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2017. 8. 12. 01:19

가디언 고등교육 네트워크

 

일시: 2017811일 금요일

저자: 익명의 학자

주소: https://www.theguardian.com/higher-education-network/2017/aug/11/how-do-you-finish-a-phd-when-you-dont-feel-you-belong-at-university

 

당신이 노동계급의 학생으로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 어떻게 박사과정을 마칠 것인가?


우리가 얼마나 격려를 받느냐에 관계없이 대학은 덜 특권적인 학생에게 험악할 수 있다.

  


나는 현재 박사과정 4년차이다. 내 펀딩은 두 달 안에 동이 난다. 제출할 논문도 없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 누구도 내게 박사과정이 적극성(assertiveness)의 시험장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아래서 설명하겠지만, 나는 쌀로 만든 푸딩만큼 적극적이다.

나는 학부 때 영어와 역사를 전공했다. 말년차 땐 거의 고장 난 기분이었다. 내 스스로가 대학에 있을 만하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시험을 잘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석사과정 때는 세미나가 소규모였고 강사들은 학생들의 이름을 알아야했기에, 나는 학부 말년차 때보다 더욱 고장 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판단한다는 압박감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 지도교수는 내 석사논문이 박사과정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내게 장학금을 신청하게 했다. 나는 절대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원했다. 내 직감은 내가 아직 이를 위해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충분히 성숙하다거나 자신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장학금을 받자 내 가족은 무척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엄마는 박사 우리 딸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23살의 나이로 4년짜리 연구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나는 운이 좋았고, 무서웠으며, 궁지에 몰린 기분을 느꼈다.

공교롭게도 불안해하던 내 직감은 정확했다. 박사논문은 내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의 적극성을 요구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왜인지에 대한 긴 목록이었다. 당신의 주제가 왜 중요한가? 이 주제를 연구하는 데 왜 당신이 최선의 연구자인가? 당신은 왜 특정한 방법으로 당신의 주제에 접근했는가? 당신은 왜 특정한 결론에 도달했는가? 딱히 잘못된 답이 있다기보다는, 당신의 답이 무조건 맞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하는 셈이다.

또한 박사과정을 할 때 필요한 체계성도 부족했다. 당신은 매일같이 당신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야 하고 작업시간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당신은 반드시 책상에 앉아 당신의 분야에 무언가 기여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시험을 마주쳤을 때 내가 어떻게 했겠는가? 내 지도교수가 장학금 신청에 유리하게 보일 특정한 방향을 내 연구에 제안할 때, 내가 감히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년이 지나도록 내 주제도 확실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업시간이 신성시되고 내가 박사과정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그만둘 수 있었겠는가?

박사과정 입학 제안을 받아들이는 일은 당신이 갑자기 이 업계에서 요구되는 모든 기술과 능력을 갖춘 전문적 학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들은 당신에게 이러한 기술을 알아서 터득하길(osmosis)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사과정생으로서 당신은 반드시 가르치고, 학부 수업을 고안하고, 장학금 신청서를 작성하고, 논문을 쓰고, 학회와 워크숍을 조직하고, 온라인에서 학술적 경력을 쌓고, 국내외적 참여를 통해 당신의 연구 공동체에 일원으로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는 동시에 연구와 논문 집필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만일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자신에게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괜찮고, 도움을 청해도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학계의 성원이나 실무 직원들이 이러한 기술들을 획득하도록 당신을 잘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데도 일정 정도 이상의 적극성이 요구된다고 믿는다.

나는 학부생 때, 대학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를 받았다. 이러한 도움 없이 내가 학부과정을 마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비스는 극단적으로 바빠져서 이제 학생들은 오직 2번 정도의 상담만 받는다. 나는 학부 말년차에 총 16번의 상담을 받았다.

내가 대학에 있는 8년 동안, 학생들의 정신적 건강문제의 증가를 목격했다. 나는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그러한 학생들을 찾는 데 좀 더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고 느낀다. 도움은 요구에만 부응할 것이 아니라, 대학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학생들에게 은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나는 내 연구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은데, 내가 다른 이들로 하여금 내 연구를 좌우하게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의 노동계급 출신 학생이다. 나는 적극적이지 않은데,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고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자라온 이들이 지닌 편안한 자신감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안한 자신감은 대개 중간계급과 상층계급의 전유물이다.

혹자는 우리의 유동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에서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만일 사람이 자연적으로 확신에 차있고 느긋하다면, 그 사람은 출신에 상관없이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어찌하여 대학에 빠져들었고, 여기에 소속되어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운 좋게도 나는 강사들, 내 가족, 장학재단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악전고투중이다.

나는 4년 전에 이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과정 동안, 많이 배웠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실패라는 유령에 영원히 사로잡힐 것인가, 아니면 장학금과 등록금 없이 언젠가는 내 불안감을 극복하고 논문을 써낼 방안을 어떻게든 찾으리라는 희망을 가진 채 곡예 하듯 작업하고 연구하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내가 이 두 가지 중 뭐라도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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