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韓美관계2014. 10. 6. 09:10

이 책은 1945년 일제의 패망부터 1960년대 중반 한일회담반대투쟁까지를 종축으로 삼고, 한국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문화적 위상과 역할의 실체, 다시 말해 한국현대사 속 미국의 (문화적) 개입과 영향”(“미국의 헤게모니”)을 밝히기 위한 하나의 우직한 시도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로 구성돼있고, 각각이 1945년부터 6·25전쟁 이전까지, 1950년대, 1960년대를 다루고 있다. 그 중 분석의 핵심은 2부로, 저자는 200여 쪽을 할애하여 6·25전쟁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미국이 한국인의 집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모습을 시작으로 1950년대 미국이 수행한 다양한 패권사업의 구조와 양상을 세밀하게 서술했다.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면, 1부는 미국이 문명국의 위상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한 공보원(미군정 공보국미군정 공보부OCIUSIS/K)과 전국적 지부의 현황(2), 친일 경력이 있는 기독교 인사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한미협회(3) 등을 비롯하여 미군정기와 건국 이후미국 문화사업의 물적 토대를 주로 설명했다. 이어 저자는 2부에서 문화적 개입의 범주를 일상 생활양식을 포함하여 의료·보건(4), 언론·공보(2, 5, 7), 교육·유학(6, 7), 지역개발·농촌개편(8) 등으로 나누었고, 각각의 전모를 면밀한 사료분석을 통해 다루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3부는 미국이 한국에서 수립하려던 문화적 중심-변경의 위계 중 변경”, 즉 당시 한국, 그 중에서도 한국 지식인의 반응을 중심으로 한국의 민족주의가 보여준 균열을 제시했다. 대개의 냉전문화연구가 분석의 범주를 크게 세 층위, 사상·이념/제도·정책·매체/소비·현상으로 나눈다고 할 때, 이 책은 한국현대사 속 20여년을 배경으로 하여 세 층위의 범주를 나름대로 전부 다루면서도,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요소를 계속 염두에 두었다(1, 3).

 

저자는 기존에 제출된 명제의 한계를 밝히고, 그 위에 자기주장을 부연하는 방식을 통해 저자 나름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 내에서 한국이 반공의 보루’, 前線國家(frontier state)’라는 인식상의 위상을 부여받았다는 주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저자는 이러한 종래의 이념적인 해석(‘혈맹’, ‘봉쇄의 최전선’)만으로는 냉전시대 한미관계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20세기 초반 활약했던 미국의 역사가이자 이론가(ideologue)이기도 했던 프레더릭 터너(Frederick J. Turner, 1861~1932)를 빌려와, 당시 한국은 미국발 서진운동(중간)종착역으로서, 미국으로부터 문명을 들여와야 할 邊境國家(frontier state)’라는 인식상의 위상도 부여받았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저자는 당대 미국의 문화 전파 담당자들의 인식수준과 양상, 실천을 사료 속에서 발굴하여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츠지야 유카의 친미일본의 구축이 언급한 미국의 대일점령정책 속 일본인식과 비교 및 종합을 시도할 수 있는 재료적 근거가 될 것이다. 물론 허은과 유카 등의 연구만을 가지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대한·일 문화정책을 아우르려는 시도는 역부족에 그칠 공산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살펴본 연구들을 통해 당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두고 ‘(냉전)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에 입각하여 그전과는 외형을 달리하는 제국주의적인 문화 정책을 입안·수행했고, 미국은 한국보다는 일본에 문화적인 공로를 많이 들였으며(미국 내 親日派의 계보, 국화와 칼이나 동양문화사같은 서적, ‘역방향(reverse course)’ ), 양국의 미군 점령기이후로도 한··3국에서 반공주의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미국의 의도에 균열을 일으키려던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우회해야 했거나, 배제 또는 馴致됐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국에서 억눌리고 배제된 목소리’, 또는 다른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사실들 중에서도 저자는 특히 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한편으로 문화영역에서 한국의 주체성을 설정하는 문제와 접속돼있고, 다른 한편으로 당시 미국의 문화적기획(패권사업)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것에 내재한 고유의 모순이나 한계를 들춰내려는 시도와도 연결돼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신생 대한민국에 부과하려던 (문화의) “중심-변경의 도식은 1960년대에 들어와 일군의 한국인에 의해 제국-신식민지라는 도식으로 결국 부정되기에 이르렀고, 이제 탈주를 위한 주체로 민중이 설정될 터였다. 저자가 수행한 이러한 대안적 시도의 발굴은 고고학적·계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한편으로 몇 가지 의문을 추가적으로 제기하게 한다. 한국인들의 문화적 탈주시도는 왜 하필 1960년대 초중반에 대두됐는가? 저자의 서술대로라면, 그러한 시도1950년대에는 잠재돼있었는데, 그것은 이승만 정권의 강고한 반공체제를 방증하는 것인가?(357) 또한 탈주대두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얼마나 대표성을 지니는지 등이 궁금했다.

 

앞서의 질문을 포괄하며, 이 책을 통해 평자가 제기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질문은 당시 한국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포착(실체화)하고 평가할 것인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먼저 저자가 결론부분에서 지적·도덕적 패권을 구축하려고 했던 미국의 시도는 궁극(적으로) 성취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 점은 일견 타당한 듯 보인다. 남한의 거의 모든 사람과 지역을 망라하기 위해 미국이 수행한 각양각색의 문화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문명주도국이자 민족적 열망을 채워주는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은 확고할 수 없었다. 책이 잘 보여주듯, 시기와 분야를 달리하며 미국식 노선에 사상적 균열을 일으키는 이반자(dissident)는 항상 존재(오기영부터 홍이섭까지)했고, 더하여 문화권력의 담지자인 지식인 및 사회주도층과 지배블록의 정점에 있던 한국정부조차 항상 미국과 궤를 같이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저자가 미국이 미국의 패권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 제반 분야의 내용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입장을 취해갔다.”라고 요약한 부분도 눈여겨봐야 한다. 각 분야에서 펼쳐진 미국의 노력과 타협은 결국 이승만-장면-박정희로 이어지는 한국정부의 방향성을 일정하게 순치시켰다는 저자의 주장 역시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저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한국의 근대성과 정체성의 한 축을 구성한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한국 사회가 냉전 분단 시대의 질곡과 끊임없이 대결하며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수립해왔다.”고 주장했다. 더하여 이러한 사상의 운동이 정치적 주권, 문화적 독자성을 추구할 때, “민족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의 담지자, 또는 이것을 외친 주체는 누구였을까? 이에 대해 이 책은 일단 일군의 비판적 지식인과 학생들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있어 미국(또는 대미인식)한국의 민족주의가 이론적으로는 부정해야할 규칙(大他者)이면서도, 물질적으로는 타협해야할 실체를 지닌 존재(小他者)일 것이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제외한 다른 한국인들과 한국의 민족주의와의 관련은 어떤 모습이었고, 그 관계는 어떻게 서술해야 할까?

 

앞서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나니, 오히려 한국의 근대성과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문화적 패권사업이야말로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1960년대 이후로 시야를 넓힐 경우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 생활양식을 포함하여 문화를 파악하는 저자의 전략을 따를 때, 유학을 통해 권력의 중추에 도달한다거나(6), 놀라울 정도의 영어교육열(7), ‘민족이란 언술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미국식 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를 사고할 수 없게 만든 점(8) 등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작동한다. 이러한 모습이 전적으로 당시 미국에 기인한 것이라곤 하기 어렵겠으나, 좌우간 미국이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는 징후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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