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2017. 9. 5. 21:45

 심대윤沈大允(1806~1872). 명문 소론가의 후예였지만 증조부가 1755년 을해옥사로 사형을 당한 이후 집안이 폐족에 처해지고, 호구책으로 안성 읍내에서 상업 목공 약방 등을 경영하며 살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병행하여 <맹자>를 제외한 사서 오경의 주석서를 저술하고, 문집 3권 등 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그중에서 복리를 긍정하고 이익 추구를 정당화하는 <복리전서福利全書>가 특별히 주목된다.

<복리전서>는 1862년, 심대윤이 57세에 지은 글. 34~35세에 경전 연구와 저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예 관련서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저술이 57세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감안하자면 <복리전서>는 그가 경학을 통해 발견하거나 확인한 사상적 핵심을 정리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심대윤은 복리를 긍정하고, 이익 추구를 정당화하였다. 그리고 사람들 상호 간의 이해 충돌을 고려하여 쟁리를 피하고 여인동리할 것을 주장하였다. 어떤 면에서 여인동리는 그다지 낯선 주장일 수 없다. 그 말이 당대부터 전해오던 것이라는 점 외에, 공자 이래로 어떤 유학자도 이익 추구를 전적으로 부정했다고 할 수 없고, 그런 한에서 여인동리는 도덕 중심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유학자들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대윤의 복리사상이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복리와 화해를 선과 악의 구도로 받아들이는 일부의 통념을 거부하고, 복리를 긍정하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논의를 구축해 갔기 때문이다. (126)

김문용, "심대윤의 복리사상과 유학의 세속화", 96~128. 

상순 편저, <19세기 조선의 문화구조와 동역학>, 소명출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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