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2015. 1. 6. 17:55

필자: Terry Eagleton

일시: 20101217(금요일)

출처: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0/dec/17/death-universities-malaise-tuition-fees

 

제목: 대학의 죽음(The death of universities)

부제: 학계는 현상유지를 위한 종복이 되었다. 그 문제는 수업료 문제보다 훨씬 심원하다.

 

우리 대학에서 인문학은 곧 사라질 것인가? 이러한 문제제기는 사실 터무니없는 것이다. 이는 술집에서 알코올이 곧 사라질지, 또는 할리우드에서 자기중심주의가 곧 사라질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알코올 없는 술집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문학 없는 대학도 존재할 수 없다. 만일 역사와 철학 등이 학계에서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를 기술훈련소나 기업연구재단이 차지할 터이다. 그러나 이는 고전적인 의미의 대학은 결코 아니며, 그것을 ‘대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만이다.

 

인문학이 다른 학제들로부터 고립됐을 때도, 대학은 그 이름값을 충분히 할 수 없다. 인문학과를 평가 절하하는 가장 빠른 길은 - 모두 폐기하는 것 외에 기분 좋은 상여금 정도로 존재를 내리깎는 것이다. 사상이나 가치는 나약한 이들의 것이고, 진정한 사람은 법이나 공학을 공부한다는 식으로. 어느 대학이든 대학으로서 제값을 하려면 중심에 인문학이 자리해야 한다. 예술과 문학을 동반한 역사와 철학 공부는 비단 변호사와 공학자뿐만 아니라 교양학부에서 학습하는 이들의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인문학이 위와 같이 절체절명의 위협에 처해있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이 인문학을 고등교육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이 18세기의 변화 가운데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이른바 인륜(humane disciplines)은 아주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했다. 그것의 목적은 속물적인 사회질서가 지극히도 신경 쓰지 않은 가치들을 기르고 지키는 것이었다. 대개 현대 인문학과 산업자본주의는 애초부터 결부됐다. 포위당한 일련의 가치와 사상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도 대학이라는 기관이 일상생활과는 거리를 두고 세워져야 했다. 바로 이 거리감은 인문학(humane study)이 애처롭게도 효과가 없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인문학은 관습적 지혜를 비평할 수도 있었다.

 

영국의 1960년대 말과 지난 몇 주가 그랬던 것처럼, 비평은 이따금씩 가두시위에 나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대면시킬 터이다.

 

오늘날 우리는 비평의 중심으로서의 대학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 마가렛 대처 이래로 학계는 정의, 전통, 상상, 안녕, 또는 자유로운 사상이나 대안적 미래의 이름으로 현상을 지양하려고하기보다는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단순히 인문학에 대한 국가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사람의 가치와 인륜에 대한 비판적인 반성이, 단순히 렘브란트 또는 랭보를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상황을 바꿀 것이다.

 

결국 인문학은 자신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지를 강조함으로써만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문학이 열악한 대우, 이를테면 인문학은 대학에 두기에 비용이 적게 든다는 사실에 저항하기보다는, 학계의 모든 사안에 대하여 스스로의 필수적인 역할을 고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는 실제로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재정적으로 말해보자면, 불가능하다. 정부가 인문학을 늘리기보다는 줄이려고 하니 말이다.

 

셸리[19세기 초 영국 시인]를 가르치는데 대한 과도한 투자가 국제적인 경쟁에서 뒤로 밀려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을까? 그러나 인간에 대한 질문 없이는 대학도 없고, 이는 대학과 선진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같이 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이 갖는 정치적 함의는 수업료 문제보다 훨씬 더 심원하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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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년의 노래

    http://www.pgr21.com/pb/pb.php?id=freedom&no=48142#1731149

    인문학에 대한 불신은 결국 '성찰의 부재'와 맞닿아있지 않나 합니다.

    2015.02.27 05:26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써주신 주소의 모든 (댓)글을 읽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제이고요. 이글턴의 글은 모종의 계기로 번역을 하게 된 것이지만, 제 자신은 이 글에 대해 어떤 특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 든 생각이기도 한데,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엄청나게 많은 논점과 주장을 담고 있는 저 단어는 과연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성찰의 부재'와 맞닿아있지 않다는 데는 일단 동의합니다. 그런데 누가 성찰을 해야 할까요? 누가? 예컨대 저는 항상 성찰을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모르겠군요..

      한편으로, 돈의 문제(자본의 문제?)가, 그 싸움의 계선이 더욱 분명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뉴스 따위를 보면, '인문학(과)'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공세(통폐합과 그에 따른 인센티브 등)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묘사되는데, 정작 반대편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주장할 뿐 이렇다할 대응을 못하고 있지요.

      말씀해 주신대로 성찰, 해야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기능이 애초에 무엇이었으며, 지금은 무엇으로 바뀌었는지도 궁금하고, 그걸 안다한들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맞대응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전 무지합니다. 결론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2015.02.27 20:26 신고 [ ADDR : EDIT/ DEL ]
  2. 소년의 노래

    '인문학이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할 깜냥은 못 됩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링크밖에...

    http://wallflower.egloos.com/1471671

    중요한 건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5.02.27 20:55 [ ADDR : EDIT/ DEL : REPLY ]
    • 링크 고맙습니다. 소개해주신 블로그의 마지막 문단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좀 모호하지만 그럼에도 인용할만 하군요. 극단적인 양극화를 암시하는 것도 같고.

      "위기는 이처럼 부르주아 주체의 위기이자 동시에 이를 지지했던 중간계급 이데올로기의 위기이다."

      말씀해 주신대로라면, '인문학'을 정의내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라서 쓰기 조금 두렵지만, 중요한 것은 '인문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데, 저는 조금 다르게 질문해보고자 합니다.

      '인문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 그런 사회는 이 시점에 남한에, 또는 지구 위의 어떤 곳에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그러한 기획이 함축하고 있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서로간에 긴밀함이 떨어지는 질문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세 번째 질문이 가장 궁금합니다.

      저는 차라리 '인문학'의 자리에 노동자나 인간을 넣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중요한 건 인문학이나 인문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보다는 노동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닐지요? 물론 '노동자가 존중받는다'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구체화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오늘날 남한의 노동현실만 보더라도 제가 제시한 명제는 이내 필요성을 얻을 수 있겠지요.

      '인문학' 얘기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은데,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사람들을 분석하는 작업을 인문학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에 써본 것입니다.

      2015.02.27 21:09 신고 [ ADDR : EDIT/ DEL ]
  3. 소년의 노래

    훌륭하십니다. 아마 링크한 글과 엇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인문학으로 향하길 바라지 말고 인문학이 사람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2015.02.27 22:35 [ ADDR : EDIT/ DEL : REPLY ]
    • 과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야기 나누길 바라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마저 잘 보내세요.

      2015.02.28 00:4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