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韓美관계2014. 10. 6. 09:15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동아시아 전공)를 취득했다. 1967평화봉사단[각주:1]의 일원으로 내한했고, 1981년 평양 방문, 한국전쟁의 기원1 출간 이래 현재까지 한국근현대사, 한미관계사, 미국과 동아시아 관계 등을 천착했다.[각주:2]

 

이 책은 미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미국과 동아시아, 특히 對日·관계사에 초점을 맞추어 쓴 작품이고,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시기적으로는 20세기를, 공간적으로는 세계체제 내에서의 미국과 동아시아를 주목한다.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자세히 다루는 편으로, 그것은 저자가 차용한 방법론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국가 간 관계(), 문헌 검토를 통한 (민주주의)개념의 정립, 세계체제에 관한 저자 나름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광범하다. 한편 저서의 각 장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있지 않고, 하나의 장이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서술됐다. 하지만 저서 전반에 걸쳐 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저자는 서론에서 어떠한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하게 미국과 동아시아(특히 일본) 관계를 살펴볼 것을 다짐한다. “미국식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이론과 상식이 여태껏 미국인의 눈에 暗點(scotoma, 시야결손부)”을 드리웠기 때문이다. 암점은 크게 자각할 수 있는 實性과 자각할 수 없는 虛性으로 나뉜다.[각주:3] 저자는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사를 서술함으로써 미국인의 실성암점을, “미국예외주의를 지탱하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고찰함으로써 허성암점을 드러내고 치유하고자 했다.

 

우선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목이기도 한 視差의 쓰임이다. 왜 천문학 용어인 시차를 빌려 역사를 서술해야 했을까? “인용를 통해 그 이유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저자는 벤야민을 들며, 일본에 관한 인용문을 나열했다(16-18). 각각의 인용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에 걸쳐 생산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여러 논자들이 일본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분법적 쌍(肯否, 好惡 )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서술전략에서 각각의 인용문과 일본과의 일치”, 즉 시차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일본이라는 대상은 인용문의 나열에서 보이는 것처럼 어느 시기의 특정한 인물에 의해 설명이 시도되지만, 결코 그 설명 하나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일본을 설명하는데 따르는 일치의 부재”, 그리고 그러한 부재의 충분조건인 시차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역사(서술)에서의 시차를 파악한다면, 독자는 더 이상 어떤 대상에 관해 변해봤자 그게 그거"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20). 나아가 일본이라는 대상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어느 역사서술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시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1(고고학, 家系, 대두: 미국의 신화와 동아시아의 현실)은 저자의 방법론을 설명한다. 바로 고고학과 계보학으로, 이것을 통해 독자는 자본주의적 근대의 유산인 실증주의적 합리성이나 진보담론의 인식론을 상대화할 수 있다. 저자는 저서 전체에 걸쳐 세계체제론적 입장을 취한다. 20세기 동아시아의 중심은 미국과 영국, “반주변은 일본, “주변은 중국과 한국이라는 식이다. 한편 이러한 구도는 영원하지 않고, 따라서 여태껏 미국과 영국의 패권을 뒷받침했던 진보담론은 문제제기를 다시 해야 하거나 소멸될 위치에 놓이게 된다.

 

2(동쪽 바람과 비, 붉은 바람, 검은 비: 미일전쟁, 시작과 끝)태평양전쟁(미일전쟁)”과 전쟁범죄,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을 다룬다. 한국의 해방 전후사와 전쟁범죄, 학살문제, 그리고 그것에 연루돼 가공할 폭력을 겪은 아시아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서 3(식민지적 형성과 변형: 한국, 대만, 베트남)20세기 식민지 경험을 겪은 한국, 대만, 베트남의 사례를 들어 각 국가의 탈식민 이후 경제성장과정을 보여준다. 한국과 대만이 같은 형태의 식민주의를 겪었다는 서술로 시작하여, 프랑스-베트남과는 달리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 대만의 공업화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이후 저자는 동아시아가 보여준 발전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특성을 소묘한다. 그 특성들은 제도와 형이상학을 넘나들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과연 경제적 성공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기 어렵다.

 

4(미국과 동아시아에서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에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개념을 검토한 후, 한국적 맥락에서 민주주의를 살핀다. 저자는 전자가 풍기는 서구우월주의나 오리엔탈리즘적인 함의를 비판하고, 한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에 관한 전망을 세운다. 그러나 이 장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검토라기보다는, 동아시아에서의 시민(사회)”를 모색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일반적인 주장으로 결론을 갈음한 것으로 보인다. 5(공포의 핵 불균형: 미국의 감시체제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서는 북미관계와 그 관계의 대표적 표상으로서 1993년 한반도 핵위기를 다루었다. 저자는 북한식 대응의 動因을 서술하며,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6(세계가 중국을 흔들다)은 미중관계 및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다루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은 중요한 결정이었고, 중국적 맥락에서 그는 박정희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가 적절한 지는 의문이다. 7(경계 이동: 국가, 기관, 냉전기와 그 이후의 국제연구 및 지역연구)은 국제연구와 지역연구가 어떻게 냉전기에 출현했고, 이후 해당 연구(기관)들이 어떠한 존재구속성에 놓여있었는지를 고고학적/계보학적으로 추적했다. 8(동아시아와 미국: 複視와 패권적 대두)은 저서의 결론부로, 20세기 미국패권과 그 아래서의 동아시아(특히 일본)를 언급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 세기에 걸친 장기지속적인 미국의 패권체제 아래서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그들의 對美관계사를 거시적으로 다루었다. 평자는 그러한 거시적 조망의 유용함을 인정하나, 저자의 전망이 가지는 타당함을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러한 조망이 정확한 것인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저자에게 패권(헤게모니)은 그람시적 의미로서 패권국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인민(여기서는 국가)들이 합의된 것처럼 여기고 그대로 시행하는 바를 의미한다(206). 한편 국제관계에서 이것은 제국,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비공식적 제국을 아우르고, 그 너머까지 넘보는 용어이다(26). 그렇다면 저자에게 헤게모니는 어떠한 기의를 표상하는가? 모든 것? 저자는 미국패권이라는 구조 내에서 기술과 생산이라는 2가지 요소가 개별국가들의 위계를 결정하는 주요요인으로 보았다. 더하여 그는 냉전이 개시됨에 따라 세계체제는 양극체제(“철의 장막을 경계로)로 나뉘었고, 각 권역에서 체제적 분업과 중심-반주변(일본, 독일)-주변이라는 구도가 등장했다고 본다. 미국의 패권이 1945년 이래 동아시아에서 강력히 작용했다는 점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41), 체제의 구조적 규정성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들을 세계체제론가 지닌 지나친 도식성 안으로 끌어들여 설명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 방식과 역사 자체를 상대화할 수 있는 한 가지 계기를 다시 마련해주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미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각주:4]

  1. Peace Corps. 케네디가 시작한 미국의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1961년부터 지금까지 130여 개국에 약 210,00명을 파견했다. http://en.wikipedia.org/wiki/Peace_corps 참고. [본문으로]
  2. 브루스 커밍스, 김동노 외 옮김, 『미국 패권의 역사』, 서해문집, 2011 참고. [본문으로]
  3. 두산백과 “암점” [본문으로]
  4. 정용욱, <‘점령’의 역사적 구조와 대중의식, 그리고 과거사 인식>, 『대학신문』 인터넷, 2013년 5월 25일 게재 승인.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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