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6. 22:41

 1970년대 초 이른바 데탕트(긴장완화) 시기 국제질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며 정착된 미·소간의 적대적 공존은 지구 도처에서 냉전과 열전(베트남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변주됐으나, 어디까지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체제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기왕의 국제질서 안에 변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고, 국제무대에서 중국이 하나의 주연으로 등장할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것은 미·중 관계가 개선되면서 촉발된 것이었고, 장차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할 터였다.[각주:1]

 

 이 책은 앞서 말한 국제정치적 변화를 염두에 둔 채, 1968년부터 1973년까지의 시간을 종축으로 삼고, 국제관계와 남북관계를 횡축으로 삼아 미중 관계개선(국제정치), 남북 대화의 전개(남북관계), 남북의 국내정치적 변화(국내정치) 등을 각각의 연관 속에서 세밀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최근 공개된 1970년대 한국자료와 미국자료(미국무부에서 생산한 미국 외교관계 문서집(FRUS), 중앙문서 파일(Central Files), 특수문서 파일(Lot Files))를 주된 사료적 근거로 삼고, 북한 및 중국자료로 보충하는 방식을 통해 당대의 개별 사안들을 넘어 1970년대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중 관계개선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비로소 주연으로 올라선 중국을 역사연구의 범주에 넣어 분석한 것은 공전의 성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저자의 눈은 변화무쌍한 국제관계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서 한국현대사의 구조적 문제를 겨냥한다. , 저자는 데탕트기 국제질서 자체에 관한 탐구보다는, 그러한 배경 속의 분단문제를 재고하고자 했다. 남북분단이라는 극단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일상적인상황은 한국현대사와 시작을 같이 하는 굉장히 특수한 관계이자 문제였으나, 그것을 국제관계와의 관련 속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한 성과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장준하와 백낙청 등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공개된 자료들을 통해 1970년대 초의 남북분단 문제를 거시적으로 조망했다. 나아가 저자는 68년 한반도 안보위기를 시점으로, 미중관계 개선 속에서 한반도의 현상유지 및 영향력 온존을 꾀한 미국과 중국의 의도, 그리고 외압에 나름대로 대응하여 결국 각자의 유일체제를 형성한 남북 양측 집권세력의 향배를 면밀하게 추적했다.

 

 저자의 연구는 선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아쉬움과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글은 공개된 자료를 섭렵해 당시 각국 정부의 속셈들을 잘 밝히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상황설명에 치중한 듯 보이고, 구조적인 분석은 다소 미흡한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시종일관 데탕트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이 한반도화”, 또는 내재화되었다고 설명하고 그러한 정황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으나, 한반도 분단체제가 어떤 동학을 통해 그 구조를 재생산하는지에 관한 분석은 거의 없다. 특히 분단의 해결에 관해서는 남북 권력집단의 무책임성(또는 식민성)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쳐 어떠한 대안적 실천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1970년대 초반 데탕트기의 남북관계를 미중관계와 맞물린 것으로 보고, 그것을 실증적으로 조망한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는 노작이다.

  1. 박태균, 「미중관계와 남북관계의 복잡한 방정식 풀기」, 『역사와 현실』 86, 2012, 398쪽.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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