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꼭지에서는 국내 석사과정에 진학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 공부로 탈조선 할 수 있는지 그 대강을 살펴 본다. 몇 회에 걸쳐서 서술하겠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학제를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오류이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은 아닌 게, 우리가 원해서 한국에 태어난 게 아니지 않는가? 미국 같은 경우, 물론 사정이 여의치는 않지만, 석사 학위가 없어도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할 수 있다. 예컨대, 2017년 5월 현재, 나와 동갑내기인 미국인 두 명이 있는데, 둘은 각각 역사와 한국문학 전공으로 미국 명문대 박사과정 6년차를 밟고 있으며 내년이면 박사논문이 나오고 구직시장에 뛰어든다. 물론 그들은 미국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운이 좋은 미국인들이며, 우리가 무작정 그들을 선망하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 가급적 현실에서 출발하여 탈조선이라는 과제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


1.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라.

 필자가 계속 후회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 예컨대 이런 거다. "계속 역사를 공부할 것인가?" "계속 고등학문의 영역에서 진로를 이어나갈 것인가?" "뭘 먹고 살 것인가?" "공부를 그만 둔다면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박사를 안 갈 건데 석사는 왜 하고 있나?" 등의 질문을 미리 던지면서 석사과정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단언컨대, 국내든 국외든, 박사과정에 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교수직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 석사과정을 밟지 않는 게 인생에 이롭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래도 석사과정에서 공부를 하면서 내가 공부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겠다." 좋다. 석사과정에 최소 2년간의 시간과 학비를 투하할 용의가 있다면 그렇게 하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게 그렇게 많다고는 할 수 없음을 기억하라. 또한 그러한 질문은 이미 학사과정 때 또는 그 이전에 던지고 일정한 답을 얻었어야 했다. 허나 한국에서는 그러한 여유를 도무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석사과정에 들어와서야 예의 질문들을 던지게 마련임을 내가 잘 알겠다. 그렇다고 석사과정이 답을 제공할 것인가? 학교에서는 효과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공부를 계속해서 하고 싶은 (나 같은) 분이 계실 터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돈과 시간을 들여 세계에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국내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여러분께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겠다는 바람과 그에 수반 되는 노력을 당연히 지지한다. 허나 나중에 박사과정 입시에서 당신이 투자한 최소 2년간의 시간이 그렇게 크게 인정 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잘 알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요컨대,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석사과정을 밟겠다는 것은 결국 국내든 국외든 박사과정을 밟아서 종국에는 교수직을 꿰차겠다는 강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박사과정을 밟기 싫거나 그렇게 교수직을 원치 않는다면 석사과정을 굳이 밟아서 무얼 하겠는가? 같은 노력과 시간 투여로 돈을 벌어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에 쓰는 게 훨씬 낫다고 본다.


2. 석사과정을 구체적으로 고안(design)하고 계획(plan)하라.

 이 또한 필자가 가장 후회하는 지점 중 하나이다. 막무가내로 석사과정을 밟는다면 당신의 미래 또한 막무가내로 전락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 석사과정은 이른바 "전문가"를 만들어내는 여러 사회적인 제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 수도 단연 부지기수이다. 이 과정에 들어간 이상 여러분은 "전문가"로서 대우를 조금 받으며,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닐 것을 요구 받는다.

 그런데 대체 학사과정에서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나 같은 이가 석사과정에 들어갔다고 해서 바로 "전문가"며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따라서 석사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또는 석사과정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바로 석사학위 취득까지의 과정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고안하고 계획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계획한 대로 석사과정이 굴러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을 함으로써 다양한 우발사태에 직면했을 때,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처한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석사과정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수업을 잘 들어야 한다. 무작정 좋은 수업을 듣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수업도 좋지만, 졸업에 필요한 수업 가운데 석사논문 작성에 가장 필요한 수업을 들어야 한다. 세상엔 좋은 선생님과 좋은 수업이 넘쳐 나지만, 실상 본인이 돈과 여유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 모든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 말인 즉, 석사과정은 여러분의 지적 유희를 위해 마련된 시간이 아니고, "전문가"로 나아가는 과정의 초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을 아껴 석사논문 작성에 정말 필요한 수업을 들으라.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필요하다'는 말은 존재론적 의미의 당신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당신이 다음 단계(=박사과정)로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인 지표를 의미하는 석사논문에 적용된다.

 계획과 실천 과정에서 선배나 지도교수는 하나의 준거가 된다. 특히 해외 유학을 다녀온 지도교수일수록 여러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일정하게 높다. 허나 여기서 일정하다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모든 교수가 해외 유학, 심지어 명문대 박사를 취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의 무조건적인 우군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가 왜 한국에서 교수를 하는가, 를 따져 물었을 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대다수는 해외에서 교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큰 공통 분모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실력 부족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교수의 사회적 대우가 높은 한국을 선호해서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지도교수와의 상호작용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해외 박사과정 진학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만 그렇다. 예컨대, 그 교수가 여러분의 해외 박사과정 진학을 별다른 이유 없이 말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논리를 깰 정말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가지고 가든가, 아니면 석사과정에서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한 셈이다.


3.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다.

 석사과정이 여러분 단독을 위해 구성되리란 법은 결코 없다. 석사과정 또한 하나의 작은 사회를 형성하는데, 거기엔 동기와 선후배, 조교, 교수, 행정직원 등 무수히 다양한 인격들이 포진해 있고, 당연히 좋은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으리란 점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무척이나 제한적이며, 오히려 수업 외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위에서 필자는 국내 석사과정 진학을 적극 만류한 것이다. 허나 우리는 이미 석사과정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자.

 한국에서 석사과정에 들어온 이상, 그 구성원은 시쳇말로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그들과의 관계에서 당신이 무작정 내어주는 '호구'가 되거나 무조건 양보하는 '찐따'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석사과정 또한 하나의 작은 사회인지라 마음씨 좋고 착한 사람들을 아주 교묘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부류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겨야 하며, 석사과정의 제한된 자원을 여러분을 위해 이용해야 한다. 실상 여러분 외에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챙겨 줄 사람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진 자들이 그러한 모습을 볼 경우,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따라서 여러분은 '평판'에도 민감해야 하며, 적나라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아니 된다. 그럴 경우, 적을 만드는 꼴이 되며, 영원한 친구는 없다지만 영원한 적은 있는 게 학계이니만큼 수지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피곤한 생각이긴 하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소한 보통으로는 맞춰 놔야 한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종으로서의 인류는 보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남이 잘 되는 일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석사과정에서부터 여러분의 앞날이 꼬일 가능성을 확보해서는 아니 된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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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핼

    선생님, 글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활자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2017.05.22 22:15 [ ADDR : EDIT/ DEL : REPLY ]
    • 따뜻한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

      2017.05.22 22:16 신고 [ ADDR : EDIT/ DEL ]
    • 리핼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과 관련해서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석사 때는 연구방법, 아카데믹한 라이팅 등에 대해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라 들어서요. 바로 박사를 하는 것만큼 비용, 시간 대비 좋은 것이 없겠지만.. 석사를 거친 다른 박사과정생들과 비교했을 때 학문적인 준비가 덜 되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2017.05.22 22:28 [ ADDR : EDIT/ DEL ]
    • 당연히 학문적인 준비가 덜 되어 있겠죠 :) 국내 학부에서 미국 박사로 바로 갈 경우, 미영 석사는 물론이거니와 한국 같은 반주변부 석사보담도 준비가 덜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 박사를 노릴 경우, 한국 석사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볼 수 있겠죠. 저 같은 경우, 미국 박사에 가기 전에 한국 석사를 3+1(유학준비 및 학교 허드렛일)년, 즉 4년이나 했지만 그중 유학 준비(미영식 문제의식 습득, 글쓰기 연습 등)에 온전히 쓴 시간은 6개월도 채 안 되었습니다. 아울러 국내 석사에서 미국 박사를 준비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고요, 공부 이외의 일이 많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학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학문적인 준비는, 어느 수준까지는 멘토가 필요하겠지만, 그 이상부터는 전적으로 혼자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전적으로 선택은 선생님 자신이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겠지만, 국내 석사를 건너뛸 수 있으면 최대한 건너 뛰고 바로 미국 박사로 진학하시든지, 아니면 재정 형편이 허락하는 한에서 미국이나 영국 석사를 밟아 보시길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허나 후자의 경우는 금전적으로 넉넉한 계급에게나 허용된 길이기에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정도는 아님을 밝히는 바입니다. 요인즉, 바로 가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해보셔요 ...

      2017.05.22 23:03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