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평/한국전쟁2014. 9. 4. 17:28

이 책은 6·25전쟁(이하 한국전쟁”)의 역사를 다룬 본격적인 연구서라기보다는 사회과학의 이론과 설명방식을 빌려 기존의 한국전쟁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가적으로 공인된 서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전쟁의 소주제를 갈무리한 하나의 비판이자 문제제기이다. 오늘날 저자가 책머리에 쓴 바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대다수 한국인에게 한국전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설명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은 2000년에 초판이 발행됐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1차 서해교전(1999), KAL기 폭파사건(1987), 아웅산 폭파사건(1983)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해 세간을 놀라게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전쟁 당시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다고 하긴 어렵겠으나, 한국전쟁의 귀결이자 여전히 지속 중인 휴전체제(또는 분단체제)”는 그러한 사건들이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조건 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알려준다.

 

 책에 대한 비평에 앞서 저자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저자 김동춘의 지향과 실천이 갖는 파급력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는 1977년에 대학에 입학한 이후, 19844·19를 다뤄 사회학 석사학위를, 고교 교사를 거쳐 1993년 한국의 노동자를 다룬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 취득 이전부터 여러 학회와 학술지를 도맡으며 약 30여 년간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항상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 수시·고정 칼럼을 기고했고 열다섯 권 이상의 단독저서는 저자의 열정적·지속적인 사회참여를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시사저널교수신문등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고, ··3개 국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저자는 2013년에 세 권의 책을 냈는데 모두 국가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그 중 한 권은 한국전쟁과 학살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연장선상에 있고, 저자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성장 및 활동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천천히 뜯어보자.

 

 이 책은 모두 다섯 부로 구성돼있다. 1(또 다른 전쟁)는 이 책 전체의 서론 역할을 맡고 있으며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의 시각이나 문제제기가 어떻게 이뤄져왔고 그 각각의 문제는 무엇인지 일별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1부에서는 이 책을 관통하는 두 가지 주요한 이론인 정치의 연장·과정으로서의 전쟁계급정치로서의 전쟁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2~4부는 이 책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차례대로 피란, 점령, 학살을 열쇳말 삼아 한국전쟁을 다시금 써내려갔다. 2~4, 나아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찌 보면 앞서 설명한 이론적 자원은 물론이려니와 당시 수집할 수 있던 갖은 문헌·구술 자료를 구사해 공식 서사 내지 기존의 한국전쟁사 서술이 간과한 부분이자 공백, 소수의 목소리고통 받는 육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좀체 드러나지 않았던 힘의 장()과 힘의 관계를 비로소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국가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다소 선언적인 주장을 통해 한국전쟁을 다시금 바라보게끔 요청한 이 책의 내용을 끝맺음하였다.

 

 먼저 이 책에서 저자가 구사하는 이론적 자원과 그 쓰임의 형태에 관해 언급하겠다. 이 책은 적어도 네 명 이상 개별 논자들의 이론을 무기로 삼고 있다.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뒤르켕(Durkheim), 푸코(Foucault), 엘리아스(Elias)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18~20세기를 살아간 구라파의 지성들이었고 그들의 논변은 철학·정치학·사회학·군사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을 넘나들며 오늘날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전쟁을 다룬 이 책에서 각 이론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쓰였는지에 관해서는 설명이 소략한 편이다. 예를 들어, 클라우제비츠와 푸코는 똑같이 정치(적인 것)”에 관해 사고했으나 그 안에 담긴 기의나 쓰임은 분명 다른 맥락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정치를 푸코의 정치나 나아가 한국전쟁에서의 정치(의 연장)”와 관련지어 설명·비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저자의 정치에 관한 정의는 매우 짧다. “계급에 관한 부분도 앞서와 같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저자는 오늘날까지 논의되는 계급과 같은 논쟁적인 개념을 선행 연구들을 빌려 그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자칫 역사적 개념에 대한 몰이해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사회과학 이론서는 아니다. 그러나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갖가지 개념을 계속적으로 도입해 역사를 서술했던 점을 고려할 때, 평자는 이 책이 각각의 이론이 출현한 맥락, 적용된 맥락, 산출한 효과 등에 대해 더욱 친절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평자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1, 나아가 책 전체의 이론적 완결성에 조금이나마 덧대기를 바라는 소박한 제언에 불과하다.

 

 2~4부에서는 각각 피란, 점령, 학살을 핵심주제로 하여 기존의 형태와는 분명 차별화된 한국전쟁에 관한 설명방식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각각의 핵심주제는 사회사 또는 심성사라는 측면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게 해주는 의미 있는 연구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학술연구는 고사하고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여러 자료를 수집·활용하여 당시의 역사상을 재구성한 이 부분은 향후 해당주제를 다루려는 연구자에게도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페렌바흐(Fehrenbach)나 하루타카(佐佐木春隆) 등 한국전쟁의 이면을 다뤘던 오래된 연구 성과나 민족의 증언, 압록강변의 겨울, 수강생들의 보고서 등 구술, 조국과 같은 소설이나 역사 앞에서와 같은 일기를 자료로 구사했다. 그러나 각 자료에 대한 해제는 서술하지 않았다.

 

 저자는 2부에서 이승만과 핵심 권력층등 이른바 도강파와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한 잔류파와 같은 기존의 도식을 활용하였다. 기존 서사는 언제나 전자에게 적을 피해 달아났다는 이유로 정당성을 부여했고, 후자에게는 빨갱이요 기회주의자라는 도무지 뗄 수 없는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그대로 받지 않고 비틀어 전자는 무책임의 정치를 몸소 실현한 세력이었고, 후자는 (인민군보다는 미군의 폭격을 피해야했듯)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3부는 한국전쟁 초반 북한의 서울점령 및 이후 유엔군 점령지역을 포함한 지역에서의 실상을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려냈다. 1951년 휴전협상이 벌어지기 전까지 전선은 전황에 조응하여 실로 급격하게 요동쳤고, 그 속에서 국가는 ()”으로 거듭나 새로이/다시금(收復) 얻은 땅에서 벌어진 인민재판부역자 처벌을 수수방관하거나 부추겼다. 4부는 학살을 유형화하여 설명했고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전근대적·탈식민적 학살의 사례와 비교함으로써 그 특징을 제시했다. 2부와 3부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났다고 보기 힘든 전쟁의 잔혹상이 비로소 이 지점에서 작전/처형/보복이라는 다양한 유형을 통해 제시됐다. 저자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이나 보도연맹의 사례를 통해 학살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역사 정리도 사회 통합도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피난사회와 같이 새로이 제안한 개념의 적실성, 북한체제의 문제점을 과도하게 소급한 점, 이승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점, 남북한 인민(“코리언”)을 너무나 수동적으로 묘사한 점 등 이 책은 아쉬움과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현대 한국과의 관련 속에서 보라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하며, 따라서 이 책은 한국전쟁의 제()측면이 오늘날까지 맞닿아있음을 잘 설명해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Posted by 사용자 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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