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2017. 5. 5. 10:43

 한동안 이 '생각'을 이용하지 않았다. 4월 초까지는 문서에 하루하루의 일과를 적어 넣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만 두었다.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탈리아인 친구인 이본을 배웅하러 프란치스카와 셋이 아르쬼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온도는 10도를 넘는 상온이었고 하얀 파카가 아주 벅차진 않았으나 계속 입을 수는 없었다. 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그녀를 보내고 프란치스카와 돌아왔다. 갈 때는 500루블, 올 때는 700루블이었는데 전부 이탈리아인들이 지불하였다. 방에 돌아와 잠깐 누워 있다가 씻지도 않고 학교로 향했다. 한국인 동생인 K와 L이 먼저 와있었다. 수업을 듣고 K와 사르본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점저를 마저 산 뒤에 주건물로 향했다. 주건물 창구 직원은 바로 은행에 가서 납부하면 된다고 했고, 그 길로 스베르방크에 가서 납부하였다. 야르체에 들러 이것저것 사고, 인터넷 비용 1,000루블을 낸 후에 기숙사에 돌아왔다. 책을 읽다가 잠깐 잤다. 다시 책을 읽다가 아까 산 점저를 데워 먹고, 다시 책을 읽었다. 10시가 되어 내려가 운동을 했다. 막판엔 러시아인 커플이 들어와 말을 걸어 보았다. 여자는 엠게우 철학과 1학년생이었고, 남자는 트수(톰스크국립대학)에 다닌다고 하였다. 둘은 톰스크 출신이나, 남자의 아버지는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이 루스땀이었다. 역시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의 막사트가 들어와 넷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방에 돌아와 씻고 이제 잘 준비를 마쳤다.

 박사학위 논문뿐만 아니라 역사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궁금하다. 역사학이란 무엇이고, 역사학적인 질문과 서술은 무엇인가. 어떠한 효용을 가질까? 나는 그 효용에 관심이 많다. 이런 내 관심사는 사회과학으로 공부를 시작한 개인사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이런저런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08년, 학부 2년생이었을 때였지만, 본격적으로 무언가 읽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일병 때부터였다. 지금은 시카고로 박사과정 진학에 성공한 연대 사회학과의 Y형의 영향이 컸다. 부르디외를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독서의 범위가 넓어졌다. 좌우간 역사학을 당분간은 계속 할 터인데, 아직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북한사와 사회주의역사를 보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서술해야 할지, 어떠한 논지를 통해 누구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그러한 작업은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지 아직은 모르는 것 투성이일 따름이다.

 현재로서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노어, 중어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박사과정 동안 게으름을 피우지만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독어나 다른 언어를 추가적으로 한두 개 정도는 할 수 있을 듯 하다. 문제는 그러한 언어 습득이 나의 박사학위 논문 작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아직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박사학위 논문을 잘 작성하는 일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서적의 형태(book-form)로 일정한 두께의 글을 써내야 하는 일이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기간은 물론 아니지만, 2년은 수업을 듣고 시험을 준비하는 데 써야 하므로 실상 내게 주어진 시간은 3년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1~2년은 또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러저러한 일에 연루되어야 하는 만큼, 순수하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년이 채 안 된다. 5년을 넘어가면 다시 연구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일에 시간을 쏟아야 하고, 자연스레 연구는 지지부진해 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에서의 박사과정이겠다.

 그래도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어찌 됐든, 궁핍한 계층에서 태어나 강한 운과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라라랜드로 떠나게 되었다. 이제는 가서 잘 하는 일이 남았다. 물론 더 큰 출구전략을 계속해서 생각은 하고 있지만, 거기에 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힘도 들 뿐더러 효율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다. 컴퓨터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지만, 나는 지금 컴퓨터 언어보다 더 급한 공부를 앞에 두고 있다. 양자택일이고,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다. 

 다시 역사학으로 돌아와 박사학위 논문으로 생각을 모으자면, 어찌 됐든 오늘날 북한사는 거의 아무도 안 하니만큼 기존의 연구를 잘 섭렵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기존의 연구를 어떻게 수준 높게 지양하는 일이겠다. 소련사의 Magnetic Mountain 같은 대저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의 고전으로 불리우는 여러 책들처럼 꾸준히 읽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학만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며, 두루 읽고 널리 섭취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 북한사의 어떠한 면을 볼 수 있을까? 북한의 사회사를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날은 물론이거니와 냉전기에도 공산주의국가에 서방의 '시민사회' 비슷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공산주의를 실천한 국가에도 분명 사람들이 모여사는 여러 형태의 공동체가 있을 터이고, 이를 사회(obshchestvo)라고 보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또한 소련사의 수정주의적 흐름을 무작정 따라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노정하고 있는 문제, 즉 연구 주제 선정의 곤란에 따른 후속 연구의 부재를 잘 인지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사 속의 사회, 북한의 인민/공민들이 받아 들이고 실천한 사회의 제면모를 그려내는 한편, Revolution on My Mind에서 선보인 것처럼 인민들 개인의 의식으로도 천착할 수 있어야 하겠다. 문제는 자료이다. 그런 방법론을 비슷하게나마 적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을까? 자료의 한계를 인지한 후에는 결국 자료의 유형과 성격에 따라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그 경우에는 사회사의 외형을 띨 순 있어도 원래의 계획과는 다른 형태의 무언가가 나오겠다. 

 북한을 무대로 사회주의를 실천한 사람들의 만남을 연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결국 사회주의는 동상이몽이었다는 걸 드러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그러한 면모들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녔으며, 어떻게 기존의 논지와 시각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겠다.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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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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