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弔意2015. 11. 9. 18:39


사진(동아일보, 1991년 5월 6일)


잊지말아야 할 사람,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朴昌洙).

1991년 5월 5일께 병원 치료 중 의문사. 민주당은 사건 진상조사단(단장 노무현)을 꾸려 현지에 파견하였다.7일, 노태우 정권은 박씨에 대한 강제부검 실시를 위해 물대포, 최루탄, 쇠망치 등을 이용해 영안실 진입, 유족 등을 강제연행하고 주검을 탈취했다.
7일, 노태우 정권은 박씨에 대한 강제부검 실시를 위해 물대포, 최루탄, 쇠망치 등을 이용해 영안실 진입, 유족 등을 강제연행하고 주검을 탈취했다.
10일, 박씨의 죽음에 국가안전기획부가 관련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안기부는 그에게 한진중공업노조가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관련 회의에서 탈퇴하라는 압력과 회유를 가했다.
11일, 검찰은 주검을 유족에게 넘겨주었다. 의문제기와 항의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자연스레 연행과 탄압도 계속되었다.
28일 <한겨레>에는 "목숨 빼앗지 않는 정권을 바란다"라는 제호의 사설이 올라왔다.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김기설, 윤용하, 김철수, 이정순, 정상순, 권창수, 김귀정. 91년 4월 26일부터 5월 25일까지 꼭 한 달 동안에 권력의 제도적 폭력에 사상 당한 사람들."
6월 6일, 검찰은 "수사 끝"을 선언하였다.
30일, 박씨의 장례식에 4,500여 명이 참석하였다.
7월 1일, 경남 양산군 하북면 솔밭산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
2003년 10월 17일,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지회장이 129일간 고공 농성을 벌이다 85호 크레인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30일,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 아래로 몸을 던졌다.
2011년 6~7월, 희망버스가 부산을 찾았다.
2012년 12월 21일, 최강서 조직차장이 손배가압류에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2014년, 한진중공업의 정규직 비율은 31.34%이다. (2014년 고용형태공시)

박점규, 2015, <노동여지도>, 알마.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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