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꼭지에서는 1)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2) 석사과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3)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라고 적었다. 이러한 말들은 누구나가 할 수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는 말로 들리기 십상이다. 허나 나는 미국 박사 진학을 앞둔 현재, 내가 왜 석사과정 때 이러한 조언을 직접 실천하지 못했나를 두고 후회를 거듭하고 있다. 여러분은 부디 내가 저지른 실수를 겪지 말고, 아주 조금이나마 더 밝고 희망찬 미래(실상 그런 것은 없지만)를 열어 가길 바란다.


4. 영어 학습은 밥 먹듯이 하라.

 여러분은 하루에 몇 끼를 먹는가? 적어도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 가운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최소 두 끼 이상을 섭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이어트라든가 질병으로 인해 식이요법을 병행하지 않는 이상 그렇다는 말이다. (만일 나보다 더 가난하여 하루 한 끼 이상 섭취하기 어려운 분이 있다면 진정으로 연락 바란다. 내가 도울 수 있는 한에서 성심껏 돕겠다.) 요컨대,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시간을 정해 자리에 앉아 영양을 섭취할 터이다.

 영어 학습이처럼 밥 먹듯이 해야 한다. 영어의 중요성은 두말 하면 잔소리이지만, 우리처럼 공부로 탈조선을 하려는 자에게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더군다나 대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영어를 모어로 하지 못하고, 따라서 영어에 가외의 비용을 지불하는 중이거나 그런 적이 반드시 있을 터이며, 허접한 공교육에서 이미 영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를 다 날려 버린 분이 대다수이리라 짐작한다. 후회는 필요 없다. 당장 영어 학습을 시작하라.

 오늘날 세계 학계는 당연히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미국의 공식 언어는 영어이고, 따라서 미국 학계, 즉 세계 학계에서 여러분의 학문 세계를 펼치려면 해당 場의 working language를 익히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더군다나 한국 같은 반주변부처럼 '학계'랄 만한 것이 없고(인문/사회과학의 사정은 너무나 참담하다), 해외 학계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차라리 삶의 복리를 더 가져다주는 오늘날의 질서 속에서는 세계와 직접 맞닿아야 한다. 그 접촉면을 늘리기 위해선 단연 영어 학습은 필수이다.

 뿐만 아니라, 석사과정에 진학해서 주로 하는 일이 석사논문을 작성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연구 지평을 확인해야 하고 그 지평 안에 나의 논문이 어느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를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당연히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시쳇말로 英米圈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지 않고서는 석사논문을 쓸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내가 공부하려는 북한사나 한국사/한국학/또는 반주변부/주변부에 대한 지역학적 접근(언어, 역사, 문화, 사회 등)은 일반적으로 영미권의 연구 성과보다는 해당 역사와 문화에서 빚어진 문제의식을 통해 해당 언어로 작성된 연구 성과가 더 많음은 굳이 의문을 갖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허나 그러한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한들, 그 내용을 영어로 바꾸어 세계 학계에 제출할 수 없으면 미국 박사학위 취득은 난망한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러한 내용을 영어로 잘 바꾸어, 영어권의 문제의식과 표현이라는 여과기를 거쳐 창조하면 훌륭한 내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국내 석사과정에서는 거의 대다수의 수업이 한국어로 진행되고, 따라서 여러분은 영어로 석사과정 또는 학사과정을 들은 사람들보다 훨씬 열위에 놓이는 것이다. 그러한 객관적 조건을 철저하게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더군다나 석사논문을 한국어로 쓰는 경우, 영어 글쓰기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우리말에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번 과에 문의하여 보라. 영어로 논문을 쓸 수 있는지. 그럴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지 않는 셈이 된다. 다만 과의 특성상, 무조건 한국어로 논문을 써야 하는 과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한국어로 논문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미식 글쓰기를 잘 익혀서 그 내용을 영미식으로 써내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미국 박사로의 진학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것이다.


5. 미국식/영미식 문제의식의 형태에 익숙해 져라.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우리에게 주는 여러 미덕 중 하나는 끊임없는 반성과 객관화이다. 석사과정에 들어온 이상, 여러분은 고등교육의 場에서 내기물을 놓고 투쟁하는 하나의 행위자가 된 것이며, 그 장의 관습을 익히고 규칙을 따르고 환영(일루지오)을 좇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그러한 행동을 최대한 객관화 해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도 있다. 전자는 생존의 전략이고, 후자는 인생의 풍요를 위한 행동이다.

 국내든 국외든 박사과정을 당연히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글쓰기는 미국식/영미식 글쓰기를 지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떻게 특정한 주제를 선택하고 문제시 하는 가에 주목해야 한다. 언어마다 번역이 불가능한 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지점을 우리는 굳이 번역하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현명하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영어로 썼을 때 자연스러운 전략을 택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양식을 좇아 글을 쓸 때, 비로소 영어로 바로 바꿀 수 있고 또 좋은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어로 글이 나왔을 때, 구직에 필요한 이른바 "점수"가 높은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우리가 학문이라는 영역에서 진행하는 활동이 하나의 놀이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놀이는 국가별로/권역별로 계서화가 철저히 진행되어 있고, 같은 노력을 투하해야 한다면 당연히 "큰 물"을 지향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예컨대, 한국어로 논문을 쓰면 아무리 그 내용이 좋을지언정 몇 명이나 읽겠는가? '솔까말' 우리 주변 사람들 중에 대학원생이 아니고서야 몇 명이나 논문을 읽겠으며, 또 읽는다 쳐도 평생 몇 편의 논문을 읽겠는가? 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결코 아니고, 오히려 시민사회와 괴리된 학계를 겨냥하는 것이다. 반면, 영어로 논문을 쓰면 그 내용이 아주 허접하지 않는 이상, 한국어로 된 논문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보리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대상 독자층이 세계이기 때문이다.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의 의무는 이 꼭지의 내용을 벗어나는 일이기에 여기서는 미국식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영어로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만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미국식 문제의식이라고 해서 어떤 보편적이고 공통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영역마다 그 문제의식의 양태는 다 다를 터이다.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북한사의 경우, 세계에서 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학자가 무척 적다. 손에 꼽을 정도이다. 허나 그들을 대별하자면 크게 '북한은 처음부터 전체주의국가'로 요약할 수 있는 전체주의론 對 '북한도 이성과 합리에 입각한 근대국가+민족주의가 강고함'로 요약할 수 있는 민족주의론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아무래도 하는 사람이 적어서 문제의식의 절대적 가짓수 자체가 적다. 좌우간 요점은, 북한사로 논문을 쓸 경우,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논의 지평에서 어떻게 나의 논문을 위치시킬 수 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학의 성과를 섭취하면 더욱 영양가있는 글이 나올 터이다. 허나 한국의 연구 성과를 세계가 참고하지 않는 이상, 영어로 직접 글을 쓰지 않는 일은 학문의 갈라파고스화를 촉진시키는 일밖에 될 수 없다. 슬픈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6.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미국의 연구 성과를 무조건 많이 참고하라.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어 연구 성과를 많이 참조하게 마련이다. 이는 지양되어야 한다. 한국어 연구 성과'만'을 참고하게 되면 위의 5번과 배치되는 결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렵다. 반면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또는 관련이 있을 연구들은 영어로 쓰인 양질의 저서가 정말 무척이나 많다. 예컨대, 북한사의 경우, 동아시아 근현대사로 접근할 수도 있고, 사회주의사로 접근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전자보다 후자를 강조하고 싶은데, 미국에서 사회주의사, 특히 소련사 연구는 지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 역사는 벌써 반 세기를 훌쩍 넘었다. 그렇게 두텁고 충실한, 물론 시각은 때에 따라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연구 성과를 참고하지 않는 것이 미안하지만 현재 한국 북한사학계의 실정이다. 나는 여기서 북한사학계의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다. 이는 한국의 학계 자체가 북한사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 학습을 도무지 시켜주지 않았음을 고발할 뿐이다.

 좌우간 본인의 연구와 관련된 주제로 검색을 좀 하다 보면 정말 부지기수의 연구가 나오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본인이 얼마나 나태함을 지양하고 부지런하게 보는가에 석사논문의 질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자료의 여부가 중요한 역사학의 경우, 무조건 미국의 연구 성과를 참고해야 한다.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이는 필수이다.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비밀댓글입니다

    2017.05.06 05:39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제가 비밀글로 쓸 경우, 선생님께서 보실 수 없는 단점이 있으므로 부득불 공개로 씁니다.

      요지만을 말씀드리자면, 다른 꼭지에서도 여러 차례 나온 설명한 요소들이지만, 영어 점수(TOEFL, GRE), 진학에 필요한 문건들(SOP or Personal Statement, Writing sample), 추천서 3부 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번 입시를 통해 제가 느낀 바는,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일 수
      있어도 바로 미국으로 가는 것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학부 졸업 이전에 미국 박사 입학을 받는 분도 많이 계시고 반대로 석사 이후 재수, 삼수를 거듭 하신 분도 몇 차례 봤습니다. 연구에 매진하면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유학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자연스레 그 기간에도 "현실적"인 문제들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미국 유학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고, 동시에 선생님께서 공부하시는 분야가 미국 학계에서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조건지어져 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어느 학교/학과의 어느 선생님/연구실로 가면 좋을 것인지, 나의 연구를 어떻게 미국에서 판촉(sell)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셔야 한다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도미/탈조선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으며, 더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dhwoo1234@gmail.com으로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7.05.06 05:47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17.05.06 05:51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