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냉전연구2014. 10. 6. 09:12

이 책은 냉전 초기부터 월남전이 패배로 귀착돼가는 1970년대 중반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미국 국내에서 근대화(Modernization)”로 포괄할 수 있는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출현했고, 그것의 핵심인 발전(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미국의 사회과학계에서 이론적 중추로 거듭나고 다듬어졌는지를 탐구한 노작이다. “근대화론(modernization theory)”은 근대화를 위한 이론이자, 당시 미국의 근대주의자들이 기울였던 근대화 노력의 청사진이 되는 논의들을 말한다. 저자는 총 7장에 걸쳐 미국 국내에서 근대화론이 대두하여 사회과학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가 쇠락하는 모습을 선별적이지만, 면밀히 조사했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설명하는 도식 중 하나가 바로 개발세력 민주세력의 경합이고, 양쪽이 근대화(=민주주의와 산업화)를 자신의 공로라고 주장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은 미국의 지성사를 다룬 연구지만 한국현대사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장은 대표적 근대화론자이자 시카고대학 사회학자 쉴즈(Edward Shils, 1910~1995)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했고, 근대화론을 개괄했다. 근대화론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미국 사회과학계가 공유했던 탈식민 세계의 경제·정치·사회적 변화에 관한 지배적인 사고방식 또는 문제해결방식이었다. 이것은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세계를 보았고, 계몽주의, 반대중주의 등 위계적인 틀을 전제했으며, 그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의 諸國전통이라는 범주 하에 도매금으로 묶였다. 근대화론 안에는 여러 지류들이 있었으나, 미국의 국내외적 정세변화와 맞물려 권위주의적인 근대화론이 득세했고, 이것은 장차 국제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뒷받침할 터였다.

 

2장은 근대화론이 부상하게 된 배경을 서술하고 있다. 근대화론은 대략 두 세기에 걸쳐 세계로 급격히 확산됐다. 구미 지식인들은 물질적으로 공전의 도약을 달성했고 세계적으로 팽창하던 유럽을 바라보며 근대라는 시대상을 생각하게 됐고, 이는 반제반봉건 투쟁을 벌이던 식민지민에게도 이론적 자원으로 수용됐다. 한편 戰後 세계의 핵심적인 표어이자 모든 지역 지도자들의 해결책은 경제 발전이었고, 따라서 미국은 제국주의와는 다른 위치에서 탈식민 세계의 열망에 나름대로 답해야했다. 물론 미국식 민주자본주의의 대척점엔 소련이 존재했고, 미국의 정책입안자들과 학자들은 급속도로 산업화를 수행하던 소련식 체제와 그 주변세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하여 학계의 지배적인 담론으로 거듭나게 된 근대화론에는 엘리트 민주주의, 행태주의, 예외주의, 박애심 등의 요소들이 결합했다.

 

3장부터 5장은 근대화론의 내용을 생산한 기관 중 주요한 세 곳을 조사한 사례연구 부분으로 책의 핵심이다. 각각 하버드대학 사회관계학과(DSR), 사회과학협의회 비교정치위원회(SSRC CCP), 매사추세츠공과대학 국제관계학연구소(MIT CIS)라는 개별 기관들의 활동과 인물들의 관계망, 오고간 서신, 개최된 학회, 제출된 내용과 주장들, 정부와의 연계 등을 자료를 토대로 충실하게 제시했다. 개별 기관들이 상호작용 속에서 활동했다는 저자의 언급과 함께, 각 장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들(로스토우, 아몬드, 파이 등)이 인적·물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세 장은 각 기관의 독자성·독창성보다는 당시 미국 내의 근대화론에 관한 부분적인 상을 그려볼 수 있으므로 유용하다 하겠다.

 

저자는 근대성과 미국예외주의의 수호자이면서 동시에 하버드대학에서 약 45년 동안 교편을 잡았던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 1902~1979)를 중심으로 인물 및 학과(DSR), 그들이 만든 근대화론의 이론적 밑바탕을 살폈다. 파슨스는 19461DSR을 신설했고, 여기에 사회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등을 불러 모아 사회과학을 재정립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1927,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로 부임한 이후, 당시 지배적이었던 경제학의 아성에 도전하며 이론적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경제학의 양대 지류였던 신고전파와 제도학파를 모두 비판했고, ‘경제를 넘어 사회 전체를 분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침내 1951, DSR가장 중요한 연구 성과이자 악명 높은일반행동이론에 관하여가 출간됐다. 이 책은 행동을 이분법적인 양식변수(pattern variables)”에 따라 정의하고 분석했으며, 이후 탈식민지역에서 미국의 개입(=근대화)을 격려하는 주요한 이론적 자원이 됐다.

 

근대화론이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냉전이라는 정세적 맥락도 물론 중요했지만, 당대 사회과학계를 주름잡던 거두들의 공모도 그 몫을 단단히 했다. 저자는 4장과 5장을 통해, 근대화론자들이 일련의 연계망을 구축하여 서로 친분을 쌓고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학적 권력을 확보해나가는 과정과 근대화론에 기입된 반공주의적 기초를 면밀히 조사했다. 저자는 SSRC CCP를 근대화론자들이 연계를 도모한 하나의 통로였다고 보았다. CCP에 소속된 학자들은 산업화 세계와 탈식민 세계를 비교하기 위하여 비교정치학을 이론적으로 가다듬었으며, 이 때 DSR의 근대화론을 좀 더 비판()적으로 채용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DSR의 이론적 기반과 반공주의가 결합돼 생겨난 MIT CIS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CIS의 대표적 이론가는 로스토우였는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경제 발전의 단계에 이전까지 제출된 근대화론자들의 식견을 모두담았다.

 

저자는 베트남전을 통해 근대화론이 소멸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전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명백한 실패였고, 베트남전 수행을 뒷받침한 이론이 근대화론이었던 만큼, 이 이론은 더 이상 발전의 전형이라는 입지를 지켜낼 수 없었다. 근대화론에 대한 뚜렷한 반대는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했으나, 그 때까지 근대화론은 자기방어를 잘 수행한 편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는 CCP의 해산(1973), DSR의 해산(1974), CIS의 선회(전략문제) 등 급작스러운 근대화론의 실종을 목도한 시기였다. 저자는 이를 두고 획일적이고 거대한 사회과학적 사고가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좌우간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으로 좌우를 막론하고 사방에서 수행됐고, 더하여 저자는 포스트모던(postmodern)”으로 통칭할 수 있는 일련의 흐름을 짚어냈다. 이들은 근대화론 자체보다는 그 안의 근대주의적 사고방식(mind-view)”을 문제 삼았다. 또한 저자는 국내정치의 위기에서부터 경기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들을 정리하여 제시했고, 그것을 통해 당시 지배적이었던 감정구조에 변화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서술했다.

 

이 책은 근대화론이 몰락한 이후의 지적 흐름들도 간략하지만 친절하게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전의 근대화론자들은 이제 신보수주의공동체주의등으로 묶이게 됐다. 전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적 안정과 그것의 현상적 표현인 질서가 유지되길 간절히 원했고, 후자도 질서에 대한 희구라는 측면에서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질서부과의 주체로 국가가 아닌 공동체를 지목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어 저자는 세계화와 근대화론 이후의 발전주의를 간략히 다루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수행하고 있는 근대화에 대한 방어이다. 그는 근대화희망적인 측면을 인권이라고 짚어냈고, 근대화론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아선 안 되며,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을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한편으로 근대화론이 내포하는 측면들의 다양성을 실증적으로 알려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당시 근대화론이 적용된 특정한 양상이나 맥락을 추인할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에게 어떠한 실천적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고,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더 건강하고 부유하며 공평하고 민주적인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를 당위로서 제시하는 것에 그쳤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저자의 명백한 주장이면서도, 동시에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명확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는 효과를 준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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