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로 탈조선' 칼럼에 오랜만에 귀중한 외부 필진 선생님을 한 분 모시게 되었습니다. 언어학을 공부하시는 C 선생님이십니다.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하셨고, 현재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엔젤레스(UCLA)에서 박사 과정 중이십니다. 전진과 협력에 입각한 언어학 연구의 신기원을 개척하실 예비연구자의 흥미로운 탈조선 이야기, 정말 기대가 큽니다. 바로 읽어 봅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동아시아 언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국인입니다. 블로그 주인분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쓰게 되는 글입니다. 보다는 이 분의 가르침인 ‘전진과 협력’을 실천하고자 쓰는 글이라고 포장하겠습니다.


서두에서 보이듯이 저는 모두가 가볍게 읽으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쓰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대단하신 선생님들께서 이 블로그에 각자의 경험과 조언들을 써 주신 걸로 압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내세울 것도 없거니와 순전히 제 노력으로 왔다는 생각은 아직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눌 경험도 없고, 감히 조언은 할 수도 없기에 그냥 정말 가볍고 편하게 써보겠습니다.


저는 20대 중반까지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 고등학교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야. 우리 같은 인생이 제일 답이 없어. 반에서 7~15등 하면 뭐든지 애매해. 좋은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포기하고 빠르게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을 한 친구는 대학교에 진학한 후 열심히 공부하여 취직을 하였고 얼마 전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는 공부는 저 정도 하는 (2005년~2007년기준, 한 반에 40여 명이 있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며 놀고 잠자는 걸 좋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떻게 비벼서? 서울권 대학 영어영문학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군 휴학 전까지는 그냥 먹고 놀고 자며 지냈습니다. 후회가 있다면 ‘아. 그 때, 더 놀 걸…’


그러다, 휴학을 마치고 3학년으로 학교에 복학하니, 이상하게? 공부가 좋아졌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1. 그냥 공부에 흥미를 느껴서.

2. 내가 한 질문, 과제, 그리고 내가 치룬 시험에 교수님들께서 극찬을 해주셔서. 인정받는 기분이라

3. 공부라도 해야지 나중에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3학년 2학기에 당시 지도교수님께 ‘대학원’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나도 갈 수 있는 곳인지? 거기 가면 나는 뭐가 되는 것인지? 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연구실로 찾아 뵈었습니다. 지금도 신기하지만, 처음 교수님의 오피스를 들어갈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야. OOO. 너 대학원 가고싶어서 왔지?!”

아직도 신기합니다. 저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날, 교수님과의 많은 상담 끝에 타 대학교 영어학과 석사과정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1년 후 대학원 면접을 치뤘고,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때 조금 기뻤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나도 석사과정에 입학했다는 기쁨보다는,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나를 인정해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저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석사생활을 시작하며 연구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로 학술지 편집 및 콜로퀴움 운영을 도왔습니다. 이 경험은 제가 미국 박사과정에 지원할 때 ‘여러 분야의 논문을 접할 수 있었다’라고 포장?하였습니다. 실제로도 제가 관심있던 분야 외에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읽었습니다 (편집상의 이유로). 또한 이 당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국가 번역사업에 참여하였는데, 제 능력이 너무 모자라 시간을 많이 빼았기는 바람에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학위를 마치지 않고 그냥 관둬야겠다는 생각도 자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를 응원해주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교수님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못 할 짓이라고 생각하며 ‘오직 전진뿐’ (이럴 때 쓰는 표현이 맞죠? 블로그 주인장님)을 외치며 버텨나갔습니다.


고생 끝에 보람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번역 사업이 마무리 되어 갈 때 쯤 한 과목을 듣게 되었고, 이 과목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과목 교수님께 제가 ‘왜’ 이 과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걸’ ‘연구’하고싶은지 등에 대해 말씀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저를 지도제자로 받아주셔서 이 전공으로 지금 유학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한국어 언어현상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저 역시도 그 영향을 받았으며 한국어의 여러 언어현상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통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저의 결정을 너무 좋아해 주셨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지금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본격적으로 어떻게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들에 비해 늦게 공부에 흥미를 가졌으나 (20대 중반) 이 때부터 공부를 하려면 미국에서 해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처음 석사과정 진학에 대해 지도 교수님께 상의를 드릴 때, 교수님께서도 바로 미국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겁이 많아서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선택이 ‘틀리진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 평생의 은인이신 지도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2. 교수님을 따라 학회도 다니고 발표도 했으며, 석사논문을 편집하여 학술지에 투고하였다.

3. 진짜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은 돈으로 얻을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유학을 가고 싶었던 마음이 석사 1학기 때에도 역시 있었기에 여름 방학에 GRE 준비 차 강남의 한 어학원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번역과 조교 일로 몸과 마음이 상해있던 터라 학원에서 조느라 바빴습니다. 결국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를 한 건, 석사논문을 작성하면서 부터인 것 같습니다. 관심 있는 학교를 찾아보며 ‘아. 이 학교가서 박사과정 한다면 행복하겠지? 미국은 어떤 곳일까?’ 라는 상상과 함께 버텨나간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의 교육제도와 교수님들이 저에겐 너무나도 좋았고 과분하였지만, 그냥 ‘단순히’ ‘미국’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대략적으로 찾아보니 박사과정 지원에 있어서는 다양한 요구사항이 있었습니다. TOEFL은 79~100/120 정도의 커트라인을 요구하였고, 특정학교들은 speaking 영역 24~25/30이상의 점수를 요구하였습니다. GRE같은 경우는 SUNY Buffalo에서 ‘Verbal 과 Math 총 합 몇 점 이상. Writing은 몇 점 이상이 ‘선호 됨’’이라고 적혀있던 걸로 기억됩니다. 다행이게도? TOEFL speaking 커트라인을 요구하는 학교에선 제 관심분야를 다루지 않았기에, 저 정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고 GRE 같은 경우에도 ‘선호됨’이라고 하였기에 대충 할까 하다가, 괜히 긴장이 되어 먼저 유학간 사람들에게, 교수님들께 여쭤보았습니다.

“보니까 그냥 영어는 먹고 살 만큼은 하는 것 같고, 어학 점수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았는데 높아보이는 사람도 있고 낮아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냥 요구 점수만 넘기면 학업계획서나 샘플페이퍼에 치중하는게 합리적인 듯? 근데 어학점수는 높으면 높을 수록 좋겠지. 고고익선!”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빠르게 커트라인만 넘기자라는 마음으로 (핑계로) 나름? 열심히 하는 척을 하며 시험을 치루었고 각 학교에서 요구하는 커트라인을 넘겼습니다. 이 후에도 어학점수에 계속 아쉬움이 남았지만, 제 시간과 노력을 학업계획서와 샘플페이퍼에 치중을 하였습니다.

샘플페이퍼는 석사논문을 편집하여 학술지에 투고했던 논문 (약 25쪽?) 과 유학 준비 해에 학회에서 발표한 발표논문 (약 22쪽?)을 다시 학교 규정에 맞춰 편집을 진행하였습니다. 

학업계획서는 평소에 제가 가지고 있던 ‘언어’에 대한 짧은 생각과 어떠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지, 왜 내가 ‘거기’서 공부를 해야하는지 (Faculty와의 ‘연구 접점’) 등에 치중하여 쓴 것 같습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미국 전 지역에서 연구되는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미국 서부쪽 (+유럽)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터라, 학교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수님들과 먼저 유학간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많이 반영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UCLA, UC Berkeley, UC Santa Barbara, U. of Oregon, U. of Colorado 등 서부의 학교와 SUNY Buffalo 등 약 10 군데의 학교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준비를 하였습니다.

~10월- 어학시험 준비

10월~11월- 샘플페이퍼 재편집/ 교수님들께 추천서 부탁

10월~12월- SOP및 CV 작성 / 학교 리서치


이 중 UCLA에서 가장 먼저 좋은 조건으로 합격통지를 받게 되었고, 후에 SUNY Buffalo에서도 합격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결국 2할 정도네요. 이런 제가 글을 쓴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말 저와 리서치 핏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 학교는 UCLA, UC Berkeley, UC Santa Barbara, U. of Colorado였습니다. 이 네 군데의 학교를 제외하고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아. 어디라도 가고싶다.’ 라는 생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물론 성격상의 이유로 그 어느 곳에도 사전연락 (contact)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리서치핏’이 ‘가장 잘 맞다고’ 생각한 학교에서 ‘가장 먼저’, ‘가장 좋은 조건’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제가 왜 뽑혔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1. 남들에 비해 낮은 어학성적

2. 남들에 비해 좋지 않은 학벌과 GPA

3. 남들에 비해 적은 연구실적 및 수상경력


합격통지를 받은 올해 1월부터 지금 11월까지 고민을 해 본 결과,

1. 나를 ‘정말 잘 알고 계시는’ 평생의 은사이신 교수님의 추천서

2. 나름 잘 맞은 리서치 핏.

3. 운

이 큰 작용을 하였다고 답을 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감히 주제넘게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1. 지도교수님과 모든 걸 상의하시고, 많은 시간을 보내시면 어떨까요?

2. 리서치 핏이 잘 맞는 학교를 찾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이상 글 마치겠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로 탈조선 > [언어학] Voice from La La La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Voice from La La Land  (3)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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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런데

    공부만으로는 부족 결국 탈조선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하는데 얼마정도 있어야하는지?

    2019.12.01 16:40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생활 할 수 있는 자금이요.

    2019.12.01 16:43 [ ADDR : EDIT/ DEL : REPLY ]

2019년 겨울 쿼터를 끝으로 나는 코스워크를 마쳤다. 이제 과정 중에 남은 일은 논문자격시험을 잘 치고, 프로스펙터스를 방어하는 일이다. 여태껏 성실히 공부를 해왔고 또 잘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 없이 넘기리라고 예상한다. 


앞으로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2월: 논문자격시험 4과목(냉전사, 과기사, 월남사, 소련사)

2020년 6월: 프로스펙터스 방어

2020년 7-12월: 한국에서 펠로우로 체류하며 필드워크?

2021년 1-9월: 러시아에서 연수 자격으로 체류하며 필드워크?

2022년 봄: 졸업 및 박사학위 취득


2년차를 마친 지금 공부로 탈조선 프로젝트를 위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게시물에 공공연히 쓰는 것보다는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맞춤형 조언을 주는 편이 더 낫다는 소결에 도달했다. 일반적으로는 이미 할 수 있는 말을 전부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어를 잘 해야 하고, 미영식 학술 영어를 해야 하고, 박사 진학 및 취득에 필요하지 않은 일들은 최소화 해야 하고,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고 등등(29회 참조). 


이번 여름엔 이미 모스크바에서 즐거운 체류를 마쳤고, 조만간 다시 러시아를 거쳐 엘에이로 복귀한다. 논문자격시험을 준비하는 한편, 프로스펙터스를 집필하면서 3대 500의 고지를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아래의 주소로 언제든 주저말고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이메일: dhwoo1234[at]gmail[dot]com

facebook: Dong Hyun Woo

카톡: dhwoo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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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ㄴㄴ

    메일 보냈습니다

    2019.08.16 02:30 [ ADDR : EDIT/ DEL : REPLY ]
  2. 탈조선이라

    어려운거져 이과건 문과건 대학가서부터 최소의 기간으로 줄여도 5~6년은 걸리니까

    2019.10.12 07:14 [ ADDR : EDIT/ DEL : REPLY ]

<원서 작성> 

저는 개인적으로 학교별 원서 작성 과정이 버거웠습니다. 마지막까지 SOP와 Writing Sample 수정을 끝내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학교별 원서 작성에 시간이 꽤나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회사라는게 언제 어떻게 바빠질 지 예측을 할 수 없으며 휴가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절대적인 시간이 들어가는 원서 작성은 의외로 힘든 관문이었습니다. 많은 학교들의 원서 마감일이 몰려있기 때문에 미리 입력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마감일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2017년은12/1과 12/15가 금요일이었기에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2시가 마감인 학교가 많았다는 점이 정말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나가며> 

GRE, 토플, SOP, CV, 추천서, Writing Sample, 원서작성 등 유학 지원을 위한 과정 중 어느 하나 쉬운 부분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정신적 스트레스였습니다. 일이 바쁘거나 여유가 있거나, 저를 찾는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무조건 회사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학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를 가장 힘들게 했습니다. 유학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회사 일과 개인 일에 적절히 정신력과 체력을 배분해야 했습니다. 어느 하나로 인해 다른 하나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생각한 제 욕심 때문에 원서 마무리 즈음에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다른 일을 병행하지 않고 오직 유학 준비만을 했다고 해서 이러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덜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아무 소속도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합격하지 못하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회사에 앉아 있을 시간을 모두 유학 준비에 쏟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출퇴근을 전후한 시간도 효과적으로 쓰지 않았던 저의 변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유학 준비를 위한 퇴사는 선택하지 않았고, 월급날에는 제 고민이 배부른 불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학 준비보다 더욱 쉽지 않을 박사과정을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으면서 감히 유학 준비 후기를 썼습니다. 주변 분들의 조언과 응원이 너무나 귀중했기에 부족한 경험을 조금이라도 나눠야겠다는 생각으로 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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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준비> 

GRE 공부가 저에게는 본격적인 유학 준비의 시작이었습니다. GRE 공부는 2016년 12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당시 목표로는 봄까지, 마무리를 하고 SOP나 Writing Sample에 시간을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표와는 다르게 2017년 11월까지 저는 토플과 GRE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매우 좋다고는 볼 수 없는 점수가 조금이라도 올라갈까 싶어 계속 시험에 미련을 뒀습니다. 10월, 11월이 되면서 시험은 정말 큰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GRE는 8월달, 토플은 11월 달 점수가 제일 높았습니다. 구체적인 공부 방법은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간단히 스터디에 대해서만 얘기하겠습니다. 

가장 오래 지속된 스터디는 출근 전 새벽 시간을 활용하였습니다. 야근은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전화/메일/카톡 등이 오지 않는 새벽 시간 스터디가 편했습니다. 스터디를 통해 실제 공부보다도 이 시간에라도 내가 공부를 한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유학만을 준비하는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이 준비 하는 내내 굉장히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에 공부를 하러 나서는 그 자체가 내가 뭔가 지원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는 만족감을 줬습니다. 

시험은 최대한 주말을 활용하여 응시하였으나 주중에 휴가를 낸 경우도 있습니다. 


<추천서> 

저는 모든 추천서를 학부, 석사과정 동안 뵈었던 교수님들께 받았습니다. 다른 모든 준비 과정도 물론이지만 특히 추천서에 있어서는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들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예를 들어, 휴가를 내고 GRE를 본 날 오후 등) 틈틈이 부탁을 드렸고 흔쾌히 도움을 주셨습니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린 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는 SOP와 CV, 성적표, 수업 페이퍼를 보내드렸고 필요한 경우에는 어떤 학과에 왜 지원하는지 등을 설명 드렸습니다. 추천서 작성과 관련해 실수가 있었는데, 동일 학교 동일 전공으로 지원하는 학생 여러 명의 추천서를 같은 교수님께서 써 주시기 어렵다는 점을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동일 학교 동일 전공을 지원하는 준비생들이 주변에 있다면 추천서가 겹치지 않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올 때 마다 알림 메일을 발송하는 것 역시 중요했습니다. 


<SOP 및 CV> 

학부 학점(4.3기준) 3점대 중후반, 석사 학점 3점대 후반, GRE는 V: 160, Q: 170, AW: 4.0, 토플 110중반이었기에 정량적으로 좋은 인상을 주기에는 인문학분야 지원자로서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걸 그나마 SOP와 CV, Writing Sample로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SOP초안은 8월 정도에 완성하여 원서 제출하는 순간까지 수정작업을 거쳤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석사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추천서를 작성해주신 교수님들 및 여러 선배님들께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SOP에는 어떻게 A라는 연구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석사 논문과 A 주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회사를 다니며 A 주제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회사 경험과 A 주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앞으로 A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싶은지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지원한 학과 교수님은 물론 다른 학과 교수님과의 협업가능성도 간단하게나마 포함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별 맞춤형 문단을 하나씩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학교별로 분량을 맞추는 데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Double-space로 2페이지 분량을 요구하는 학교부터 1300단어 이상을 허용하는 학교까지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버전이 필요했습니다. 분량 변경은 크게 시간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결국 원서 마감 직전까지 미뤄둔 SOP와 씨름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시간 부족으로 문단별 우선 순위를 정하고 꼭 필요한 문단만 남기는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분량을 맞추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CV의 내용은 원서 준비 과정에서 크게 바뀔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내가 무언가 도움될 일을 했기를 바라며 이메일, 학교 포털, 외장하드 등을 샅샅이 뒤져보았습니다. 국내 출판 논문, 프로젝트 결과물, 국내외학회 발표(포스터발표 포함), (학부 시기를 포함한) 장학금 및 수상 내역, 수업조교 경험, 외국어 능력까지 쓸 수 있는 최대한의 내용으로 CV를 채웠습니다. CV의 형식 역시 석사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리고 검토를 받았습니다. 


<Writing Sample> 

Writing Sample는 석사 논문의 내용을 일부 발전시켜 완성된 글로 만들었습니다. ‘Writing Sample을 통해 영어로 학술적 글쓰기가 가능함을 보여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에 일관된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자 애썼습니다. 영문 글의 초안은 2016년 해외 학회의 발표문이었고 석사 논문을 번역하여 여기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20페이지 가량의 분량을 채워나갔습니다. Writing Sample 역시도 학교마다 짧게는 10페이지, 길게는 제한을 두지 않는 등 요구하는 길이가 달랐기 때문에 분량을 맞추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Writing Sample 역시 초안이 있다는 생각에 9월에나 본격적으로 작성을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사실상 새로운 글을 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0월과 11월에는 석사 논문을 새롭게 쓰는 것처럼 어느 정도 글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석사 지도교수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비판적으로 글을 읽고 검토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는 사실은Writing Sample을 작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정말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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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할 학교 찾기> 

지원 준비 과정에서 제가 다른 분들께 조언을 구할 때 항상 강조되었던 것은 fit(과 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지원하는 학과와의 fit 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 교수들과의 협업 가능성도 보여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조언에 따라 SOP에도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A학과의 B교수, C학과의 D 교수에게도 EE부분에서 도움 받고 싶다.) 기술하였습니다. 물론 특정 분과 내에서의 연구를 강조하는 학과의 경우에는 이러한 서술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 지원자 입장에서는 알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운’에 기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원 학교 수에 대해서는 제가 함부로 말씀 드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원서비, 추천서, 원서 작성 시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10개 이상의 학교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를 더 넣어 볼 걸 그랬나 하는 불안감이 원서 마감 이후에 계속되었습니다. 


<컨택> 

저는 해외 학회 및 해외 학자 초청 국내 학회를 컨택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메일로 컨택을 시도한 학교도 있습니다. 사실 직장인으로서 힘들었던 부분 중에 하나가 평일 낮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업무와 무관한 국내외 학회 참석, 자료 조사 등에 연차 휴가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역시도 여름 휴가를 가지 않는 대신 다른 시기에 며칠 연달아 휴가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해주십시오. 

국내 초청 학회의 경우에는 학회에 참석하신 다른 교수님의 도움으로 인사 드릴 기회를 얻었습니다. 해외 학회의 경우에는 학회 프로그램을 참고하여 관심 있는 학교의 교수님들께 면담 요청 메일을 미리 보냈습니다. 메일에는 CV를 첨부하였고 한 문단 정도로 석사 논문과 관심있는 연구 주제를 설명하였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메일을 보낸 모든 교수님과 짧게라도 대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학회 참석은 당연히 발표를 통해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저는 2016년에만 해당 학회에서 발표를 하였습니다. 컨택을 시도했던 2017년에는 학회 연계 워크숍에만 참여하였습니다.) 

면담은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면담의 시작은 “그래서 뭐가 궁금해?” 였습니다. “어떻게 합격할 수 있나요?” 보다는 구체적인 질문이 있어야 했는데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정말 그 학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다기 보다 컨택이라는 행위 자체를 위해 연락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면담하자고 기껏 요청했는데 궁금한 점이 없고 선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 좀 해달라고 하면 오히려 컨택이 독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모든 교수들이 선발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인터넷으로 알 수 있는 한에서는 학과에 대해 충분히 조사했음을 보이면서 학교 선택, SOP 작성 등 지원 과정에 도움되는 질문을 여러 개 준비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메일로 컨택 할 때에는 구체적인 한 두 개의 질문을 보내고 그에 대한 답을 얻지만 면담의 경우에는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부담스러웠습니다. 메일로도 물어볼 수 있는 질문 한 두 개가 아니라 정말 몇 분 이상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교수님이 답하는 형식은 아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연구 분야에 대한 질문을 하시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 역시도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학회를 전후해 5명 이상의 교수님들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떨어진 학교도 있고 합격한 학교도 있어서 컨택이 얼마나 유효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합불을 떠나 대화 자체만으로도 전체 지원을 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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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로 탈조선' 칼럼에 오랜만에 귀중한 외부 필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필자 선생님께서 "이름이나 학교, 전공을 밝히기에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직장을 다니면서 유학을 준비했고, 성공적으로 도미하신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러면 같이 한 번 볼까요? 


국내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석사학위 취득 이후2년 반 가량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유학 지원을 하였습니다. 현재 인문학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들어가며> 

이 글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한 유학 준비 후기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유학을 준비했구나’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말 출근은 1년에 몇 번 밖에 없으며 대체로 정시 출퇴근이 가능한 상황에서 준비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주요 국내 학회에도 가능한 참석했으며 석사 지도교수님의 학생 지도 모임에도 업무 외 시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집중적으로 유학 준비를 한 기간은 만 1년이지만 회사에 다니면서도 언젠가는 박사 과정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돌이켜보면 사실상 회사에 다닌 모든 기간이 유학을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는 점도 감안해주십시오. 


<회사를 다니다 박사가기> 

사실 저는 길게 회사를 다니지도 않았고 앞서 언급하였듯 회사를 다니는 기간 동안 박사과정에 대한 생각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를 그만두는 데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국 퇴사를 선택했으나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미련은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SOP에 잘 녹여서 왜 석사 이후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고 실무 경험을 쌓았는지를 간단히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박사과정 지원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직장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박사과정에 기여할 수 있는지 등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컨택 과정에서 직장을 다니다 박사 진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회사를 경험해 본 학생은 시간 관리를 잘 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직장을 다녔다는 점이 긍정적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많이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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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생각보다 참담했다. 유학을 나와도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 진다. 이번 꼭지에서는 바로 그러한 참담함의 일면과 그에 대처하는 우리 문돌이들의 준비에 관해 적는다.


1. 참담함

오늘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기친구들과 유럽에서 공부하는 친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처한 현실은 참담했는데, 문사철 가운데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모어가 아닌 외국어로 학문을 하기 때문에, 갑절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외국어를 모어로 쓰는 화자들에게 도무지 상대가 안 된다. 더군다나 어찌어찌 하여 학위를 취득한다 하더라도 선진 서방세계에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백인 연구자들에게도 정년이 보장되는 직위(tenured position)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마당에 비백인 연구자에게 그런 자리가 돌아올 확률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돈이 주어지는 4~5년 동안이 그나마 마음껏 선진 서방세계의 (제국주의를 통해 일궈 놓은) 연구 토대와 자원을 쓸 수 있는 기간이다. 이후에는 그 누구도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2. 준비

그렇다고 공부로 탈조선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나와서 조금이나마 '잘' 하기 위해서는, 서방 세계의 연구자들를 조금이나마 따라 잡으려면 준비가 필요하고, 그 준비는 가급적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 무엇이 있을까?

a. 영어: 영어의 중요성은 사람의 숨과 같다. 숨을 안 쉬면 어떻게 되는가?

b. 외국어: 다양한 외국어보다는 본인 연구에 정말 필요한 외국어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

c. 검색 능력: 검색하고 또 검색하라. 그렇게 해서 연구사 정리의 외연을 넓혀 나가는 수밖에 없다.

d. 방법론적 쇄신: 위의 c와도 연관이 되는 것이지만, 본인 필드의 최신 방법론과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쇄신을 거듭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상투어뿐이다.

e. 인간 관계: 문돌이들의 필드는 대개 좁게 마련이다. 인간 관계를 잘 다져 놓을 필요가 있다. 좀 더 정확히는 척을 질 필요가 없다. 본인 연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 말이다.


3. 그래도

위의 길이 어렵다고 느껴질 경우, 가장 좋은 대안은 문돌이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포기라는 말의 어감이 좋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문돌이의 길은 노력에 비해 성과가 극히 미미하게 주어진다. 그러한 미래를 감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전진하시라. 그렇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더 빠른 결정을 내려 이공계로 틀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의 탈조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조선을 벗어나지 않으면, 도무지 할 수 있는 바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에서도 진정으로 열심히 전진하는 연구자가 있다. 허나 이 글은 그런 특수한 사례의 연구자보다는, 공부로 탈조선을 꿈 꾸는 凡人, 즉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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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 없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외로 나와야 하고, 아직까지는 연구 기본여건(infrastructure)과 생활비(stipend)를 가장 많이, 풍부하게 지급하는 미국으로 나와야 한다.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전망이 거의 닫혀 버린 오늘날의 세계에서, 공부로 탈조선은 신분상승보다는 좋은 연구에 전적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이 역사적 무게추는 계속 흔들릴 텐데, 언젠가는 좋은 연구에서 다른 지향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연구를 위해서는 탈조선이 필요하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영어, 영어를 잘 해야 한다. 정말 중요하다.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쓰기가 제일 중요하지만, 말하기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결국 표현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영어를 정말 잘 해야 한다.

그밖의 것들은 부차적이다. 영어 글쓰기와 말하기를 단련하고 또 단련해야 한다.

이는 영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그리고 영어를 쉽게 익힐 수 없는 비서구나 비구영어권식민지 사람들에게, 우리들에게 적잖이 큰 짐으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다. 영어를 잘 하든지, 아니면 불평등결합발전의 세계에서 영원한 밑바닥을 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가 인생의 전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연구에 바치지 못할 바에야, 또는 그런 각오가 없다면 애초에 공부로 탈조선은 형용모순이다. 다른 방식의 탈조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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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책 읽다가 수업 갔다가 지금껏 책 읽으면서 하나도 졸리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즐겁다. 정말 오길 잘했다. 한/미 대학원 생활-북한사 연구-비교. 지극히 주관적이니 감안하시고 보세요.


1. 재정: 미국에선 돈을 준다. 한국에선 돈을 낸다. 이는 어떤 생각들을 반영할 텐데, 전자는 "(아무리 문송해도) 학자는 키운다"이겠고, 후자는 "네 선택이니 네가 책임지려므나"겠다. 직업적 전망의 열악함을 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건 전세계적 현상 아닌가.

2. 자료: 미국에선 그나마 맘껏 볼 수 있다. 한국에선 언제든 국가보안법 위반의 멍에를 지고 본다. 물론 자료는 여기보다 한국에 더 많이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보기가 영 까다롭고 귀찮고 위험하다.

3. 수업: 책 많이 읽는다. 예전에 한 대학원 수업에서 한 학기에 걸쳐 읽은 분량을 여기서 일주일만에 읽었다. 영어가 진리의 언어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많이 읽는다. 지금도 읽고 있다.

4. 토론: 수업 내외로 토론을 많이 한다. 논의 수준이 항상 높다고만 할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고 발언권이 있어서 좋고 윽박지르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좋다. "정통" 해석은 종교기관이나 신학교에 있는 걸로 족하다.

5. 동학: 아무래도 북한사는 미국에서 비주류인 한국사보다 더 비주류인만큼 같은 공부를 하는 선생님을 찾기 어렵다. 허나 집중도 측면에서는 전미에서 우클라만한 데가 없다고 자부한다.

6. 이론: 방법론/접근/이론/시각 등 뭐라고 해도 좋다. 다양성과 참신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이론의 다양함이 자료의 빈약함을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두뇌를 더 주름지게 할 수 있는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7. 생활: 집 떠나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추. 밥도 밥솥과 햇반이 다 해결해 주니 반찬만 조금 확보하면 된다. 나성 날씨는 허구헌 날 맑고 좋다. 사시일철 선크림이 필요한 게 유일한 단점이다. 아, 운전을 못하면 조금 힘들다. 특히 정착 초기에는 그렇고, 가구를 마련해야 하면 더욱 그렇다. 아시안이 많고 인종구성이 다양한 만큼 차별을 대놓고 느끼진 못했다. 일전의 테러처럼 총기 규제가 여전히 안 되는 측면이 있고 이는 분명 문제적이지만, 내가 뭘 어떻게 나서서 할 수도 없거니와 한국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걸 생각하면그저 내 할 일에 집중해야겠다.

8. 추행: 한국 대학원에서의 추행과 갑질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선 적어도 노력봉사 같은 건 없고, 학내 권력자가 자행하는 성범죄에 엄정하다. 물론 여기도 학생-교수 간 갈등이 샷건 난사로 이어지는 일이 가끔 있다. 자살자도 더러 있다.

그밖에도 많은 얘기가 남아있지만 우선 마저 하던 독서를 계속 해야 한다. 오직 전진뿐.


fb에 2017년 10월 10일(미국시각)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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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국 9시간 전이다. 방금 전에 명지대 우편취급사무소에서 우체국 EMS 5호 상자 5개로 전부 짐을 보냈다. 선(배)편으로 보냈다. 2달 정도 걸린단다. 세상에, 과연 내 책은 잘 도착할까? 이하에서는 미국으로 짐을 보낼 때 가장 저렴한 방법 중 하나인 우체국 배송(선편)에 관해 알아 본다.


1. 박스를 준비한다. 규격에 맞게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아주 큰 건 안 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과상자나 채소상자, 직육면체 박스면 된다. 상식적인 선에서 준비하도록 한다.

2. 한 박스 당 20KG를 넘기면 안 된다. EMS, 즉 비행기로 안전하고 신속하게(미국까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걸린단다) 보낼 땐 한 박스 당 30KG까지 탑재할 수 있다. 하지만 요금이 상상초월이다. 자세한 것은 국제우편 요금표를 참조할 것. 좌우간 20KG 약간 못 되게 박스에 책을 담고 포장을 한다. 선편으로 보낼 경우, 20KG에 74,000원이다. 미국은 3지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자세한 가격은 국제소포 요금표(선편일반소포)를 참조할 것.

3. 우체국 또는 우편취급소까지 박스를 나른다. EMS의 경우, 방문픽업을 신청할 수도 있단다. 부유한 자는 그러한 선택지를 택할 수 있겠다. 좌우간 나의 경우, 아버지가 차를 운행해 주셔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4. 해당 우체국에서 박스마다 일일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박스 내용물, 배송에 실패했을 경우 반송 받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서명 등을 주구장창 적어내야 한다. 미리 서류를 좀 얻어다가 작성할 수도 있겠다.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다.

5. 작성한 서류를 제출하고 대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으면 된다. 나의 경우, 처음에 뭣도 모르고 EMS로 보낼 생각으로 룰루랄라 갔다가 총액이 130만원 가까이 나와서 허겁지겁 선편으로 선회했다. 박스를 뜯고 책을 빼고 다시 포장을 하고 등등. 이 과정에서 우체국에서 근무하시는 노동자분의 도움을 얻었다. 따라서 일을 본 후에 명지대 학생회관 3층 카페에 가서 망고스무디를 두 잔 사서, 하나는 그 노동자께 드리고 하나는 해당 사무소의 관리인인 분께 드렸다. 처음엔 사양하셨으나 내가 박박 우겨 우린 모두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6. 무신론자의 경우엔 할 일을, 신앙인의 경우엔 기도를 세게 하는 일이 남았다. 중간에 없어지는 소포도 있다고 들었다. 최근 미국 동부의 한 저명한 대학으로 박사과정 밟으러 가신 선생께서는 10상자 넘게 보내셨는데 전부 잘 도착했다고 한다. 난 5상자를 보냈다. 근대우편체계가 나의 배송 업무를 잘 마치게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내 할 일을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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