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한국전쟁2014. 10. 13. 16:58

 이 책은 해방 이전부터 6·25전쟁 발발까지를 종축으로 삼고 구() 만주지역, 다시 말해 오늘날의 중국 동북지방을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하여 그곳에 살았던 만주 조선인의 생활상과 생각을 다양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6·25전쟁 전사(前史) 분야의 또 하나의 대작이다. 책을 살펴보기에 앞서 저자의 약력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현재 서울시립대학 전임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서울대 역사교육과와 연세대 사학과(석사)를 거친 이후 1993김원봉 연구를 펴냈고, 이듬해 조선의용군 연구로 국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1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에 이어 이 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주로 중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벌였던 조선사람의 흔적을 역사 속에서 발굴·복원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책은 기왕에 제출된 저자의 연구실적들을 대거 수정하여 종합한 결과물이며, “한국독립운동사와 해외한인사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하에서는 이 책의 구성과 핵심논지, 자료를 일별하고 6·25전쟁 연구와 관련하여 이 책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에 관해 간략히 비평하겠다.[각주:1]


 일찍이 일제의 패망 이전부터,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인들이 만주지역에서 삶을 일궜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만주지역은 조선인들, 그중에서도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새롭지만 고달픈 삶의 터전이면서도, 야심찬 누군가에게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김원봉, 김일성 등)이자 출세의 신천지(최남선, 박정희 등)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통치의 주체가 빈번히 바뀌면서 그에 따라 다양한 민족이 실로 다채로운 생활상을 보였을 것이고, 최근에는 이 지역에서의 역사적 경험이 이후 한국사의 전개과정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를 추적한 시도도 제출된 바 있다.[각주:2] 이러한 사실을 통해 만주지역의 역사적 성격(“무정형성”)이나 만주 조선인의 정체성이 사뭇 복합적이고 중층적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더하여 이들의 삶을 살피는 작업 또한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만주 조선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했고, 어떠한 생각을 하며 해방 이후를 살았을까? 간단하게 보이는 질문이지만 명료하게 답변하기는 분명 어렵다. 저자는 앞서와 같은 사실과 질문을 염두에 두고 만주 조선인 사회 및 그들의 조국()”가 이전 반()식민지·식민지 사회 각각의 좌우대립, 현지 정세와 한반도 정세의 전개와 더불어 어떻게 변했고 실현돼갔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있고 각각은 연변지역(동만), 목단강지역(북만), 국민당지역(남만·관내)에 있던 조선인 사회의 전개상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각 장은 끝자락에 일종의 맺음말을 제공하고 있는데, 독자들이 저자의 논의를 정리할 때 유용하다. 그러나 각 부의 분량은 균등하지 않다. 1부가 일곱 장으로 논문 7편에 해당하는 분량인 반면 2부와 3부는 네 장씩의 분량으로 구성돼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평자는 이러한 분량상의 차이가 당시 만주 조선인 사회의 역사인구적인 사실, 즉 연변지역이 만주 내 다른 지역보다 조선인이 많았고 그만큼 영향력이 강했거나 또는 다른 지역의 조선인 사회를 선도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역별 사정을 파악하게 해주는 자료의 분량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해방을 전후하여 동만지역에는 ‘50~60’, 북만지역에는 ‘11~12의 조선인이 살았고, 국민당이 통치하던 지역에는 조선인 장병 수가 ‘4~20(?)에 육박하였다.


 저자는 600여 쪽을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해방 후 만주 조선인 사회가 도달하게 된 귀결은 바로 6·25전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좌익이었던 동만·북만지역의 조선인 사회뿐만 아니라 우익조선인 사회에서도 나름대로의 기지론(基地論)을 선보였는데, 그러한 모습의 배경이랄 수 있는 좌우대립의 논리야말로 결국 만주 조선인들이 6·25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주요한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설명하는 셈이다. 더하여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논조는 다음과 같은데, 동만·북만지역의 조선인 사회는 중공당 및 북한과의 친연성이 강한 편이었던 반면, 남만·관내지역의 조선인 사회는 직접적인 통치주체인 국민당 및 남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는 식이다.


 평자는 분석대상으로서의 사회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성격을 갖는 바, 그것의 어떠한 경향을 서술하는 작업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저자가 치밀한 사료분석을 통해 만주 조선인 사회의 경향을 굵은 필치로 정리하여 제시한 것은 분명 미덕이다. 그러나 평자는 저자가 미처 서술하지 않은 만주 조선인 사회의 흐름, 회색지대를 그 모습은 정확히 알기 어려울지라도 추가적으로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좌우대립의 자장(磁場) 안에 있진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만주 조선인이 생각한 조국이 무엇이었는지는 다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을 염두에 둔다면 저자가 원초적이라고 평가하는 조국애의 경향이나 역사적 실상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자신이 구사한 자료를 한글신문(민간과 군부대), 당안관 문서, 문화대혁명 자료군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저자는 신문의 성격을 밝히고 지면에 반영된 당시 만주 조선인 사회의 경향성을 추출했는데, 이를 통해 평자는 추후 연구에 필요한 자료원의 대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문혁자료를 진위를 기준으로둘로 나누어 역사적 사실을 걸러내는 저자의 방식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하지만 그러한 자료가 생산된 시기 및 역사적 맥락을 고려했을 때, () 시기에 대한 북한 측의 자료를 확보하여 대조해본다면 더욱 정확한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하여 아무리 민간에서 발행한 신문이라 할지라도 해당 지역에서 우세했던 통치세력의 영향으로부터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만주 조선인 사회의 육성(肉聲)이라고 단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당시를 살았던 개인의 일기나 출간된 작품, 증언록이나 구술 자료 등을 추가하여 살핀다면 좀 더 풍부한 역사상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각주:3]


 마지막으로 평자는 6·25전쟁과 관련하여 이 책의 내용적 핵심이 각각 인민해방군 156사단(이후 제4야전군 독립 15사단인민군 12사단)164사단(이전 동북인민해방군 독립 11사단인민군 5사단)의 창설과 활동, 북한으로의 귀환을 면밀히 추적한 6장과 11장이라고 평가한다. 저자가 참고한 김중생의 글에 따르면,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남진한 보병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가 만주 조선인 부대였으나, 정작 이들에 관한 연구는 미비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병() 개개인이 생각했던 귀환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저자가 언급했듯, 지휘부나 당위원회의 생각을 드러내주는 자료는 꽤나 많은 편이지만 병사 개개인의 속셈을 알려주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각주:4]

  1. 이 글에서 인용구는 주로 저자 및 다른 서평자의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른 서평자의 글로는 任贊赫, 「해방 후 중국 동북지역 조선인 사회와 한국전쟁: 『또 하나의 한국전쟁: 만주 조선인의 ‘조국’과 전쟁』」, 『한국근현대사연구』 57, 2011을 참고하였다. [본문으로]
  2. 강상중·현무암, 이목 옮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책과함께, 2012. 이 책은 같은 저자가 쓴 『興亡の世界史 第18卷: 大日本・満州帝国の遺産』(東京: 講談社, 2010)을 국역한 것이다. [본문으로]
  3. 任贊赫, 앞의 글, 2011. [본문으로]
  4. 염인호, 『또 하나의 한국전쟁』, 역사비평사, 2010, 243쪽.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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