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한국전쟁2014. 9. 27. 20:20

 이 책은 1945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506·25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종축으로 삼아 중소관계의 형성과 전개를 살핀 연구이다. 1993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했고, 마침 출간 직전에 개방되기 시작한 러시아 문서고와 후버 연구소 등지에서 발굴된 자료를 주된 근거로 하여 쓰였다. 책의 원제는 Uncertain Partners로 원문에 가깝게 우리말로 옮겨보자면 불확실한(또는 머뭇거리는) 동반자쯤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으로 각각 대표되는 공산권의 전통적인 맹주와 대두하는 신흥 간의 관계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종종 상호 간에 불확실성과 의구심을 초래했으며, 나아가 1950년대 이후 중소관계가 노정하는 분열의 씨앗은 이미 1945~50년의 기간이 잉태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하에서는 유사한 후속 연구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의 방법론(시각)과 구성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 차례대로 핵심적인 주장과 구사하는 자료, 논평 및 6·25전쟁 연구와 관련하여 의문점 등을 서술하겠다.

 

 션즈화(沈志華)의 책[각주:1]이 제목에서 마오쩌뚱을 전방에 배치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책은 스탈린을 전방에 배치하였다. 제목에서부터 미세한 차이를 내뿜는 두 책은 중소관계()6·25전쟁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각각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공통점으로 두 책이 구사하는 방법론을 들 수 있는데, 자료에 기반을 두고 역사주의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듯 보이지만 결정자(또는 지도부)의 세계인식이나 정책결정을 다분히 현실주의적내지 실용주의적으로 묘사하는 식이다. 공저자의 주장은 이와 같은 평자의 설명을 예증하는데, 그들에 따르면 중소관계의 모든 성과는 복잡한 계산과 타협의 결과”(402)였고, 이데올로기보다는 이해관계와 국가안보 문제”(405)가 양측의 외교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두 연구 모두 서술의 대전제를 위와 같이 설정함으로써 역사학의 외양을 덧씌운 구성주의적-현실주의적국제정치학 연구에 속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따라서 독자가 이러한 서술방식이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추수할 경우, 냉전 초기 또는 1950년대를 전후한 중소관계는 이해관계와 계산적 합리성을 근본적인 심급으로 하는 스탈린과 마오쩌둥 사이의 외교사였다는 서술 외에는 어떠한 결론도 얻기 힘들어 보인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돼있다. 1장은 1945~48년 동안의 중소관계를, 2장부터 4장까지는 중소 간의 대화 및 새로운 중소조약의 체결을 다뤘다. 이어 5장과 6장에서 각각 6·25전쟁의 개전까지와 중국의 참전까지를 그리고 있고, 결론부인 7장에서 책의 내용을 요약·정리하였다. 이런 식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은, 결론부는 따로 없고 모두 5장으로 구성된 션즈화의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대강을 도식으로 나타내보자면, ‘2차 세계대전의 종결 얄타체제에 따른 소련의 이권 확보 및 소련-국민당 관계(중소조약)의 지속 국공합작의 붕괴와 중국내전 소공과 중공의 외교적 줄타기 중국혁명의 달성 새로운 조약 체결로 인한 중소관계의 불편한 전환 6·25전쟁의 발발과 중공의 참전 스탈린의 대중(對中)인식 변화 공고한 중소동맹의 성립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 책의 출간시점이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 직후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책은 장차 출간될 중소관계 또는 이른바 중소관계의 냉전사를 다루는 연구자라면 필히 참고해야하는 일종의 전범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이 책의 서사 구성방식은 이후 비슷한 연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대표적으로 션즈화의 연구는 상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단지 새로운 중소조약체결에 해석상의 방점을 찍을 뿐이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중소 동맹의 체결6·25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사뭇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한 반면, 공저자는 보다 침착하고 담담한 어조로 중소관계가 항상 끈끈하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균열의 씨앗을 진작부터 키워나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6·25전쟁의 원인, 즉 전쟁의 기원을 파고들었다기보다는 그러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던 국제정세의 배경을 공산측지도부의 입장에서 서술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다. 기존의 북방 삼각동맹이 표상하는 것처럼 현실 사회주의국가 내의 관계는 형제애나 동일한 이념으로 뭉친 끈끈한 관계만은 아니었다. 6·25전쟁의 발발이 스탈린 단독의 압력이나 김일성의 모험주의또는 소련과 북한의 음모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당시 막 공개되고 발굴되기 시작한 공산측 자료(모택동 문고, 코발료프 문서군 등)였고, 그것마저도 당시 지도부나 핵심인물의 속셈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션즈화의 경우, 자료의 양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이 책에 결코 뒤지지 않고, 사안에 따라서는 이를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물론 이 책의 공저자도 그전까지 미국 자료에 과도하게 편향된 연구 성과들을 보충하며, 특정 대목에서는 새로운 관련 증거와 해석을 제시할 수 있었다. ‘북방 삼각동맹설을 반박하거나 스탈린을 도외시한 마오쩌둥의 영웅적 태도등을 드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공저자가 밝히고 있듯 핵심적인 사료가 더 많이 공개되지 않는 이상, 이를테면 1950년 초 스탈린의 변심같은 문제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추론에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6·25전쟁 연구과 관련하여 이 책에 어떤 질문을 해볼 수 있을까? 이 책이 출판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6·25전쟁과 관련된 공저자의 주장은 빛이 바랬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은 오늘날까지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는 그러한 주장들이 이념적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사료에 입각한 추론으로 해소될만한 성질은 아니었는지가 궁금하다. 예를 들면, 스탈린과 마오가 주역이 된 악마가 연회를 벌이는 무대”(392) 속에서 김일성은 정말로 거대한 장기판에 놓인 하나의 졸”(265)에 불과했는가? 이는 6·25전쟁이라는 대사건의 형성·발발·전개 속에서 김일성과 북한이 과연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했었냐는 질문과 곧장 연결된다. 동시에 이는 대개 전쟁의 책임을 묻고 국가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작업과 동반되곤 한다. 1950년 초 스탈린이 아시아에서 공세로 선회한 변심의 이유(277)를 묻는 이유 또한 따져 물어야 한다. 스탈린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까지는 아니겠지만 스탈린에게 있다는 것인가? 더하여 마오쩌둥은 스탈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 6·25전쟁에 참전하였는가 등은 여전히 의문이다. 공저자뿐만 아니라 션즈화도 당당하게 마오가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라는 식의 설명방식을 차용하진 못했다. 그러한 서술의 한계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마오쩌둥의 결의(382) 자체를 묻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하지만 평자는 이 책이 6·25전쟁뿐만 아니라 냉전 초기 한 축을 담당한 공산진영의 상층정치를 살펴볼 때 입문서 내지 자료소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6·25전쟁은 사뭇 다양한 기원들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10여 개국 이상의 군대가 맞붙은 국제전으로 비화됐으며 일견 미중(美中)전쟁으로까지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따라서 6·25전쟁의 국제전적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엔측뿐만 아니라 공산측의 내밀한 속사정도 연구의 대상이 돼야 하겠고, 이 책은 그러한 의무를 선구적으로 충실히 수행했다. 더하여 이 책은 중공측의 전역일 구분법[각주:2]과 같은 다양한 정보를 독자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1. 션즈화(沈志華), 최만원 옮김, 『마오쩌뚱 스탈린과 조선전쟁』, 선인, 2010. [본문으로]
  2. ①50년 10월 25일~11월 5일 ②11월 24일~12월 24일 ③12월 31일~51년 1월 8일 ④1월 25일~4월 21일 ⑤4월 22일~6월 10일. 공저자는 軍事科學院歷史硏究部, 『中國人民解放軍大事記』 및 『中國人民解放軍六十年大事記』를 참조했음. [본문으로]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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