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가에 다녀왔더니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러시아는 5월 9일, 72번째 전승절 행사를 치렀고 한국은 19대 대통령을 뽑았다. 허나 탈조선이라는 정언명령은 우리 사회에 아직 강고하게 뿌리를 박고 있는데, 여자일수록, 가난할수록, 노동자 계급일수록, 소수자일수록, 젊은이일수록 도무지 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없다. 무조건 탈조선 외에는 대안이 없다. 따라서 이 꼭지에서는 공부로 탈조선하는 방법의 정석으로 국내 석사과정에 진학했을 경우의 세 번째 조언과 지적을 담아낼 것이다. 

 앞선 꼭지에서는 1)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2) 석사과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3)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라고 했으며, 4) 영어 학습을 밥 먹듯이 하고, 5) 미국식/영미식 문제의식의 형태에 익숙해져야 하고, 6)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미국의 연구 성과를 무조건 많이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이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지만, 그 빈번함과는 상관 없이 참으로 소중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4년 전 나에게 그토록 하고 싶던 말이고, 지금이라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 꼭지는 국내 석사과정에 진학했을 경우의 마지막에 해당 된다.


7. 시간은 금이다.

 어저께 미국에서 사회과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엇을 하려거든, 예컨대 대중서를 출판한다든가 인맥을 넓힌다든가 여행을 간다든가 일을 한다든가 할 때에는 무조건 일찍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사과정에 들어서는 순간, 학부 때와는 다른 여러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공부도 잘(?) 해야 하거니와 돈도 벌어야 하고, 뭣보다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사람도 만나야 하고, 책도 더 읽어야 하고, 생각도 해야 되고, 여행도 가끔은 가줘야 하고 등. 그런 것들은 전부 비용 대비 효용 측면에서 생각이 가능하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석사과정에 들어선 이상, 그리고 공부로 탈조선을 계속 하려는 이상, 석사과정을 아껴서 미국 박사과정에 최단 시간 빨리 가야 한다는 일종의 명령을 스스로에게 계속 내려야 한다.

 쉴 땐 쉬어야 한다. 허나 일종의 장거리 경주에 여러분은 들어선 것이다. 석사과정이 자신에게 안 맞는다? 그러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직 20대라면 뉴질랜드 워홀 비자를 받아 가서 Brave New World에서 햄버거를 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이 경주에서는 남보다 무조건 빨리 학위를 취득하는 게 무조건 좋다. 


8. 상념에 빠지지 말고 현실적으로 세상을 보라.

 위대한 쿠바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이른바 체 게바라 형님이 한 말씀 중에 유명한 구절이 있다: "현실적이되 불가능한 것을 하라"(seamos realistas y hagamos lo imposible). 분명 멋진 말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일까? 일련의 사실들을 확인해 보자.

 첫째, 그는 백인이었다.

 둘째, 그는 의사였다.

 셋째, 그는 혁명가였다.

 넷째, 그는 경제학자였다.

 물론 위의 네 요소 중에 자신이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서 게바라 형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허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그의 명언 가운데 앞 구절만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우리가 처해있음을 깨닫게 된다. 대체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그렇게 꿈을 꿀 의무도 있다. 허나 우리는 다시 한 번 "현실적이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세게 말하자면, 대체 국내 석사과정에 진학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를 진지하게 자문해 보란 주문이다. 이는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난 비록 탈조선에 운 좋게 성공하여 라라랜드로 가지만, 거기서도 문제는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우선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백인이 아니고, 부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자가 아니며, 남자 우위의 사회라는 점에서 여자보다는 덜 차별을 받겠지만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박사과정생이니만큼 사회적 위치는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다 (5년 간의 장학금 지급이 끝나면, 그 이후는 다시 돈 나올 구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지만, 이는 정말 불공평한 게임이다. 허나 불만을 갖고 불평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는가? "불가능을 꿈꾸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국내 석사과정에 진학하여 이런저런, 남들이 안 읽는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자신이 무언가 엄청나고 소중하고 대단한 것을 한다는 착각에 들기 십상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당신 외에도 공부를 할 사람은 지천으로 널려 있으며, 학계란 당신이 끝내 살아남지 못한대도 아무 이상도 없이 자연스럽게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동서고금의 양서와 산적한 경험 연구, 서방선진세계의 최신 "이론"들을 잘 섭취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seamos realistas)이다. 


9. 협업은 중요하다.

 비록 국내 석사과정에서 공부로 탈조선을 시작하는 우리들이지만 모든 일이 아주 험난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학사과정에서 협업이 무엇인지 우리는 결코 배우지 않는다. 가혹한 경쟁은 이미 상투적인 문구가 되었다. 하지만 서방 선진세계의 역사가 증명하듯, 분업은 효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협업은 분업의 다음 단계라 할 만하다. 

 공부로 탈조선을 목표로 하는 동지들을 최대한 많이 규합하는 게 중요하다. 석사 1년차 때부터 그러한 목표를 대놓고 표출하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에게는 눈치라는 게 아주 잘 발달돼 있고, 한국의 대학원에서 일찍부터 유학을 가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설령 그런 마음을 전혀 품지 않았더라도, "여기를 뜨겠고, 여기엔 정이 들지 않는다."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당연히 유학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유학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아니, 좋게 볼 수가 없다. 유학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저 유학을 매도하는 일련의 사람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유학에 관한 한국 학계의 태도는 상식 이상으로 가혹하다. 이러한 속에서 공부로 탈조선을 목표하는 이들을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공부 모임을 조직하든 무슨 수를 쓰든 탈조선 모임을 만드는 게 현명하다.

 동지들이 모였다면 본격적으로 유학에 필요한 것들을 작성하고 돌려 읽으라. 어려운 말로는 윤문, 영어로는 피어 리뷰(동료 검토 정도로 번역 가능하겠지)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협업하는 것이, 유학을 준비하지 않는 이들과 협업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더 낫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냐면, 유학을 준비하지 않는 이에게 유학에 필요한 문건 작성에 도움을 구하는 것은, 말년차 예비군에게 유격 훈련을 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절대 도움이 안 되고, 따라서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설령 영어 실력이 도찐개찐이어도, 다 같이 탈조선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으쌰으쌰 돕는 게 필요하다.

 인문사회계에서 탈조선하는 법들은 앞선 꼭지에서도 적었지만, 좌우간 writing sample이랑 sop 등을 돌려 읽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그들의 조언을 전부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아직 유학에 성공한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학에 성공한 이들의 조언이 황금 같은 것이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공부로 탈조선도 노력보다는 운이 작용하는 놀이이기에, 우리가 현실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노력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어느 사회나 남을 고깝게 보는 분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조짐이 당신의 협업 모임에서 보일 경우, 바로 추방하라. 대체로 그런 자들은 공부로 탈조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 놔라, 배추 놔라만을 일삼는 경우가 크기 때문이다. 군대의 비유를 들자면, 입대도 안 한 자가 벌써부터 말년 병장의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설령 그들이 공부로 탈조선에 성공했다 한들, 그러한 태도로는 가혹한 미국 학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당신은 그러한 태도를 반면교사 삼아, 동지들의 탈조선을 진심으로 돕고, 또한 그들에게서도 도움을 최대한으로 받아 어떻게든 탈조선에 성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10. 탈조선은 진리이다.

 탈조선의 방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은 공부로 탈조선에 집중해 보았다. 이번 꼭지 들어가는 말에서도 썼지만, 여자일수록, 가난할수록, 노동자 계급일수록, 소수자일수록, 젊은이일수록 탈조선 외에는 답이 없다. 이는 현실적인 것이며 동시에 낭만적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우리 같은 이들이 살아가는지 뉴스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권세가/자본가들은 결코 그들이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며, 그 아래서 떡고물을 받아 먹으며 개처럼 꼬리를 살랑이는 마름 같은 존재들이 너무 많다. 이들의 통치 아래서 우리는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 이들의 통치를 감내해야 한다면, 우리가 공부하는 이 인문사회과학이라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물론 탈조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갑자기 세상이 쉬워지진 않는다. 미국에서 황인종으로 2등 신민의 위치를 감내해야 한다. 5년 안짝의 장학금 지급이 끝나면 그때부터 또 돈 걱정에 시달려야 한다. 무엇보다 그렇게 힘들게 젊음을 몰빵해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구직은 또 다른 일이다. 세상에 날고 기는 사람들, 영어를 쓰는 사람들, 지배층인 백인들이 또 얼마나 많겠고, 그들의 사연은 또 얼마나 기구하겠는가?

 그럼 대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불가능을 꿈꾸며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그 명제를 말하는 건 쉽지만, 그 지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통로를 거쳐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점차 세상은 더 불평등해지고 있고, 생산력의 향상은 요원하며, 생산관계의 변화는 더욱 요원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를 봤을 때, 탈조선 외에는 별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헬조선에 사는 독자들 가운데 공부로 탈조선을 꿈꾸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네며 이번 꼭지를 줄인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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