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카투사 이야기2017. 6. 29. 14:45

 논산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렀다. 분명 하루하루는 지나가는 것 같지만, 도무지 한 주가 지나가지 않았다.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그때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돌이켜 보겠다.

 어느 병영이 그렇듯, 신막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였다. 이는 벌집과도 비슷한데,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군집생활을 하는 곳으로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이틀을 채 못 버틸 만한 분위기를 풍겼다. 딱히 악취가 난 기억은 없는데, 이는 모두가 똑같은 냄새를 풍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좌우간 한 분대는 10~12명으로 구성되었고, 3~4개의 분대가 하나의 소대를 이뤘으며, 3~4개의 소대가 하나의 중대를 이뤘다. 막사도 정확히 그러한 편제를 반영했는데, 한 분대는 전부 한 방에서 자고, 한 소대를 이루는 분대의 생활공간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으며, 한 중대가 한 층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층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는 복도에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샤워실도 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샤워실이라기보다는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샤워기가 달린 셈이었다. 이곳에서 더운 바깥 활동을 마치고 먼저 들어온 훈련병들이 달려들어 등목을 하곤 하였다.

 아침의 일과는 이미 근무로부터 시작한다. 근무는 한 시간씩 섰는데, 대개 오전의 활동이 6시에 시작이니 차라리 5시부터 근무를 서는 편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예컨대 3시부터 4시에 근무를 서고, 그때부터 6시까지 잔다면 그게 과연 자는 것이었겠는가? 피곤함과 함께 하루가 시작 된다. 정말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이내 추스려야만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 없이 침구를 정리하고 전투복으로 환복을 하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연병장(운동장)에 질서정연하게 서서 하루의 시간낭비를 시작하였다. 온갖 자질구레한 조회니 선서니 하고 나면 운동을 하였다. 체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5월의 아침 공기가 너무나 찼다. 가끔 구보도 했는데, 힘들다기보다는 재밌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리고 나서 내무반에 들어 왔다가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언제나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이동해야 했는데, 이때 분대장 역할을 맡은 이가 선도하여 구호를 제창했던 것 같다. 이러한 이동 방법은 어디를 갈 때도 전부 적용되는 것이어서, 종교활동을 갈 때도 유격훈련을 갈 때도, 심지어는 논산 훈련소 끝나고 기차역을 갈 때도 그렇게 갔던 것 같다.

 식사는 참혹했는데,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식사의 속도는 제각기 달랐으나 전반적으로 빨랐는데, 왜냐하면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오는 편이 늦게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밥을 느리게 먹는 이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 것이며, 밥을 빨리 먹는 이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배식의 양은 결코 많지 않았다. 물론 아이스크림이나 우유 같은 부식도 나오고, 그렇게 지랄 맞던 군대리아도 나왔으나 양은 항상 적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너무나 배가 고팠다. 가끔 배식 당번이 되어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외박 나가면 바로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때 다비치의 Be my man을 mp3로 듣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식사 후에는 일과가 시작됐는데, 그 모든 일과를 기억할 순 없다. (나의 일과를 참고하라) 때론 연병장에서, 때론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무언가를 했다. 야외 훈련을 나갈 경우에는 그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정말 어찌나 기본적인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설의 미비를 훈련의 일환으로 포장하는 얄팍한 인간들의 치졸한 생각에 아직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훈련 중에 식사를 할 땐 소지한 K2를 등에다가 매고 밥을 먹었다. 딱히 어떤 훈련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 다 한다는 유격훈련, 수류탄, PRE, 사격, 숙영 등을 빠지지 않고 했다. 숙영할 때는 어찌나 춥던지, 겨울에 입대한 이들의 정신 상태는 무척이나 강인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정말 추웠다.

 조교들은 대개 우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먼저 입대한 이들 가운데 조교의 일을 자임한 녀석들이었다. 내가 왜 녀석들이라고 했냐면, 도무지 맘에 드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분대장 임혁필과 이면수뿐만 아니라, 실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집합이 바로 논산 훈련소이고 이 훈련소의 조교들이었다. 기억에 남는 이들 가운데, 옆 소대장 가오가이거와 다른 소대장 주크박스가 있다. 가오가이거는 당시 한양대를 다니다가 입대 해서 조교를 하던 녀석이었는데, 피부가 하얗고 안경을 썼으나 말할 때마다 어찌나 목소리를 낮게 하려고 하는지 지금 같으면 오글거린다, 라는 표현이 아주 적합한 그런 이었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가오가이거가 하도 가오를 잡는다고 그렇게 불렀다. 허나 숙영 정지 작업을 가서 임혁필은 쉬고 있는데, 가오가이거는 훈련병들과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나마 저 공대생 출신 조교는 낫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임혁필은 내 필통을 가져간 기억이 난다. 주크박스는 성이 나와 같은 우 가의 조교였는데, 군가하면 대적할 자가 없는 우리 중대의 보물이었다. 물론 그런 보물은 줘도 안 갖지만, 좌우간 군가를 너무 잘 암기하고 잘 불러서 훈련병들을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조교들이 있었는데, 내가 서울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불러다가 별볼일 없이 다시 보낸 싱거운 녀석도 있었다. 

 간부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대장은 자기가 미군부대에서 미군들과 농구했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였는데, 언젠가 야외훈련 가서 나보고 태권도 품새를 해보라고 시킨 기억이 난다. 군복 입고 열심히 품새했으나 내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사회인이었으면 갓 사원을 벗어난 대리에 불과했을 자가 이렇게 군대에 오니 100명 가까이 되는 훈련병을 통솔하는 처지가 되었다. 소대장은 상사인가 중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기광에 정상적인 사고가 좀 힘든 치였던 것 같다. 훈련병들이 띄워 주고 또 무기에 대해서 물어 보면 신나게 답변해 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군에 왔기에 저 정도까지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소대장은 전부 중사였는데, 그저 미친 자들이었던 것으로밖에 기억 되지 않는다. 좌우간 이 사회에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자들을 간부로 두었던 논산 훈련소였다.

 그밖에도 입소 3주까지 담배를 피다가 결국 걸려서 20킬로그람 군장을 하고 다녔던 부산 출신의 J, 내 옆에서 나를 친형처럼 따랐으나 나중에는 내가 너무 부담이 되어서 잘 못 대해 준 某, 키가 185를 훌쩍 넘지만 분대에서 가장 어렸던 부산 출신, 동아대 다녔던 부산 출신의 얄궂은 S, 사회에서 만났으면 상종도 안 했겠지만 그래도 나를 잘 따라 주고 마지막에 편지도 써줬다가 군인이 아닌 경찰이 된 S 등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학교 출신의 S, 항공대 출신, 한동안 무척 친하게 지냈던 Y형 등 오히려 카투사들과는 교류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조교들은 훈련병을 저글링, 카투사 훈련병을 히드라라고 표현한다고 임혁필이 말해 준 기억이 난다. 지능이 더 높고 꾀가 많다고 히드라라고 한다던데, 전혀 이해도 공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우리는 카투사와 비카투사 훈련병들이 같이 생활을 했는데, 딱히 그런 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카투사 훈련병 사이에서, 아니면 비카투사 훈련병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지 대체적으로는 잘 지냈던 편이라고 기억 된다. 카투사 훈련병이라고 해서 딱히 동질감이 들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렇게 다양한 젊은이들을 한 군데 모아놨을 따름이지 우리는 전부 서로에게 다른 자들이었다.

 행군은 정말이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무거운 짐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위생 상태, 영양 상태의 결핍으로 혓바늘이 돋았는지 아무튼 입이 너무 아팠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 상태에서 그렇게 긴 충청남도의 시골길을 걸었다니, 이는 헬조선에 태어난 죄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행군이 끝나고 바로 잘 수도 없고, 닭죽을 먹었는데 그래도 행군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물론 발은 언제나 물집이 잡혔고 상태는 최악이었다.

 이제 슬슬 카투사 훈련소(Katusa Training Academy)로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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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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