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현대한국2014. 10. 26. 22:39

 저자는 6·25전쟁 휴전 직후부터 5·16 쿠데타까지의 시간을 종축으로 삼고, 미국무부의 의견을 포함한 남한의 각 정치세력들의 통일논의와 정치·사회적 갈등을 횡축으로 삼아 분단을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시각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드러내고, 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저자는 한국의 분단문제가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민주주의, 경제발전, 외교 등)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과도 깊숙이 얽혀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분단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인 통일론을 살핀다면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문제로 바라보았고, 대응하며, 어떠한 해결의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관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통일론은 각 정치세력들이 냉전과 분단에 대처하는 기본방식을 함축할뿐더러 남한사회의 발전전략에도 긴밀히 닿아있었다. 따라서 저자는 통일논의를 중심으로 당시 정치세력 간에 界線을 굵직하게 그어 각각을 서술하고 비교했다. 이러한 방식의 서술은 시기별로 등장한 1) 통일론의 내용, 2) 통일론을 주장한 정치세력, 3) 통일론의 전개과정 등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더하여 저자는 각 정치세력의 통일론이 국내외적 정세(냉전체제, 시민사회)의 변동과 맞물리는 동시에 이전의 통일담론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의 논의를 뒷받침 하는 자료적 근거로 당시 남과 북에서 발간된 신문과 잡지 등 출판물, 한국과 미국의 관찬 자료 등 보고서, 당시대를 산 인물들의 증언(송남헌, 박병엽 등) 등이 있다. 그 중 특히 혁신계 신문이었던 민족일보를 주로 활용하여 1950년대를 통틀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던 혁신계 세력의 면면을 자세히 다룬 점이 눈에 띤다. 사상계를 통해 당대 지식인의 인식과 고민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고, 논의 현황을 일별하려고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그러한 잡지가 당시 지식인 사회에 특별한 파급력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서는 총 4장으로 이뤄져있으나, 남한 정치세력의 통일논의를 자세하게 다룬 부분은 1장부터 3장까지이다. 1장은 휴전 이후 1950년대의 통일논의를 서술했다. 이승만(북진통일론)과 민주당(和戰兩樣論)은 정치적 성향이 대동소이했고, 진보당(평화통일론)세력과 분명히 구분됐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시기였고, 이승만과 우익세력이 탄압기구를 독점했던 만큼 국내에서 평화통일론이 설자리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당시 남한(한국) 지식인의 사상의 저변에는 무력을 동반한 통일을 거부하는 평화적 통일론의 다양한 모습이 잠재한 채 흐르고 있었다.

 

 2장과 3장의 시기적 배경은 4·19부터 5·16까지의 기간인 “4·19시기로 공통적이다. 2장은 당시 드러난 통일논의와 정치·사회적 갈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했고, 3장은 당시 제기된 통일론을 유형별로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각각의 성격을 분석했다. 이승만 장기독재가 무너지자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의견과 주장, 요구가 분출됐고, 그것은 대개 강한 민족주의적 감성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더하여 국제정세는 공존(=냉전적 현상유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戰後 舊식민지들이 제3세계 국가로 국제무대에 등장했으며, 북한 또한 활발한 대남 통일공세를 벌였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당시 등장한 통일론을 크게 세 가지로 준별했다. 그것은 바로 1) 유엔 감시하 남북 총선거론, 2) 중립화 통일론, 3) 남북 협상론이다. “4·19시기에 들어와 무력북진통일론은 효력을 상실했으나 장차 흡수통일론으로 이어질 터였다. 이제 각 정치세력의 통일론 구도는 전쟁 평화에서부터, 평화(또는 공존)를 전제한 바탕 위에 국제적 권위(UN 또는 열강의 협정) 대 반외세先建設 後統一 대 건설과 통일의 병행으로 바뀌었다.

 

 저자에 따르면 “4·19시기민간 차원의 광범한 통일논의와 운동의 출현은 이전까지 잠복해있던 시민사회의 열망이 민주화라는 새로운 국내적 국면과 동시에 국제적 상황변화와 맞물려 표현된 것이었다. 그 핵심은 7여 년간 터부시됐던 남과 북의 교류였고, 각 정치세력들은 이제 그러한 남한 인민들의 열망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통일론 속에 담아내야 했다. 한편 “4·19시기남한에서 물리적 충돌을 동반하지 않은 틀 안에서의 정치행위는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와 공존을 모색했던 성숙한 다원주의적 사회질서의 대두를 의미했다. 저자는 이후 한국사회가 5·16이라는 틀 밖으로부터의 충격을 시점으로 장기간의 군부독재를 겪었으나, 당시 등장한 세 가지 통일론의 시각차이의 조류가 21세기까지 이어졌다고 보았다.

 

 저자는 “4·19시기시민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통일론으로 중립화 통일론에 주목했다. 그것은 집권당의 통일론이 갖는 유보론적성격과 남북협자들이 주장한 민족혁명론의 비현실성에 비췄을 때, “가장 구체적인 분단 타결책을 담은 통일방안이었다. 중립화 통일론은 정치의 민주화와 경제의 사회화를 한국적 실정에 적용하는 민주사회주의구상에 바탕을 두고, “영세중립국이라는 통일의 방법론을 마련했다. 또한 중립화 통일론자들의 중립주의적 감성과 이념은 해방공간의 중간파 민족주의에서 기원하여 1950년대의 진보당을 경유하여 이어진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립화 통일론 또한 계획경제론이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점과, 무엇보다 남북 간 타협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녔다고 보았다.

 

 이 책은 저자의 실천적 고민이 담긴 한 편의 노작이다. 당시의 국내외적 맥락은 지금의 맥락과 다르지만, 이 책을 통해 확인한 당시 통일에 대한 세력 간 異見과 길항은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그것은 저자가 지적했듯, 첫째, 통일에 관한 다양한 이견을 우선 인정하고, 그것이 불러일으킬 정치사회적 갈등을 조절하는 동시에 (남한 내부와 남북 간)공존 내지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의 유효성이다. 다원주의적 질서를 표방하는 자유(주의적)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견은 언제나 공론장에 우선 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전제가 서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결코 자유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정치사회적 갈등을 조절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4·19 시기” “좌와 우를 막론하고 통일문제를 둘러싼 대립은 왕왕 있었으나, 그것이 물리적 폭력의 충돌로 귀결된 경우는 희박했다. 한편 그러한 사회 내의 분출무질서로 보는 시각이 존재했고, 5·16을 두둔하는 세력은 그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당시의 풍경을 2013년의 한국과 바로 맞대어 비교할 순 없지만,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틀의 안팎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시대의 화두(당시는 통일문제)를 둘러싼 세력 간 갈등이 어떻게 조절돼야 하는지 조그맣지만 빛나는 통찰을 얻을 지도 모른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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