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현대사2016. 7. 27. 07:20

 휴전이 조인된지 63주년인 밤이다(우리 할머니께서 25살이었을 때). 김선호 선생님 언급을 듣고 적는다. 전쟁, 참 무섭다. 증언을 들어보면 공포가 이내 육박한다. 그래서 오늘날 "여차하면 쓸어버리자"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 "비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등 전쟁을 옹호하는 수사는 악랄하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전선에 설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나같은 예비군도 안 끝난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징집돼 총대를 맬 것이다. 오로지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에선 전쟁이 연일 벌어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간, 우끄라이나 등 주변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전과 독일, 프랑스 등 중심부에서 터지는 테러공격 등. 전쟁은 결코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 너무나 많은 수가 죽는다. 동시에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는 반드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어렵긴 하다.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곧 전쟁의 이유를 옹호하는 것으로 들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인민들의 싸움에 대하여 "전쟁은 안되는데"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은 옳지 않았다. 피착취인민의 투쟁을 마냥 지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선 결국 원인인 (신)제국주의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러한 대처는 무의미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무섭고 노답이다. 63년 전 오늘 휴전이 조인된 625전쟁은 북한의 명백한 남침이다. 지난 63년 동안, 개전을 명령한 김의 죄과는 한국에서 철저하게 물어져왔다. 한편 그가 왜 그러한 전쟁을 벌였는가에 관해서는 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해=변호'라는 틀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속에서 한반도 최초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수장이 그렇게 쉽게 국민과 수도를 내팽개치고 전광석화와 같이 도망간 사실 그리고 그 책임 또한 금기에 붙여졌다. 최근에 와서 일각에서 國父로 격상된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사회적 스트레스 수치가 거의 안면마비급으로 온 현재, 평화교육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때의 평화교육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수행되어야 할까? 국내의 자본가계급과 국가가 결탁해 최저시급을 6,000원대로 유지하면서 국민에 대한 아주 효과적인 분할통치를 실시하는 가운데 어떤 평화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까? 내가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며 보았던 미군들은 전체 미군에 비해 극히 적은 숫자이지만, 대부분 경제적으로 열악한 계층이었다.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한반도에 지원한 백인 청년이 쉬는 시간에 엘프어를 공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위대도 연봉을 중소기업 회사원 초봉 이상으로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러시아도 몇년 전부터 군대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을 격상시키기 위해 힘쓴다고 들었다. 중국/북한은 세계 병력규모 1위와 4위를 도맡고 있다. 도무지 모르겠다.

Posted by 사용자 Л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