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인 解放後 左右合作에 의한 民族國家建設運動 硏究(1990)을 수정·증보한 것으로, 1991년 초판 이래 판과 쇄를 거듭하여 출간되었다. 1945년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편의상 한국현대사라고 규정할 때, 이 책은 한국학계에서 한국현대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학위논문과 저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좌우합작운동을 열쇳말로 하여 해방3년사(출간 당시에는 해방후사라고도 불렸던 것으로 추정)’를 탐구하였다. 이하에서는 기존에 나온 서평들[각주:1]을 참고하여 저자, 출간의 배경, 책의 자료적·내용적 핵심과 의의를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우선 한국현대사 박사 1인 저자에 관해 알아보자. 서중석(徐仲錫)1948825일 충남 논산군 연무읍에서 출생하였다. 1967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하다가 학부 4학년이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獄苦)를 치렀다. 박정희 정권은 거세지던 반대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급조하였고,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CJ)는 당시 판결(48)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한 바 있다. 그 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신동아에서 기자로 활약하였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복학하여 졸업(1984)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198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1990)를 취득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봉직(1991~2013)하면서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1986~2013, 2014년 현재 이사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자문위원(1994~2009),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장(2007~2013, 2014년 현재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80년대 후반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을 시작으로 6월 항쟁(2011)(사진과 그림으로 보는)한국 현대사(2013)까지 한국현대사의 주요 인물(이승만·김구·김규식·조봉암 등)이나 주제(민족운동·정당정치 등)를 다룬 굵직한 저작들을 펴냈으며, 연구와 후학 양성, 사회활동 등 다방면에서 실천적인 역사가로서 꾸준히 활약하였다.

 

 이 책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였는가? 박찬승과 최장집에 따르면, 한국현대()지배의 모순구조를 집단적으로 경험시켜준 구체적 계기는 바로 광주민중항쟁이었다. 한국사회는 5·18 이후 학원가와 작업장을 중심으로 반독재운동이나 반미운동 등 민주화 내지 변혁,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는 감성과 실천의 폭발적 운동을 목도하였다. 동시에 도처에서의 운동을 하나의 대오로 묶어내려는 통일전선(이하 통전)운동이 본격화되었다.[각주:2] 시대의 과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한국사 속에서 동형(同形)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의 이른바 급진적인 연구들학문적 엄밀성을 담보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회고적으로 제기됐다. 때맞춰 1990년대의 초입에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현대사 속 통전운동이 학문세계에서 시민권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615쪽 분량으로, 5개의 보론을 더하여 모두 519장으로 구성돼있다. 각 부는 저자의 시기구분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반영하였다. 일제시기, 해방~모스크바3상회의(1), 모스크바3상회의~1차 미소공위(2), 1차 미소공위~남조선 과도입법의원 개원(3), 1947~19485·10선거(4). 저자의 강조점은 아무래도 좌파통전세력과 중도우파가 가담한 좌우합작운동을 다룬 4(3)에 놓여있다.

 

 이 책이 구사한 자료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김남식·이정식·한홍구가 편집(1986)한국현대사자료총서는 해방3년사 연구의 뼈대를 이루는 신문(한성일보, 해방일보 등), 잡지, 연감, 단행본 등 연대기적 자료와 함께 주요 회의 의사록(‘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의사록), 미소공위 및 남북협상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록하였다. 이 책의 신문자료 구사 수준과 규모는 파천황이라 할만하다. 주한미군정보일지, 주한미군사, 미국무성비밀외교문서(FRUS로 추정) 등 미국 자료는 쓰인 시기를 고려했을 때 양이 적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요행위자이자 규정력이었던 미국측의 의도를 보여준다. 각 개인들의 전기·회고록·논설 등은 연대기적 자료의 공백을 채우는데 일조하였다. 사상휘보, 사상월보등 일제가 생산한 자료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일어판 코민테른 자료는 ‘12월 테제를 이어받은 ‘8월 테제’(좌경노선)의 사상적 배경을 잘 설명하였다. 이밖에도 이 책은 기본적인 북한관련 자료와 중국 관내 민족운동관련 자료를 다루었다. 요컨대, 이 책은 해방3년사 연구에 필요한 국내자료의 개황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앞서 설명한 시대적 배경을 이 책으로 외화(外化)한 셈이지만, 그것으로 소급되지 않는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서론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이 책은 혁명 대() 반혁명의 관점으로 해방직후를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분법으로 역사를 재단할 경우,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구심력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저자는 오히려 한국인의 주체적인 노력,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을 중심으로 해방직후를 살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멀게는 일제시기, 가깝게는 해방직후부터 제기된 통전운동(=좌우합작운동) 또는 그것의 역사를 매개로 삼아 해방3년사를 서술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족운동세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우익세력, (급진)좌익세력, 통전세력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2014년 현재, 재론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해방3년사를 독해할 수 있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우익세력은 임정봉대와 인공반대를 내세우며 단정도 불사하겠다는 식으로 민족국가 수립을 추구했고, 좌익세력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라는 12월 테제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계속 경직된 움직임만을 보였다. 이러한 속에서 통전세력은, 저자가 설정한 지상명제인 민족국가의 수립에 가장 적합한 세력으로 그려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세 세력의 뿌리는 일제시기 민족운동에 근거한 것(1)이었다.

 

 2장은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공화국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통전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를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이어 조선공산당과 인민당(여운형)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3장은 신탁통치 파동부터 1차 미소공위까지의 기간 동안 각 세력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묘사하였다. 1945년 연말부터 우익은 약점(민족 대 친일)을 냉전의 문법(찬탁 대 반탁)으로 호도했고, 좌익은 3상회의를 총체적으로 지지한다고 표명하면서 예의 경직성을 견지하였다. 저자는 박헌영보다는 백남운(=여운형)의 노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4장은 미소공위 휴회 이후의 남한 정국을 묘사하였다. 미국의 대한정책상의 변화와 맞물려 좌우합작운동이 제기됐으나 조공은 민전5원칙을 내세워 통전운동을 사실상 거부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좌익노선을 과오라고 평가하였다. 5장은 1947년 이후를 다루었다. 이 시기 세 세력의 노선은 각각 평행선을달렸고, 원심력이 구심력을 압도하는 현상이 남한 단선으로 표출되었다.

 

 저작의 선구성과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자에게 상당히 많은 의문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책의 도처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개입(평가, 가정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여하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의 시발이자 출범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창출하였다.

  1. 박찬승, 「한국현대사연구와 통일전선문제」, 『창작과 비평』 73호, 1991; 정영태, 「해방직후 한국정치와 사회민주주의」, 『한국과 국제정치』 7권 2호, 1991; 최장집, 「‘가능의 정치’로서의 해방후사 연구」, 『역사비평』 14권, 1991. [본문으로]
  2. 박찬승은 “1984년의 민중민주운동협의회, 85년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87년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89년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90년의 국민연합, 91년의 범국민대책회의 등”을 통일전선운동의 대표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박찬승, 앞의 논문, 1991, 24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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