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DPRK2018. 3.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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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역사가 가운데 1950년대 북한을 다루는 손에 꼽히는 학자인 앙드레 슈미드 선생님(토론토)의 오늘자 논문. 일반 연구논문은 아니고 리뷰 에세이 형식이어서 새로운 자료나 독창적인 주장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간의 서구 북한사 연구뿐만 아니라 비교 사회주의사 분야인 동독사/소련사/중국사를 충실히 정리하고 있는 글이다. 앞으로 영어로 북한사 논문을 쓸 때 이 글을 참고하지 않고서는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 듯 하다. 연구사적으로 무척 값진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적 해외 이동과 귀환,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어떻게 조선인이 38도선을 오갔는지부터 시작해 1950년대 중후반 북한 사회 내에서 조선인의 이동 문제를 다루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이 글을 꿰는 주제는 이동성mobility이다.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 a) 북한 내 이동성의 문제가 어떻게 자료 접근의 절대적 제약 및 반공 국가의 비판 없는 자료 이용과 결합돼 미국 내에서 "전체주의" 북한의 이미지가 끊임 없이 재생산되었는지, b)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자료 접근이 완화됨에 따라 (또는 그 이전부터) 사회주의국가의 특정한 상, 즉 '사회에 대한 국가의 완전한 통제'라는 냉전 인상을 불식시키고 인민의 주체성agency을 복원한 소련사/동독사/중국사의 연구 성과 소개, c)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냉전적 연구가 지속(마이어스와 숙영킴)되고 있는 서구 북한사 연구 비판, d) 1950년대 북한 자료(로동자, 경제건설, 조선녀성 등)에 대한 슈미드 나름의 독법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냉전적 접근을 탈피할 수 있고 속히 탈피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주체성을 강조한 슈미드의 이야기는 사회주의권 다른 최신 연구와 비교했을 때 결코 새롭거나 독창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영어권 학계에서 북한에 대한 비역사적 또는 몰역사적인 냉전적 시각이 지배적이고 이러한 모습이 당분간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권위 있는 The American Historical Review에 실린 이 글은 서구 북한사 연구자들에게는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고 냉전적 시각을 고수하는 연구자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일일 것이다. 

사소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없진 않다. 개인적으로 슈미드의 입론에 전부 동의하지만, 엄청난 제약에도 불구하고 북한사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최신 성과들을 각주로나마 소개하는 데 할애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김동춘, 김연철, 서동만, 이주철 등 국내 연구자가 각주로 나오긴 하지만, 글의 핵심 주장(=인민의 주체성)은 김재웅의 박사논문(2014)이나, 김선호의 박사논문(2016) 등 국내 북한사 연구로 뒷받침했을 때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슈미드가 이러한 논문을 몰랐다기보다는, 잡지의 성격과 본인의 현재 연구 시기인 1950년대(앞 논문들은 1945-50)를 더욱 잘 설명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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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DPRK2017. 8. 21. 08:02

North Korea Confidential(2015,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란 제호로 올해 국역됨) 참 흥미로운 책이다. 왜 진작 안 읽었지, 라는 생각이 마구 든다. 서론과 종결을 제외하고 모두 7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은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북한 내 시장의 운영을, 2장은 '음주가무', 즉 유흥을, 3장은 '조직지도부'를 중심으로 권력의 소재를 다룬다. 4~7장은 각각 죄와 처벌, 복식과 유행, 통신, 사회적 분업을 다룬다. 1~3장이 다른 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기에, 저자들이 이 주제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입수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외부인이 좀처럼 접하기 힘든 정보들을 자료적 근거로 하여 비난이나 미화 중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급적 사태의 진상을 묘사하려고 노력한 점이다. 또 이 책이 지닌 여러 특징 가운데 가장 흥미로다고 느낀 것은 공저자가 상정한 일련의 단절(!)인데, 1970년대를 거치며 북한은 "스탈린주의적 공산주의"에서 "왕조"로 바뀌었고,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나름의 사회체제가 거의 붕괴된 실패한 국가로 전락했다. 이는 타당한가? (북한의 점증하는 '자본주의화'에 대해서는 적어도 이 책만 보면 아주 설득력있다.) 

저자들은 자료원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정말 정말 궁금하다. 또한 학술서가 아닌지라 역사 용어의 쓰임이나 해석이 정확하지 않고 사실 관계에서의 오류들(조선은 35년이 아닌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였다)이 눈에 띠지만 책의 전반적인 질을 저하시키지는 않는다. 내맘대로 별점 5점 만점에 4점. 

+ 저자인 다니엘 튜더와 소맥(한국 소주에 대동강 맥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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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DPRK2016. 8. 10. 01:02

Nobuo Shimotomai, "Kim Il Sung's Balancing Act between Moscow and Beijing, 1956-1972," Tsuyoshi Hasegawa ed., The Cold War in East Asia, Washington, D.C., and Stanford, Calif.: Woodrow Wilson Center Press an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1, p. 122-151.


Contents


Kim Il Sung and the New Soviet Leadership before the August-September Crisis

Foreign Influence in the KWP

In the Shadow of 1956

The Sino-Soviet Split

Treaties of Alliance with Moscow and with Beijing

North Korea's Policy toward the Developing World, and Moscow's Role

Lips and Teeth: Again with Mao

Pyongyang's Uneasy Partnership with Moscow, October 1964 to 1968

The Pueblo Incident

Kim Il Sung, Sino-Soviet Military Conflict, and U.S.-Chinese Rapprochement

Kim's Proposal for Confederation

Conclusion


"This chapter examines how Kim Il Sung maneuvered between Moscow and Beijing, exploiting the emerging Sino-Soviet conflict, in order to consolidate his power and pursue his own foreign policy." p. 123.

"Even the Stalinist Viacheslav Molotov had advised Nam Il, the DPRK's foreign minister, in April 1954 that the Koreans should pay more attention to the material needs of the population." p. 123. (AVPRF, f. 102, op. 10, p. 52, d. 8, ll. 66-67.)

"And the more Moscow and Beijing clashed, the more each wanted to draw Kim's government into its camp." p. 129.

"On April 28, Yi Sin Pkhar Submitted an earnest request to Gromyko that the USSR aid the DPRK in the peaceful utilization of nuclear technology." p. 130. (AVPRF, f. 102, op. 14, p. 75, d. 4, ll. 3-5.)

"In March 1959, the DPRK government had originally planned a Second Five-Year Plan from 1961 to 1965, but following Khrushchev's sudden adoption of a Seven-Year Plan, Kim followed the Soviet example in May 1960 and set the new time frame as 1961-67." p.132. (Shimotomai, Mosukuwa to Kin Nissei, 183; AVPRF, f. 102, op. 15, p. 83, d. 32, l. 2.)

The Treaty of Alliance with Moscow was concluded on July 6, 1961, and with China [The Sino-DPRK Treaty of Friendship, Cooperation, and Mutual Assistance] on July 11. p. 134-135.

"The treaty with the Soviet Union was effective for only ten years, whereas the treaty with China was effective for an indefinite period." p. 136. (Shimotomai, Mosukuwa to Kin Nissei, 293.)

"The tense relationship between Beijing and Moscow came to a head in the fall of 1961." p. 136.

"Puzanov's departure from Pyongyang in June 1962 marked the end of the generally benign relationship between the USSR and DPRK that lasted from 1957 to 1962." p. 137.

"The underlying reason for Kim's sharp turn toward Beijing was revealed in October 1962, when the PRC and the DPRK renegotiated their border issues, which resulted in the PRC-DPRK Border Treaty signed by Zhou Enlai and Kim Il Sung on October 12." p. 138.

V. P. Moskovskii. p. 138. (AVPRF, f. 102, op. 18, p. 93, d. 5)

"In the years 1963-64, the DPRK press was busy criticizing "revisionism" and denouncing those who wanted to negotiate with the United States." p. 139.

"Khrushchev's sudden departure form the political scene in October 1964 marked the end of the adversarial relationship between Moscow and Pyongyang." p. 139.

"Pyongyang stopped its anti-Soviet campaign soon after Khrushchev's ouster." p. 140.

"The Chinese "Great Cultural Revolution," which began in 1966, added another dimension to Asia's Cold War political landscape." p. 140.

"Further developments came in December 1966, when Brezhnev met with Kim Il Sung, first in Vladivostok and then in Moscow, in a series of high-level talks." p. 141-142.

"The Russian Foreign Ministry's archival documents contain very few substantial materials on bilateral relations during the period when N. G. Sudalikov served as the ambassador to Pyongyang from 1967 until 1974." p. 144.

"When the Sino-Soviet conflict was elevated to military confrontation, both Moscow and Beijing became more eager to recruit Pyongyang to their side." p. 144.

"He successfully maneuvered between Moscow and Beijing and maintained his independence, taking advantage of the Sino-Soviet conflict without completely committing himself to either side." p. 147.

"Kim's foreign gestures and moves were sometimes symbolic, were not substantial, and were lacking in any real commitment."  p. 147.

"Still, as long as the United States and Japan were regarded as hostile forces, and while the Big Brothers were turning out to be unreliable partners, Kim had to pursue "peaceful coexistence" with the ROK for cosmetic, and perhaps domestic, consumption."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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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DPRK2016. 6. 14. 04:29

정대화, "북한의 사회주의건설사."

395. 이 시기는 북한의 중요한 특징이자 이후 북한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당의 정치적 강화 (단일한 정치역량의 구축과 당의 영도적 역할의 강화), 사상의 강조 (주체사상의 제기와 체계화), 인민대중의 조직적 동원 (천리마운동), 주체노선의 제기 (중소대립과 중소의 북한 내정간섭 및 원조의 감소에 따른 자주노선 선언),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의 고창 등은 모두 전후 북한이 처한 어려운 상황의 반영이었던 동시에 이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정치적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다.

396. [1953년 8월 5일] 제2기 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모든 것을 전후인민경제 복구발전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연설.

402. 4차당대회에서 제1차 7개년계획 (1961~67)의 시행 채택. 사회주의 공업화의 전면적 실현을 중심과제로 설정하여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의 수행에 강조점을 두었음.

403. 1960년 2월 평남 강서군 청산리 협동농장에서 보름 동안 현지 지도 경험을 보고한 '강서군당 사업지도에서 얻은 교훈에 대하여'가 '청산리정신'으로 일반화되었음. 천리마운동의 혁명적 군중노선을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구체화시킨 대중지도 방법으로서, 관료주의와 주관주의 및 형식주의를 퇴치하는 데 목적을 두었음.

404. 1961년 11월의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관리와 지도의 근본적 개선에 대한 과업 제시. 12월 김일성이 대안전기공장 현지지도하고 그 결과를 대안의 사업체계로 체계화하였음. 민주개혁 이후 적용되어온 기존의 지배인 유일관리제를 대신해서 공장 당위원회의 집단적 관리를 규정한 데 있음.

405. 1962년 12월 제5차 전원회의 통해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정책'을 정책노선으로 채택. 1966년의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관철이 재확인되었고, 그 결과 이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 취했던 박금철과 이효순 등이 보수주의자, 소극분자로 비판받고 정치적으로 퇴진했으며,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정책의 정당성이 일부 현실적으로 검증되기도 했지만, 이것이 경제건설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음.

407. 1970년 11월 5차당대회에서 6개년계획 (1971~76)의 과제 제시.

409. 1977년에 채택한 제2차 7개년계획 (1978~84)을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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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DPRK2015. 11. 17. 04:10

북조선 학생들은 현지 학교에서 기대 이상으로 공부를 잘 하고 있다. 그들은 매우 부지런하며 헝가리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헝가리 학생들은 북조선 친구들과 잘 지내며 헝가리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놀리는 일도 없다. 헝가리 교사들이 북조선 학생들을 열심히 돌본 덕에 이런 좋은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중고등학생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헝가리 중고생과 동일한 과목들을 배우면서 수업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 헝가리 외무부 동아시아부장


헝가리 공문서 보관소, XIX-J-1-k-1945-1964-Korea-17/d 8. 박스.

같은 책, 4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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