 조공은 민전5원칙을 내세워 통전운동을 사실상 거부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좌익노선을 과오라고 평가하였다. 5장은 1947년 이후를 다루었다. 이 시기 세 세력의 노선은 각각 평행선을달렸고, 원심력이 구심력을 압도하는 현상이 남한 단선으로 표출되었다.

 

 저작의 선구성과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자에게 상당히 많은 의문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책의 도처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개입(평가, 가정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여하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의 시발이자 출범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창출하였다.

  1. 박찬승, 「한국현대사연구와 통일전선문제」, 『창작과 비평』 73호, 1991; 정영태, 「해방직후 한국정치와 사회민주주의」, 『한국과 국제정치』 7권 2호, 1991; 최장집, 「‘가능의 정치’로서의 해방후사 연구」, 『역사비평』 14권, 1991. [본문으로]
  2. 박찬승은 “1984년의 민중민주운동협의회, 85년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87년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89년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90년의 국민연합, 91년의 범국민대책회의 등”을 통일전선운동의 대표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박찬승, 앞의 논문, 1991, 24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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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북한연구2014. 11. 25. 00:34

 한국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북한은 어떠한 위상을 차지할까?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북한에 대한 이해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또 어떠한 인식구조 속에서 북한을 걸러내고 바라볼까? 국가라는 공동체 단위의 심급(審級)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을 들여다보자. 대한민국헌법 제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러한 규정은 오늘날 국제연합(UN) 가입국(1991)이면서, 7·4 남북 공동 성명(1972)에서부터 6·15 남북 공동선언(2000)10·4 남북정상선언(2007)의 상대국인 북한의 존재를 명백히 부정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수준의 지체(遲滯)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한국의 법리적 이해나 사회의 인식수준이 위와 같을지라도, 북한의 존재는 물리적으로 분명하며 점점 더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러한 이웃한 먼 나라북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북한에 대한 한국 언론의 선정적인 논조와 이념적 공세를 걷어내더라도, 특히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대권(大權)세습된 사실이나 지도부에 대한 북한 사회의 동의자유주의(대의)적 민주주의사회의 구성원에게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요소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써 북한정치에 대한 공부는 북한을 알아가는 실마리이자 관건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서울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논문인 김정일체제 형성의 사회정치적 기원: 1967~1982(2001)을 증보한 것이다. 이태섭의 저작이 김일성을 유일지도자로 선포한 북한 수령체계’, 김일성체제의 형성과정을 논구했다면, 이 책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고 이어받아 김정일체제성립의 기원과 형성과정, “1970년대 북한 사회를 탐구한 노작이다. 전자와 후자 모두 정치에 매몰된 해석을 경계하고자 했고, 따라서 북한의 상층정치노선이 국내의 사회정치(경제)적 현상이나 국외의 정세변화에 변증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두 책 모두 자료적 근거에서 한계를 지니는데, 이를 어디까지 사실(史實)로 수용할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여하튼 이 책은 김정일체제의 탄생을, 위상을 달리하는 두 가지 맥락 속에 중첩시켜 놓았다. 이 책에서 김정일체제는 넓게는 수령체계라는 맥락에서, 그보다 조금 좁게는 후계체제라는 맥락에서 각각 파악된다. 그리고 둘을 아울러 저자는 김정일체제가 1967년 형성된 수령체계의 필연적인 산물이었으며, 각각이 분리된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구조로서 작동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하여 모두 7장으로 구성돼있고, 보론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도 양태(“리더십”)에 대한 비교·분석을 제시하였다. 특히 이 보론은 북한의 향후를 전망하는데 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북한에서 수령체계가 확립된 1967년부터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대하여[각주:1]를 발표하며 김일성으로부터 영도권을 이양받기 시작한 1982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다. 저자는 수령론의 완성이 사회정치적 생명체가 제시되는 1986년에 이뤄졌다고 평가했으나, 김정일체제의 영도권 확보라는 측면에 집중하여 1982년 이후의 일화는 선별적으로만 다루었다. 1(서론)은 연구의 목적과 대상을 규정했고, 이론적·방법론적 자원을 설명하였다. 2장은 사회주의권에서의 권력계승과 북한에서의 후계자론을 비교하여 제시하였다. 3장은 북한이 인식한 대내외적 압력(“전시체제의 강요”)와 김정일의 점진적 부상(1967~74), 4장은 김정일이 북한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과정(1974~78), 5장은 김정일 후계체제의 완성(1978~82)을 다루었다. 6장은 계승의 완결이후 북한 사회가 맞닥뜨린 도전과 대응을 설명했고, 7(결론)에서는 본문을 요약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구사하고 있는 방법론, 신제도주의리더십 이론등을 앞부분에서 상세히 설명했으며, 그림을 통해 분석의 틀이나 내용을 정리·제시하는 등 사회과학 연구의 기본을 충실히 갖추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의 백미는 내재적 독해에 입각한 북한 지도부의 육성(肉聲)을 꼼꼼하게 정리·서술한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평자는 북한 연구에서 필요한 실사구시적 자세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읽는 것이라는 이태섭의 지적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이태섭의 저작을 비롯하여 이 책 또한 북한에서 출간·발행된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였다. 물론 학계의 평가에서 엿볼 수 있듯, 그러한 자료들은 북한의 사실이라기보다는 당의 입장이나 세계관에 부합하는 주장에 가깝다.[각주:2] 하지만 저자가 이용한 자료들의 성격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은 독자에게 북한정치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일관된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김일성저작집이나 김정일선집등 북한 지도자의 말과 글, 당의 노선 및 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근로자와 같은 잡지지 등 여러 북한의 공식서사와 공식기록을 담고 있는 자료집과도 같다.

 

 저자는 수령체계의 귀결점인 후계체제의 등장원인으로 다음과 같은 대내외적 요인을 제시하였다. 첫째, 사회주의진영 결속의 점진적 해체와 1960년대 중·후반 북한 내부의 도전. 둘째, 2차 인도차이나전쟁 및 남북한의 체제경쟁에 따라 강요된전시체제. 셋째, 신세대의 성장과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단계로의 진입. 이러한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북한은 이전 시기의 경험(행정수령으로의 집중)을 십분 살려, 지도부를 중심으로 가파른 위계를 설정(“과소응집”)하면서도 집단주의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노선을 택하였다. 그것은 동시에 후계체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저자는 김정일이 후계체제에서 두각을 드러낸 직접적인 계기로 박금철·이효순 사건과 김창봉·허봉학 사건 등 1967~69년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위기를 제시하였다. 북한의 공식서사에 따르면, 김정일은 이 과정을 통해 정치경험을 쌓고 원로세대로부터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북한 지도부의 노선은 이른바 계속혁명또는 혁명전통의 계승이라는 논리와 과소응집의 문제를 종합하여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수령제 사회주의의 핵심 정치주체로 범빨치산계()’를 들며(98~103), 8종파사건이후 1970년의 언저리까지 북한정치사의 전개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1로군으로 권력집중이었다고 서술하였다. 김일성 세력은 1967년 갑산계를 쳐낸 후 3년 만에 북한의 상층정치를 석권한 것이었다. 동시에 김일성으로 대표되는 항일무장투쟁의 경험이 북한 사회에서 하나의 모범적인 전형으로 재생산되기 시작했고, 수령에 대한 신화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지도부는 갓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통일단결된 사회를 견고히 유지하고 혁명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김일성의 혁명사상에 대한 충실성그 후계자에 대한충실성으로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요컨대, 적어도 북한 지도부에게 혁명의 구조이자 주체인 수령체계는 계속돼야만 했고 이는 자연스레 후계체제를 요청한 셈이었다.

 

 책의 3~5장은 후계체제의 성립이 일단락되는 1982년까지 김일성의 부상과 그의 면모를 다루었다. 해당 내용은 북한의 문헌자료를 섭렵하고 그에 근거하여 김정일과 김정일체제 초기의 역사를 밝힌 저자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 것이고 믿을만한 것인지는, 적어도 이 책만 가지고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권에서 유례가 없는 행보를 보였으며,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해가는 정치공동체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한 번쯤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1.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위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생 70돐 기념 전국주체사상토론회에 보낸 론문, 1982. 3. 31)」,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4』,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7. 정영철, 『김정일 리더십 연구』, 선인, 2005, 2장 각주 74번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엮음, 『북한현대사 문헌연구』, 백산서당, 2001, 72~73쪽; 김용현, 「『근로자』 분석을 통한 북한의 군사화 담론 변화 연구: 1946-2006」, 『통일문제연구』 21(1), 2009, 270~271쪽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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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1. 24. 07:11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신화화는 오늘날 지배층이 지배적 이념(ideology)을 강화·호도·재생산하기 위한 유효한 방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은 일각에서 국부(國父)”로까지 추대·숭앙하는 역사적 인물을 목도하고 있다. 바로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이다. 그는 박정희(朴正熙, 1917~1979)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초혼(招魂)되고 있으며, ‘가장(家長)’이자 지도자로서 상징 이상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그러한 신화화 작업의 주축을 이루는지, 그 의도와 목표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작업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왜 특정 인물이 신화화의 대상이 됐는지를 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과연 이승만은 어떠한 인물이었고, 왜 오늘날 다시 주목을 끄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먼저 이승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참고해보자. 왕실의 먼 방계 태생이었던 그는 배재학당을 거쳐 주로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젊은 시절부터 청년 지도자로서의 명망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승만은 3·1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됐고, 미주(美洲)를 근거지로 삼아 이른바 외교독립노선에 입각하여 민족운동을 수행하였다. 그의 노선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및 자리매김과는 별개로, 그는 20세기 초부터 한국 우파민족주의의 대표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 속에 자신을 명백히 각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은 194874세의 나이에 신생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4·19로 하야할 때까지 12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여러 원칙을 몸소 부정했고, 그의 정치적 보증인이나 다름없던 미국을 겨냥하여 실력행사(반공포로 석방 등)도 불사했으며, ‘암울했던’ 1950년대라는 시대상을 만들어낸 핵심이자 주역이었다. 이후 ‘2의 고장이나 다름없던 하와이에서 사망하였다. ‘반공주의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우선 본문 714, 각주 1,781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이승만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실증적인 조사이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증보한 것으로, 모두 414장으로 구성돼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가교였던 이승만의 역할과 노선, 그것들의 역사적 배경과 형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1(1~3)는 그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는 19131월 이전의 성장기 및 청년기를 다뤘다. 이승만은 미국 기독교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1910)했다. ‘스티븐스 저격 사건 변호 거부애국동지대표회(이른바 덴버대회) 참석1908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사상과 지향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2(4~6)는 이승만의 외교독립노선을 외교독립론실력양성론으로 정식화했고, ‘무장투쟁불가론’, ‘자력독립불가론’, ‘준비론이 이승만 노선의 방법론적 기초라고 설명하였다. ‘정립(鼎立)의 지도자라는 용어를 통해 박용만·안창호 등과의 비교를 통해 미주에서 그의 활약을 밝혔고, 1920~40년대의 외교활동을 정리하였다. 3(7~9)는 이 책의 핵심으로 해방 이후 이승만이 국내의 우파세력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사실의 기원을 되짚었다. 이승만의 국내 인맥의 형성 시기를 3·1운동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았다. 흥업구락부(1927~38)의 존재와 지향(유학, 기호(畿湖), 기독교, 친자본, 친미 성향)은 이승만 노선의 실체와 그의 국내 연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장은 단파방송 사건을 살펴 이승만 신화가 해방 이전 국내의 좌우세력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상황을 세밀하게 추적하였다. 4(10~14)는 해방 직후부터 제헌선거(1948) 이전까지 이승만의 정치활동을 다루었다. 조기 귀국을 하기 위해 펼친 로비에 대한 서술에서부터 정치자금을 어떻게, 얼마나 모았는지에 대한 분석, 1946년 이후 전개된 이승만·김구·하지의 정치적 이별과정과 그 속에서 이승만이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까지 국내외를 넘나들며 최고지도자를 지향한 이승만의 역사를 충실하게 복원하였다.

 

 홍석률이 잘 요약한대로, 이승만은 전통과 현재, 한국과 세계가 교차하는인물의 전형이었다. 따라서 이승만의 흔적을 드러내는 사료도 전통과 현재, 한국과 세계가 교차했던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한문과 우리말, 영문, 일문, 노문 등 실로 다양한 주체들이 작성한 다채로운 사료를 섭렵하였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에서 펴낸(1996) 이화장 소장 우남 이승만 문서(東文篇)을 골간으로 하여 조선왕조와 일본제국이 생산해낸 자료, 각종 신문조서와 재판기록, 판결문, 국내외의 여러 신문과 잡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관련 문서 및 미국 전역에 산재돼있는 개인 문서철, 관련자의 증언과 같은 구술 자료 등을 망라하였다.[각주:1] 요컨대, 이 책은 제헌선거 이전까지 이승만에 관해서, 적어도 자료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향후 1948년 이후 이승만에 관한 연구가 공히 참고해야하는 필독서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승만을 매개로 현실 정치인이 명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들려주기 위해, 명망의 이면에 놓여 가려지기 쉬운 권력과 금전의 향배를 면밀하게 추적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다룬 13장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 대한 심층 분석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의 평가에 따르면, 이승만은 1946년 중반을 넘기면서 한국 우파에 대한 정치적 통제와 대중 조직 장악을 완료했다. 대체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승만이 우익 진영에서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운용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이승만 문서철에 남아 있던 영수증 자료와 비밀 해제된 미국문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1945~47년의 기간 동안 최소 27백만 원, 최대 52백만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는 이와 관계된 한국인 유산층 모임이었던 대한경제보국회의 인적 구성과 각각의 경력 및 활동, 미군정의 기여 등을 추적하여 밝혀냈다. 그 결과 이해의 관건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 불법·탈법에 대한 묵인과 승인이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행위자와 구조 간의 역사적 상호작용 또한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일개인의 능력과 수완”, 그리고 그 인물을 둘러싼 외부의 틀인 구조 중 어느 것도 역사에 단독으로 출현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의 일차적인 특징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서술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저자의 노고는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인물 연구라는 역사 연구방법론의 한 분야를 충실히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특정 인물의 파편적인 언행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행위자의 생각과 의도를 그의 행동과 결부하여 분석하고 검증하였다. 실증적인 역사 연구가 결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자료의 확보와 저자의 노고가 결합될 때는 이 책과 같은 역작이 나올 수 있음을 예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롭게 발굴한 자료(핏치George A. Fitch 문서철에서 발굴한 이승만의 자서전 등)를 비롯하여 각종 사료를 종합한 저자의 노고와는 별개로, 이 책이 정작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식으로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하려고 하는지에 관해서는 좀처럼 판단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7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바, 그러한 시간 폭을 이승만의 역할과 노선이라는 매개로 일이관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미덕이다. 하지만 독자가 엄청난 자료의 홍수에 빠져, 또는 저자의 담담한 어조에 설득돼 이 책이 선사하는 새로운 역사적 관점이나 시각의 선회를 거리를 두고 음미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오히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저자가 과연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관해 무엇을 언급하려고 했을까?’라는 의문(평가의 문제)을 선사한다.

  1. 홍석률, 「사실과 역사 속의 이승만 연구」, 『한국사연구』 133권,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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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현대한국2014. 11. 16. 21:33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20권으로 읽는 20세기 韓國史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역사 대중서 편찬 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2014년 현재, 서울특별시교육감으로 봉직하고 있는 사회학자 조희연(曺喜昖) 교수가 썼다. 아래서도 살펴보겠지만 저자는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겪어보았고여기에 정면으로 부딪혔다가 곤욕을 당한 일이 있다.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는 나름대로 유신독재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지만전체적인 시대상을 파악하는 일은 요원했고, 따라서 이 책에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총체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파악하겠다는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이 책은 사료에 근거하여 박정희 시대를 본격적으로 살핀 역사서라기보다는 기존에 제출된 서사(敍事)를 종합하여 재배치하고 오늘날에 다시 그것을 복합적으로”, 그리고 확장된 진보의 개념 속에서 다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는 평자의 말로 다시 풀어쓰자면, “진보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복잡했던 박정희 시대의 다양한 역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가교를 마련하는 일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그 결과가 저자의 원래 의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차분히 따져볼 일이다.

 

 저자는 1956년 전북 정읍에서 공무원 조일환(曺日煥)의 오남으로 태어났다.[각주:1] 중학교를 마친 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1972)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사회학과, 1975)에서 수학하였다. 1978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유인물 배포 및 시위 가담의 명목으로 구속됐으며, 이듬해 815일 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1983, 1992)했고, 199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박원순을 비롯하여 1994년에 세워진 참여연대의 창립성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계와 정계, 시민사회를 넘나들며 활약하면서, 민주주의·근대화·시민사회·사회운동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저서를 펴내기도 하였다.[각주:2]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어떻게 매개로 삼아 문제적인박정희 시대를 파악하고자 하였는가? 우선 저자는 박정희 시대를 다섯 시기로 나누었다. 저자의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1972년의 10월 유신이었고, 각각은 다시 5·16에서 민정이양까지(1961~63), 한일회담 반대를 둘러싸고(1964~67), 유신체제 이전까지(1968~72),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기 이전까지(1972~75) 10·26까지(1976~79)로 나뉘었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장의 본문은 위와 같은 저자의 시기 구분에 상응하는 나름의 서술이다. 이어 저자는 규범적 판단사실적 분석을 구분해야 하고, 그 중 전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저자는 오늘날 개개인의 신념을 넘어서 사실과 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무력으로 헌법을 전복하고 권좌에 오른 박정희 개인과 그의 정권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박정희 체제는 각 시기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항상 대내외적 곤란에 맞닥뜨렸고, 이를 지양·극복하는 과정에서 체제는 실로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박정희 체제의 문제점을 독재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기보다는 그 체제를 움직였던 복잡한 동학(動學)을 구조적으로바라볼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복잡한 동학을 포착할 틀로써 개발동원체제(developmental mobilization regime)’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개발동원체제란 위로부터 사회를 조직하고 재편하며 아래의 동원을 이끌어내는 체제로서 사회에 대한 일종의 국가적 기동전체제라고 할만하다. 세계사에서 개발동원체제의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저자는 독일(비스마르크), 소련(스탈린), 북한, 중국, 대만(장제스) 등을 들며 사회를 군대식으로 조직화해서 성장효과를 극대화하고, 독재자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이러한 설명이 얼마나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물론 이 책이 개발동원체제를 하나의 사회과학적 전형(典型, model)으로서 탐구하려는 시도는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방법론적 핵심에 대한 설명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이론적인 한계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핵심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2공화국은 4·19의 사회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고, 이를 틈타 젊은 군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였다. 거사 직후 혁명위원회는 부정 해결, ()정치세력 일소, 사회 정화의 미명 하에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쿠데타세력은 경제기획원(1961.7.22.)을 발족시키고 이전 정권의 계획을 계승·변용하여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등 일찍부터 경제를 통제하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4대 경제 의혹 사건등 조직적인 경제범죄가 터졌고, 쿠데타세력의 도덕성은 이내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반대세력이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3공화국은 한··일 삼각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지역전략에 따라 한일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민정이양을 마친 쿠데타세력은 정력적으로 한일회담을 추진했고, “졸속·굴욕이라는 평가와 함께 사회적 반감은 고조됐다. 한편 한일회담 반대의 기치 하에 투쟁세력이 결속하고 쿠데타세력 가운데서도 이반(김재춘, 김홍일 등)이 나타났으나, 정부의 의도 관철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와 함께 1964~65년의 기간, “수출 증대가 국가의 핵심전략으로 설정됐고, 2차 인도차이나전쟁(베트남전쟁)에도 한국군이 파병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1968~72) 개발의 성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25개년계획 기간(67~71)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은 10%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발전방식의 고유한 문제에다가 더해 군대식사회동원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월남에는 계속 젊은이들이 파병됐고, ·북간의 체제경쟁이 가속화됐다. 장기독재의 징후였던 3선개헌이 대중의 의사를 빌려 통과됐고, 발전과정의 핵심이면서 부산물 취급을 받은 노동·빈민 문제가 불거졌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상징적이었다. 일련의 완화책으로 복지제도가 운위됐으나 시행까지는 아직 10년이나 더 걸릴 터였고, 유신 직전 초법적인 8·3조치(1972)(시장)자유민주주의를 조롱거리로 전락시켰으며 동시에 독재자의 위력을 실감케 하였다. 1972년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등 초헌법적 권한이 부여된 대통령을 허용하는 유신쿠데타가 벌어졌다. 이제 국회는 완전히 무력화됐으며, 대통령을 지상으로 하는 종신 독재체제가 형식상 완료됐다. 더불어 중화학공업화와 새마을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사회의 저항은 이전 시기보다 더욱 거세어졌으나, 그에 못지않게 통제와 진압 또한 가일층 악랄해졌다.[각주:3] 긴급조치 9호는 유신체제의 영구화를 기도하는 제도적인 장치였다.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이나 반대는 물론이려니와, 개정 주장이나 이를 보도하는 행위까지 일체 금지됐다. 한편 경제 집중 및 중복투자 등 일련의 문제와 석유파동이 만나 사회는 더욱 힘겨워했고, 드디어 민중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서술은 기존의 진보적인 시각의 흐름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 보인다. 이 책은 집필 의도완 달리 다양한 박정희보다는 독재자개인을 부각시켰다. 더하여 박정희 체제를 움직였던 복잡한 동학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했다기보다는 일련의 이야기와 통계를 배치하여 박정희 체제를 바라볼 수 있는 세부주제 각각에 대한 입문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19년이라는 긴 시기를 효과적으로 요약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1. 조일환, 조동환, 조희연 외, 『뜻밖의 개인사』, 새만화책, 2008.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박현채, 조희연, 『한국사회구성체논쟁』 1·2·3, 죽산, 1989·89·91; 조희연, 『동원된 근대화』, 후마니타스 2010; 조희연, 『병든 사회, 아픈 교육』, 한울, 2014 등을 들 수 있다. [본문으로]
  3. “1960년대까지는 빨갱이세력이 배후에 존재한다는 식이었던 반면, 1970년대에 들어서는 정권에 대한 저항 자체를 빨갱이와 동일시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7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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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평/냉전연구2014. 11. 9. 20:39

이 책은 마오의 중국과 냉전을 열쇳말 삼아 전후(戰後) 아시아에서 펼쳐진 중공의 의도와 국제관계를 9개의 주제와 사건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저자는 새롭게 발굴·번역된 중국과 러시아 자료에 기초하여 1940~60년대 아시아의 냉전 경험을 중국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서술하였다. 서문이 잘 밝히고 있듯,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탐구지점을 설정하였다. 그것은 바로 지난했던 국공내전과 중국혁명, 두 차례의 열전, 미국과의 긴장 완화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냉전의 국제정치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였는가? 중국의 역할을 파악할 때 무엇을 가장 주의 깊게 봐야하는가? 중국은 실제로 어떠한 행보를 보였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그의 두 번째 질문은 국익과 안보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분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국적 자료에 근거하여 사상과 이념이라는 요소를 분석에 도입한 개디스를 필두로 하는 ()냉전사연구의 흐름 속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각주:1] 저자는 이 책에서 상기의 질문에 답하면서 중국의 냉전 경험을 반추했고, 그러한 경험의 유산이 어떠한 방식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가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론과 결어를 포함하여 모두 11장으로 구성돼있고, 각각은 마오의 중국이 맞닥뜨리게 된 일련의 사건들과 그에 대응하는 지도부의 인식 및 행동을 보여주었다. 1~2장은 전후 중국이 다시 한 번 내전의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미소갈등이라는 냉전 구도에 포획된 아시아에서 중국의 주도적 역할을 부각시켰다. 특히 저자는 2장에서 워드 사건’, ‘-스튜어트 접촉’, ‘일변도 성명에서 드러난 중공의 언설과 행위를 통해 중국에서 미국이 실패한 것은 잘못된 대중(對中)정책 때문이라는 모종의 신화를 비판하였다.[각주:2] 3장은 1956년 열린 20차 소련공산당대회를 기점으로 중소관계가 악화돼가는 모습을 서술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본격적인 중소갈등의 진원(震源)은 이미 고인이 된 스탈린에 대한 태도상의 차이였다. 4장은 6·25전쟁을 끝내기 위한 중국의 생각과 전략을 다루었고, 5장은 1차 인도차이나전쟁과 뒤이은 제네바협상의 미봉적 타결을 서술하였다. 6장은 1956년 폴란드 위기와 헝가리 사태에 대한 베이징의 태도를, 7장은 1958년 대만해협 위기를 다루었으며, 8장과 9장은 각각 2차 인도차이나전쟁(베트남전쟁)와 데탕트에서 중국의 인식과 역할을 설명하였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냉전사 연구에서 근거가 되는 1차 자료들의 소장처뿐만 아니라 각 주제를 다룬 영어 및 중국어 문헌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한 바 있듯, 이 책 역시 마오를 중심으로 하는 중공 지도부의 사고와 인식을 엿보기 위해 당시를 살았던 이들의 회고록을 비롯하여 선집이나 건국이래마오쩌둥문고, 마오쩌둥군사문집 등 중앙당안관(中央檔案館)[각주:3]에서 펴낸 중공중앙위원회 문서와 마오쩌둥 관련 문서를 자료적 핵심으로 삼았다. 더하여 저자는 구()소련 및 동구(東歐) 자료의 경우,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의 국가안보문서고[각주:4]와 우드로윌슨센터의 냉전국제사프로젝트(CWIHP) 문서고[각주:5]에서 도움을 얻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자료에 대한 엄밀한 사료비판은 드러나지 않으며, 또한 번역이 얼마나 정확하고 충실한지에 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저자의 서술에서 찾을 수 있었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그가 이후 전개될 중소갈등, 조중갈등, 중월갈등의 씨앗을 각기 다른 시간대의 역사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중공 지도부나 중국을 설명할 때 아편전쟁 이후중국이 겪게 된 역사적 굴욕과 피해의식을 계속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가 간 관계, 특히 갈등의 역사는 19세기 이전으로 소급하여 서술하지 않았다. 평자는 그 이유가 궁금한데, 아무래도 중국(관변)의 입장에서 냉전기 중국의 경험을 파악한 다수의 사료에 근거하다보니 나올 수밖에 없던 문제는 아니었을까? 여하튼 이러한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북한·베트남의 냉전사 서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저자가 제기한 세 가지 질문을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이 어떠한 주장을 하고 있는지 따라가 보자. 첫째, 중국은 냉전의 국제정치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였는가? 2차 대전이 끝난 세계,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역할은 결코 미소갈등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은 결정적인 주연으로서 냉전의 국제정치에 개입했고 시기별·지역별로 나름의 국내외 정책을 관철시켰다. 6·25전쟁에 참가하여 소련의 불완전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상대로 대등한 자세를 유지했으며, 스탈린의 소련의 눈치를 봐야했으나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소련을 적극 비판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나가려고 하였다. 물론 헝가리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국제공산주의에 균열을 일으킬 것이라는 수사를 통해 소련의 진압을 용인하기도 했으나, 1980년대 중후반 이전까지 중소관계의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둘째, 중국의 역할을 파악할 때 무엇을 가장 주의 깊게 봐야하는가? 독자는 이 책에서 중소관계의 몰락이나 중월관계의 악화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소제목(Ideology matters)을 할애하여 이념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 때 이념은 단일한 결과로 귀결되었다기보다는 그 이념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주체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념은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인 주체의 세계인식 또는 역사·문화적 환경에 따라 변용되고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이고, 마오식()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원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별개로 중국의 대내외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따라서 이 책은 마오를 비롯하여 중공 지도부의 인식과 생각에 강조점을 두어 계속 드러내려고 하였다.

 

셋째, 중국은 실제로 어떠한 행보를 보였는가? 저자는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국제정치에서 중국이 보인 행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마오의 혁명 후의 우려라는 심리적·개념적 요소를 제시하였다. 이는 마오의 계속혁명개념과 쌍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다. 즉 그는 보편적 정의와 평등이 도래하고, 중국이 국제정치의 중심으로 다시거듭날 때까지 혁명을 계속추구하였고, (실상 불가능에 가까운)이러한 목표들이 달성되기까지 우려는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터였다. 따라서 마오 시기의 중국은, 적어도 대외관계상에서 중심성을 추구하였으나 지배는 추구하지 않았고, “항상대내적 동원이라는 목적으로만 물리력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또한 자본주의사회와는 구별되는 중공 정치의 독특한 요소들, 이를테면 중국에서의 민주집중제나 광범한 대중 동원을 이해하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결어에서 저자는 중국의 냉전 경험의 유산을 설명하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중국의 1당 독재체제라든가 피해의식에 대하여 서구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한 듯 보인다. 이렇듯 저자가 영어로 마오의 생각과 중국의 냉전 경험을 서술한 의도는 그 다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중공 정부는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수행(즉 국제사회로의 통합)해야 하고 그것의 관건은 바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성원들이 열심히 중국의 관점과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평자는 현실의 정세(중국의 대국굴기와 미국의 쇠퇴)가 역사가의 입지에 고스란히 반영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1. John L. Gaddis(1941~). 이른바 "냉전사가의 수장(Dean)”으로 불리는 미국인 역사가로 냉전과 거대전략을 탐구한다. 2014년 현재 예일대학에서 Robert A. Lovett육해군사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조지 케난(George F. Kennan)의 공식전기 작가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2. Chen Jian(陈兼), China's Road to the Korean War,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6. [본문으로]
  3. http://www.saac.gov.cn [본문으로]
  4. http://www2.gwu.edu/~nsarchiv [본문으로]
  5. http://digitalarchive.wilsoncenter.org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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