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냉전연구2014. 10. 6. 09:13

이 책은 냉전 초기부터 케네디 행정부가 활동했던 1960년대 초반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근대화(Modernization)”는 당시 미국의 정책입안자와 학자, 주류언론이 공유했던 지배적 인식의 틀(conceptual framework)이자 이념(ideology)이었으며 이를 통해 당대 미국인들이 지녔던 발전에 대한 생각과 탈식민화의 전략적 중요성, ‘개입의 양상 등이 잘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길먼의 책이 근대화()”의 탄생부터 몰락까지의 과정을 세 가지 사례(DSR, CCP, CIS)를 통해 추적했다면, 이 책은 세 가지 사례(Alliance for Progress, Peace Corps, Strategic Hamlet)를 통해 근대화()”이라는 이념이 1960년대 초반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식으로 반영됐고 재생산됐는지를 탐구한 문화사 내지 담론연구이다.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돼있으며, 1장에서는 문제제기와 방법론을 언급했고, 2장에서는 냉전이라는 맥락과 근대화론의 부상을 다훴다. 3~5장에서는 사례를 통해 근대화론의 냉전적 작동양상을 살폈다. ‘결론에서는 앞서의 논의를 정리하지만, 어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저자가 온당하게 짚고 있듯,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 입안·실행과정에서 사회과학적 근대화론은 결정적이거나 배타적인 심급은 아니었고, 케네디 행정부의 정책형성을 주도했던 유일한 요소는 아니었다. 따라서 저자는 각각의 사례연구에서 근대화라는 이념을 정치가들의 연설이나 서한, 정책보고서의 문면에서 추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냉전이라는 큰 맥락과 1950~60년대 각 지역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제시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엮어냈다. 이 책을 포함하여 앞선 연구자들이 보여주듯, 근대화라는 생각, 또는 근대화론은 당시 미국 외교정책의 입안부터 실행, 검토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와 다양한 층위에서 관계를 맺었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정의나 전형(model)도 꽤나 다양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화론은 미국사회 자체의 성격뿐만 아니라, 미국이 물질적·문화적으로 열악하다고 인지한 외부세계를 변형시키는 능력에 관한 가정의 집합이다. 길먼의 책에서도 지적된 바 있듯, 이 이론의 대표적 특징으로는 전통근대라는 이분법적 시각, 경제·정치·사회 변화는 통합돼있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생각, 어떤 사회든 직선적인 발전을 공유한다는 관념, 선진국이 발전 중에 있는 국가의 근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사고 등이다. 여태까지의 설명을 통해 냉전기 전반 미국 발 근대화론의 모습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여태껏 살펴본 미국인 학자들의 냉전문화사 연구에서처럼, 이 책은 냉전기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러한 정책이 나와 실행에 옮겨지는 역사적 사실을 소묘하려고 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과학자들의 노력에 주목했다. 저자는 사회과학자들의 정치적지식 생산, 사회과학이론(근대화론)과 외교정책 간의 관계,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의 변용 등을 주로 살피고자 했고, 이 내용들이 결합돼 본문의 개별 사례연구에 잘 드러난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학계(이론)과 정계(정책)는 시기별·분과별로 친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고, 특히 사회과학계(국제정치학과 지역학을 포함)가 쌓아올린 입지와 위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사회과학계가 기울인 노력’(길먼)이나 그들이 확보한 과학성에만 전적으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치가들의 세계전략 구상과 국내적 동원’(클라인), 공산권 및 3세계의 존재, ‘3세계에 대한 경쟁적 원조라는 냉전의 맥락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때 더욱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냉전의 문화’, 냉전의 아시아적 풍경’, 냉전의 한국적 발현을 확인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적잖은 아쉬움을 줄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국의 논리라는 유용하고 큰 그림을 제공한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개별적(지역적) 사례연구는 어디까지나 큰 그림 그리기(=‘미국의 논리확인)에 복무할 따름이라는 인상을 건네준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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