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현대한국2014. 11. 16. 21:33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20권으로 읽는 20세기 韓國史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역사 대중서 편찬 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2014년 현재, 서울특별시교육감으로 봉직하고 있는 사회학자 조희연(曺喜昖) 교수가 썼다. 아래서도 살펴보겠지만 저자는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겪어보았고여기에 정면으로 부딪혔다가 곤욕을 당한 일이 있다.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는 나름대로 유신독재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지만전체적인 시대상을 파악하는 일은 요원했고, 따라서 이 책에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총체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파악하겠다는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이 책은 사료에 근거하여 박정희 시대를 본격적으로 살핀 역사서라기보다는 기존에 제출된 서사(敍事)를 종합하여 재배치하고 오늘날에 다시 그것을 복합적으로”, 그리고 확장된 진보의 개념 속에서 다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는 평자의 말로 다시 풀어쓰자면, “진보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복잡했던 박정희 시대의 다양한 역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가교를 마련하는 일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그 결과가 저자의 원래 의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차분히 따져볼 일이다.

 

 저자는 1956년 전북 정읍에서 공무원 조일환(曺日煥)의 오남으로 태어났다.[각주:1] 중학교를 마친 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1972)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사회학과, 1975)에서 수학하였다. 1978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유인물 배포 및 시위 가담의 명목으로 구속됐으며, 이듬해 815일 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1983, 1992)했고, 199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박원순을 비롯하여 1994년에 세워진 참여연대의 창립성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계와 정계, 시민사회를 넘나들며 활약하면서, 민주주의·근대화·시민사회·사회운동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저서를 펴내기도 하였다.[각주:2]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어떻게 매개로 삼아 문제적인박정희 시대를 파악하고자 하였는가? 우선 저자는 박정희 시대를 다섯 시기로 나누었다. 저자의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1972년의 10월 유신이었고, 각각은 다시 5·16에서 민정이양까지(1961~63), 한일회담 반대를 둘러싸고(1964~67), 유신체제 이전까지(1968~72),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기 이전까지(1972~75) 10·26까지(1976~79)로 나뉘었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장의 본문은 위와 같은 저자의 시기 구분에 상응하는 나름의 서술이다. 이어 저자는 규범적 판단사실적 분석을 구분해야 하고, 그 중 전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저자는 오늘날 개개인의 신념을 넘어서 사실과 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무력으로 헌법을 전복하고 권좌에 오른 박정희 개인과 그의 정권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박정희 체제는 각 시기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항상 대내외적 곤란에 맞닥뜨렸고, 이를 지양·극복하는 과정에서 체제는 실로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박정희 체제의 문제점을 독재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기보다는 그 체제를 움직였던 복잡한 동학(動學)을 구조적으로바라볼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복잡한 동학을 포착할 틀로써 개발동원체제(developmental mobilization regime)’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개발동원체제란 위로부터 사회를 조직하고 재편하며 아래의 동원을 이끌어내는 체제로서 사회에 대한 일종의 국가적 기동전체제라고 할만하다. 세계사에서 개발동원체제의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저자는 독일(비스마르크), 소련(스탈린), 북한, 중국, 대만(장제스) 등을 들며 사회를 군대식으로 조직화해서 성장효과를 극대화하고, 독재자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이러한 설명이 얼마나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물론 이 책이 개발동원체제를 하나의 사회과학적 전형(典型, model)으로서 탐구하려는 시도는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방법론적 핵심에 대한 설명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이론적인 한계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핵심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2공화국은 4·19의 사회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고, 이를 틈타 젊은 군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였다. 거사 직후 혁명위원회는 부정 해결, ()정치세력 일소, 사회 정화의 미명 하에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쿠데타세력은 경제기획원(1961.7.22.)을 발족시키고 이전 정권의 계획을 계승·변용하여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등 일찍부터 경제를 통제하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4대 경제 의혹 사건등 조직적인 경제범죄가 터졌고, 쿠데타세력의 도덕성은 이내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반대세력이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3공화국은 한··일 삼각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지역전략에 따라 한일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민정이양을 마친 쿠데타세력은 정력적으로 한일회담을 추진했고, “졸속·굴욕이라는 평가와 함께 사회적 반감은 고조됐다. 한편 한일회담 반대의 기치 하에 투쟁세력이 결속하고 쿠데타세력 가운데서도 이반(김재춘, 김홍일 등)이 나타났으나, 정부의 의도 관철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와 함께 1964~65년의 기간, “수출 증대가 국가의 핵심전략으로 설정됐고, 2차 인도차이나전쟁(베트남전쟁)에도 한국군이 파병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1968~72) 개발의 성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25개년계획 기간(67~71)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은 10%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발전방식의 고유한 문제에다가 더해 군대식사회동원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월남에는 계속 젊은이들이 파병됐고, ·북간의 체제경쟁이 가속화됐다. 장기독재의 징후였던 3선개헌이 대중의 의사를 빌려 통과됐고, 발전과정의 핵심이면서 부산물 취급을 받은 노동·빈민 문제가 불거졌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상징적이었다. 일련의 완화책으로 복지제도가 운위됐으나 시행까지는 아직 10년이나 더 걸릴 터였고, 유신 직전 초법적인 8·3조치(1972)(시장)자유민주주의를 조롱거리로 전락시켰으며 동시에 독재자의 위력을 실감케 하였다. 1972년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등 초헌법적 권한이 부여된 대통령을 허용하는 유신쿠데타가 벌어졌다. 이제 국회는 완전히 무력화됐으며, 대통령을 지상으로 하는 종신 독재체제가 형식상 완료됐다. 더불어 중화학공업화와 새마을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사회의 저항은 이전 시기보다 더욱 거세어졌으나, 그에 못지않게 통제와 진압 또한 가일층 악랄해졌다.[각주:3] 긴급조치 9호는 유신체제의 영구화를 기도하는 제도적인 장치였다.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이나 반대는 물론이려니와, 개정 주장이나 이를 보도하는 행위까지 일체 금지됐다. 한편 경제 집중 및 중복투자 등 일련의 문제와 석유파동이 만나 사회는 더욱 힘겨워했고, 드디어 민중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서술은 기존의 진보적인 시각의 흐름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 보인다. 이 책은 집필 의도완 달리 다양한 박정희보다는 독재자개인을 부각시켰다. 더하여 박정희 체제를 움직였던 복잡한 동학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했다기보다는 일련의 이야기와 통계를 배치하여 박정희 체제를 바라볼 수 있는 세부주제 각각에 대한 입문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19년이라는 긴 시기를 효과적으로 요약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1. 조일환, 조동환, 조희연 외, 『뜻밖의 개인사』, 새만화책, 2008.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박현채, 조희연, 『한국사회구성체논쟁』 1·2·3, 죽산, 1989·89·91; 조희연, 『동원된 근대화』, 후마니타스 2010; 조희연, 『병든 사회, 아픈 교육』, 한울, 2014 등을 들 수 있다. [본문으로]
  3. “1960년대까지는 빨갱이세력이 배후에 존재한다는 식이었던 반면, 1970년대에 들어서는 정권에 대한 저항 자체를 빨갱이와 동일시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70쪽.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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