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DPRK2016. 6. 14. 04:29

정대화, "북한의 사회주의건설사."

395. 이 시기는 북한의 중요한 특징이자 이후 북한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당의 정치적 강화 (단일한 정치역량의 구축과 당의 영도적 역할의 강화), 사상의 강조 (주체사상의 제기와 체계화), 인민대중의 조직적 동원 (천리마운동), 주체노선의 제기 (중소대립과 중소의 북한 내정간섭 및 원조의 감소에 따른 자주노선 선언),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의 고창 등은 모두 전후 북한이 처한 어려운 상황의 반영이었던 동시에 이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정치적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다.

396. [1953년 8월 5일] 제2기 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모든 것을 전후인민경제 복구발전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연설.

402. 4차당대회에서 제1차 7개년계획 (1961~67)의 시행 채택. 사회주의 공업화의 전면적 실현을 중심과제로 설정하여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의 수행에 강조점을 두었음.

403. 1960년 2월 평남 강서군 청산리 협동농장에서 보름 동안 현지 지도 경험을 보고한 '강서군당 사업지도에서 얻은 교훈에 대하여'가 '청산리정신'으로 일반화되었음. 천리마운동의 혁명적 군중노선을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구체화시킨 대중지도 방법으로서, 관료주의와 주관주의 및 형식주의를 퇴치하는 데 목적을 두었음.

404. 1961년 11월의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관리와 지도의 근본적 개선에 대한 과업 제시. 12월 김일성이 대안전기공장 현지지도하고 그 결과를 대안의 사업체계로 체계화하였음. 민주개혁 이후 적용되어온 기존의 지배인 유일관리제를 대신해서 공장 당위원회의 집단적 관리를 규정한 데 있음.

405. 1962년 12월 제5차 전원회의 통해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정책'을 정책노선으로 채택. 1966년의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관철이 재확인되었고, 그 결과 이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 취했던 박금철과 이효순 등이 보수주의자, 소극분자로 비판받고 정치적으로 퇴진했으며,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정책의 정당성이 일부 현실적으로 검증되기도 했지만, 이것이 경제건설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음.

407. 1970년 11월 5차당대회에서 6개년계획 (1971~76)의 과제 제시.

409. 1977년에 채택한 제2차 7개년계획 (1978~84)을 계승.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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