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11.17 카투사 이야기 - 5
  2. 2018.01.14 카투사 이야기 - 4
  3. 2017.06.29 카투사 이야기 - 3
  4. 2017.02.24 카투사 이야기 - 2
  5. 2017.02.21 카투사 이야기 - 1
  6. 2017.02.19 카투사 이야기 - 0
수필/카투사 이야기2019. 11. 17. 22:36

원래 이 꼭지에서는 카투사 훈련소에서 보낸 3주 과정을 기억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주제를 더 잊기 전에 적으려는 몸부림을 이곳에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분대장 훈련병이었다. 2분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3주 동안 여러 가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선 일반적인 일과가 있다. 한 방에 침대 세 개가 있고, 그러한 방이 두 개가 모여 하나의 큰 방을 이룬다. 그러면 그 큰 방에 모두 여섯 명의 훈련병이 생활하는데, 그들이 공유하는 화장실과 욕실은 고작해야 한 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새벽 점호 때부터 다양한 곤란과 애로가 예상되기 때문에, 나는 우선 침대의 이불을 가급적 쓰지 않았고, 대신 대한민국 육군에서 지급 받은 점퍼를 입고 잤다. 이렇게 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와 침구의 각을 잡아야 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에 시간을 덜 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는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나서 수통(개중엔 분명 한국전쟁 때부터 쓰이던 것도 있었으리라)과 조악한 매트를 들고 나가서 오와 열을 맞춰 섰다. 나는 분대장 훈련병(PG; Platoon guide)이었기 때문에 내 분대의 훈련병들을 독려하곤 했다. 내 기억으로는, 4개의 분대가 모여 하나의 소대를 구성했는데, 그게 같은 기수로 뽑힌 카투사이고 한 두 명의 밀린 앞 기수 카투사가 우리랑 같이 훈련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들은 정말 부러웠던 게, 같은 훈련병이면서도 군생활을 나보다 무려 한 달이나 앞서서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좌우간 성조기와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하고, 미육군가도 부르고 이것저것 하면서 의례를 마치고 나면 조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깅을 하고 나서 이런저런 운동도 하고, 매트를 이용해 바닥 운동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수통은 달릴 때는 들고 뛰는 게 아니고, 오와 열을 맞춰선 자리에 놓고 (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으로 자신의 자리를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디팩 앞에서 왜 찍혔는 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나와 서전 유.

아침에 운동(PT; physical training)을 마치면 바삐 움직여 목욕을 하고 ACU로 갈아 입고 다시 오와 열을 맞춰 선다. 그러면 식당(D-FAC)으로 제식을 하며 걷는데, 이때 분대장 훈련병이 통솔을 한다. 논산에서 배웠던 '왼발, 왼발'이 아니고, 영어로 'left-your-left' 'left-right-your-left' 등을 불러 가며 발을 맞춰 이동한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캠프 잭슨을 공유하는 미측 분대장 훈련대(WLC; Warrior Leader Course--2019년 현재, 이름이 바뀌었을 것이다) 병사들 가운데 아프리칸 병사가 소울을 넣어서 구호를 외치면 크게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영화 속 한 장면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았고, 좌우지간 국군 부대를 벗어날 수 있다는 즐거움과 짜릿함에 매일 매순간 행복했다. 그렇게 식당으로 가면, 식당 앞에서 오와 열을 맞춰 대기를 타고, 크게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서 이동한다. 내 기억으로는 아침은 식사 구성이 계란과 베이컨과 이것저것 등으로 전부 똑같았던 것 같고, 점심과 저녁은 이제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며 요리가 나오는 long cut, 햄버거나 패스트푸드가 나오는 short cut, 그리고 아무렇게나 들어 가서 롱컷도 숏컷도 아닌 taco bar를 선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크게 보자면 두 가지 선택지(롱컷, 숏컷)이지만, 타코바까지 합치면 세 가지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훈련병들과 떠들거나 할 새는 없고, 영화에 나오는 미제국주의자 같은 중사들이 목청 높여 '빨리 먹고 나가라' 등의 말을 하도 해대서 신속하게 먹었다. 

식사 외 기억나는 주중 일과로는 전부 교실에서 이뤄지는 오전 군사 지식 훈련 수업과 오후 영어 수업이 있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어 정자(gazebo)에 가서 잡담도 하고 시간을 때웠던 것 같다. 영어 수업 강사는 전부 민간인인데, 군무원이라고 하도 강조를 해서 자기네들이 무슨 전시에는 중위라나 뭐라나. 칙칙한 남자애들이 여자 강사라고 깔볼까봐 미리 선수를 치는 모양이던데, 훈련병들은 여자 선생을 괴롭히겠다는 생각은 적어도 내가 봤을 땐 단 1도 없었고, 그저 좋은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고 싶은 일념 뿐이었다. 군사 지식 훈련 수업은 논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들로 그나마 기억나던 것은 총기 분해였는데, 원래 의도야 총기를 자유자재로 분해하고 조립하는 살인기계를 만드는 것이었겠으나 우리는 모두 평화를 사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과가 아닌 행사로는 이발(3주 동안 두 번), 사격, 체력장(3주 동안 두 번), 미국방성 영어 시험(이게 자대 배치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낭설이라는 소식은 훈련소 내에서도 파다했다), 한국군 원사 정훈, 훈련소 청소, 졸업식 연습, 대망의 졸업식 등이 기억난다. 이발은 캠프 잭슨 처음 들어왔을 때 하루인가 이틀 지나서 바로 받았던 것 같고, 사격은 2주차인가 3주차 때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k-2보다는 m-16체질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스무 발 중에 열여덟 발을 맞췄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것이 과연 의정부에서 달성한 기록인지, 아니면 자대 가서 성남으로 내 군생활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훈련을 나갔을 때 달성한 기록인지는 알 수 없다. 캠프 잭슨 내부의 사격장에서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 시험은 넓은 강당에 모여서 듣기와 이것저것을 봤던 것 같은데, 이 점수는 공개가 되었으나 자대 배치에는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론이었기 때문에 별 관심 없었다. 체력장은 팔굽혀 펴기(push-up), 윗몸 일으키키(sit-up), 2마일 달리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점 300점을 획득하면 pt master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피티 마스터 엠블렘을 자신의 군생활 동안 체육복에 박아 넣을 수가 있다. 자대에 따라서 이들에게 pt 열외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카투사 훈련소 때도 그렇고 군생활 내내 300점을 받아본 일은 없고, 최고점이 288인가 아무튼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제일 잘 했던 것은 2마일이고, 가장 약점은 팔굽혀펴기였던 것 같다. 

자대 배치야말로 카투사 훈련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자대 배치 행사 이전에 여러 부대에서 고참들이 와서 자신의 부대를 홍보(?)한다. 군사 기밀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히 적지는 않겠지만, 내 기억으로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자신의 집과 가까운 부대나 아니면 서울의 용산(여기서 카투사로 복무하면 이른바 '용투사'가 된다)에서 근무하길 원했다. 나 또한 집이 서울 서대문구였고, 나보다 먼저 카투사로 입대한 친구가 용산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기에 용투사가 되길 희망했다. 자대 배치 행사 자체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한 명 한 명 호명해서 너는 어디, 너는 어디를 말해주는 건 아니고, 공정성을 기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카투사 몇 명을 단상 앞으로 불러 내서 전자 추첨식의 버튼을 누를 수 있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 일괄적으로 추첨이 완료되고, 그렇게 나의 군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행사가 끝나고,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은 역시 캠프 잭슨에서 이른바 '기간병'으로 일하는 카투사인데, 그가 훈련병들의 행선지 목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자대를 물으면서 "혹시 제가 용투사인가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는 "응, 용투사긴 한데, 용인이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용인에 부대가 있는지도 몰랐다. 좌우간 실망 반, 기쁨 반(그래도 경기권이 아닌가)으로 다가올 군생활을 기대해 보았다.

졸업식을 버블짐에서 했는데, 지금도 이 버블짐이 남아있는 지는 알 수 없다. 훈련병 1명당 외부에서 최대 4명을 부를 수가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를 불렀다. 졸업식 자체는 별 일 없이 잘 끝났고, 나는 앞서 배정 받은 용인에서 고참들이 오길 기다렸다. 마침 나와 같은 기수에서는 K(2019년 현재 김앤장 변호사)와 J(뭐하고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보다 8살 연상)가 나와 함께 용인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1년 8개월 동안 시간을 보낼 부대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운전병이었던 H와 선임병장으로 갓 부임했던 S(2019년 현재 국가외교공무원) 등이 기억난다. 다음 꼭지에서는 자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부터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 소대장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좌우간 와델 하사는 좋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생과.
아버지도 카투사셨다.

'수필 > 카투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투사 이야기 - 5  (0) 2019.11.17
카투사 이야기 - 4  (0) 2018.01.14
카투사 이야기 - 3  (0) 2017.06.29
카투사 이야기 - 2  (0) 2017.02.24
카투사 이야기 - 1  (0) 2017.02.21
카투사 이야기 - 0  (0) 2017.02.19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필/카투사 이야기2018. 1. 14. 23:03

나는 2009년 6월 19일, 무척 습기찬 날에 논산을 벗어났다. 지옥 같은 논산에서의 나날들은 이제 추억으로밖에 안 남게 되었지만, 정말 인생 최고의 시간낭비임에는 틀림 없었다. 벌써 9년 전의 일을 기억하려니 잘 안 되지만, 최선을 다해 그때의 경험을 돌이켜 보겠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지 걸어서 이동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좌우간 논산 기차역으로 갔던 것 같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그때 처음으로 열차의 진행방향과 반대되는 쪽으로 몸을 두는 좌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좌석에 배정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앉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좌우간 서울 방향의 반대(논산을 향해)로 앉게 되었다.

열차는 서울로 북상하여 한강을 지나 영등포를 지나 북상했던 것 같다. 어디까지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어느 역에서 내려 옹기종기 모여 대기했다. 대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곧이어 미군 전투복(ACU)을 입고 검은 베레를 쓴 미군 교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카투사로서 일종의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미군을 보고 이렇게 기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정말이지 유쾌한 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의정부에 위치한 캠프 잭슨으로 향했다. 이 부대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카투사훈련소(KTA)이고 다른 하나는 분대장훈련소(WLC)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2010년 8월에 잭슨에 다시 오게 된다. 하여간 이때만 해도 한국 안의 미국 영토에서 근무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버스에서 내려 제일 처음 했던 것은 돔형의 실내체육관에 모여 한국군 더플백에서 온갖 비품을 모아 폐기처분하는 것이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산에서 쓰던 각종 쓰레기 같은 물품(수건이니 등등)을 모아서 버리더라. 나는 파란 수건을 두 장 정도인가 내지 않고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내 군 복무 기간 동안 정말 유용하게 쓰게 되었다. 좌우간 그렇게 140여 명 정도의 동기들 물품을 모으니 잡화가 쌓여 조그마한 동산을 이루었다. 아마 그 물건들은 전부 폐기처분 되었으리라.

이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인 체육복(PT복), 운동화 등을 지급 받고 환복했던 것 같다. 방은 3인 1실이었는데, 이때 같은 방을 썼던 동기들과 가장 뒤늦게까지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고, 한 명은 심지어 나와 같은 자대의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에어컨이 너무 세게 틀어져 있어서 추웠다는 점이다. 그저 행복했다. 카투사에 오길 정말 잘 했고(나의 노력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이 다시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며 쿠키, 샌드위치 등이 담긴 런치백을 받고 강당에 모여 먹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잭슨은 당시만 해도 '잭슨 버거'로 유명했는데, 장차 엄청나게 먹게 된다. 그리고 나서 강당에서 기본 예절을 배웠던 것 같다. 기침을 할 때 팔이나 손으로 입을 막는다든지, 식당(Dining Facility)에서 먹을 만큼만 적당하게 받는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후의 일과는 거의 기억이 안 나고, 꿀잠을 잤으리라고만 추측된다.

잭슨의 첫 인상은, 부대 뒤쪽으로 모종의 산(도봉산이리라)이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멋있었다. 미국 특유의 냄새(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는 미군부대의 냄새이기도 하고 미국의 냄새이기도 했다)와 미군 특유의 시설이 너무 좋았다. 비록 소속은 한국군이지만, 한국군 부대에서 근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를 드렸다는 생각밖에 나질 않는다.

다음 꼭지에서는 카투사 훈련소에서 보낸 3주 과정에 대해 적는다.

'수필 > 카투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투사 이야기 - 5  (0) 2019.11.17
카투사 이야기 - 4  (0) 2018.01.14
카투사 이야기 - 3  (0) 2017.06.29
카투사 이야기 - 2  (0) 2017.02.24
카투사 이야기 - 1  (0) 2017.02.21
카투사 이야기 - 0  (0) 2017.02.19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필/카투사 이야기2017. 6. 29. 14:45

 논산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렀다. 분명 하루하루는 지나가는 것 같지만, 도무지 한 주가 지나가지 않았다.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그때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돌이켜 보겠다.

 어느 병영이 그렇듯, 신막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였다. 이는 벌집과도 비슷한데,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군집생활을 하는 곳으로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이틀을 채 못 버틸 만한 분위기를 풍겼다. 딱히 악취가 난 기억은 없는데, 이는 모두가 똑같은 냄새를 풍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좌우간 한 분대는 10~12명으로 구성되었고, 3~4개의 분대가 하나의 소대를 이뤘으며, 3~4개의 소대가 하나의 중대를 이뤘다. 막사도 정확히 그러한 편제를 반영했는데, 한 분대는 전부 한 방에서 자고, 한 소대를 이루는 분대의 생활공간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으며, 한 중대가 한 층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층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는 복도에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샤워실도 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샤워실이라기보다는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샤워기가 달린 셈이었다. 이곳에서 더운 바깥 활동을 마치고 먼저 들어온 훈련병들이 달려들어 등목을 하곤 하였다.

 아침의 일과는 이미 근무로부터 시작한다. 근무는 한 시간씩 섰는데, 대개 오전의 활동이 6시에 시작이니 차라리 5시부터 근무를 서는 편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예컨대 3시부터 4시에 근무를 서고, 그때부터 6시까지 잔다면 그게 과연 자는 것이었겠는가? 피곤함과 함께 하루가 시작 된다. 정말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이내 추스려야만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 없이 침구를 정리하고 전투복으로 환복을 하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연병장(운동장)에 질서정연하게 서서 하루의 시간낭비를 시작하였다. 온갖 자질구레한 조회니 선서니 하고 나면 운동을 하였다. 체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5월의 아침 공기가 너무나 찼다. 가끔 구보도 했는데, 힘들다기보다는 재밌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리고 나서 내무반에 들어 왔다가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언제나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이동해야 했는데, 이때 분대장 역할을 맡은 이가 선도하여 구호를 제창했던 것 같다. 이러한 이동 방법은 어디를 갈 때도 전부 적용되는 것이어서, 종교활동을 갈 때도 유격훈련을 갈 때도, 심지어는 논산 훈련소 끝나고 기차역을 갈 때도 그렇게 갔던 것 같다.

 식사는 참혹했는데,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식사의 속도는 제각기 달랐으나 전반적으로 빨랐는데, 왜냐하면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오는 편이 늦게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밥을 느리게 먹는 이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 것이며, 밥을 빨리 먹는 이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배식의 양은 결코 많지 않았다. 물론 아이스크림이나 우유 같은 부식도 나오고, 그렇게 지랄 맞던 군대리아도 나왔으나 양은 항상 적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너무나 배가 고팠다. 가끔 배식 당번이 되어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외박 나가면 바로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때 다비치의 Be my man을 mp3로 듣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식사 후에는 일과가 시작됐는데, 그 모든 일과를 기억할 순 없다. (나의 일과를 참고하라) 때론 연병장에서, 때론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무언가를 했다. 야외 훈련을 나갈 경우에는 그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정말 어찌나 기본적인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설의 미비를 훈련의 일환으로 포장하는 얄팍한 인간들의 치졸한 생각에 아직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훈련 중에 식사를 할 땐 소지한 K2를 등에다가 매고 밥을 먹었다. 딱히 어떤 훈련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 다 한다는 유격훈련, 수류탄, PRE, 사격, 숙영 등을 빠지지 않고 했다. 숙영할 때는 어찌나 춥던지, 겨울에 입대한 이들의 정신 상태는 무척이나 강인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정말 추웠다.

 조교들은 대개 우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먼저 입대한 이들 가운데 조교의 일을 자임한 녀석들이었다. 내가 왜 녀석들이라고 했냐면, 도무지 맘에 드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분대장 임혁필과 이면수뿐만 아니라, 실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집합이 바로 논산 훈련소이고 이 훈련소의 조교들이었다. 기억에 남는 이들 가운데, 옆 소대장 가오가이거와 다른 소대장 주크박스가 있다. 가오가이거는 당시 한양대를 다니다가 입대 해서 조교를 하던 녀석이었는데, 피부가 하얗고 안경을 썼으나 말할 때마다 어찌나 목소리를 낮게 하려고 하는지 지금 같으면 오글거린다, 라는 표현이 아주 적합한 그런 이었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가오가이거가 하도 가오를 잡는다고 그렇게 불렀다. 허나 숙영 정지 작업을 가서 임혁필은 쉬고 있는데, 가오가이거는 훈련병들과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나마 저 공대생 출신 조교는 낫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임혁필은 내 필통을 가져간 기억이 난다. 주크박스는 성이 나와 같은 우 가의 조교였는데, 군가하면 대적할 자가 없는 우리 중대의 보물이었다. 물론 그런 보물은 줘도 안 갖지만, 좌우간 군가를 너무 잘 암기하고 잘 불러서 훈련병들을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조교들이 있었는데, 내가 서울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불러다가 별볼일 없이 다시 보낸 싱거운 녀석도 있었다. 

 간부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대장은 자기가 미군부대에서 미군들과 농구했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였는데, 언젠가 야외훈련 가서 나보고 태권도 품새를 해보라고 시킨 기억이 난다. 군복 입고 열심히 품새했으나 내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사회인이었으면 갓 사원을 벗어난 대리에 불과했을 자가 이렇게 군대에 오니 100명 가까이 되는 훈련병을 통솔하는 처지가 되었다. 소대장은 상사인가 중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기광에 정상적인 사고가 좀 힘든 치였던 것 같다. 훈련병들이 띄워 주고 또 무기에 대해서 물어 보면 신나게 답변해 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군에 왔기에 저 정도까지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소대장은 전부 중사였는데, 그저 미친 자들이었던 것으로밖에 기억 되지 않는다. 좌우간 이 사회에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자들을 간부로 두었던 논산 훈련소였다.

 그밖에도 입소 3주까지 담배를 피다가 결국 걸려서 20킬로그람 군장을 하고 다녔던 부산 출신의 J, 내 옆에서 나를 친형처럼 따랐으나 나중에는 내가 너무 부담이 되어서 잘 못 대해 준 某, 키가 185를 훌쩍 넘지만 분대에서 가장 어렸던 부산 출신, 동아대 다녔던 부산 출신의 얄궂은 S, 사회에서 만났으면 상종도 안 했겠지만 그래도 나를 잘 따라 주고 마지막에 편지도 써줬다가 군인이 아닌 경찰이 된 S 등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학교 출신의 S, 항공대 출신, 한동안 무척 친하게 지냈던 Y형 등 오히려 카투사들과는 교류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조교들은 훈련병을 저글링, 카투사 훈련병을 히드라라고 표현한다고 임혁필이 말해 준 기억이 난다. 지능이 더 높고 꾀가 많다고 히드라라고 한다던데, 전혀 이해도 공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우리는 카투사와 비카투사 훈련병들이 같이 생활을 했는데, 딱히 그런 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카투사 훈련병 사이에서, 아니면 비카투사 훈련병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지 대체적으로는 잘 지냈던 편이라고 기억 된다. 카투사 훈련병이라고 해서 딱히 동질감이 들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렇게 다양한 젊은이들을 한 군데 모아놨을 따름이지 우리는 전부 서로에게 다른 자들이었다.

 행군은 정말이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무거운 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위생 상태, 영양 상태의 결핍으로 혓바늘이 돋았는지 아무튼 입이 너무 아팠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 상태에서 그렇게 긴 충청남도의 시골길을 걸었다니, 이는 헬조선에 태어난 죄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행군이 끝나고 바로 잘 수도 없고, 닭죽을 먹었는데 그래도 행군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물론 발은 언제나 물집이 잡혔고 상태는 최악이었다.

 이제 슬슬 카투사 훈련소(Katusa Training Academy)로 넘어가 보자.

'수필 > 카투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투사 이야기 - 5  (0) 2019.11.17
카투사 이야기 - 4  (0) 2018.01.14
카투사 이야기 - 3  (0) 2017.06.29
카투사 이야기 - 2  (0) 2017.02.24
카투사 이야기 - 1  (0) 2017.02.21
카투사 이야기 - 0  (0) 2017.02.19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필/카투사 이야기2017. 2. 24. 02:20

 마침 좋은 자료를 발견했다. 나는 논산에서부터 자대에 당도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기록을 남겼고, 자기 전 그날 하루의 일과를 요약하였다. 이를 통해 논산에서 내가 철저히 낭비한 시간을 반추해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직업병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2009년 5월 입대한 후 30연대 4중대 3소대 2분대 123번 훈련병(구막사에서는 1-031)의 신분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다른 꼭지에서도 다룰지 모르겠지만, 카투사교육대 0905기 2소대 66번 교육병의 신분도 부여받았다.

 09.05.11. 피복 및 물품 지급 - 병적기록부 작성 - 저녁식사 - 생활관에 대해 학습 - 불침번 - 취침. 이때부터 670일의 군생활이 남아있음에 개탄을 금하지 못했다.

 09.05.12. 아침식사 - 혈액검사 - 점심식사 - 인성/지능 검사 - 저녁식사 - 사이즈 교체 및 대기 - 불침번 - 취침. 0735 PM "조교가 온다." 0824 PM 내무실 선풍기 수리 완료 및 한동대 재학생 Y형과 인사. 1100 PM 불침번 시작.

 09.05.13. 점호 - 아침식사 - 신체검사 - 점심식사 - 특기검사 ("우리는 개삽질") - 저녁식사 - 종교활동 (천주교). 0106 PM "난 왜 여기 있지?"0648 PM "종교활동 앞두고 식혜 나눠주는 중. 안들려? 했는데 예!해서 빵터짐. 입소대 조교 - 천사, 교육연대 조교 - 짐승, 자대선임 - 악마." 0941 PM "기독교 아이템: 오란씨, 아틀라스, 가나파이... ㅋㅋ."

 09.05.14. 점호 - 아침식사 - 교육연대 이동 - 점심식사 - 신상조사 - 온수 목욕 - 강의실에서 대위에게 강의 - 저녁식사 - 불침번.

 09.05.15. 아침식사 - 총기수여식 - 입소식 - 얼차려 ㅅㅂ - 점심식사 - 제식훈련 - 도수체조 - 저녁식사.

 09.05.16. 점호 - 아침식사 - 청소 - 정신교육 - 점심식사 - 보금품 지급 - 오침 - 저녁식사 - 개인정비 - 취침.

 09.05.17. 아침식사 - 개인정비 - 종교활동 - 점심식사 - 사진촬영 - 저녁식사 - 종교활동 - 점호.

 09.05.18. 점호 - 아침식사 - 제식 - 중식 - 강의장 이동 - 정신교육 - 저녁식사 - 청소 - 불침번.

 09.05.19. 점호 - 아침식사 - 총기분해 - 점심식사 - 정신교육 - 체력단련 - 저녁식사 - VTR 시청 - 취침.

 09.05.20. 불침번 - 아침식사 - 경계교육 - 점심식사 - 경계교육 - 저녁식사.

 09.05.21. 점호 - 아침식사 - 정리 (개인정비) - 점심식사 - 교육 - 개인정비 - 저녁식사.

 09.05.22. 불침번 - 점호 - 아침식사 - 삽질 - 점심식사 - 삽질 - 귀영 - 저녁식사 - 점호 - 취침.

 09.05.23. 점호 - 아침식사 - 강의실 - 점심식사 - 종교활동 - 석식 - 강의실.

 09.05.24. 불침번 - 아침식사 - 종교활동 - 중식 - 청소 - 석식 - 종교활동.

 09.05.25. 점호 - 조식 - 청소 - PRI - 중식 - PRI - 석식.

 09.05.26. 점호 - 조식 - PRI - 중식 - 정훈 - 석식 - 중대장 간담회 - 추침.

 09.05.27. 점호 - 조식 - PRI - 중식 - 영점 사격 - 석식 - 대청소 - 불침번.

 09.05.28. 불침번 - 점호 - 조식 - 영점 사격 - 중식 - 휴식 - 샤워 - 석식 - 취침.

 09.05.29. 불침번 - 점호 - 조식 - 기초 유격 - 샤워 - 석식 - 취침.

 09.05.30. 점호 - 조식 - 정신교육 - 중식 - 오침 - 석식 - 개인정비 - 취침.

 09.05.31. 불침번 - 점호 - 조식 - 종교활동 - 중식 - 오침 - 석식 - 종교활동 - 취침.

 09.06.01. 점호 - 조식 - 강의장 - 구급법 - 중식 - 구급법 - 체력단련 - 샤워 - 석식 - 취침.

 09.06.02. 불침번 - 점호 - 조식 - 화생방 - 중식 - 화생방 - 샤워 - 석식 - 강의장 - 취침.

 09.06.03. 점호 - 조식 - 강의실 - 제식 - 실내 - 중식 - 개인정비 - 정훈 - 석식 - 소대장 간담회 - 취침.

 09.06.04. 불침번 - 점호 - 조식 - 수류탄 교장 - 중식 - 투척 - 소총제식 - 귀영 - 샤워.

 09.06.05. 기상 - 조식 - 15KM 행군 - 샤워 - 중식 - 오침 - 정훈 - 석식 - 개인정비 - 점호 - 불침번 - 취침.

 09.06.06. 점호 - 조식 - 잡일 - 중식 - 개인정비 - 석식 - 대청소.

 09.06.07. 불침번 - 점호 - 조식 - 종교활동 - 중식 - 휴식 - 석식 - 종교활동 (공연) - 취침 (+점호).

 09.06.08. 점호 - 조식 - 사격장 - 중식 - 사격 - 석식 - 야간사격 - 귀영 - 샤워 - 취침.

 09.06.09. 불침번 - 기상 - 점호x - 조식 - 개인정비 - 중식 - 정신교육 - 석식.

 09.06.10. 기상 - 조식 - 숙영지 이동 - 중식 - 각개 - 석식 - 야간 교육 - 취침.

 09.06.11. 불침번 - 기상 - 조식 - 각개 - 중식 - 각개 - 석식 - 취침.

 09.06.12. 불침번 - 기상 - 종각지 이동 - 조식 - 각개 - 중식 - 각개 - 석식 - 야간행군 - 야식 - 샤워.

 09.06.13. 불침번 - 취침 - 기상 - 점심 - 일 - 석식 - 취침.

 09.06.14. 기상 - 조식 - 일 - 중식 - 일 - 오침 - 석식 - 종교활동 - 점호 - 취침 - 불침번.

 09.06.15. 기상 - 점호 - 조식 - 총검술 - 일 - 중식 - 총검술 - 설문 - 교육 - 석식 - 훈련인의 밤 - 점호 - 취침.

 09.06.16. 불침번 - 기상 - 점호 - 조식 - 강연 - 중식 - 종합평가 (경계) - 작업 - 석식 - 정비 - 청소 - 점호 - 취침. 0356 AM "퇴소하는 그날까지 이짓을 해야 한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군."

 09.06.17. 경계 - 기상 - 점호 - 조식 - 제식 - 강의장 (연무관) - 중식 - 제식 - 석식 - 일 - 정비 - 점호 - 취침.

 09.06.18. 불침번 - 기상 - 점호 - 조식 - 일 - 중식 - 일 - 수료식 - 샤워 - 석식 - 정비 - 취침.

 09.06.19. 불침번 - 조식 - 청소 - 기차 탑승 - 중식 (전투식량) - 화랑대역 - 버스로 이동 - 피복 및 물품 지급 - 간단한 석식 - 취침.

'수필 > 카투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투사 이야기 - 5  (0) 2019.11.17
카투사 이야기 - 4  (0) 2018.01.14
카투사 이야기 - 3  (0) 2017.06.29
카투사 이야기 - 2  (0) 2017.02.24
카투사 이야기 - 1  (0) 2017.02.21
카투사 이야기 - 0  (0) 2017.02.19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필/카투사 이야기2017. 2. 21. 02:08

 2009년 5월 11일, 운명의 그날이 밝았다. 숙부께서 오셔서 차를 태워 주셨다. 당시 아버지는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떠나보내는 슬픔에 눈물을 보이셨고, 나도 울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전날 머리를 짧게 깎았던 기억이 난다. 

 차 타고 논산까지 내려갔다. 지금 네이버 지도로 재어보니 거리는 한 190키로미터 정도이다. 원래는 혼자 가려고 했는데 굳이 아버지와 숙부가 동행을 하셨다. 동생은 당시 집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월요일이었던 만큼 학교에 갔었을 것이다. 차 타고 가다가 문자가 와서 봤는데, 친한 K가 문자를 한 게 아닌가. 그는 나보다 1달 전에 먼저 입대를 했었다. 예약 문자를 한 것이었다. 그의 센스를 기억하면 지금도 기쁘다. 논산 병영 근처에서 무언가를 먹었을 터인데, 뭘 먹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2008년 11월인지 12월에 친한 H형이 입대했을 때는 오징어불고기를 먹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지랄맞은 논산에 도달하게 되었다.

 신병들을 가운데 모아 놓고 제식과 경례를 시켰다. 제식은 잘 모르겠지만, 경례는 분명히 한 것 같다. 그렇게 빌어먹을 조선은 젊은 남성을 군인(이라고 쓰고 노예라고 읽는다만)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가족과 작별하고 그렇게 경례를 하고 한쪽으로 죽 들어갔다. 거기서부터 조교들의 욕설이 시작되었다. 정말 기분 나쁜 놈들이었다. 절대 그들을 잊지 못하리라.

 첫 3일 간은 이른바 구막사에서 머물렀다.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처량한 막사에서 3일을 보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정네들과 같은 공간에서 머무르면서 당직도 서고 밥도 먹고(당연히 설거지는 우리가 한다) 그렇게 보냈다. 하는 일이 없으니 넓은 벌판 같은 곳에서 중대원들을 죽 세워 놓고 땅 파고 다시 덮고를 반복했던 일이 떠오른다. 바로 여기서 2개월 후인 7월, 싸늘한 변사체로 발견될 친구 故O와 처음으로 얘기하였다. 그는 당시 나와 같은 학교의 지리학과 학생이었고, 나이도 동갑이었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카투사가 되어서. 하지만 그는 결국 너무나 빨리 유명을 달리 하였다.

 3일 후에는 신막사로 이동하였다. 내가 속한 연대는 25인지 30연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나의 친한 친구이자 논산 육군훈련소 조교가 된 K는 26연대인지 30연대인지 아무튼 나와는 다른 연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막사보다 나은 점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화장실의 변기가 좌변기가 아닌 양변기였고,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터라 어렵지는 않았다. 욕실도 없어서 화장실 비슷한 곳에서 대충 씻기도 하고, 공동 목욕탕에서 7분 목욕을 지키지 않아 전 소대가 엎드려 뻗쳐에 처해진 기억도 난다. 당시 소대장은 나보다 한 살 어리고 숭실대를 나온 개같은 자였는데, 개그맨 임혁필을 닮은 놈이었다. 또한 부소대장은 산적 같이 생긴 자로, 이름이 "이면수"와 닮아 별명이 "면수"였다. 그들을 잊을 수 없다.

 종교활동을 매주 일요일마다 갔는데, 나는 당시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천주교를 5회 연속 갔다. 과자를 부식으로 줘서 좋았는데, 신부에게 계급이 있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훈련병들이 성당에 위문공연을 온 여자의 노랫소리에 맞춰서 지랄발광을 하는 모습도 생생히 기억난다. 대체 왜 성당에서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가 추임새로 나왔는지 이해될 법 한 공간이다. 짐승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배식량이 적어서 살이 더 빠졌을지도 모른다. 좌우간 '군대리아'도 해먹고 이것저것 주는대로 다 받아 먹었다. 식사의 일부로 아이스크림이나 우유가 나오기도 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배식 담당을 할 때는 성심을 다해 공평하게 주려고 노력했으나, 저 귀축 조교들은 훈련병의 10배 넘는 배식량을 자랑하며 게걸스럽게 먹었다. 닭튀김도 훈련병들은 한 조각에 세상을 얻은 것마냥 감사해 하는데, 저 음흉한 조교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하여 열 개, 스무 개씩 먹었으니 당연히 좋은 기억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다만 그들이 먼저 왔고 또 조교의 역할을 논다는 점인데, 왜 우리에게 그랬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이 더러운 군대에서 효율적인 인간관계를 배워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논산에서의 일들을 조금 더 쓰고, 대망의 카투사 훈련소로 넘어갈 것이다.

'수필 > 카투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투사 이야기 - 5  (0) 2019.11.17
카투사 이야기 - 4  (0) 2018.01.14
카투사 이야기 - 3  (0) 2017.06.29
카투사 이야기 - 2  (0) 2017.02.24
카투사 이야기 - 1  (0) 2017.02.21
카투사 이야기 - 0  (0) 2017.02.19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필/카투사 이야기2017. 2. 19. 18:26

 나는 2008년 11월, 2009년 5월 입대 예정으로 카투사에 선발되었다. 국사학과 전공 수업을 듣던 중 문자가 왔고, 정말 진심으로 기쁘고 또 기뻤다. 무엇보다 군대에 가서 시간 낭비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다시금 기뻤다. 물론 이는 한국 군대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단지 상상에 불과했으나, 정말 그때의 기쁨을 어떻게 다시 표현하리오? 좌우간 그날은 카투사가 된 기념으로 친한 친구 K(그는 이후 논산 조교가 되었다)에게 치킨을 샀던 것으로 기억 된다.

 카투사 또는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병역 제도이다. 법리적으로는 한국군 요원으로, 한국군 계급 체계를 부여받지만, 미군 전투복(Army Combat Uniform)을 입고 미군 병영에서 미군들과 생활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경쟁사회 조선답게 카투사 또한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며,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영예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1:5의 난관을 뚫어야 한다. 나때는 1:5.5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좌우간 나는 카투사가 되었다.

 이 칼럼은 2009년 5월 논산으로 입대하여 그해 7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용인에서 카투사로 근무한 나의 일화를 다룬다. 이를 통해 21세기 역사학도를 지망한 한국 남자가 미군 병영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뿐더러,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카투사 제도에 귀하가 뽑히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수필 > 카투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투사 이야기 - 5  (0) 2019.11.17
카투사 이야기 - 4  (0) 2018.01.14
카투사 이야기 - 3  (0) 2017.06.29
카투사 이야기 - 2  (0) 2017.02.24
카투사 이야기 - 1  (0) 2017.02.21
카투사 이야기 - 0  (0) 2017.02.19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